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고난도 유익을 줍니다
본문
모든 인생에는 고난이 있기 마련입니다.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여러 모양의 염려와 고통이 있습니다.
고통과 아픔을 격는동안 그것이 몹시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에는 이유가있고 그 고통을 허락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계십니다.
예레미야 애가를 통해 이 아침에 주시는 말씀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성이 대적의 손에 함락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멸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그의 슬픔과 탄식의 노래를 들을수가 있습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민족까지 이 토록 처참한 운명을 허락하셨는가, 때로는 믿지않는 이방민족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의아해하며 너희 여호와 하나님이 존재하시느냐 너희를 보호 하신다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디계시느냐 조롱하고 멸시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을 당하게 허락하신것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표면적인 이유이며 둘째는 내면적인 이유에서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때문입니다. 애1장의 곳곳에 이스라엘 민족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말씀하십니다. 애1:5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음이라 여호와 하나님 백성들이 곤고케 되는것은 그들의 죄때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애1: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같이 되니 여호와 하나님의 도성 이 범죄하여 부정하게 되어 거룩하지 않은자 같이 되었다고 말씀 하십니다. 거룩해야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지 못한 세상사람들처럼 살아 갈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통해서 그들을 채찍질 할 수밖에 없는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본문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처절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특별히 그들 장로들은 머리에 재를 뒤집어써고 허리에 굻은 배를 둘렀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극한 슬픔의 표현입니다. 옷을 남루하게 입고 머리에 재를 써고 허리에 배를 두른 자신의 슬픈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린 자녀들은 젖먹이 자녀들과 함께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먹을것이 없어 마침내 어머니의 품속에서 죽어간다고 묘사 하고있습니다.
애2:13에 시온성의 파괴가 바다같이 깊습니다. 대적에게 짖밟히는 예우살렘 성의 처절한 모습을 그들의 대적은 조롱하며 박장 비소합니다. 천하의 희락 이란 성이 이 모양이냐, 너희의 자랑스런 모습이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는 모멸감과 조롱을 보여 주고있습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생은 죄성을 타고 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자도 없고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 오는자도 없다 고 말씀하고있습니다
범죄한 인생들은 나면서 그 죄의 결과를 안고 살아갈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태어나서 자라면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격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인생들은 운명이 달다 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슬픔속에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생명이 약속되고 있습니다.
도적이 오는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 시키려는것 뿐이요 그리스도께서 오신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십니다. 궁극적으로 죄의 배후에있는 원수, 마귀들이 우리를 죄 짓게 하고 마침내 처절한 고통을 맛보게하는 전략 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모든 죽음의 길에서 우리를 돌이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풍성한 삶을 약속하시고 계십니다. 이 땅의 죽음을 면할수는 없지만 죽은 후의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약속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에도 우리안에있는 죄성이 완전히 사라지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죄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죄와 싸워야 하는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은 치열한 영적인 싸움이라고 말할수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때 우리의 몸이 예수님처럼 변화 될것이라는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죄성도 다 사라지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의의 옷을 입게될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소망스러운 삶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피상적인 이유에 더 궁극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생에게 그토록 처절한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고통을 허락하신다는것입니다. 애3;:33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애3:32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라고 선언하시고 계십니다. 마치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하여 채찍질 하는것 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잘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고통과 어려움을 허락하신다는것입니다. 히12:5또 아들들에게 권면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이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자녀를 사랑하셔서 매를 들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이가 잘못 하는것도 밉지만 그러나 그 아이가 잘되는것을 바라기때문에 부모는 매를 들수 밖에 없는것입니다. 매를 드는 부모의 심정이 더 아플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통과 힘든 현실을 허락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보다 더 아픈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고통의 현실속에서 느낄수있고 이해할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떠한 현실적인 고통도 그 고통의 배후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섬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셔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저버리셔서 고통이 있는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실의 어려운 상황에서 갈등하시는 여러분의 삶이 계신다면 이 아침 고통을 허락 하실 수 밖에 없지만 그 고통을 통하여 우리를 더 성숙의 의의 열매를 맺게하시는 섬리와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찬송 받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의지와 사랑의 섭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일때 이스라엘 민족이 처절한 어려움과 고통을 통하여 이방 민족의 구원의 문이 열려 여호와 하나님의 친 백성과 같은 구원의 문을 여호와 하나님이 열어 주신것처럼 고통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사랑의 문을 열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고통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거룩해지고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될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비록 원수가 조롱하고 삶의 모습이 처절하여 사람들 앞에 자랑스럽지 못할지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감사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승리 하실줄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승리하는 하루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여러 모양의 염려와 고통이 있습니다.
고통과 아픔을 격는동안 그것이 몹시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에는 이유가있고 그 고통을 허락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계십니다.
예레미야 애가를 통해 이 아침에 주시는 말씀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성이 대적의 손에 함락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멸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그의 슬픔과 탄식의 노래를 들을수가 있습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민족까지 이 토록 처참한 운명을 허락하셨는가, 때로는 믿지않는 이방민족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의아해하며 너희 여호와 하나님이 존재하시느냐 너희를 보호 하신다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디계시느냐 조롱하고 멸시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을 당하게 허락하신것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표면적인 이유이며 둘째는 내면적인 이유에서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때문입니다. 애1장의 곳곳에 이스라엘 민족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말씀하십니다. 애1:5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음이라 여호와 하나님 백성들이 곤고케 되는것은 그들의 죄때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애1: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같이 되니 여호와 하나님의 도성 이 범죄하여 부정하게 되어 거룩하지 않은자 같이 되었다고 말씀 하십니다. 거룩해야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지 못한 세상사람들처럼 살아 갈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통해서 그들을 채찍질 할 수밖에 없는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본문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처절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특별히 그들 장로들은 머리에 재를 뒤집어써고 허리에 굻은 배를 둘렀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극한 슬픔의 표현입니다. 옷을 남루하게 입고 머리에 재를 써고 허리에 배를 두른 자신의 슬픈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린 자녀들은 젖먹이 자녀들과 함께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먹을것이 없어 마침내 어머니의 품속에서 죽어간다고 묘사 하고있습니다.
애2:13에 시온성의 파괴가 바다같이 깊습니다. 대적에게 짖밟히는 예우살렘 성의 처절한 모습을 그들의 대적은 조롱하며 박장 비소합니다. 천하의 희락 이란 성이 이 모양이냐, 너희의 자랑스런 모습이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는 모멸감과 조롱을 보여 주고있습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생은 죄성을 타고 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자도 없고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 오는자도 없다 고 말씀하고있습니다
범죄한 인생들은 나면서 그 죄의 결과를 안고 살아갈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태어나서 자라면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격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인생들은 운명이 달다 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슬픔속에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생명이 약속되고 있습니다.
도적이 오는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 시키려는것 뿐이요 그리스도께서 오신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십니다. 궁극적으로 죄의 배후에있는 원수, 마귀들이 우리를 죄 짓게 하고 마침내 처절한 고통을 맛보게하는 전략 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모든 죽음의 길에서 우리를 돌이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풍성한 삶을 약속하시고 계십니다. 이 땅의 죽음을 면할수는 없지만 죽은 후의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약속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에도 우리안에있는 죄성이 완전히 사라지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죄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죄와 싸워야 하는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은 치열한 영적인 싸움이라고 말할수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때 우리의 몸이 예수님처럼 변화 될것이라는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죄성도 다 사라지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의의 옷을 입게될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소망스러운 삶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피상적인 이유에 더 궁극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생에게 그토록 처절한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고통을 허락하신다는것입니다. 애3;:33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애3:32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라고 선언하시고 계십니다. 마치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하여 채찍질 하는것 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잘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고통과 어려움을 허락하신다는것입니다. 히12:5또 아들들에게 권면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이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자녀를 사랑하셔서 매를 들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이가 잘못 하는것도 밉지만 그러나 그 아이가 잘되는것을 바라기때문에 부모는 매를 들수 밖에 없는것입니다. 매를 드는 부모의 심정이 더 아플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통과 힘든 현실을 허락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보다 더 아픈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고통의 현실속에서 느낄수있고 이해할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떠한 현실적인 고통도 그 고통의 배후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섬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셔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저버리셔서 고통이 있는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실의 어려운 상황에서 갈등하시는 여러분의 삶이 계신다면 이 아침 고통을 허락 하실 수 밖에 없지만 그 고통을 통하여 우리를 더 성숙의 의의 열매를 맺게하시는 섬리와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찬송 받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의지와 사랑의 섭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일때 이스라엘 민족이 처절한 어려움과 고통을 통하여 이방 민족의 구원의 문이 열려 여호와 하나님의 친 백성과 같은 구원의 문을 여호와 하나님이 열어 주신것처럼 고통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사랑의 문을 열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고통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거룩해지고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될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비록 원수가 조롱하고 삶의 모습이 처절하여 사람들 앞에 자랑스럽지 못할지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감사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승리 하실줄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승리하는 하루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