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고난 중 부르짓으매
본문
얼마전에 한국에는 가시고기라는 소설이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KBS에서 이 물고기 가시고기의 이야기를 제1텔레비전의 환경스페셜(27일 밤 9시50분)에서 방송한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스무군데가 넘는 가시고기의 집주변에 내시경 카메라를 설치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아비로서의 가시고기의 모습을 찰영하였다고 합니다.
산란을 위한 집짓기부터 알지키기, 부화이후 덜 자란 새끼들이 집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보살피기, 성장한 새끼들의 먹이로 제 몸을 내어주는 최후까지 15일 가량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잠시도 쉴틈없이 헌신하는 수컷 가시고기의 생태가 드라마처럼 감동적인 영상으로 펼쳐진다도 합니다.
집을 지어 침입자를 물리치고, 부화한 뒤 어느 정도 큰 새끼들이 떠나고 나면 주둥이가 헐고 화려했던 빛깔마저 잃은 수컷은 만신창이가 된 채 집 앞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면 집을 떠났던 새끼들은 며칠 뒤 죽은 애비의 살을 파먹는다고 합니다.
이 가시고기는 오직 아버지의 사랑만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머니나 아버지 둘 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몸이라도 주고 싶은 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살면서 참으로 힘든 순간이 언제인가 하면 바로 자식들이 아플 때입니다.
내가 아픈 것이 낫지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더 마음이 아플 때가 언제인가 하면 자녀들을 징계하여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다 천사 같고 다 모범생들이고 믿음으로 잘 자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은 이 세상의 여러 가지들이 우리의 자녀들을 그냥 잘 자라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발생하고 잘못된 길로 가려고도 합니다. 그러면 부모들은 그 자녀들을 징계하여야 합니다. 그냥 나누는 것은 어떤 면에서 자녀들에 대한 게으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땅히 자녀들을 자른 길로 말씀으로 바르게 양육하여야 할 의무와 책임이 부모들에게 있기에 징계하고 바른 길로 가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징계와 더불어 함께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손입니다.
참다운 사랑의 매는 징계의 손과 사랑의 손 이 두 가지가 함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빠가 자녀들을 혼내면 어머니는 그 자녀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엄마가 자녀들을 혼내면 아버지가 자녀들을 위로하여 주고 이렇게 징계와 사랑이 있어야 자녀들을 반항적으로, 비딱하게 되지 않고 바로 자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녀방법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키우는 방법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바른 길로 가지 않으면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그 자녀들이 돌아오고 잘못을 뉘우치는 순간 바로 사랑의 손으로 그 자녀들을 보호하시고 감싸주십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로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늘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와 동시에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시간적으로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물고기 배속에 들어오기 전 - 2절부터 7절
큰 물고기 배 속 - 1절과 8절 9절
그리고 물고기 밖으로 나가는 순간 - 10절
오늘의 본문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런데 다음 절을 보면 다시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지금 요나가 기도를 시작하면서 무엇이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냐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였더니 내게 대답하였고 나의 음성을 들으셨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지금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신 것에 대한 간증을 지금 기도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지금 고난 가운데 기도하였더니 들으셨다고 하였는데
그가 당한 고난은 어떠한 것이었습니까
3절과 5절과 6절을 살펴보면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욘 2:5)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욘 2: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한 번 상상을 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요나는 바다 그것도 광풍이 불어서 배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러한 상태에서 지금 바다로 던져 졌습니다. 떨어지는 순간 큰 물이 요나를 둘러쳤을 것이고 그러다가 바다 끝까지 내려간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 풀들이 요나를 둘러쌓고 ...
이러한 파도 가운데 한 번 던져져 보면 이러한 것이 얼마나 횡당한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 폭풍 속에 한 번 던져져 버리면 정말 황당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요나는 무엇을 하였습니까4절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7절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비록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다른 길고 다시스로 가려 하였지만 다시 다시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갑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내가 다시 여호와를 생각합니다.
피곤하고 힘들 때에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고난을 당하였을 때에 그 고난에 대한 반응은 쉽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자포자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고난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여호와 하나님으로 힘을 얻는 것입니다.
사무엘 상 30장과 31장에는 두 이스라엘의 1대와 사울과 2대왕 다윗 왕 이야기가 나옵니다.
삼상 30장에는 다윗 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당시의 왕인 사울의 미움을 받아서 죽음에서 몇 번이고 겨우 살아서 도망하고 도망하여 지금 자신들의 가장 큰 적인 블레셋에 보호아래 600명의 자신의 군사들과 함께 살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게 되었고 그 사이에 아멜렉이 다윗의 아내들과 자녀들과 이스라엘의 군사들의 가족이 머물고 있는 성을 침략하여 가족들을 모두 잡아가 버리는 사건이 발생되었습니다.
군사들과 다윗이 성에 오니 모든 가족들이 아멜렉에게 잡혀 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실을 안 군사들이 이러한 원인이 다 다윗으로 인함이라고 생각을 하여 다윗을 돌로 치려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장군으로 있다가 왕의 미움을 받아 이리저리 도망하다 겨우 자신의 적인 블레셋에 정착하고 있는데 가족들을 다 잡혀가고 자신을 끝까지 따라 다니던 군사들 마져 자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순간입니다.
(삼상 30: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군급하였자는 말은 영어로 이렇게 표현되어져 있습니다.
distressed greatly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으로 힘입고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가서 기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기도하고 아멜렉을 쫓아가서 결국은 가족들을 다 구하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장에는 사울 왕에 대한 기사가 있습니다. 사울은 왕입니다.
사울이 이제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삼상 31:4)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에게 당한 고난을 마무리합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자살을 하여 버립니다.
우리 모두에게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이 크고 작고 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에 대한 대처 방법은 다 다릅니다.
누구는 그 고난에 함몰이 되어 그대로 마지막으로 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그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 다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십니다.
6절에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욘 2: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분에게 가면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우리를 키우시기 위한 그 분의 배려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시는 결코 일어 설 수 없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건지시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하여보십시오.
그 광풍이 불어 이제 바다 가운데 떨어져서 바다의 해초들이 요나를 둘러싸고 있는데 어떻게 살아납니까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요나는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길이 없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길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우리에게 사랑의 손길을 늘 준비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하여 볼 것은 요나가 배속에서 한 기도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엉뚱한 곳에 마음을 두고 있지만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서원을 갚겠습니다.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여야 할 대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요나가 지금 있는 곳은 물고기 뱃속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뱃속에서 얼마나 있었느냐 하면 3일 밤낮을 있었다고 합니다.
뱃속 기도원이 필요합니다.
고난 가운데 깊은 교제의 시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요나는 무엇이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다.
나의 서원을 갚겠다.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가
아마 우리가 쉽게 생각하여도 요나는 배 위에서도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광풍이 불고 파도가 치니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요나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언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으시기 시작하셨습니까
자신을 던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고 그 분에게 다시 나아가니 ..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길로 아무리 가면서 기도하여도 여호와 하나님을 그 기도를 들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늘 기억하여야 하는 것은 기도는 교제입니다.
기도는 무슨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무엇을 가지고자 한다면 다 줍니까
안 줍니다.
요즘 문제 부모님들 어떤 분들이냐 하면 야타족 이니 오랜지 족이나 하는 족들의 부모들입니다. 자녀들에 대한 책임을 그져 돈으로 하려는 그러니 자녀들은 더 망쳐집니다.
아버지 돈 10불만 주세요.
왜 술 마시고, 담배도 하나 사고 놀려고요 그려면 주겠습니까 우리가 교묘히 내적으로 그러한 욕심을 가지고 구하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아시는데 그 기도를 들어주시겠습니까
그런데 아버지 100불만 주세요. 왜 필요한 책이 있습니다. 아니면 친구가 있는데 아주 힘들어서 도와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고스톱을 치면서 주여 하여도 믿습니다. 아무리 크게 외쳐도 여호와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데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욕심으로 자신의 일을 위하여 남을 해치고 나만을 위하여 길을 잡아가려 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 하나님 도와주세요. 여호와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습니다.
언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들어주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원하시는 여정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 내가 이렇게 가려 합니다. 도와주세요.
내가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하려 합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하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이제 3박 3일 간의 훈련기간이 마쳐진 것입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을 주시는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고 힘든 고난도 있고 고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과 고통들의 가장 큰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고통이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가라는 곳이 어디인지 한 번 깊이 기도하여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맡겨 보십시오.
그러면 그 분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땅으로 옮겨 놓으실 것입니다.
산란을 위한 집짓기부터 알지키기, 부화이후 덜 자란 새끼들이 집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보살피기, 성장한 새끼들의 먹이로 제 몸을 내어주는 최후까지 15일 가량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잠시도 쉴틈없이 헌신하는 수컷 가시고기의 생태가 드라마처럼 감동적인 영상으로 펼쳐진다도 합니다.
집을 지어 침입자를 물리치고, 부화한 뒤 어느 정도 큰 새끼들이 떠나고 나면 주둥이가 헐고 화려했던 빛깔마저 잃은 수컷은 만신창이가 된 채 집 앞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면 집을 떠났던 새끼들은 며칠 뒤 죽은 애비의 살을 파먹는다고 합니다.
이 가시고기는 오직 아버지의 사랑만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머니나 아버지 둘 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몸이라도 주고 싶은 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살면서 참으로 힘든 순간이 언제인가 하면 바로 자식들이 아플 때입니다.
내가 아픈 것이 낫지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더 마음이 아플 때가 언제인가 하면 자녀들을 징계하여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다 천사 같고 다 모범생들이고 믿음으로 잘 자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은 이 세상의 여러 가지들이 우리의 자녀들을 그냥 잘 자라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발생하고 잘못된 길로 가려고도 합니다. 그러면 부모들은 그 자녀들을 징계하여야 합니다. 그냥 나누는 것은 어떤 면에서 자녀들에 대한 게으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땅히 자녀들을 자른 길로 말씀으로 바르게 양육하여야 할 의무와 책임이 부모들에게 있기에 징계하고 바른 길로 가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징계와 더불어 함께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손입니다.
참다운 사랑의 매는 징계의 손과 사랑의 손 이 두 가지가 함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빠가 자녀들을 혼내면 어머니는 그 자녀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엄마가 자녀들을 혼내면 아버지가 자녀들을 위로하여 주고 이렇게 징계와 사랑이 있어야 자녀들을 반항적으로, 비딱하게 되지 않고 바로 자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녀방법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키우는 방법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바른 길로 가지 않으면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그 자녀들이 돌아오고 잘못을 뉘우치는 순간 바로 사랑의 손으로 그 자녀들을 보호하시고 감싸주십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로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늘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와 동시에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시간적으로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물고기 배속에 들어오기 전 - 2절부터 7절
큰 물고기 배 속 - 1절과 8절 9절
그리고 물고기 밖으로 나가는 순간 - 10절
오늘의 본문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런데 다음 절을 보면 다시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지금 요나가 기도를 시작하면서 무엇이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냐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였더니 내게 대답하였고 나의 음성을 들으셨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지금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신 것에 대한 간증을 지금 기도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지금 고난 가운데 기도하였더니 들으셨다고 하였는데
그가 당한 고난은 어떠한 것이었습니까
3절과 5절과 6절을 살펴보면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욘 2:5)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욘 2: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한 번 상상을 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요나는 바다 그것도 광풍이 불어서 배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러한 상태에서 지금 바다로 던져 졌습니다. 떨어지는 순간 큰 물이 요나를 둘러쳤을 것이고 그러다가 바다 끝까지 내려간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 풀들이 요나를 둘러쌓고 ...
이러한 파도 가운데 한 번 던져져 보면 이러한 것이 얼마나 횡당한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 폭풍 속에 한 번 던져져 버리면 정말 황당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요나는 무엇을 하였습니까4절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7절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비록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다른 길고 다시스로 가려 하였지만 다시 다시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갑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내가 다시 여호와를 생각합니다.
피곤하고 힘들 때에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고난을 당하였을 때에 그 고난에 대한 반응은 쉽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자포자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고난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여호와 하나님으로 힘을 얻는 것입니다.
사무엘 상 30장과 31장에는 두 이스라엘의 1대와 사울과 2대왕 다윗 왕 이야기가 나옵니다.
삼상 30장에는 다윗 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당시의 왕인 사울의 미움을 받아서 죽음에서 몇 번이고 겨우 살아서 도망하고 도망하여 지금 자신들의 가장 큰 적인 블레셋에 보호아래 600명의 자신의 군사들과 함께 살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게 되었고 그 사이에 아멜렉이 다윗의 아내들과 자녀들과 이스라엘의 군사들의 가족이 머물고 있는 성을 침략하여 가족들을 모두 잡아가 버리는 사건이 발생되었습니다.
군사들과 다윗이 성에 오니 모든 가족들이 아멜렉에게 잡혀 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실을 안 군사들이 이러한 원인이 다 다윗으로 인함이라고 생각을 하여 다윗을 돌로 치려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장군으로 있다가 왕의 미움을 받아 이리저리 도망하다 겨우 자신의 적인 블레셋에 정착하고 있는데 가족들을 다 잡혀가고 자신을 끝까지 따라 다니던 군사들 마져 자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순간입니다.
(삼상 30: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군급하였자는 말은 영어로 이렇게 표현되어져 있습니다.
distressed greatly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으로 힘입고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가서 기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기도하고 아멜렉을 쫓아가서 결국은 가족들을 다 구하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장에는 사울 왕에 대한 기사가 있습니다. 사울은 왕입니다.
사울이 이제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삼상 31:4)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에게 당한 고난을 마무리합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자살을 하여 버립니다.
우리 모두에게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이 크고 작고 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에 대한 대처 방법은 다 다릅니다.
누구는 그 고난에 함몰이 되어 그대로 마지막으로 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그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 다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십니다.
6절에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욘 2: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분에게 가면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우리를 키우시기 위한 그 분의 배려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시는 결코 일어 설 수 없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건지시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하여보십시오.
그 광풍이 불어 이제 바다 가운데 떨어져서 바다의 해초들이 요나를 둘러싸고 있는데 어떻게 살아납니까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요나는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길이 없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길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우리에게 사랑의 손길을 늘 준비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하여 볼 것은 요나가 배속에서 한 기도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엉뚱한 곳에 마음을 두고 있지만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서원을 갚겠습니다.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여야 할 대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요나가 지금 있는 곳은 물고기 뱃속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뱃속에서 얼마나 있었느냐 하면 3일 밤낮을 있었다고 합니다.
뱃속 기도원이 필요합니다.
고난 가운데 깊은 교제의 시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요나는 무엇이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다.
나의 서원을 갚겠다.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가
아마 우리가 쉽게 생각하여도 요나는 배 위에서도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광풍이 불고 파도가 치니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요나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언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으시기 시작하셨습니까
자신을 던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고 그 분에게 다시 나아가니 ..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길로 아무리 가면서 기도하여도 여호와 하나님을 그 기도를 들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늘 기억하여야 하는 것은 기도는 교제입니다.
기도는 무슨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무엇을 가지고자 한다면 다 줍니까
안 줍니다.
요즘 문제 부모님들 어떤 분들이냐 하면 야타족 이니 오랜지 족이나 하는 족들의 부모들입니다. 자녀들에 대한 책임을 그져 돈으로 하려는 그러니 자녀들은 더 망쳐집니다.
아버지 돈 10불만 주세요.
왜 술 마시고, 담배도 하나 사고 놀려고요 그려면 주겠습니까 우리가 교묘히 내적으로 그러한 욕심을 가지고 구하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아시는데 그 기도를 들어주시겠습니까
그런데 아버지 100불만 주세요. 왜 필요한 책이 있습니다. 아니면 친구가 있는데 아주 힘들어서 도와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고스톱을 치면서 주여 하여도 믿습니다. 아무리 크게 외쳐도 여호와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데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욕심으로 자신의 일을 위하여 남을 해치고 나만을 위하여 길을 잡아가려 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 하나님 도와주세요. 여호와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습니다.
언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들어주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원하시는 여정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 내가 이렇게 가려 합니다. 도와주세요.
내가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하려 합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하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이제 3박 3일 간의 훈련기간이 마쳐진 것입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을 주시는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고 힘든 고난도 있고 고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과 고통들의 가장 큰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고통이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가라는 곳이 어디인지 한 번 깊이 기도하여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맡겨 보십시오.
그러면 그 분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땅으로 옮겨 놓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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