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본문
오늘은 이 땅위의 모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여 예배드리는 고난 주일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아시면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때에 수많은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의 속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독립정부를 세우실 것으로 알고 열렬히 환영을 했습니다.
이 환영 인파들이 승리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펴고 흔들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기에 종려 주일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33년간 세상에 계시는 동안 탄생은 마구간에서, 성장은 시골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서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주전 약 700여 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는 본문에 예언하기를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이사야 53:2)라고 했습니다. 그 후 공생에 3년간은 외로운 자의 벗으로, 병든 자의 의사로, 실망한 자의 소망으로, 약한 자의 대변인으로 살으셨습니다. 이렇게 귀하신 주님이셨는데 가시는 곳마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에 대하여 본문에 예언하시기를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3)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하신 예수님은 끝내 제자들의 배신과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한다던 제사장들의 음모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이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위대한 성인중의 한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반 성인에 비교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오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 처녀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신 동정녀 탄생이 그렇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성난 파도를 말씀 한마디로 잔잔하게 하셨으며, 바다 위를 걸어 가셨습니다. 이처럼 자연을 다스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지금도 온 세계교회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며 그 날을 기념하고 있는데 그날이 다음 주일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세상에 오셨습니까
1) 길 잃은 양을 찾는 목자로 오셨습니다.
본문 6절의 말씀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양은 반드시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양은 자기의 몸을 보호할 만한 힘이 없습니다. 소는 뿔과 힘이 있고, 말은 거센 뒷발이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보호 장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자가 지켜 주어야만 합니다. 무서운 악마에게 사로잡혀서 악한 영이 유혹하는 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여 우상을 섬기며, 온갖 죄악에 얽혀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고자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대로 두면 인간의 종말은 지옥의 불 못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양은 분별력이 없습니다. 양은 가야할 길을 스스로 찾아갈 만한 지혜가 없습니다. 어디에 가면 물이 있고, 좋은 풀이 있는지 양은 알 수 없습니다. 이 길로 가면 맹수가 있는지, 낭떠러지가 있는지 양에게는 분별력이 없습니다. 가시거리가 60여 미터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와 같습니다. 인간의 지식은 고도로 발달하여 안방에 앉아서 세계 곳곳의 일들을 한 눈으로 보고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소중한 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성경은 지옥과 천국이 존재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나, 지식으로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물가운데 가장 귀하게 창조하신 것이 인간입니다. 모든 만물은 인간을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그 만물을 정복하며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이토록 가장 귀한 인간이 범죄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범죄한 사람이 가야할 곳은 감옥소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인간이 가야할 곳은 지옥의 형벌입니다. 그러나 이 안타까운 사실을 인간은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지옥의 형벌을 면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고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혹 지옥과 천국이 있음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인간의 자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한 것이 인간이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양은 눈앞에 보이는 맛있는 풀만 보고 따라가다가 길을 잃게 되듯, 인간이 그렇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세상의 것만 찾다가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하며 길을 잃었습니다. 이처럼 길을 잃고 악마의 꾀임에 빠져 지옥의 낭떠러지에 서있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목자로 오시되 선한 목자로 오셔서 양을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호주에는 양을 많이 키우는데 가끔 독수리가 와서 새끼 양을 잡아채 간다고 합니다. 어느 날 큰 독수리가 와서 양을 채 가려는 것을 목동이 달려가 좇았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까 어미 양이 독수리에게 두 눈이 파 먹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데 죽을 번한 새끼양은 어미의 네 다리 사이에서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이 어미양의 희생으로 새끼양은 살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복음 3:11)라고 하셨습니다. 길 잃은 양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2) 우리의 속죄의 제물로 오셨습니다.
본문 5-6절의 말씀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은 돌발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전 700여 년 전에 살던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예수님의 고난에 대하여 자세하게 예언을 한 기록입니다. 우리들의 죄악을 담당하시고자 채찍에 맞으시고, 창에 찔리시며, 벌거벗기심을 당하시되 한마디 원망이나 변명도 없으신 모습까지 자세하게 예언을 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를 위함이라는 사실을 얼른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의 죽음이 2000년 전 사건이며 2000년 후의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또한 우리가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냥 용서하셔서 천국에 보내시면 되지 왜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하시는 복잡한 절차를 거치게 하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이후 범죄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범죄한 인간의 모습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로마서 3:10-19) 하셨습니다. 이렇게 범죄한 인간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 6:23)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죄인이므로 모든 사람이 사망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망에 이르는 죄에서 용서받는 법을 정하셨는데, 그것은 피 흘림이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11) 하신 것입니다.
피를 흘리되 흠 없는 피라야 죄를 속할 수 있습니다.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열납 되지 못할 것이니라"(레위기 22:18-20) 하셨습니다. 이러한 속죄의 제사는 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피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한복음 1:29) 하셨습니다. 죄 값으로 피를 드리되 흠 없는 피 즉 죄 없는 피를 드려야 용서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으므로 속죄에 합당한 흠 없는 피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속함을 받을 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세상 죄를 사하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브리서 9:11-14)라고 하셨습니다.
더러워진 옷은 맑은 물에 씻을 때 깨끗해 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혼의 더러운 죄는 맑은 피로서 깨끗케 할 수 있습니다. 맑은 물은 어디에나 많이 있으나 맑은 피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죄를 씻을 맑은 샘을 만드시고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제가 1970년도 1월에 해군 신병훈련소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밤 갑자기 비상 훈련을 하는데 그날의 훈련은 캄캄한 밤에 하얀 침대 카바를 벗겨 세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백 명의 군인들이 한꺼번에 수도에서 세탁을 해야하는데 그 시간은 5분이었습니다. 5분 안에 세탁을 하여 연병장에 집결을 해야 합니다. 수도에는 이미 동작 빠른 사람으로 가득 차서 들어갈 틈이 전혀 없고, 물을 찾아 헤매다가 보니 하수구에 물이 있었습니다. 밤중이므로 윗물에 조심해서 씻으면 될 것 같아 거기에서 씻었습니다. 연병장에 집결한 후 밝은 불빛 앞에서 보았을 때 하얀 천은 회색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세탁불량으로 힘든 기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또한 그해 12월 월남전에 참전키 위해 일주일간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데, 어느 날 세수를 하고자 세면장에 갔으나 사람이 많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곳 저곳을 다니다보니 어느 갑판 구석에 있는 수도에서 물이 잘 나왔습니다. 그 곳에서 세수를 하며 머리를 씻는데 비누로 씻어도 머리카락이 뻣뻣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물은 바닷물이었습니다.
아무 물이나 세탁이 가능하지 않으며, 아무 물이나 세수를 할 수 없듯, 아무 피나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깨끗한 피라야 가능합니다. 그 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전혀 없습니다.
3) 인간다운 삶의 본을 보이시고자 오셨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213:15) 하셨습니다. 길 잃은 양이란 탈선과 타락을 의미합니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형벌아래 놓여 있는 사람 앞에 인간다운 다운 삶을 보이시고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불완전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오되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허물과 실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바라보면 실망하게 됩니다. 병원을 찾아가는 환자가 의사를 보고 의사에게 치료할 기대를 가지고 갑니다. 아무도 환자를 보고 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그리스도를 본 받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깨달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깊이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임을 알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내가 범한 죄 때문에 예수께서 고난 받으셨으므로 이제는 죄악에서 떠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를 위해 충성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여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만족함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의 복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영원한 상급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아시면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때에 수많은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의 속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독립정부를 세우실 것으로 알고 열렬히 환영을 했습니다.
이 환영 인파들이 승리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펴고 흔들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기에 종려 주일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33년간 세상에 계시는 동안 탄생은 마구간에서, 성장은 시골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서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주전 약 700여 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는 본문에 예언하기를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이사야 53:2)라고 했습니다. 그 후 공생에 3년간은 외로운 자의 벗으로, 병든 자의 의사로, 실망한 자의 소망으로, 약한 자의 대변인으로 살으셨습니다. 이렇게 귀하신 주님이셨는데 가시는 곳마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에 대하여 본문에 예언하시기를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3)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하신 예수님은 끝내 제자들의 배신과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한다던 제사장들의 음모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이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위대한 성인중의 한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반 성인에 비교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오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 처녀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신 동정녀 탄생이 그렇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성난 파도를 말씀 한마디로 잔잔하게 하셨으며, 바다 위를 걸어 가셨습니다. 이처럼 자연을 다스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지금도 온 세계교회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며 그 날을 기념하고 있는데 그날이 다음 주일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세상에 오셨습니까
1) 길 잃은 양을 찾는 목자로 오셨습니다.
본문 6절의 말씀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양은 반드시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양은 자기의 몸을 보호할 만한 힘이 없습니다. 소는 뿔과 힘이 있고, 말은 거센 뒷발이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보호 장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자가 지켜 주어야만 합니다. 무서운 악마에게 사로잡혀서 악한 영이 유혹하는 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여 우상을 섬기며, 온갖 죄악에 얽혀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고자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대로 두면 인간의 종말은 지옥의 불 못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양은 분별력이 없습니다. 양은 가야할 길을 스스로 찾아갈 만한 지혜가 없습니다. 어디에 가면 물이 있고, 좋은 풀이 있는지 양은 알 수 없습니다. 이 길로 가면 맹수가 있는지, 낭떠러지가 있는지 양에게는 분별력이 없습니다. 가시거리가 60여 미터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와 같습니다. 인간의 지식은 고도로 발달하여 안방에 앉아서 세계 곳곳의 일들을 한 눈으로 보고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소중한 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성경은 지옥과 천국이 존재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나, 지식으로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물가운데 가장 귀하게 창조하신 것이 인간입니다. 모든 만물은 인간을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그 만물을 정복하며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이토록 가장 귀한 인간이 범죄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범죄한 사람이 가야할 곳은 감옥소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인간이 가야할 곳은 지옥의 형벌입니다. 그러나 이 안타까운 사실을 인간은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지옥의 형벌을 면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고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혹 지옥과 천국이 있음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인간의 자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한 것이 인간이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양은 눈앞에 보이는 맛있는 풀만 보고 따라가다가 길을 잃게 되듯, 인간이 그렇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세상의 것만 찾다가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하며 길을 잃었습니다. 이처럼 길을 잃고 악마의 꾀임에 빠져 지옥의 낭떠러지에 서있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목자로 오시되 선한 목자로 오셔서 양을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호주에는 양을 많이 키우는데 가끔 독수리가 와서 새끼 양을 잡아채 간다고 합니다. 어느 날 큰 독수리가 와서 양을 채 가려는 것을 목동이 달려가 좇았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까 어미 양이 독수리에게 두 눈이 파 먹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데 죽을 번한 새끼양은 어미의 네 다리 사이에서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이 어미양의 희생으로 새끼양은 살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복음 3:11)라고 하셨습니다. 길 잃은 양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2) 우리의 속죄의 제물로 오셨습니다.
본문 5-6절의 말씀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은 돌발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전 700여 년 전에 살던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예수님의 고난에 대하여 자세하게 예언을 한 기록입니다. 우리들의 죄악을 담당하시고자 채찍에 맞으시고, 창에 찔리시며, 벌거벗기심을 당하시되 한마디 원망이나 변명도 없으신 모습까지 자세하게 예언을 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를 위함이라는 사실을 얼른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의 죽음이 2000년 전 사건이며 2000년 후의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또한 우리가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냥 용서하셔서 천국에 보내시면 되지 왜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하시는 복잡한 절차를 거치게 하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이후 범죄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범죄한 인간의 모습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로마서 3:10-19) 하셨습니다. 이렇게 범죄한 인간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 6:23)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죄인이므로 모든 사람이 사망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망에 이르는 죄에서 용서받는 법을 정하셨는데, 그것은 피 흘림이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11) 하신 것입니다.
피를 흘리되 흠 없는 피라야 죄를 속할 수 있습니다.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열납 되지 못할 것이니라"(레위기 22:18-20) 하셨습니다. 이러한 속죄의 제사는 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피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한복음 1:29) 하셨습니다. 죄 값으로 피를 드리되 흠 없는 피 즉 죄 없는 피를 드려야 용서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으므로 속죄에 합당한 흠 없는 피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속함을 받을 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세상 죄를 사하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브리서 9:11-14)라고 하셨습니다.
더러워진 옷은 맑은 물에 씻을 때 깨끗해 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혼의 더러운 죄는 맑은 피로서 깨끗케 할 수 있습니다. 맑은 물은 어디에나 많이 있으나 맑은 피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죄를 씻을 맑은 샘을 만드시고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제가 1970년도 1월에 해군 신병훈련소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밤 갑자기 비상 훈련을 하는데 그날의 훈련은 캄캄한 밤에 하얀 침대 카바를 벗겨 세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백 명의 군인들이 한꺼번에 수도에서 세탁을 해야하는데 그 시간은 5분이었습니다. 5분 안에 세탁을 하여 연병장에 집결을 해야 합니다. 수도에는 이미 동작 빠른 사람으로 가득 차서 들어갈 틈이 전혀 없고, 물을 찾아 헤매다가 보니 하수구에 물이 있었습니다. 밤중이므로 윗물에 조심해서 씻으면 될 것 같아 거기에서 씻었습니다. 연병장에 집결한 후 밝은 불빛 앞에서 보았을 때 하얀 천은 회색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세탁불량으로 힘든 기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또한 그해 12월 월남전에 참전키 위해 일주일간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데, 어느 날 세수를 하고자 세면장에 갔으나 사람이 많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곳 저곳을 다니다보니 어느 갑판 구석에 있는 수도에서 물이 잘 나왔습니다. 그 곳에서 세수를 하며 머리를 씻는데 비누로 씻어도 머리카락이 뻣뻣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물은 바닷물이었습니다.
아무 물이나 세탁이 가능하지 않으며, 아무 물이나 세수를 할 수 없듯, 아무 피나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깨끗한 피라야 가능합니다. 그 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전혀 없습니다.
3) 인간다운 삶의 본을 보이시고자 오셨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213:15) 하셨습니다. 길 잃은 양이란 탈선과 타락을 의미합니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형벌아래 놓여 있는 사람 앞에 인간다운 다운 삶을 보이시고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불완전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오되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허물과 실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바라보면 실망하게 됩니다. 병원을 찾아가는 환자가 의사를 보고 의사에게 치료할 기대를 가지고 갑니다. 아무도 환자를 보고 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그리스도를 본 받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깨달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깊이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임을 알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내가 범한 죄 때문에 예수께서 고난 받으셨으므로 이제는 죄악에서 떠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를 위해 충성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여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만족함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의 복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영원한 상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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