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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와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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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 나라 저 나라로 도망다니고 있습니다만, 한때는 한국 경제계의 총수였던 대우그룹의 김우중씨가 쓴 책 가운데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넓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사실입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대단히 넓습니다. 따라서 신기하고 놀라운 곳이 많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몇시간을 가도 산만 나오는 곳이 있는가 하면, 모래 사막 뿐인 곳도 있고 , 반대로 풀밭만 보이는 곳도 있습니다.
강원도 삼척에 가면 환선굴이라는 굴이 있습니다. 산 중턱에 있는 그 굴속으로 들어가 보면 산 아래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넓은 광장이 있고, 깊은 계곡이 있고 시냇물이 흐르고, 폭포가 있습니다. 땅 속에 별개 다 있습니다.
작년에 청년들과 학생들하고 중국 여행을 하는 중에 삼양 근처에 있는 본계라는 곳에 있는 수동이라는 굴을 가 보았습니다. 굴 입구로 들어가니 물이 나오는데 그냥 물이 아니고 강 같았습니다. 12인승 모터 보트를 타고 들어가는데 30분을 들어가다가 나왔습니다. 땅속에 큰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미국 테네시주에는 Ruby Fall이라는 폭포가 있습니다. 산 속 지하에 있는데,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300m를 내려가서, 다시 옆으로 500m를 걸어가니까, 큰 광장이 나오고 폭포가 보이는데 50m 높이에서 떨어지는 큰 폭포였습니다. 작은 불줄기가 아니라 설악산 비룡폭포 같은 큰 폭포가 지하 300m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기하고 놀라운 곳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신기한 일도 많고, 놀라운 일도 많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도 못할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이 있습니다.
서울에 아가페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우리 노회에 속해 있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교회당을 새로 지으려고 땅을 보러 다녔는데, 태능 근처에서 좋은 땅을 보았습니다.
주인을 찾아서 땅값을 물으니 교회가 예산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비쌌습니다. 그래서 어떻게하나 하니까, 땅주인이 무엇을 하려고 그럽니까 물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당을 지으려고 한다니까 무슨 교회냐고 물었습니다. 아가페 교회라고 대답하니까, 땅 주인이 “신기하기도 하다”고 하면서 싼값에 판다고 하였습니다.
이상해서 사연을 들어보니 땅 주인이 전에 꿈을 꾸었는데 자기 땅에 웬 교회당이 들어서더랍니다. 그 주인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기에 내 땅에 웬 교회당이 서는가하고 의아해 하면서 교회 이름을 보니까, 하얀 건물에 “아가페 교회” 라는 이름이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이상하기도 하다고 생각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을 사겠다는 사람이 교회 목사이고, 그 교회 이름이 “아가페 교회”라는 말을 듣고 이 땅은 내 땅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값은 싸지만 교회에다 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싯가보다 훨씬 싼 값에 땅을 사서는 교회당을 지었는데, 땅 주인이 꿈에 본 것처럼 하얀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또 손병호 목사라는 분은 영국에서 공부를 할 때에 하루는 고서점에 가서 낡은 성경책을 한권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까 종교개혁자 깔뱅의 후계자인 베자라는 사람이 펴낸 아주 귀한 성경책이었습니다.
그래서 놀란 마음으로 서점으로 달려가 “내가 당신네 책방에서 이렇게 귀한 책을 싼 값에 샀다. 그래서 도로 가져왔다. ” 그러니까 책방주인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그것은 당신의 행운이요. ” 그래서 굉장히 비싼 현 싯가로 따지면 10억원도 더 될 보물을 아주 헐값에 구했다고 합니다.
살다보면, 때로는 놀랍고도 신기한 일을 겪는 것입니다.
반면에, 세상에는 나쁜 일도 있습니다. 슬픈 일도 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고, 가당찮은 일도 있습니다.
어떤 부인은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옆자리의 남편을 보니 죽어있더랍니다. 어젯밤까지 같이 이야기하였는데, 밤새 자는 사이에 죽은 것입니다. 한마디 말도 없이 남편이 떠나간 것입니다.
어떤 여성도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들이 문 앞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으켜 보니 정신은 있는데 말을 못했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서 응급조치를 하였지만, 그 다음날 죽고 말았습니다. 아주 건강하던 아들이었는데, 이유도 모른채 죽었습니다. 그 아들을 장례하던 날, 죽은 청년의 큰 아버지가 “이 녀석아, 네가 나를 묻어 주어야지 내가 너를 묻냐 이게 웬일이냐” 하며 우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하루 동안에도 별별일이 다 생기는 것입니다.
때로는 기쁘고 즐거운 일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자고나니까 미나리나 심던 습지의 땅값이 신도시가 개발된다는 소식에 천장부지로 뛰어서 벼락부자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심코 산 복권이 당첨되어 큰돈을 손에 쥐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때로 예기치 못한 복된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서 가당치도 않은 일이 일어나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나서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절망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세상에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 가당치 않은 일도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처구니 없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중에서 가장 가당치 않은 일 결코 일어 나서는 안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꿈속에서라도 일어나서는 안되고, 상상 속에서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고난 당하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픔을 겪고 고통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평강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슬픔과 괴로움을 겪으시는 것입니다. 가장 지존하시고,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모욕을 당하시고, 매를 맞고, 가시에 찔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시고,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슬픔과 아픔을 당하시다니!
가장 지존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욕을 먹고, 채찍에 맞고 가시에 찔리고, 창에 찔리다니 그런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의 꿈이나 상상 속에서조차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고난을 당하시다니!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수욕을 당하다니!
그것이 어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아들이 아버지를 욕하거나 때리거나 죽이면 안되듯이, 아들이 어머니를 욕보이면 안되듯이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옛날에 조선시대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살부 사건이 일어나면, 그 동네 자체를 없앴다고 합니다.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기에 동네 자체를 없애 버린 것이고, 그 집은 집을 허물고, 땅을 파서 연못을 만들어 버렸다고 합니다. 사람이 아버지를 죽이는 일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고난받으시고 그 아들이 수욕을 당하다니!
그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고, 가당찮은 일입니다.
그래서 헬라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처음 들었을 때에 받아 들이지를 못하였습니다. 헬라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에게 고난 당하는 것을 이해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로마 사람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저 멀리 로마제국의 변두리에 있는 이스라엘 땅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당한 예수를 그리스도, 구세주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부끄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고 멸시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고백한 까닭은,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당시 지성인들의 생각에는 신이 사람들에게 고난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처구니 없는 일, 가당치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선지자 이사야가 오늘의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는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 의해 가시에 찔리시고 창에 찔리시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상하고, 아프고, 슬프고, 괴로운 고통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죄인된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드님에게 야단맞고, 욕먹고, 매맞고, 징계 받아야 하는데 반대로 지존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매를 맞고, 갖은 수욕을 다 당하신 것입니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어처구니 없고, 가당찮은 일이 역사 속에 실제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꿈도 아니고 상상도 아니고 연극도 아니고 실제 상황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께 잘못했기에 당하는 마땅한 징계요, 벌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허물과 죄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당하고, 벌을 받은 것이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그리스도이시며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로 믿기보다는 반대로 정신 나간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귀신이 들었다고도 말했습니다(막3:21,22) 사람들은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너무도 몰랐습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죄로 가득차다보니 거룩하신 분을, 미친 사람으로 귀신들린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모독하고 비난하였습니다.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에게 욕을하고 침을뱉고, 채찍질을 하고, 창으로 찌르고,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피조물인 사람들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것입니다. 타락한 죄인들이 거룩하신 의인을 죽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창조주이시면서, 역사의 주인이시면서,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귀신을 쫒아내시고, 온갖 질병을 고치셨던 전능하신 분이시면서도 묵묵히 말없이 수모를 견디시고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능력이 모자라서도 아니었습니다.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죄인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면 그 길 밖에 없었기에 거룩하신 분께서 온갖 수모와 고통을 받으신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오늘의 본문에서 죄인들을 위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고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마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분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슬픔을 겪으신 것은 우리의 질고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창에 찔리고 상한 까닭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결과 이제 사람들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죄인 된 사람들은 서로 반대적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가장 거룩하신 분이 낮은자가 되었습니다.
그 대신 천한 세리와 창기들이 존귀한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가장 의로우신 분이 죄인이 되셨습니다.
반대로 죄인되었던 이들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늘나라의 주인께서 땅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러자 땅의 사람들이 천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가장 부요하신 분이 머리 둘 곳도 없는 가난한 분이 되셨습니다(마8:20).
대신 사람들은 부요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생명이신 분께서 온갖 질병을 짊어지시자, 사람들은 새 생명을 받은 강건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 사람들의 역사 속에 어처구니 없고, 가당치도 않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하는 일이 일어난 까닭은 바로 사람들을 새롭게 하기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놀라운 사실을 사실 그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의 고난이, 인류를 위한 사랑의 고난이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생전에 무슨 죄를 졌든지 다 용서받고,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 속에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된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겸허해집니다.
감격에 젖게 됩니다. 나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극하시고 망극하신 사랑에 감격하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예수님의 사랑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 어떤 사랑보다 진한 거룩한 사랑인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보다 큽니다.
남편이나 아내의 사랑보다 큽니다. 자식의 사랑은 비교조차 안 됩니다.
형제 자매의 사랑이나 친구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죄인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 나를 위한 예수님의 사랑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사랑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제대로 믿기만 하면, 그는 전혀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됩니다.
낮은 자리에서 일어나 귀한 사람이 됩니다.
병든자가 치유되어 강건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한번 역사하시기만 하면 어떤 무서운 병도 한순간에 치유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고달픈 인생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기만 하면 하늘의 평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 안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죄인된 사람들에게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 믿음을 가지고, 진실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기쁨이 상급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주님의 고난을 기리는 고난주일입니다.
더욱 주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잘 믿으면 잘 믿을수록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기쁨과 평안은 더욱 커지고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함과 만족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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