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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십자가 고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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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 살고 있는 것 같아도 한순간도 스스로 자신을 자신이 좌우하거나 지배하거나 자기의 생명을 스스로 연장시키거나 단축시킬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지으신 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다스리시는 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여 주신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하며 그 십자가의 은혜를 항상 마음에 지니고 살아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신앙과 모든 삶의 중심이 바로 십자가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했고, 십자가만 자랑하기로 고백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14에 보면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인류의 저주를 담당해주신 고난입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온갖 임했던 저주들이 예수님께로 옮겨지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3:13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율법은 준엄한 형벌과 심판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서게 될 때는 한사람도 의인으로 칭함을 받을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을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받은바 되셨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제가 모든 저주에서 해방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저주의 사람이 아니라 저주에서 해방을 받은 사람입니다. 저주의 율법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따로 속량해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11:26에 보면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복을 주실 자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저주를 하실 자도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예수님은 우리를 저주하거나 형벌과 고통과 멸망에 처하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우리가 저주에서 해방을 받아서 새생명을 얻고, 영생을 누리며, 행복을 누리는 자가 되는 것을 기뻐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저주를 십자가로 옮겨주시고, 예수님이 대신 담당케 하시고,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누가복음 6:28에 보면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저주에서 해방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저주에서 해방을 받았는데, 우리 입으로 다른 사람을 저주한다면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고, 배신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고, 우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스가랴 14:11에 보면 "사람이 그 가운데 거하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안연히 서리로다. "고 말씀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세계는 온갖 저주와 실패와 좌절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는 어떤 좌절과 실패와 절망 속에서도, 새희망이 부여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정말 우리의 손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정말 잘 살아보려고 그렇게 꾸미고 아끼던 자산들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될 줄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잘되는 것도 못되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서 마음대로 좌우하시며 치료해주실 수 있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이 모든 재난에서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천재 한재 풍재가 끊임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인간의 실수로 인한 전쟁과 환경 파괴, 운전 부주의로 일어나는 불행, 음식을 가리지 못해서 먹고 취해서 일어나는 사건, 질병, 오판해서 일어나는 비극 등 여러 가지 불상사들이 이 땅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정말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저주를 담당해주신 것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감사하면서 살면 모든 저주의 고난에서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 인류의 죄악을 대속해주신 고난입니다.
이 땅에 왜 비극과 슬픔과 죽음이 왔습니까 로마서 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죄로 인해서 고통과 불안과 공포가 왔습니다. 죄를 짓고 편안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일수록 인위적으로 그것을 이겨보려고 마약을 복용하기도 하고, 또 수면제를 복용하기도 하며, 혹은 방탕하며 망각해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 가지고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죄가 사하여질 때에 마음에 평강과 기쁨이 올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5:3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기 위하여 대신 죽어주셨습니다. 죄값으로 오는 심판을 대신 당하여 주셨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에게 죄가 주관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서 죽어주셨기 때문에 그 죽음이 절대로 헛되지 않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그 죄의 사함을 받은 백성의 반열에 우리를 거룩한 성도라고 구별하여 세워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남은 생애를 어떻게 하든지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죄의 종이 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는데 시간과 재산과 지혜와 재간을 낭비하거나 투자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 쓰임 받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느 순간에 주님이 우리를 불러 가실지 모릅니다. 사실 여러분과 저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피값으로 여러분과 저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피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쓰임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지혜나 지식이나 지위나 권세나 부귀나 좋은 목소리 등등 어떤 모습이든지 주어진 것을 가지고 속량받은 주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 그 순간이 최고의 가치있는 순간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악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를 대속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그 고난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8:2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죄의 종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속함을 받은 백성처럼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나는 구원받았다, 나는 영생을 얻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고 고백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셋째, 인생의 모든 실패를 담당해주신 고난입니다.
사람은 성공하기를 원하나 실패가 많습니다. 그리고 정말 의롭게 살기를 원하고 선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어느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죄의 종이 되고, 또 선 대신에 악을 행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그런 일이 있지 않은가 한 번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골로새서 2:15에 보면 예수께서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승리가 바로 여러분의 승리가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실패에서 스스로 좌절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인생의 모든 실패를 담당해주셨기 때문에 늘 주님 앞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같은 제자로서 베드로도 실패를 했고, 가룟유다도 실패했지만 왜 가룟유다는 완전실패자가 되었고, 베드로는 승리자가 되었습니까 가룟유다는 회개가 없었고, 베드로는 회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이 있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내 모든 죄를 회개하고 나의 실패 원인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회개할 때에 용서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세계는 정말 실패와 좌절뿐이고 어두움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영적으로 혹은 건강과 사업, 가정 생활에 실패한 자가 있다면 주님께 회개함으로 승리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의 모든 실패를 친히 담당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고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5절)라고 말씀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당하여주신 고난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사해주시고,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실패에서 회복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이 머리를 둘 곳이 없을 정도로 인생의 모든 고난에 참여했던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어지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것을 담당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저주 대신에 복을 받게 되고, 지옥 대신에 천국을 소유하게 되고, 사망에 이를 자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넷째, 인생에게 승리를 주신 고난입니다.
우리 주님은 바로 십자가로 말미암아 사망권세를 이기셨습니다. 마귀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죄악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14,15에 보면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마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죄 때문에 저주받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 이후에 지옥 갈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승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법이 있으면 그 법에 대해서 규제를 받습니다. 그러나 법이 없어지면 그 법에 대해서 규제가 없고, 자유가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셨기 때문에 마귀에게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안에서 자유함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모르겠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항상 규제가 많습니다. 귀신에게 대한 규제를 받습니다.
어떤 분이 예수 믿고 '목사님, 목사님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예수 믿고 천국은 아직 못 들어갔지만 천국에 들어간 이상의 기쁨이 있습니다. '라고 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제가 예수 믿기 전에는 장손의 며느리로서 모든 조상 집안 제사를 저희 집에서 1년에 37번이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년 365일 중에 37일은 꼬박 자정 12시에, 왜 귀신은 12시에 온다고 해서 방 문을 열어놓았다가 닫았다가 하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아이들 용돈도 하나 못주고 간식도 하나 못해주는 그런 시대에 참 어려웠었는데 예수 믿고 그러한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살아있을 때 불효하다가 돌아가신 다음에 소나 돼지 잡아놓는다고 효도가 아닙니다. 이미 영혼은 떠났습니다. 육체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대 앞에서 천국 아니면 지옥에 해당되어서 갈림길에 선 것인데 오늘 우리는 정말 여호와 하나님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영적 자유를 얻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영생을 얻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땅의 것을 보고 슬퍼하거나 괴로워하면 안됩니다. 또 땅의 것을 가지고 교만해도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나를 구원해주시고, 모든 저주에서 해방시켜주시고, 모든 형벌에서 영생으로 옮겨주시고, 또 그 예수를 내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할렐루야' 찬송하며 생활해야 됩니다. 우리는 입에서 감사가 끊임없이 나와야 됩니다.
기독교인의 기본 영성은 감사의 영성입니다. 사랑의 영성입니다. 늘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고, 사랑으로 대하고, 사랑으로 판단해야 됩니다. 어떤 규정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보다도 먼저 은혜가 앞서야 됩니다. 율법이 귀하지만 은혜보다 더 귀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은혜로 대하고, 은혜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우리는 감사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감사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영성은 기쁨의 영성입니다. 고난이 있어도 기뻐할 줄 알아야 됩니다. 고난 중에 기뻐하는 것이 진짜 기쁨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슬플 때도 기뻐할 줄 알아야 됩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난 대신에 영광으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늘 승리하며 이 세상에서 항상 예수 승리가 여러분의 승리가 되어지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인류의 저주를 당당해주시고, 인류의 죄악을 대속해주시며, 인생의 모든 실패를 담당해주시고, 인생에게 승리를 주신 고난임을 깨닫고 고난 중에도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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