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나를 위해 고난받으신 예수님
본문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6백여 년 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이사야 53장을 기록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고난받으신 예수님을 아주 자세히 예언하고 있으며… 이 말씀은 예언하신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천지를 만드시고 온 천하 만물을 주관하시는 전능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능히 그 모든 고난을 물리칠 수 있으시면서도.... 주님은 묵묵히 그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랬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수님의 고난의 사건들을 추적해 보면... 주님은 한결같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고난을 기쁨으로 받으셨습니다.
고난을 피해가신 것이 아니라 고난을 찾아갔습니다. 고난에 괴로워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수하시며 기쁨으로 받으셨습니다.
바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바로 나를 위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마치 강도를 잡듯이 몽치를 들고 노끈과 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도 우리 예수님은 "왜 이러느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 왜 나를 잡아가느냐... " 일언반구의 항변도 없으셨습니다.
가야바 법정으로 재판을 받기 위해 끌려가셨을 때에도... 주님은 거기서도 아무런 변호나 주장을 펴지 않으시고 그저 침묵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온갖 희롱과 모욕을 주었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맞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제 얼굴에 누가 침을 뱉거나...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거나 뺨을 맞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군복무를 할 때에 단체로 받은 기합말고는 없습니다. 아마 누구에게 이런 일을 당한다면 아픈 것은 둘째고 그 모욕감과 수치심 때문에 평생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6:67절을 보면...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먹으로 예수님을 치고 손바닥으로 예수님의 뺨을 후렸습니다. 그렇게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실 때에도 주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7:12절 말씀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대답도 아니하신지라" 기록했고, 14절에도 보면 "한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예수님을 예언하면서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았다고 했습니다.
아마 보통 사람같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존심만 약간 건드려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몇 일이고 몇 날이고... 어떤 분은 죽어서도 용서치 않는다며 마음속에 분을 삭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존심이나 체면을 생각한다면 우리 주님보다 더 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자존심이나 체면 따위를 생각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요, 홀로 존재하시는 지존자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주님보다 더 자존심을 내세울 사람이 있으며... 어느 누가 주님보다 체면을 내세울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모든 고난을 묵묵히 받으셨습니다. 침묵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감기 몸살만 걸려도 끙끙 앓는 소리를 내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무수한 체찍을 맞고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박히며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는데도... 그 참혹하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 앞에서도 침묵하셨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예수님은 신경질을 내신 적이 없습니다. 핏대를 올린 적이 없습니다. 자라아헉나 교만하지 아니했고 거들먹거리지 아니했고 떠벌리지 아니했고...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 분은 잠잠한 어린양 같이 침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예수님이 이렇게 침묵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말할 줄 몰라서 침묵하셨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세도 있었고 능력도 있었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으며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침묵하셨습니다.
바로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6: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 죄 값으로 죽어야만 하는데...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바로 나를 위하여 그 죽음을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고난을 받으셨을까...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6백 여년 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이사야 53장에서 주님의 고난을 상세히 기록하였습니다.
1.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신 예수님
첫째로, 주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이사야 53: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
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에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질고라는 말은 병고라는 말인데... 병으로 말미암은 모든 고통을 말합니다. 인생들이 마음과 몸에 질고로 고통을 당하면서 슬퍼하는 것을 주님이 대신 짊어지고 속량하셨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수술실에서 촌각을 다투며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의 종류만 해도 왜 그리도 많은지... 수천 수만 가지나 되고... 알 수 없는 희귀병, 난치병이 있으며... 현대 의학이 발달한 요즘에도 발견되지 못한 병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러한 것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며 슬퍼하고 있습니다. 잠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새웁니다. 눈이 충혈된 채 몇 날 몇 일을 지새우며... 슬퍼합니다.
버림받고 소외받은 마음에 사람들은 외로워서 슬프고 고독감에 몸부림을 치며 괴로워합니다.
군중속의 고독이라고... 사람들은 많은데 왜이리 외롭습니까... 왜이리 고독합니까... 왜이리 슬픈지...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눈물이 흘러내릴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인생은 슬픔이요 한숨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질고와 슬픔을 위하여 우리 예수님이 대신 속량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대신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이 대신 질고를 당하셨습니다.
내가 당해야 되는 슬픔과 모든 질고를 주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질고와 슬픔에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8:16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33년의 공생애 기간동안 거의... 죄를 용서하시며 병을 고치는 일에 보냈습니다.
주님은 한 사람의 병자도 그대로 돌려보낸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 나오는 자마다 다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12제자나 70인의 제자에게 복음을 증거하러 보내실 때에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우리의 죄만 짊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과 병도 짊어지셨습니다. 모든 질고와 슬픔까지도 다 담당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병으로 인하여 고통당하십니까... 남에게 말못할 사정이나 슬픔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당해야 될 질고와 슬픔을 주님이 대신 당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믿는 자마다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인하여 찔리고 상하신 예수님
둘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인하여 찔리고 상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 그랬습니다.
'허물'이나 '죄'는 같은 말 같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죄는 뿌리이고 허물은 뿌리에서 나온 줄기요, 잎사귀요, 꽃이요, 열매입니다.
죄라는 뿌리가 있기 때문에 그 죄로 말미암아 온갖 허물어진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죄가 있기 때문에 거짓말하고, 죄가 있기 때문에 살인하고, 죄가 있기 때문에 간음하고, 죄가 있기 때문에 도적질합니다.
죄의 뿌리에서 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물이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죄의 열매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허물진 인생을 삽니다. 그것은 그 속에 죄의 뿌리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 허물 때문에 대못에 찔리셨습니다. 양손과 양발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상징합니다. 우리 인간은 손으로 행동하고 발로써 걸어다니지 않습니까...
우리 행위가 허물진 것을 주님이 갚기 위해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에 찔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생 동안 지은 모든 허물들이 사함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의 허물이 사함 받았다 할지라도 죄의 뿌리가 남아 있는 이상 그것이 또 돋아나고 자라납니다.
완전히 뿌리를 뽑지 아니하면... 풀을 베어 버려도 또 돋아나고 또 돋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허물을 용서를 받아도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뿌리를 뽑지 아니하면 그 허물은 또다시 돋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그랬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허물 뿐만아니라 우리의 죄의 뿌리까지 뽑아내시기 위하여 상함을 받으셨습니다. 이 죄는 여호와 하나님을 반역한 원죄... 영원의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2:14절 말씀을 보면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그랬습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이 얼마나 우리 죄 때문에 상처를 입었던지 그 영혼의 모습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인생보다 상하여서 사람들이 다 보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못박힌 고통과 괴로움만 당한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우리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어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주님께서는 우리 속에 있는 영혼의 죄의 뿌리까지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1절 말씀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그랬습니다.
갈라디아서 1:4절 말씀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여호와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5:8절에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완전히 다 청산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다 갚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8:12절에서도“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그랬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사라는 허물과 우리 속에 있는 죄를 기억한다면 주님 앞에 결코 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정죄를 느끼고 주님 앞에서 도망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허물을 다 청산하시고 우리의 원죄와 영혼의 죄까지도 다 뿌리뽑아 버렸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를 철저히 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영광을 얻어서 당당하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징계를 받으신 예수님
셋째로,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주님은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셨기에... 원수들이 예수님을 붙잡아서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버림받은 징계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징계받아 세상으로 쫓겨난 아담의 징계를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자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여 에덴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그것은 징계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예비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이제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었으며 흙으로 돌아가는 징계를 받았던 것입니다.
인생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인 저주와 가난과 죽음을 당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축복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인 것입니다.
예레미야 2:13절 말씀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그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살아 보겠다고 아무리 웅덩이를 팠으나 물이 고이지 않는 터진 웅덩이라고 그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리 우리가 수고하고 애쓰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담과 모든 인간들이 받은 징계를 대신 짊어지셔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쫓겨나므로...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도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때문에 저주받고 지옥갈 인생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18-21절 말씀에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과 화목하라 여호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그랬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허물과 죄를 용서만 받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와 화목케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나게 되는 것이고 그 사랑을 통해서 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으므로... 모든 징계에서 해방되고 쫓겨난 우리가 주님 품으로 도로 돌아갔으니... 주님이 예비하신 낙원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4. 우리의 나음을 위하여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
넷째로, 우리의 나음을 위하여 주님은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존재론적으로 병든 인생입니다. 영적으로 병들어서 죽었으며... 마음으로 병들어서 시기와 분노, 질투, 미움, 원한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육체가 병들었고 우리의 생활이 병들었습니다. 모든 인생의 삶이 병든 삶인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떠나자마자 인간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병든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병든 인간이 만든 가정이기에 병든 가정이요, 사회는 병든 사회요, 국가는 병든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늘 전쟁과 싸움만을 일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 병든 인류를 대속하기 위해서 채찍에 맞으신 것입니다.
빌라도의 뜰에서 그가 통상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맞아 등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피가 흘렀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하기를‘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병든 영과 병든 마음과 병든 몸과 병든 가정과 병든 사회와 병든 생활이... 그리스도의 채찍에 맞으신 공로를 통해서 치료가 임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03:3-5절 말씀에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류를 위한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은 너무도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질구레한 일로 입을 열지 아니했습니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사소한 일에 목숨걸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너무나 엄청난 대속의 일을 위해서 오셨기에... 주님은 모든 고난과 고통과 질고를 당하시면서도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번 한 주간은 고난주간을 우리가 맞이하게 됩니다.
고난주간을 지나면서... 괴로워도 억울해도 고통을 당해도... 분한 일을 만나도 입을 열지 아니했던 예수님의 침묵을 깊이 생각하며.. 우리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찬양하며... 말없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 고난입니다.
이 놀라운 고난의 은총...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나를 위해서 슬픔을 당하셨고... 나를 위해서 모든 질고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허물과 죄악을 다 담당하셨습니다. 찔리고 상하셨습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서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병 나음을 위해서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대속하신 은혜가 여러분의 삶 속에 임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천지를 만드시고 온 천하 만물을 주관하시는 전능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능히 그 모든 고난을 물리칠 수 있으시면서도.... 주님은 묵묵히 그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랬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수님의 고난의 사건들을 추적해 보면... 주님은 한결같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고난을 기쁨으로 받으셨습니다.
고난을 피해가신 것이 아니라 고난을 찾아갔습니다. 고난에 괴로워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수하시며 기쁨으로 받으셨습니다.
바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바로 나를 위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마치 강도를 잡듯이 몽치를 들고 노끈과 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도 우리 예수님은 "왜 이러느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 왜 나를 잡아가느냐... " 일언반구의 항변도 없으셨습니다.
가야바 법정으로 재판을 받기 위해 끌려가셨을 때에도... 주님은 거기서도 아무런 변호나 주장을 펴지 않으시고 그저 침묵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온갖 희롱과 모욕을 주었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맞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제 얼굴에 누가 침을 뱉거나...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거나 뺨을 맞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군복무를 할 때에 단체로 받은 기합말고는 없습니다. 아마 누구에게 이런 일을 당한다면 아픈 것은 둘째고 그 모욕감과 수치심 때문에 평생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6:67절을 보면...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먹으로 예수님을 치고 손바닥으로 예수님의 뺨을 후렸습니다. 그렇게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실 때에도 주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7:12절 말씀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대답도 아니하신지라" 기록했고, 14절에도 보면 "한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예수님을 예언하면서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았다고 했습니다.
아마 보통 사람같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존심만 약간 건드려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몇 일이고 몇 날이고... 어떤 분은 죽어서도 용서치 않는다며 마음속에 분을 삭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존심이나 체면을 생각한다면 우리 주님보다 더 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자존심이나 체면 따위를 생각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요, 홀로 존재하시는 지존자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주님보다 더 자존심을 내세울 사람이 있으며... 어느 누가 주님보다 체면을 내세울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모든 고난을 묵묵히 받으셨습니다. 침묵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감기 몸살만 걸려도 끙끙 앓는 소리를 내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무수한 체찍을 맞고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박히며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는데도... 그 참혹하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 앞에서도 침묵하셨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예수님은 신경질을 내신 적이 없습니다. 핏대를 올린 적이 없습니다. 자라아헉나 교만하지 아니했고 거들먹거리지 아니했고 떠벌리지 아니했고...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 분은 잠잠한 어린양 같이 침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예수님이 이렇게 침묵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말할 줄 몰라서 침묵하셨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세도 있었고 능력도 있었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으며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침묵하셨습니다.
바로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6: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 죄 값으로 죽어야만 하는데...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바로 나를 위하여 그 죽음을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고난을 받으셨을까...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6백 여년 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이사야 53장에서 주님의 고난을 상세히 기록하였습니다.
1.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신 예수님
첫째로, 주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이사야 53: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
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에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질고라는 말은 병고라는 말인데... 병으로 말미암은 모든 고통을 말합니다. 인생들이 마음과 몸에 질고로 고통을 당하면서 슬퍼하는 것을 주님이 대신 짊어지고 속량하셨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수술실에서 촌각을 다투며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의 종류만 해도 왜 그리도 많은지... 수천 수만 가지나 되고... 알 수 없는 희귀병, 난치병이 있으며... 현대 의학이 발달한 요즘에도 발견되지 못한 병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러한 것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며 슬퍼하고 있습니다. 잠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새웁니다. 눈이 충혈된 채 몇 날 몇 일을 지새우며... 슬퍼합니다.
버림받고 소외받은 마음에 사람들은 외로워서 슬프고 고독감에 몸부림을 치며 괴로워합니다.
군중속의 고독이라고... 사람들은 많은데 왜이리 외롭습니까... 왜이리 고독합니까... 왜이리 슬픈지...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눈물이 흘러내릴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인생은 슬픔이요 한숨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질고와 슬픔을 위하여 우리 예수님이 대신 속량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대신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이 대신 질고를 당하셨습니다.
내가 당해야 되는 슬픔과 모든 질고를 주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질고와 슬픔에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8:16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33년의 공생애 기간동안 거의... 죄를 용서하시며 병을 고치는 일에 보냈습니다.
주님은 한 사람의 병자도 그대로 돌려보낸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 나오는 자마다 다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12제자나 70인의 제자에게 복음을 증거하러 보내실 때에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우리의 죄만 짊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과 병도 짊어지셨습니다. 모든 질고와 슬픔까지도 다 담당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병으로 인하여 고통당하십니까... 남에게 말못할 사정이나 슬픔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당해야 될 질고와 슬픔을 주님이 대신 당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믿는 자마다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인하여 찔리고 상하신 예수님
둘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인하여 찔리고 상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 그랬습니다.
'허물'이나 '죄'는 같은 말 같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죄는 뿌리이고 허물은 뿌리에서 나온 줄기요, 잎사귀요, 꽃이요, 열매입니다.
죄라는 뿌리가 있기 때문에 그 죄로 말미암아 온갖 허물어진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죄가 있기 때문에 거짓말하고, 죄가 있기 때문에 살인하고, 죄가 있기 때문에 간음하고, 죄가 있기 때문에 도적질합니다.
죄의 뿌리에서 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물이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죄의 열매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허물진 인생을 삽니다. 그것은 그 속에 죄의 뿌리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 허물 때문에 대못에 찔리셨습니다. 양손과 양발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상징합니다. 우리 인간은 손으로 행동하고 발로써 걸어다니지 않습니까...
우리 행위가 허물진 것을 주님이 갚기 위해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에 찔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생 동안 지은 모든 허물들이 사함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의 허물이 사함 받았다 할지라도 죄의 뿌리가 남아 있는 이상 그것이 또 돋아나고 자라납니다.
완전히 뿌리를 뽑지 아니하면... 풀을 베어 버려도 또 돋아나고 또 돋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허물을 용서를 받아도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뿌리를 뽑지 아니하면 그 허물은 또다시 돋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그랬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허물 뿐만아니라 우리의 죄의 뿌리까지 뽑아내시기 위하여 상함을 받으셨습니다. 이 죄는 여호와 하나님을 반역한 원죄... 영원의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2:14절 말씀을 보면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그랬습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이 얼마나 우리 죄 때문에 상처를 입었던지 그 영혼의 모습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인생보다 상하여서 사람들이 다 보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못박힌 고통과 괴로움만 당한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우리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어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주님께서는 우리 속에 있는 영혼의 죄의 뿌리까지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1절 말씀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그랬습니다.
갈라디아서 1:4절 말씀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여호와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5:8절에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완전히 다 청산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다 갚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8:12절에서도“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그랬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사라는 허물과 우리 속에 있는 죄를 기억한다면 주님 앞에 결코 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정죄를 느끼고 주님 앞에서 도망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허물을 다 청산하시고 우리의 원죄와 영혼의 죄까지도 다 뿌리뽑아 버렸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를 철저히 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영광을 얻어서 당당하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징계를 받으신 예수님
셋째로,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주님은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셨기에... 원수들이 예수님을 붙잡아서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버림받은 징계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징계받아 세상으로 쫓겨난 아담의 징계를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자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여 에덴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그것은 징계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예비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이제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었으며 흙으로 돌아가는 징계를 받았던 것입니다.
인생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인 저주와 가난과 죽음을 당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축복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인 것입니다.
예레미야 2:13절 말씀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그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살아 보겠다고 아무리 웅덩이를 팠으나 물이 고이지 않는 터진 웅덩이라고 그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리 우리가 수고하고 애쓰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담과 모든 인간들이 받은 징계를 대신 짊어지셔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쫓겨나므로...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도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때문에 저주받고 지옥갈 인생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18-21절 말씀에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과 화목하라 여호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그랬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허물과 죄를 용서만 받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와 화목케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나게 되는 것이고 그 사랑을 통해서 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으므로... 모든 징계에서 해방되고 쫓겨난 우리가 주님 품으로 도로 돌아갔으니... 주님이 예비하신 낙원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4. 우리의 나음을 위하여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
넷째로, 우리의 나음을 위하여 주님은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존재론적으로 병든 인생입니다. 영적으로 병들어서 죽었으며... 마음으로 병들어서 시기와 분노, 질투, 미움, 원한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육체가 병들었고 우리의 생활이 병들었습니다. 모든 인생의 삶이 병든 삶인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떠나자마자 인간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병든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병든 인간이 만든 가정이기에 병든 가정이요, 사회는 병든 사회요, 국가는 병든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늘 전쟁과 싸움만을 일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 병든 인류를 대속하기 위해서 채찍에 맞으신 것입니다.
빌라도의 뜰에서 그가 통상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맞아 등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피가 흘렀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하기를‘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병든 영과 병든 마음과 병든 몸과 병든 가정과 병든 사회와 병든 생활이... 그리스도의 채찍에 맞으신 공로를 통해서 치료가 임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03:3-5절 말씀에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류를 위한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은 너무도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질구레한 일로 입을 열지 아니했습니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사소한 일에 목숨걸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너무나 엄청난 대속의 일을 위해서 오셨기에... 주님은 모든 고난과 고통과 질고를 당하시면서도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번 한 주간은 고난주간을 우리가 맞이하게 됩니다.
고난주간을 지나면서... 괴로워도 억울해도 고통을 당해도... 분한 일을 만나도 입을 열지 아니했던 예수님의 침묵을 깊이 생각하며.. 우리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찬양하며... 말없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 고난입니다.
이 놀라운 고난의 은총...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나를 위해서 슬픔을 당하셨고... 나를 위해서 모든 질고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허물과 죄악을 다 담당하셨습니다. 찔리고 상하셨습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서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병 나음을 위해서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대속하신 은혜가 여러분의 삶 속에 임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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