절기

TOP
DOWN

[종려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본문

최근 개봉된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은 극사실적으로 예수님의 수난당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고난을 재발견했다는 이 야기들을 합니다. 막연하게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생생하게 주님의 고난이 자신의 인격과 삶과 연결되어서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되고 감동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신앙적 삶의 전환점(轉換 點/ turning point)이 필요합니다. 지난 2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체 신우회에서 조사한 내용입니다. 동료들을 대상으로 1. 당신 주변의 그리스도인은 어떤 모습입니까 2. 당신은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 하십니까를 질문하고 그 응답을 받았습니다. (전체질문항목 8개) (KT직원207명 / 성별 남120명 여78명, 방법: 설문지 배포 수합, 설문 실시: 2004.2. 27~29) 이웃에게 보여진 우리그리스도인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웃 은 우리에게 사랑과 봉사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꼭 그들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서라기보다 빛으로, 소금으로 소명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사회를 이끌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사회에 영향을 끼칠수 있겠습니까 그 비결은 우리주님의 고난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신 주님의 모습이 우 리의 혈관을 타고 내리지 않으면 우리는 사랑의 실천자로 설 수 없습니다.

고난의 주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큰 은혜를 체험하고 변화된 삶을 담대하게 살 수 있습니 다. 주님의 고난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 줍니까 우리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베풀어주시는 아가페(agape)의 사랑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 보다 사랑지수도, 봉사지수도 더 높아져야 합니다. 주님의 고난이 사랑과 희생의 고난이라면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참여하는 만큼 우리의 체질은 사랑체질로 봉사체질로 변화 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당하신 고난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주님의 고난은 사람들에게 오해(誤解)받은 고난입니다(1~3절). 우리가 들은 소식을 아무나 믿겠느냐 여호와의 권능과 승리가 그토록 비천하고 멸시받 는 사람에게서 나타난다는 것을 도대체 믿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1절/현대어성경). 여기 '우리'라는 것은 이사야 선지자를 포함한 모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 즉 복음 전도자들을 말합니다. 복음 전도자들이 메시지를 전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이사야가 아무리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말해도 그 당시의 사람들은 그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믿는 사람들인 "우리도" 그의 말을 흘려서 듣지 않습니다(3절b). 왜 사람들이 주님을 오해하고 무시했습니까 그 이유는 주님의 외모와 풍채에서 대단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2절). 주님은 아름답거나 장엄한 모습으로 나타난 메시야가 아니었 습니다. 오히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筍)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2 절). 사람들은 외모를 중시했지만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주님은 목재를 다루는 평범한 목수 였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艱苦)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 (疾苦)를 아는 자라 마치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3절). 메시야께서 자기 땅에 자기 백성에게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요한복 음 1:11). 바리새인들과 율법을 연구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전혀 아는 체 하지 않았습니다. 헤롯은 메시아가 왔다며 오히려 칼날을 가지고 베들레헴에 사는 두 살 아래의 아이들을 살 육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는 영광스런 구원의 소식이 우리 이방인들 에게 왔습니다(요한복음 1:12). 희미하게 주님의 고난을 대하면 주님을 위해서 희생할 수도 없고 이웃을 사랑할 수도 없 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추상적으로 와 닿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위한 사랑으로 와 닿 을 때 우리의 태도와 가치관이 점점 아름답게 변화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고난을 이해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오해하고 있습니까

 둘째, 주님의 고난은 나를 위한 대속(代贖)의 고난입니다(4-6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疾苦)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4절). 여호와의 종이 우리의 질 병을 대신하여 앓고 우리의 고통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복수 대명사로 계속해서 나오는 "우리"라는 말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대속의 고난을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4-6절). 사랑은 추상이 아니라 물증입니다(로마서 5:8).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6절). 여기서 두 가지 진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는 인간 스스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 입니다.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양과 같아서 그릇 행하여 궤도(軌道)를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의의 길을 이탈하고 죄의 길에 서있기에 우리는 스스로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존재이며 다른 사람 에게 구원의 길도 제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구원을 이룰 수가 없다는 진리가 여 기서 나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고난 받는 메시야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은 천사나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 리 죄를 담당하실 수 있도록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 계획을 세우시고 실행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주님의 이 대속의 고난,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소홀히 여기지 맙시다. 주님의 그 사랑의 따뜻한 마음을 체험하지 못할 때 우리는 율법적이 고 바리새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주님의 고난은 예언(豫言)된 고난입니다 (7~9절).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詭詐)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 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9절/참고, 마태복음 27:57-60). 예수님의 탄생이 예 언되고 성취된 것처럼 예수님의 고난 역시 예언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신약에서 성취되었 습니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 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8절). 마땅히 형벌 받을 백성이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려고 죽음의 길에서 끌어주시고 생명의 길로 옮 겨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안목이 바뀌지 않고서는 우리의 삶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인 생관이 변해야 삶의 내용들이 달라지게 됩니다. 메시야의 고난과 우리와의 관계성을 확립할 때 우리의 삶의 태도가 주님이 기뻐하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사도바울은 누구보다도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한 사람입니다. 현대인들은 바쁘기 때문 에 주님의 고난을 생각할 여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묵상해야 생명 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희생의 역사가 있어야 기쁨으로 일을 감당할 수 있고 주님의 닮은꼴 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사랑의 관계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새로남 믿음의 가족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받았지만 그 속에 나타난 사랑이 우 리를 위한 사랑으로 와 닿을 때 우리의 태도와 가치관이 변화되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 다. 고난의 주님을 바라봅시다.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은 주님을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주님 을 깊이 바라보는 만큼 우리는 점점 주님의 모습으로 바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갑시다(마태복음 16:24).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명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며 이 사명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면 우리 믿는 자들과 가정과 교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 이 새 생명의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향한 인생을 새롭게 해서 주님 앞으로 달려나올 것입 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