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십자가의 고난
본문
지난 주일에 '고난의 미학'에 대해서 말씀 전하였다. 고난은 꼭 나쁜 것만이 아니다. 고난은 일견 우리에게 고통, 눈물도 주지만, 유익한 면도 있음을 말하였다. 고난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 나가신다. 참된 축복을 누리게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하시는 것이 고난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기 때문에 이런 저런 고난을 받는다. 고난이 우리에게 왔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고난을 보아야 한다.
1) 고난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아버지요,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이다.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잘 되게 하게 하기위해서 고난을 주신다. 고난을 어떻게 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2) 고난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우리 인간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여야 한다. 그 방법이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시다. 그리스도는 Master Key이다.
2.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의미를 알고 축복 받고 사는 삶이 신앙인의 삶이다.
오늘은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한다. 십자가에서 가장 큰 고난이 나타났다.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셨는가 고난을 받으신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이 죄를 지으셨는가 예수님의 고난이 예수님을 믿고 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 어떠한 유익이 있는가 이것을 놓쳐 버리면 의미 없는 삶이다. 그 의미를 알고 축복 받고 사는 삶이 신앙인의 삶이다.
(사도신경)"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 예수님의 고난을 표현하였다.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오신 그 자체가 고난이다. 가장 큰 고난 중의 하나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시면서, 출생하시는 것부터 고난이셨다. 마구간에서, 짐승이 있는 고난스러운 삶을 시작하셨다. 사람들은 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헤롯왕은 자기를 도전하는 위협하는 존재로 보고 죽이려 하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의 꿈에 나타나 피하게 하여 살리셨다. 후에 애굽으로 도망을 가고 다시 나사렛으로 가 자라게 하신다. 아버지 요셉은 목수이었다. 그 아버지는 일찍 죽었다 하였다. 그래서 아마도 예수는 일찍부터 목수일을 하면서 30년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3년간의 공생애를 사셨다.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온갖 고난을 받으셨다. 이 3년의 시간은 온갖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수난을 받으셨다. 그러다 십자가의 죽음을 받으신다. 가장 잔인한 형벌을 받으신다. 예수님의 삶이 십자가에서 크라이막스를 맞으며 삶을 마치신다.
3. 성경은 그리스도와 관련된 말씀이시다.
구약에는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의 예언이 많이 나와있다. 직설적으로, 암시적으로 메시야의 예언이 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표현보다 대부분이 고난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시편과 예언서를 보면, 예수님의 고난을 표현하는 곳이 많이 있다. (시69:4) - 까닭 없이 미움을 받으시는 것을 말씀하였다. (시22:16) - 수족이 찔려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였다. (시22:6-8) - 온갖 조롱과 모욕을 당할 것을 말씀하였다. (시69:21) -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쓸개와 초를 마실 것을 말씀하였다. (슥12:10) -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엽구리가 찔 것을 말씀하였다. (시22:18) - 예수님의 속옷을 제비뽑아서 나누어 가질 것을 말씀하였다. (시34:20) - 예수님이 죽으실 때 뼈가 꺾이지 아니하실 것까지도 말씀하였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시편과 예언서에서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이 오셔서 배척을 받고 '내가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을 때, 믿지를 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통치자로 생각하였고, 12제자들도 알지 못하였다. (눅24:25-26)"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 죽은 것을 믿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제자에게 고난을 먼저 받을 것을 그리고 부활하실 것을 깨우쳐 주신다. (눅9:22)"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시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와 무시와 핍박을 받으시고 끝내는 가롯 유다의 배신을 당하고 가시관을 쓰고 죽으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공생애가 전부 고난으로 가득하시다. 모욕적인 언사를 당하고 모욕적인 심문을 받는다. 고난스러운 죽음을 내다 보시기 때문에 게세만의 동산에서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신다.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에, 이것은 그 분의 인간적인 마음이시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기쁘게 십자가에 달리셨다. 영광의 주님이 치욕적인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시며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버림을 받으시는 고통을 호소하신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였다. 온 인류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기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살아야 하는 존재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으로 완전히 해결하셨다. 우리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기까지 하시는 고난을 받으셨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는 것을 보면, 인간적으로도 손과 발에 대못을 박고 온 몸이 내려 앉으면서 몸이 찢겨 나가시며 고통 받으시는 예수님, 땀과 피를 흘리시면서 '내가 목마르다'고 하시는 부르짖음, 의학적으로는 호흡곤란으로 죽게 된다고 한다. 예수님이 무슨 이유로 죽으셨나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의 모든 문제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서 고난을 받고 죽기까지 하셨다.
4. 대속의 죽으심 :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사53: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얼마나 억울한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 분을 우리는 이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사53:7-8)"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 예수님은 억울하기 짝이 없는 그 분은 입을 열지 않았다. '마땅히': 잘못 오해하면 죽을 죄가 있구나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을 위해서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대속의 죽으심'이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고난뿐만 아니라 영원한 지옥의 고난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이다. (요3:16)"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여호와 하나님의 높이와 길이와 넓이와 깊이의 큰 사랑으로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신다. (롬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벧전3:18)"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였으니 이는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형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히2:10)"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여호와 하나님) 많은 아들을(우리들, many sons)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예수님)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고난속으로 몰고 가서는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완전케 하셨다. 예수님의 고난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의 고난때문에 우리가 살았고, 예수님의 고난때문에 우리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필요 충분조건을 우리에게 주셨다.
5. 고난 받는 종 : The Suffering Servant.
(사52:13-15) 학자들은 고난 받는 종으로 표현하였다. The Suffering Servant. 종의 모습,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별로 대수롭지 않으셨다. 그러나 장차 심상치 않으실 것으로 표현하였다. (사53:1-3) 예수님이 배척당하는, 멸시당하심을 표현하였다. 학자들은 예수님의 얼굴 모양이 흉물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고 모습으로 인하여 싫어하였다고 한다. (사53:4-5) 고난 당하시는 실상과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표현하였다. 항상 우리 마음 속에 평안, 안심, 위로가 생겨지는 말씀이시다. (사53:6-9) 그가 억울하게 고난 당했어도 침묵하심을 나타낸다. (사53:10-12) 그가 고난때문에 나타난 영광을 설명한다.
그가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잘못으로, 그가 죄 때문에 죽었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사53:4-5) 그가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고, 채찍은 나음을 허락하셔서, 우리에게 치유의 역사하심이 나타남은 그가 채찍을 맞으셨기 때문이다. (사53:6) 제각기 살려고 하는 마음은 범죄, 실패를 낳는 우리 인생때문에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와 우리를 계속 대조한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 때문이다. 나 때문이다. 내가 받을 것을 대신 받으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왜 죽으셨나 오해로 또는 다른 의미로 아니다. 나 때문에 죽으셨다. In my place, for my sake, my behalf. 순전히 나 때문에 대신 죽으셨다. 그와 나는 절대 상관이 있다. 나의 고난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
6.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다음을 생각하자.
1) 예수님이 아무 죄도 없이 고난을 당하셨음을 생각하라. 아무 죄도 없으신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도 고난 당하심을 생각하자.
2)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것이 나 때문임을 생각하라. 내 고난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하셨다. 모두 Pay하셨다. 모두를 위해서 값을 치루셨다. 현재 받는 나의 고통과 문제의 값은 예수님이 이미 값을 다 치루셨음을 믿어라. 그것을 믿을 때 굉장한 평안과 위로가 임하게 된다.
3)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는데 고난이 고난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고난이 승리로 나타났다. 십자가의 역설적인 의미는 죽었는데 살았고, 패하였는데 승리하였다.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기셨다 하였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이겼다. 중요한 것은 나는 이미 이겼다 라고 믿어라. 패배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 100년 하여도 소용이 없다. 1+11이 신앙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은 인간적으로 보면 진 것 같은데 실제로 이긴 것이고 이겼다. 이것이 십자가의 원리이고 진리이다. 예수님도 고난을 당하셨다. 예수님의 고난은 나의 고난이다. 이 고난은 결국 승리하였다.
4) 내가 고난을 당할 때, 이 고난이 헛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 고난을 통해서 나의 선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해산의 과정이다. 내가 현재 당하는 고난이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이 고난을 통해서 '나는 내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낳는다'라고 할 때 우리는 이길 수 있다.
5) 내가 받는 고난을 통해서 나의 고난은 쓰인다. (고후1:3-4)"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 우리와 같은 고난을 받는 사람들에게 내가 똑 같은 고난을 통과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겼음을 증거하라. (고후1:5-7)"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 우리에게는 위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이다. 우리의 걸음걸음마다, 구석구석마다 자녀를 위로하신다. 믿어라. 믿어야만 경험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때로는 그렇게 쓰시기 위해서 우리를 고난 주신다. 훈련시키시고 무장시키신다.
7. 십자가의 고난, 그리스도의 고난을 살펴보면 이유 없는 고난이 아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승리하셨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여호와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인간의 부모는 자식을 버릴지라도 우리의 영혼의 아버지는 결단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그 주님이 우리의 고난 속에 함께 하시고, 고난의 의미를 알게 하시고, 승리할 수 있도록 주님이 함께 하신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나의 고난을 연결시키지 못하면 우리는 믿을 가치를 찾을 수 없다. 왜 믿습니까 고난도 구원 가운데 하나다. 날마다 당하는 고난 속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 구원이다. 그 고난 속에서 아무 증거도 아무 역사도 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라면 왜 우리가 믿는가 몰라서 못 누리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만드시고 위로하시며 소망을 주시고 승리하게 만드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라. 그리스도의 고난을 나의 고난으로 믿고, 승리하시기 바란다.
기도) 우리는 죽어 마땅한 인간인데 여호와 하나님이 구원하여 자녀 삼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귀한 언약 붙들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고난이 나의 고난임을 믿게 하시고 날마다 믿음 더하게 하시며 날마다 승리하게 하시며, 같은 고난 받는 자들에게 답을 주는 우리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1) 고난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아버지요,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이다.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잘 되게 하게 하기위해서 고난을 주신다. 고난을 어떻게 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2) 고난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우리 인간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여야 한다. 그 방법이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시다. 그리스도는 Master Key이다.
2.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의미를 알고 축복 받고 사는 삶이 신앙인의 삶이다.
오늘은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한다. 십자가에서 가장 큰 고난이 나타났다.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셨는가 고난을 받으신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이 죄를 지으셨는가 예수님의 고난이 예수님을 믿고 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 어떠한 유익이 있는가 이것을 놓쳐 버리면 의미 없는 삶이다. 그 의미를 알고 축복 받고 사는 삶이 신앙인의 삶이다.
(사도신경)"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 예수님의 고난을 표현하였다.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오신 그 자체가 고난이다. 가장 큰 고난 중의 하나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시면서, 출생하시는 것부터 고난이셨다. 마구간에서, 짐승이 있는 고난스러운 삶을 시작하셨다. 사람들은 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헤롯왕은 자기를 도전하는 위협하는 존재로 보고 죽이려 하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의 꿈에 나타나 피하게 하여 살리셨다. 후에 애굽으로 도망을 가고 다시 나사렛으로 가 자라게 하신다. 아버지 요셉은 목수이었다. 그 아버지는 일찍 죽었다 하였다. 그래서 아마도 예수는 일찍부터 목수일을 하면서 30년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3년간의 공생애를 사셨다.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온갖 고난을 받으셨다. 이 3년의 시간은 온갖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수난을 받으셨다. 그러다 십자가의 죽음을 받으신다. 가장 잔인한 형벌을 받으신다. 예수님의 삶이 십자가에서 크라이막스를 맞으며 삶을 마치신다.
3. 성경은 그리스도와 관련된 말씀이시다.
구약에는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의 예언이 많이 나와있다. 직설적으로, 암시적으로 메시야의 예언이 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표현보다 대부분이 고난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시편과 예언서를 보면, 예수님의 고난을 표현하는 곳이 많이 있다. (시69:4) - 까닭 없이 미움을 받으시는 것을 말씀하였다. (시22:16) - 수족이 찔려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였다. (시22:6-8) - 온갖 조롱과 모욕을 당할 것을 말씀하였다. (시69:21) -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쓸개와 초를 마실 것을 말씀하였다. (슥12:10) -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엽구리가 찔 것을 말씀하였다. (시22:18) - 예수님의 속옷을 제비뽑아서 나누어 가질 것을 말씀하였다. (시34:20) - 예수님이 죽으실 때 뼈가 꺾이지 아니하실 것까지도 말씀하였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시편과 예언서에서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이 오셔서 배척을 받고 '내가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을 때, 믿지를 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통치자로 생각하였고, 12제자들도 알지 못하였다. (눅24:25-26)"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 죽은 것을 믿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제자에게 고난을 먼저 받을 것을 그리고 부활하실 것을 깨우쳐 주신다. (눅9:22)"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시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와 무시와 핍박을 받으시고 끝내는 가롯 유다의 배신을 당하고 가시관을 쓰고 죽으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공생애가 전부 고난으로 가득하시다. 모욕적인 언사를 당하고 모욕적인 심문을 받는다. 고난스러운 죽음을 내다 보시기 때문에 게세만의 동산에서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신다.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에, 이것은 그 분의 인간적인 마음이시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기쁘게 십자가에 달리셨다. 영광의 주님이 치욕적인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시며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버림을 받으시는 고통을 호소하신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였다. 온 인류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기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살아야 하는 존재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으로 완전히 해결하셨다. 우리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기까지 하시는 고난을 받으셨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는 것을 보면, 인간적으로도 손과 발에 대못을 박고 온 몸이 내려 앉으면서 몸이 찢겨 나가시며 고통 받으시는 예수님, 땀과 피를 흘리시면서 '내가 목마르다'고 하시는 부르짖음, 의학적으로는 호흡곤란으로 죽게 된다고 한다. 예수님이 무슨 이유로 죽으셨나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의 모든 문제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서 고난을 받고 죽기까지 하셨다.
4. 대속의 죽으심 :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사53: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얼마나 억울한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 분을 우리는 이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사53:7-8)"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 예수님은 억울하기 짝이 없는 그 분은 입을 열지 않았다. '마땅히': 잘못 오해하면 죽을 죄가 있구나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을 위해서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대속의 죽으심'이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고난뿐만 아니라 영원한 지옥의 고난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이다. (요3:16)"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여호와 하나님의 높이와 길이와 넓이와 깊이의 큰 사랑으로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신다. (롬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벧전3:18)"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였으니 이는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형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히2:10)"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여호와 하나님) 많은 아들을(우리들, many sons)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예수님)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고난속으로 몰고 가서는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완전케 하셨다. 예수님의 고난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의 고난때문에 우리가 살았고, 예수님의 고난때문에 우리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필요 충분조건을 우리에게 주셨다.
5. 고난 받는 종 : The Suffering Servant.
(사52:13-15) 학자들은 고난 받는 종으로 표현하였다. The Suffering Servant. 종의 모습,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별로 대수롭지 않으셨다. 그러나 장차 심상치 않으실 것으로 표현하였다. (사53:1-3) 예수님이 배척당하는, 멸시당하심을 표현하였다. 학자들은 예수님의 얼굴 모양이 흉물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고 모습으로 인하여 싫어하였다고 한다. (사53:4-5) 고난 당하시는 실상과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표현하였다. 항상 우리 마음 속에 평안, 안심, 위로가 생겨지는 말씀이시다. (사53:6-9) 그가 억울하게 고난 당했어도 침묵하심을 나타낸다. (사53:10-12) 그가 고난때문에 나타난 영광을 설명한다.
그가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잘못으로, 그가 죄 때문에 죽었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사53:4-5) 그가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고, 채찍은 나음을 허락하셔서, 우리에게 치유의 역사하심이 나타남은 그가 채찍을 맞으셨기 때문이다. (사53:6) 제각기 살려고 하는 마음은 범죄, 실패를 낳는 우리 인생때문에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와 우리를 계속 대조한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 때문이다. 나 때문이다. 내가 받을 것을 대신 받으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왜 죽으셨나 오해로 또는 다른 의미로 아니다. 나 때문에 죽으셨다. In my place, for my sake, my behalf. 순전히 나 때문에 대신 죽으셨다. 그와 나는 절대 상관이 있다. 나의 고난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
6.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다음을 생각하자.
1) 예수님이 아무 죄도 없이 고난을 당하셨음을 생각하라. 아무 죄도 없으신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도 고난 당하심을 생각하자.
2)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것이 나 때문임을 생각하라. 내 고난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하셨다. 모두 Pay하셨다. 모두를 위해서 값을 치루셨다. 현재 받는 나의 고통과 문제의 값은 예수님이 이미 값을 다 치루셨음을 믿어라. 그것을 믿을 때 굉장한 평안과 위로가 임하게 된다.
3)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는데 고난이 고난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고난이 승리로 나타났다. 십자가의 역설적인 의미는 죽었는데 살았고, 패하였는데 승리하였다.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기셨다 하였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이겼다. 중요한 것은 나는 이미 이겼다 라고 믿어라. 패배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 100년 하여도 소용이 없다. 1+11이 신앙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은 인간적으로 보면 진 것 같은데 실제로 이긴 것이고 이겼다. 이것이 십자가의 원리이고 진리이다. 예수님도 고난을 당하셨다. 예수님의 고난은 나의 고난이다. 이 고난은 결국 승리하였다.
4) 내가 고난을 당할 때, 이 고난이 헛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 고난을 통해서 나의 선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해산의 과정이다. 내가 현재 당하는 고난이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이 고난을 통해서 '나는 내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낳는다'라고 할 때 우리는 이길 수 있다.
5) 내가 받는 고난을 통해서 나의 고난은 쓰인다. (고후1:3-4)"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 우리와 같은 고난을 받는 사람들에게 내가 똑 같은 고난을 통과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겼음을 증거하라. (고후1:5-7)"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 우리에게는 위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이다. 우리의 걸음걸음마다, 구석구석마다 자녀를 위로하신다. 믿어라. 믿어야만 경험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때로는 그렇게 쓰시기 위해서 우리를 고난 주신다. 훈련시키시고 무장시키신다.
7. 십자가의 고난, 그리스도의 고난을 살펴보면 이유 없는 고난이 아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승리하셨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여호와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인간의 부모는 자식을 버릴지라도 우리의 영혼의 아버지는 결단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그 주님이 우리의 고난 속에 함께 하시고, 고난의 의미를 알게 하시고, 승리할 수 있도록 주님이 함께 하신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나의 고난을 연결시키지 못하면 우리는 믿을 가치를 찾을 수 없다. 왜 믿습니까 고난도 구원 가운데 하나다. 날마다 당하는 고난 속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 구원이다. 그 고난 속에서 아무 증거도 아무 역사도 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라면 왜 우리가 믿는가 몰라서 못 누리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만드시고 위로하시며 소망을 주시고 승리하게 만드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라. 그리스도의 고난을 나의 고난으로 믿고, 승리하시기 바란다.
기도) 우리는 죽어 마땅한 인간인데 여호와 하나님이 구원하여 자녀 삼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귀한 언약 붙들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고난이 나의 고난임을 믿게 하시고 날마다 믿음 더하게 하시며 날마다 승리하게 하시며, 같은 고난 받는 자들에게 답을 주는 우리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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