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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예수의 고난 속에 숨겨진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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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의 분위기가 뒤숭숭합니다. 한 쪽에서는 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소식이 들려오고 또 한쪽에서는 "사스"라고 불리는 괴질 환자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여 발병된 지역의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홍콩의 유명한 배우 장국영이 우울증에 시달리다 호텔 24층에서 투신자살하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용 어머니로 잘 알려진 탈렌트 김수미씨가 자신의 체험을 담은 憑依(빙의)에 대한 책을 냈는데 자신도 같은 증상에 시달린다며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세상에 귀신이 판을 치고 있구먼"하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월드컵 영웅인 안 모 선수의 어머니도 불면증과 정신적 혼란이 계속돼 도박과 절도행각을 벌려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그녀도 역시 자신에게도 빙의 증상이 있다고 고백했답니다.
빙의란 글자는 한문으로 ‘기댈 빙(憑)’, ‘의지할 의(依)’ 두 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 한자로 풀이하면, ‘빙(憑)’ 자는 ‘얼음( ), 말 마(馬), 마음 심(心)’ 세 자를 합쳐 만든 것입니다.
얼음 위에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뜻하는 것이니, 즉 안절부절못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순 우리말의 의미로는 ‘빙 돈다’라는 것이 주요 뜻인데 ‘무엇에 의해 또는 무엇이 달라붙어 정신이 빙 돈다’는 것이며 정신적 혼미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자신을 돌게 만드는 귀신을 의지하는 것이 빙의입니다.
심리학자 버클러는 죄악으로 가득 찬 인간의 본질 안에는 악마적인 유혹, 악마적인 억압, 악마에게 홀리는 것 등 악을 향한 유혹에 악마적인 요소가 계속적으로 관여되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빙의란 악한 영이 달라붙어 인간의 심리상태를 혼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 속에 들러붙어 있는 악한 영을 달래기 위하여 우상을 섬기거나 귀신을 섬긴다든지 점술가나 무당을 찾게 됩니다.
악한 영은 인간들을 지배하고 종으로 부리기 위하여 빙의와 같은 증상을 유발시킵니다.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모든 원천이 악한 영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악한 영의 비위를 맞추며 악한 영을 열심히 섬겨 땅 위에서 복을 누려 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생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요한일서3:8)
마귀는 인생들을 결박하여 죄악의 구덩이로 끌고 다니다가 자신의 본부가 있는 지옥으로 데려 갑니다.
누가 마귀와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 마귀와 대적하여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마귀를 굴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 결박당하여 종노릇하는 인생들을 건져내시기 위하여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 중에서 두 번째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救贖者(구속자)로 오신 예수
인간이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것은 마귀에게 빚 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빚을 다 갚기 전에는 마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구속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우리로서는 생소한 단어라서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구속"이라는 말을 고엘(goel)이라고 부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몇 가지 경우에 구속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첫째는 땅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 농사지을 땅이 없을 대 가까운 형제나 유력한 친척이 대신 땅 값을 지불하여 다시 되찾게 되었을 때 이를 고엘(구속)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땅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는 것이요 살아갈 길이 막막한 아주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는 말입니다. 땅을 의지하여 사는 한 가정이 당시에는 대체로 10명이 넘었습니다. 10명이 넘는 가족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절박한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정하셔서 누군가 가까운 형제가 이런 위기에 빠지면 고엘(구속)의 법을 시행하여 대신 땅값을 지불해 줌으로 절박한 상태에 빠져있는 형제나 친척을 위기에서 구원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노예로 팔려 가는 형제의 몸값을 지불해 줌으로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고엘(구속)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땅만 잃었을 뿐 아니라 많은 빚을 져서 갚을 길이 없게 되자 채주들이 가족들을 모두 노예로 팔아 빚을 갚게 하려 합니다. 빚 때문에 노예로 팔려 가는 형제를 위하여 대신 빚을 갚아주고 자유를 얻게 해주라는 것이 율법에서 명한 고엘의 법입니다.
 셋째는 결혼한 형제가 자식을 낳지 못한 채 죽게 되면 그 형제를 대신하여 형수나 제수에게 들어가 죽은 형제의 자식을 갖게 해 주는 것이 구속입니다. 성경은 이를 구속이라고 말하지는 안았지만 구속의 의미가 담겨있는 율법의 제도입니다.
유다의 첫 아들 엘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여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난은 고엘의 율법에 따라 형의 대를 잇게 하기 위하여 형수에게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오난은 형의 아들을 갖지 못하도록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형을 위하여 고엘의 율법을 거스린 오난을 죽여 형벌을 받게 했습니다. (창38:10)
룻기서가 중요한 것은 구속의 사건을 극적이고 흥미 있게 이야기 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엘리멜렉 가문은 부유하고 유력한 가정이었지만 모압으로 이민을 떠나 생활하던 중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죽고 두 며느리와 아내인 나오미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며느리는 친정으로 돌아갔고 두 여인은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미 땅은 모압으로 이민 갈 때 팔아버려 고향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나오미의 가까운 친척 중에 보아스라는 유력한 청년이 있었는데 이 청년이 엘리멜렉 가문의 구속자(고엘)역할을 합니다. 엘리멜렉 가문의 잃어버린 땅을 많은 돈을 지불하고 되찾아 주었을 뿐 아니라 며느리 룻을 취하여 그 가문의 아들을 낳게 해 줌으로 인하여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고엘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패가망신 당한 엘리멜렉 가문에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구속자가 되어준 보아스를 통하여 오벳을 낳게 되었고 오벳은 이세를 낳고 이세는 다윗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혈통을 통하여 진정한 구속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을 위기에서 건져주는 구속자의 역할을 하면 큰복을 받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왜 구약성경과 율법에 이처럼 까다롭고 지키기 어려운 구속자에 대한 법을 만드셨을 까요 그것은 진정한 구속자가 되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이기 때문입니다. 구속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완성됩니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속의 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730여 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어떻게 우리의 고엘(구속자)가 되실 지를 예언했는데 그것이 비로 본문 이사야 53장입니다.
우리의 슬픔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구속자로 오신 예수
본문 4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겪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대신 짊어지시고 책임지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공동번역에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헐떡이며 사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며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헐떡이며 사는 사람의 짐을 대신 저 주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분은 우리 인생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하여 오신 구속자이셨습니다.
허물과 죄를 대신 갚아주기 위하여 구속자로 오신 예수
5절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임함이라"
악한 마귀는 인간으로 하여금 허물과 죄에 빠지게 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는 영혼을 죽게 만듭니다. 허물과 죄에 눌려 사는 인생은 그 영혼이 질식하여 죽게 되며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을 찾을 수 없게 만듭니다. 본래 우리 영혼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고귀하고 소중한 인성의 본체입니다. 그런데 이 인성의 본체가 악한 마귀에게 이끌러 허물과 죄 가운데 살므로 죽게 되었습니다.
엡2:1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5절에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했습니다. 무엇이 죽었다는 말입니까 영혼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는 말입니까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것을 말합니다. 영혼이 다시 살아난 인생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찬양하고 경배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 영혼을 살려내기 위하여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 영혼을 살려내기 위하여 예수님 자신은 사지에 못을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으로 찔림을 당하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 아픔을 겪으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을 살려내기 위하여 대신 값을 치르시는 구속자가 되셨는데 그 분은 이처럼 온 몸에 창과 못과 가시로 찔림을 받아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려 내셨습니다.
미국에 노예 제도가 성행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백인의 집에 아주 거칠고 반항적인 청년 노예가 있었습니다. 이 노예는 길들이기 위하여 때리면 때릴수록 더 거칠게 반항하였습니다. 백인 주인은 할 수 없이 이 청년 노예를 시장에 내다 팔기로 하였습니다.
노예 시장에 도착한 청년 노예는 전보다 더 거칠게 주인에게 반항을 하게 되었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주인은 옆에 차고 있는 칼을 빼어 반항하는 노예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선교사 한 분이 노예를 살리기 위하여 손바닥을 벌려 칼을 막았습니다. 칼은 여지없이 선교사의 손바닥에 꽂혔고 그로 인하여 노예는 조금도 상함을 입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주인은 선교사의 손바닥에 칼이 꽂히게 했으니 얼마나 당황스럽고 죄송한지 즉시 병원으로 옮기에 하여 수술을 받고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선교사가 미소 띤 얼굴로 노예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 청년을 칼로 찔러 죽이려고 하였오" "전들 많은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노예를 손해를 보고 죽일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이 놈이 너무나 거칠게 반항을 하여 참을 수가 없어서 죽이려 했습니다. "
선교사는 시세보다는 싼 가격으로 노예 청년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때가 되어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청년 노예는 늘 하던 대로 부엌 한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저녁을 먹으려고 하였습니다. 선교사는 그를 불러 함께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나는 너를 노예로 산 것이 아니라 노예의 억압으로부터 너를 자유케 하기 위하여 노예의 값을 지불했을 뿐이야 이제부터는 너는 자유의 몸이고 너는 나와 한 형제이니 한 상에 둘러앉아 먹어야 하지 않겠니... " 자신 때문에 손바닥에 칼이 찍혀 큰 부상을 당한 선교사에게 고맙고 미안하여 몸 둘 바를 몰랐던 흑인 청년은 통곡을 하며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선교사님을 위하여 몸이 가루가 되도록 섬기는 일을 하겠습니다. "하고 그의 결심을 이야기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내가 찔림 받고 상함을 입어야 할 것을 예수님이 나 대신 죄 값을 지불하시려고 찔림을 받고 상함을 입으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내가 받아야 할 징계와 채찍을 대신 맞으심으로 구속자가 되신 예수
죄에는 반드시 형벌이 따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공의의 법칙을 적용하셔서 죄에 해한 징계와 형벌을 내리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 속에는 전혀 하나가 될 수 없는 정의와 사랑을 간직하고 계십니다. 두 가지는 언제나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의를 세우려면 용서와 사랑을 묵살해야 합니다. 사랑을 세우려면 정의감을 접어 두어야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너무나 지혜로우신 분이셔서 정의와 사랑이 충돌 없이 하나가 되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게 한 사건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게 하였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대신 죽은 일을 더러 있으나 죄인을 위하여 죽은 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기 위하여 대신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피조물인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징계와 채찍을 맞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아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죄인 된 인생은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 때문에 두려워하며 삽니다. 이번 이라크 전쟁 때 서방 기자들이 이라크 군에 의해 체포되어 강금생활을 하다가 풀려났습니다.
기자들은 서방세력에 대해 증오를 품고 있는 이라크 사람들이 자신들을 죽이지 안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가 있습니다. 왜 두려움이 생깁니까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 때문에 무의식 적으로 두려움이 생깁니다.
계21:8절에는 지옥에 가는 인생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들은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왜 두려워하는 자들이 지옥에 갑니까 예수께서 나 대신 형벌을 받아 내 죄를 다 깨끗이 씻어주셨다고 하는 속죄와 의롭다함에 대한 확신이 없음으로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여전히 갖게 된 것입니다. 딤후 3:7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 예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평화가 있을 뿐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죄 용서함을 받은 인생들에게는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참된 펑안을 성령님을 통해서 받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
로마 군인들이 사용하는 채찍은 잔인하여 채찍 끝에 날카로운 작은 칼끝을 달았기에 채찍에 맞으면 온 살이 찢겨 피가 흐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잔인한 로마 군인들의 채찍을 수 없이 맞으셨습니다. 예수님 온 몸이 채찍에 맞아 피 흘려 상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상한 부분들을 치유하여 낫게 하기 위하여서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상한 육체를 치유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그 쓰리고 아픈 채찍을 맞으신 것입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상한 마음이 나음을 입고 치유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더글라스 파킨스의 글 가운데 마귀의 8복이라는 게 있습니다.
 첫째,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에 나가지 않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마귀) 가장 믿을 만한 일꾼이 될 것임이요,
 둘째, 목사의 흠이나 과오를 보고 트집 잡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설교를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할 것임이요,
 셋째, 자기 교회이면서도 나오라고 사정사정하여야만 교회에 나오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교회 안에서 말썽꾸러기가 될 것임이요,
넷째,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툼과 분쟁을 일으킬 것임이요,
다섯째, 걸핏하면 비쭉거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교회 나오기를 곧 그만둘 것임이요,
여섯째,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인색하여 헌금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와 나의 하속인 귀신의 일을 가장 잘 돕는 자일 것임이요,
일곱째,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자기 형제와 이웃을 미워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영원한 친구가 될 것임이요,
여덟째, 성경 안 읽고 기도할 시간이 없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꼬임에 쉽게 넘어가 마침내 나의 조롱거리가 될 것임이니라.
주님의 고난 속에는 이렇게 큰복이 담겨 있는데 왜 마귀를 즐겁게 하는 일을 쫓아가려 하십니까 예수의 고난 속에 담겨있는 놀랍고 비밀스런 숨은 복을 받아 누리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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