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예수님의 고난
본문
오늘은 예수님이 고난 당하심을 기억하며 예배드리는 고난주일입니다. 또한 한 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주님의 고난의 의미가 헛되지 않도록 경건하고, 귀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실 예수님은 고난이나 형벌을 받으실 이유가 없으신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요, 죄가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고난을 받으신 까닭은 바로 우리를 위함이요, 곧 나를 위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주님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입었습니다. 육신의 병도, 마음의 병도 치유 받았습니다. 근본적으로 죄에서 건짐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고난은 나와 상관 있습니다. 나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7백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 당하실 것에 관한 예언입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고난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큰 사랑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빌라도 법정에 넘겨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했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은 "강도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생각했습니다. (4)
그러나 예수님은 친히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고난 속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징벌을 받아서 고난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이는 마치 허랑방탕 하는 아들을 가슴아프게 바라보며 눈물로 기도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불효자식이 "우리 아버지는 무슨 죄를 저리도 많이 지었기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실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고난의 한 주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결코 고난의 의미를 곡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좀더 경건하게 지내면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나를 위한 것이며, 나와 상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죄악과 허물 때문입니다.
본문 5절을 보십시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예수님이 찔리고 피를 다 쏟으신 것은 나의 허물 때문입니다. 나의 죄악 때문에 손과 발에 못을 박히시고, 아픔을 참으시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부르짖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면 서도 한마디의 불평이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주옵소서"(눅23:34)라고 하시며 죄인들을 향하여 용서의 사랑을 간구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나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했습니다. 내가 져야 될 그 죄 짐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양은 연약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맹수와 싸울 힘이 없습니다. 늘 목자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목자가 지켜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목자 없이는 살 수 없는 양이 제 갈 길로 갔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간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인생이 저마다 복 받는 길이요, 참된 길이라 하면서도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진노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행복한 길을 원하면서도 망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너무도 연약하여 세상과 싸워 이기지 못하고, 죄악의 세력 앞에 나약한 인생들을 도우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목자로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늘 감격 속에 살아갑니다. 결코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목자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고난 당하신 것은 바로 나를 위한 것이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4-6절에 보면 '우리'라는 말이 9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바로 우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나'때문이 라는 말입니다. 나의 허물, 죄악, 교만, 혈기 때문입니다. 나의 영원한 저주와 진노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드릴 때마다 "나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과 아픔은 모두 나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나 때문입니다. 이 고난 주간을 맞이하면서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의 문제가 발생하면 '다 나 때문입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의 문제와 공동체의 문제도 모두 '나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주님의 고난이 의미가 있고,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떤 일이 발생하면 '너 때문이다'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비겁한 행위요, 성도로서 올바른 태도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감사를 배웁니다.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그리고 겸손을 배웁니다. 이제는 결코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해 봅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그 이유는 나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문제를 이겨나가고 극복해 나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태도는 어떠합니까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마다 태도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직면하면 "이제 나는 죽는구나"하고 낙망합니다. 늘 짜증을 내며 원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결국은 육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죽는 불행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힘들고 어려움을 만나면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합니다. 더욱 겸손해 집니다. 믿음으로 승리하며 오히려 영육간에 강건함과 회복의 은총을 누립니다. 이처럼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태도를 지니느냐에 따라 그 방향이나 결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 고난 속에서도 입을 열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태도를 통해서 귀하게 배우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때에 맞게 입을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별력과 지혜를 가지고 입을 열어 말할 때는 분명히 하고, 침묵을 지켜야 할 때는 침묵하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눈을 감으면 기도의 입을 열고, 눈을 뜨면 감사와 찬송의 입을 열자!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구제와 사랑의 입을 열자! 멸망당하는 인생을 긍휼이 여기고 전도의 입을 열자!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는 찬송의 입을 열자! 이렇게 입을 여는 것은 복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하는 입, 잘못에 대하여 핑계 하는 입, 욕심을 채우기 위한 입, 책임을 전가하는 입, 형제를 헐뜯는 입 등은 결코 열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주간에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주님의 태도는 침묵입니다. 할말이 많지만 침묵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원수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렸습니다. 이런 현장에 그토록 사랑을 쏟아 부었던 제자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입을 다무신 주님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27:12에 보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억지로 고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과 같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괴롭고, 억울하고, 연속적인 고난 속에서도 왜 주님은 침묵하셨습니까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가슴에까지 충만한 사랑 때문에 자기를 못박는 무리를 보면서도 탓하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저들의 죄를 사하여주옵소서" 하며 용서의 기도를 드립니다.
고난을 당하시면서 주님이 보여주신 태도는 매우 의미가 큽니다. 겸손하신 예수, 할 말이 많지만 사랑 때문에 침묵하신 예수, 또한 사랑과 용서의 태도를 지니신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처럼 끝까지 순종하는 태도, 풍성한 사랑의 태도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결과는 무엇입니까
12절을 보면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마침내는 승리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결코 패배가 아닙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이 승리는 사망에 대한 승리요, 저주에 대한 승리입니다. 죄에 대한 승리요, 마귀에 대한 승리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승리를 주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시고, 믿는 우리에게 안겨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요19:30) 이것은 예수님의 승리에 대한 선언입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우리의 구원을 다 이루신 승리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있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지는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전에는 대제사장 외에는 누구도 지성소에 들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휘장 이 찢어지므로 누구나 지성소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전에 들어와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그 은혜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의 결과로 주어진 것입니다.
찢어진 휘장은 찢어진 예수님의 육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고 있었던 죄의 장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 길이 열렸습니다. 천국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총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결과입니다.
고난의 한 주간에 나를 위해 고난 당하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주님의 고난에 대하여는 성경을 읽고, 그동안 듣고 배운 것으로 너무 잘 압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개봉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이란 영화는 문자적으로 알았던 예수님의 고난을 실감나게 영상화 시킨 작품입니다. 피눈물을 흘리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장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의 장면이 여과 없이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예수님의 고통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피부에 와 닿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내용을 통해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는 이사야를 통하여 주신 말씀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예수님의 피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실상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고난이 내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본질적인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내 고난이 되고, 나를 위한 고난이라는 사실이 느껴질 때 깊은 사랑과 감동을 더욱 얻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고난 주일인 오늘을 비롯하여 고난 주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샘물의 온 성도들은 고난의 한 주간 동안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온 가족이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발자취를 묵상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월요일은 '성전 청결의 날'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더럽힌 자들을 추방하시면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교회가 결코 '강도의 굴혈'이 되어서는 안됨을 강조하셨습니다. (막11:15-17) 우리의 몸은 성령님이 계시는 성전입니다. (고전6:19) 그러기에 성전 된 우리의 몸을 잘 지키며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화요일은 '변론의 날'입니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이들에게 진리에 대하여 가르치신 것입니다.
수요일은 '침묵의 날'입니다. 이 날은 말 없이 고뇌에 찬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목요일은 '번민의 날'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세족일'이라고도 합니다. 이 날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곧 유월절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주님을 배반하여 팔아 넘길 가롯 유다의 발도 씻겨 주시면서 섬김과 사랑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주셨습니다. 만찬이 끝난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시고 내려오신 후 체포되신 것입니다.
금요일은 '수난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으시고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일곱마디의 말씀을 하신 후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성금요일입니다. 이 날은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며 금식하는 시간들을 갖기를 바랍니다.
토요일은 '비애의 날'입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계신 날입니다.
어제 우리 고세환 형제의 동생을 장례했습니다. 33세의 젊은 나이인데 사고로 인하여 사망했습니다. 화장터에서 예배드리고 화장하게 되어 관이 불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온 유족들은 땅에 주저 앉아 엎드리며 오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 가족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 속에 장사되었지만 이를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물론 많은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눈물 흘렸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이를 보며 예수는 패배자요, 우리는 승리자가 된 양 당당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한 주간을 온 가족과 함께 섬김의 시간들을 가질 것을 제안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섬김과 사랑을 보여주심과 같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소중한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이 나를 위한 것이며, 나와 상관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는 경건과 감동이 있는 한 주간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생활 속에서 속상하고 힘든 일을 만났습니까 너무 힘들고 괴로운 일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며, 벗기고, 때리고, 조롱하고, 끌고 가고,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고 침 뱉는 아픔을 당하신 예수님. 멸시와 굴욕과 천대를 받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큰 위로와 평안을 얻을 것입니다. 히12:2에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 이렇게 참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생각하며 십자가를 참을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며, 나의 고난의 모든 환경을 이기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바로 나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시면 서도 겸손하고, 사랑의 태도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결과는 놀라운 승리였습니다. 이 고난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한 주간도 예수님의 고난을 통한 깊은 사랑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향하여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연약한 자들을 찾아가 손을 붙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속상한 사람들을 위하여 함께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철저하게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더 밝은 삶,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7백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 당하실 것에 관한 예언입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고난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큰 사랑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빌라도 법정에 넘겨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했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은 "강도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생각했습니다. (4)
그러나 예수님은 친히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고난 속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징벌을 받아서 고난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이는 마치 허랑방탕 하는 아들을 가슴아프게 바라보며 눈물로 기도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불효자식이 "우리 아버지는 무슨 죄를 저리도 많이 지었기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실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고난의 한 주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결코 고난의 의미를 곡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좀더 경건하게 지내면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나를 위한 것이며, 나와 상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죄악과 허물 때문입니다.
본문 5절을 보십시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예수님이 찔리고 피를 다 쏟으신 것은 나의 허물 때문입니다. 나의 죄악 때문에 손과 발에 못을 박히시고, 아픔을 참으시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부르짖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면 서도 한마디의 불평이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주옵소서"(눅23:34)라고 하시며 죄인들을 향하여 용서의 사랑을 간구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나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했습니다. 내가 져야 될 그 죄 짐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양은 연약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맹수와 싸울 힘이 없습니다. 늘 목자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목자가 지켜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목자 없이는 살 수 없는 양이 제 갈 길로 갔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간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인생이 저마다 복 받는 길이요, 참된 길이라 하면서도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진노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행복한 길을 원하면서도 망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너무도 연약하여 세상과 싸워 이기지 못하고, 죄악의 세력 앞에 나약한 인생들을 도우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목자로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늘 감격 속에 살아갑니다. 결코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목자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고난 당하신 것은 바로 나를 위한 것이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4-6절에 보면 '우리'라는 말이 9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바로 우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나'때문이 라는 말입니다. 나의 허물, 죄악, 교만, 혈기 때문입니다. 나의 영원한 저주와 진노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드릴 때마다 "나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과 아픔은 모두 나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나 때문입니다. 이 고난 주간을 맞이하면서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의 문제가 발생하면 '다 나 때문입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의 문제와 공동체의 문제도 모두 '나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주님의 고난이 의미가 있고,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떤 일이 발생하면 '너 때문이다'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비겁한 행위요, 성도로서 올바른 태도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감사를 배웁니다.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그리고 겸손을 배웁니다. 이제는 결코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해 봅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그 이유는 나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문제를 이겨나가고 극복해 나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태도는 어떠합니까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마다 태도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직면하면 "이제 나는 죽는구나"하고 낙망합니다. 늘 짜증을 내며 원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결국은 육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죽는 불행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힘들고 어려움을 만나면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합니다. 더욱 겸손해 집니다. 믿음으로 승리하며 오히려 영육간에 강건함과 회복의 은총을 누립니다. 이처럼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태도를 지니느냐에 따라 그 방향이나 결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 고난 속에서도 입을 열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태도를 통해서 귀하게 배우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때에 맞게 입을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별력과 지혜를 가지고 입을 열어 말할 때는 분명히 하고, 침묵을 지켜야 할 때는 침묵하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눈을 감으면 기도의 입을 열고, 눈을 뜨면 감사와 찬송의 입을 열자!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구제와 사랑의 입을 열자! 멸망당하는 인생을 긍휼이 여기고 전도의 입을 열자!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는 찬송의 입을 열자! 이렇게 입을 여는 것은 복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하는 입, 잘못에 대하여 핑계 하는 입, 욕심을 채우기 위한 입, 책임을 전가하는 입, 형제를 헐뜯는 입 등은 결코 열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주간에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주님의 태도는 침묵입니다. 할말이 많지만 침묵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원수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렸습니다. 이런 현장에 그토록 사랑을 쏟아 부었던 제자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입을 다무신 주님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27:12에 보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억지로 고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과 같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괴롭고, 억울하고, 연속적인 고난 속에서도 왜 주님은 침묵하셨습니까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가슴에까지 충만한 사랑 때문에 자기를 못박는 무리를 보면서도 탓하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저들의 죄를 사하여주옵소서" 하며 용서의 기도를 드립니다.
고난을 당하시면서 주님이 보여주신 태도는 매우 의미가 큽니다. 겸손하신 예수, 할 말이 많지만 사랑 때문에 침묵하신 예수, 또한 사랑과 용서의 태도를 지니신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처럼 끝까지 순종하는 태도, 풍성한 사랑의 태도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결과는 무엇입니까
12절을 보면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마침내는 승리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결코 패배가 아닙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이 승리는 사망에 대한 승리요, 저주에 대한 승리입니다. 죄에 대한 승리요, 마귀에 대한 승리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승리를 주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시고, 믿는 우리에게 안겨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요19:30) 이것은 예수님의 승리에 대한 선언입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우리의 구원을 다 이루신 승리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있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지는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전에는 대제사장 외에는 누구도 지성소에 들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휘장 이 찢어지므로 누구나 지성소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전에 들어와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그 은혜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의 결과로 주어진 것입니다.
찢어진 휘장은 찢어진 예수님의 육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고 있었던 죄의 장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 길이 열렸습니다. 천국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총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결과입니다.
고난의 한 주간에 나를 위해 고난 당하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주님의 고난에 대하여는 성경을 읽고, 그동안 듣고 배운 것으로 너무 잘 압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개봉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이란 영화는 문자적으로 알았던 예수님의 고난을 실감나게 영상화 시킨 작품입니다. 피눈물을 흘리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장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의 장면이 여과 없이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예수님의 고통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피부에 와 닿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내용을 통해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는 이사야를 통하여 주신 말씀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예수님의 피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실상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고난이 내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본질적인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내 고난이 되고, 나를 위한 고난이라는 사실이 느껴질 때 깊은 사랑과 감동을 더욱 얻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고난 주일인 오늘을 비롯하여 고난 주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샘물의 온 성도들은 고난의 한 주간 동안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온 가족이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발자취를 묵상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월요일은 '성전 청결의 날'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더럽힌 자들을 추방하시면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교회가 결코 '강도의 굴혈'이 되어서는 안됨을 강조하셨습니다. (막11:15-17) 우리의 몸은 성령님이 계시는 성전입니다. (고전6:19) 그러기에 성전 된 우리의 몸을 잘 지키며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화요일은 '변론의 날'입니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이들에게 진리에 대하여 가르치신 것입니다.
수요일은 '침묵의 날'입니다. 이 날은 말 없이 고뇌에 찬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목요일은 '번민의 날'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세족일'이라고도 합니다. 이 날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곧 유월절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주님을 배반하여 팔아 넘길 가롯 유다의 발도 씻겨 주시면서 섬김과 사랑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주셨습니다. 만찬이 끝난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시고 내려오신 후 체포되신 것입니다.
금요일은 '수난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으시고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일곱마디의 말씀을 하신 후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성금요일입니다. 이 날은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며 금식하는 시간들을 갖기를 바랍니다.
토요일은 '비애의 날'입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계신 날입니다.
어제 우리 고세환 형제의 동생을 장례했습니다. 33세의 젊은 나이인데 사고로 인하여 사망했습니다. 화장터에서 예배드리고 화장하게 되어 관이 불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온 유족들은 땅에 주저 앉아 엎드리며 오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 가족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 속에 장사되었지만 이를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물론 많은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눈물 흘렸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이를 보며 예수는 패배자요, 우리는 승리자가 된 양 당당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한 주간을 온 가족과 함께 섬김의 시간들을 가질 것을 제안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섬김과 사랑을 보여주심과 같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소중한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이 나를 위한 것이며, 나와 상관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는 경건과 감동이 있는 한 주간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생활 속에서 속상하고 힘든 일을 만났습니까 너무 힘들고 괴로운 일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며, 벗기고, 때리고, 조롱하고, 끌고 가고,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고 침 뱉는 아픔을 당하신 예수님. 멸시와 굴욕과 천대를 받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큰 위로와 평안을 얻을 것입니다. 히12:2에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 이렇게 참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생각하며 십자가를 참을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며, 나의 고난의 모든 환경을 이기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바로 나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시면 서도 겸손하고, 사랑의 태도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결과는 놀라운 승리였습니다. 이 고난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한 주간도 예수님의 고난을 통한 깊은 사랑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향하여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연약한 자들을 찾아가 손을 붙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속상한 사람들을 위하여 함께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철저하게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더 밝은 삶,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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