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주님이 당하신 고난
본문
주님은 약속한대로 오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온갖 고통과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상징이요,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주님이 당하신 고난은 바로 나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 고난주일을 맞이하고, 또한 고난의 한 주간을 지내면서 더욱 뜻깊고 의미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가정과 사업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까지 지신 주님이 반드시 도우실 것입니다. 절망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 당하신 주님의 고난을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3년의 사역 중에 마지막 1주일은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이 한 주간 동안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셨고, 최후의 만찬, 로마 병정들에게 체포당하신 일,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큰 고난을 당하시다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이렇게 한 주간 동안 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이 당하신 고난과 아픔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한 주간을 사시기 바랍니다.
첫째, 주님은 심히 괴로우셨습니다. (이미 이사야를 통해 예언한대로)
사53:7절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했다"는 한 말씀이 주님이 당하신 아픔이 얼마나 컸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 엄청난 십자가의 고통으로, 심히 괴로우셨지만 우리를 위해 참으셨습니다. 고난을 참고 이기신 주님은 고난 당하는 자기 백성들을 아십니다. 사랑하십니다. 반드시 함께 하실 것입니다.
둘째, 주님은 비명을 지르고, 절규하실 정도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마27:46절을 보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비명과 절규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얼마나 힘들고 아팠으면, "왜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하셨겠습니까
사실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아픔은 최고의 형벌입니다. 나를 위해, 우리 샘물가족을 위해, 우리 모든 인류를 위해 대신 짊어지시는 고통입니다. 이 엄청난 고통을 홀로 당하셨습니다. 육신적으로 아프고,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고, 버림당하는 영적인 고통이 절규하게 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약속한대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죄에 대하여는 아들을 버리시면서 까지 반드시 청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저 적당히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용서의 주님, 사랑의 주님을 모른 채 그저 죄악의 낙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까지 도전하는 새로운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정말 큰일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번 흔드시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당하신 주님의 고난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 아픔은 무엇입니까
1. 계절적인 아픔, 젊음을 버리는 아픔입니다.
따뜻한 봄이 되면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녹고, 만물이 소생합니다. 파랗게 새싹이 돋아나고, 나무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이렇게 봄은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계절로 보면 봄철과 같은 33세의 젊은 나이에 시들어야 했습니다. 젊음을 버리는 아픔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그는 주 앞에서 연한 순 같이 자라고, 마른땅에서 자라나는 줄기와 같다고 하였고, 또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고난과 아픔이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 대속적인 아픔입니다.
죄가 없으신 주님이 죄인 된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기에 그 쓰리고 아픈 고통도 참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당하신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로 하여금 지옥의 형별을 면하고 영원히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대속적인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벧전2:19-21절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3. 강한 자로서 약한 자에게 당하는 아픔입니다,
주님은 최고로 강하십니다.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매맞고, 끌려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맞아 주셨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의인으로서 악인에게 고난 당하셨고, 강자로서 약자에게 당하신 고난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최대로 순종의 표본과 인내의 본이 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순복하기 위하여 강하신 주님이 약한 사람들에게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해가 저물었을 때에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하룻밤을 유하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성격이 급한 요한은 울분이 터졌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불이라도 쏟아져서 사마리아 사람들의 비정함과 강퍅한 저들을 함께 진멸해 버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책망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큰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예수님의 큰사랑 안에 들어와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행복합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의 아픔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손에 조그만 가시만 찔려도 아프고 쑤시게 되는데, 주님은 양손과 발에 못 박히고, 창으로 허리를 찔리며 물과 피를 다 쏟으셨으니 이 아픔을 누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첫째, 죄는 정말 무서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죄에 대해 확실한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은 정말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아니면 그 십자가를 지시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아픔을 참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겪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랑이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기 바랍니다. 놀라운 힘이 되기 바랍니다. 새 삶으로 변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당하신 고난은 약동하는 봄과 같은 젊음의 생명까지 버린 아픔이었습니다. 죄 없으신 그분이 죄인인 저와 여러분을 위해 당하신 대속적인 아픔이었습니다. 최고의 강자로서 약자에게 당하는 아픔이었습니다. 바로 이 고난이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한 주간을 지내면서 주님의 십자가의 은총을 깊이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당하신 그 아픔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힘들고 지쳐있는 환경도 아픔을 당하신 주님이 잘 아십니다. 십자가의 은총으로 주님의 참된 위로와 평안을 맛보는 경건하고 복된 한 주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가정과 사업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까지 지신 주님이 반드시 도우실 것입니다. 절망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 당하신 주님의 고난을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3년의 사역 중에 마지막 1주일은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이 한 주간 동안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셨고, 최후의 만찬, 로마 병정들에게 체포당하신 일,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큰 고난을 당하시다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이렇게 한 주간 동안 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이 당하신 고난과 아픔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한 주간을 사시기 바랍니다.
첫째, 주님은 심히 괴로우셨습니다. (이미 이사야를 통해 예언한대로)
사53:7절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했다"는 한 말씀이 주님이 당하신 아픔이 얼마나 컸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 엄청난 십자가의 고통으로, 심히 괴로우셨지만 우리를 위해 참으셨습니다. 고난을 참고 이기신 주님은 고난 당하는 자기 백성들을 아십니다. 사랑하십니다. 반드시 함께 하실 것입니다.
둘째, 주님은 비명을 지르고, 절규하실 정도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마27:46절을 보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비명과 절규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얼마나 힘들고 아팠으면, "왜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하셨겠습니까
사실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아픔은 최고의 형벌입니다. 나를 위해, 우리 샘물가족을 위해, 우리 모든 인류를 위해 대신 짊어지시는 고통입니다. 이 엄청난 고통을 홀로 당하셨습니다. 육신적으로 아프고,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고, 버림당하는 영적인 고통이 절규하게 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약속한대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죄에 대하여는 아들을 버리시면서 까지 반드시 청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저 적당히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용서의 주님, 사랑의 주님을 모른 채 그저 죄악의 낙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까지 도전하는 새로운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정말 큰일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번 흔드시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당하신 주님의 고난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 아픔은 무엇입니까
1. 계절적인 아픔, 젊음을 버리는 아픔입니다.
따뜻한 봄이 되면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녹고, 만물이 소생합니다. 파랗게 새싹이 돋아나고, 나무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이렇게 봄은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계절로 보면 봄철과 같은 33세의 젊은 나이에 시들어야 했습니다. 젊음을 버리는 아픔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그는 주 앞에서 연한 순 같이 자라고, 마른땅에서 자라나는 줄기와 같다고 하였고, 또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고난과 아픔이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 대속적인 아픔입니다.
죄가 없으신 주님이 죄인 된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기에 그 쓰리고 아픈 고통도 참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당하신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로 하여금 지옥의 형별을 면하고 영원히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대속적인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벧전2:19-21절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3. 강한 자로서 약한 자에게 당하는 아픔입니다,
주님은 최고로 강하십니다.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매맞고, 끌려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맞아 주셨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의인으로서 악인에게 고난 당하셨고, 강자로서 약자에게 당하신 고난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최대로 순종의 표본과 인내의 본이 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순복하기 위하여 강하신 주님이 약한 사람들에게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해가 저물었을 때에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하룻밤을 유하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성격이 급한 요한은 울분이 터졌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불이라도 쏟아져서 사마리아 사람들의 비정함과 강퍅한 저들을 함께 진멸해 버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책망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큰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예수님의 큰사랑 안에 들어와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행복합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의 아픔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손에 조그만 가시만 찔려도 아프고 쑤시게 되는데, 주님은 양손과 발에 못 박히고, 창으로 허리를 찔리며 물과 피를 다 쏟으셨으니 이 아픔을 누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첫째, 죄는 정말 무서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죄에 대해 확실한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은 정말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아니면 그 십자가를 지시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아픔을 참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겪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랑이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기 바랍니다. 놀라운 힘이 되기 바랍니다. 새 삶으로 변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당하신 고난은 약동하는 봄과 같은 젊음의 생명까지 버린 아픔이었습니다. 죄 없으신 그분이 죄인인 저와 여러분을 위해 당하신 대속적인 아픔이었습니다. 최고의 강자로서 약자에게 당하는 아픔이었습니다. 바로 이 고난이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한 주간을 지내면서 주님의 십자가의 은총을 깊이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당하신 그 아픔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힘들고 지쳐있는 환경도 아픔을 당하신 주님이 잘 아십니다. 십자가의 은총으로 주님의 참된 위로와 평안을 맛보는 경건하고 복된 한 주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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