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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고난의 어린양

본문

이번 주는 춘계 성례주일 입니다. 성례는 교회에서 거행하는 거룩한 예식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베푸는
세례와 성찬을 말합니다.
세례는 나의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깨끗이 사함을 받았다는 징표이며,
성찬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사 살이 찟기시고 피를 흘리심을 기념하는
거룩하고 엄숙한 예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고난주일을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나의 더러운 모든 죄를
다 제하여 버리는 용서의 축복이 이 예식을 통하여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고난의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우리의 생명과 용서와 평화를
위하여 받으신 십자가의 고난을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1. 고난의 어린양 되신 예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2절을 보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모습은 아무런 풍채나 위엄이 없고 우리의 특별한 시선을 끌만한 매력이나
아름다움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고난의 어린양은 어떤 외모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천한 그의 신분과
고난의 삶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되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 아무런 환영객도 없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헤롯의 살해 위험으로부터 애굽으로 피난가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사람들에게 비난과 멸시와 미움의 표적이 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으시다"고
하셨습니다(마8:20).
아무도 주님의 교훈을 받지를 않았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다 도망하였으며 결국
십자가에서 외롭게 강도와 함께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보다 오히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고난받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존귀와 영광을 원하셨다면 마귀에게 시험당할때 그에게 경배하므로
천하 만국의 영광을 벌써 얻으셨을 것입니다.
또한 십가가를 피하시고 사람과 짝하므로 얼마든지 편안한 삶을 사실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고난의 종으로서 이 땅에 오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길을 따르도록 하셨습니다.
3절을 보면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예수님만 바라보고 있습니까
내가 영광을 받으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고난을 회피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조금만 어려움이 오고 시험이 오면 쉽게 쓰러지고 원망하면서 좌절합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의 영광만 바라보므로 이 땅에서 만사형통만 생각하는 기복신앙으로
기울어집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의 영광을 생각하기 앞서 고난 당하신 어린양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의 고난이 나의 고난이 되고 예수의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가 될 때 예수님의 영광이
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종은 외적인 어떤 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 매일 같이 십자가에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죽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2. 어린양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4절을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당하신 대속적인 사역임을 깨우쳐 줍니다.
여기 "질고를 진다"는 것은 우리의 질병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죄악의 모든 고통을
담당하신 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크고 작은 모든 병의 쓰라림과 고통, 그리고 죄악으로 슬퍼하며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리 때문에 예수님이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허물과
죄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에게 징벌을 받아서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5절을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그를 믿는 죄인들이 영생할 것을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평화를 누린다"는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가 깨어지고
화목하여져서 자녀의 관계가 설정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5:14를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혼돈과 죄의 수렁이 속에서 건짐을 받아서 평화
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원수에게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그의 몸에서 피가 흘려질 때 그 피 때문에 우리는
병이 나음을 받게 되고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6절을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되이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똑똑하고 자기가 제일인체하여 내 마음대로 살고,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각기 제 길로 가는 것이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각기 가는 그 길의 마지막이 사망인데 이 사망의 고통을 우리에게 허락하시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신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3:16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평화와 치료와 영원한 생명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3. 어린양이 고난 받을 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7절을 보면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고 하였습니다.
 첫째,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았습니다.
다시 말한다면 아무런 반항을 하시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떤 반항과 원망을
하시지 않으시고 그대로 순종하셨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들도 자기가 죽을 줄 알고 입구에서는 한번 크게 울고,
발버둥을 치면서 눈에서 눈물을 흘리는데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반항을 하시지를 않으셨습니다.
 둘째, 털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았습니다.
양은 무더운 날에 주인이 털을 깍아줍니다.
만일 양의 털을 깍아주지 않으면 무더위와 질병으로 양은 쉽게 지치고 죽습니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날 털을 깍아 줍니다.
그러면 털을 깍인 양은 볼품이 없어도 너무 시원해서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기뻐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무더운 여름에 털을 깍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겨울에 털을 깍는 모습입니다.
추위에 털이 다 짤려서 그야말로 볼품이 없습니다.
그런데 날이 매우 춥습니다.
그래서 추위에 덜덜 떨면서 한쪽에서 움크리고 있는 어린양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실제로 주님은 십자가에서 옷이 벗기셨습니다.
옷을 벗기신 예수님은 아무런 볼품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소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영광도, 권위도, 능력도, 심지어는 입으신 옷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이런 가운데서도 침묵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세대 사람들은 아무도 예수께서 자기들의 죄 때문에 대신 곤욕을 당하며,
변명하지도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닭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비겁하고 연약함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과 우리의
엄청난 죄악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단 한마디도 변명할 수 없도록 만든 우리의 죄악을 돌이켜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나의 모든 허물과 죄를 내려놓고 겸손히 무릅을 꿇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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