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고난과 실패의 그 자리에서
본문
슐레징어 박사가 쓴인생을 망치는 7가지 변명이라는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늘 변명만 늘어놓는 사람과 그리고 생각은 있으나 결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면서 그의 책 서론에 이런 말을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나는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고집대로 살아보고 싶어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다 얻고 꿈꾸던 그 환상을 모조리 이루어 보고 싶어합니다. 당신은 가능한 한 노력은 하지 않고 희생을 적게 하되 출세하고 성공하고 싶어합니다. 당신은 나쁜 짓 하고서도 벌받지 않고 피해가고 싶어합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상처주고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멋진 복수를 하고 싶어합니다. "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다시 한번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원수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본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입장을 바꾸어 요나에게 철저하게 배반을 당하신 여호와 하나님, 그분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요나를 다시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아름답게 당신의 사역자로 쓰임을 받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너무나도 크신 은혜와 사랑을 볼 때에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때론 광야 인생의 길에 계산하지 않은 이런저런 실패들 때문에 인생살이를 버겁기만 합니다. 이 땅에 많은 청소년들과 부모님들이 상급학교 진학문제 때문에 마음 아파합니다. 때론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 예기치 않은 문제에 봉착하면서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질병의 고통 때문에, 그리고 어떤 사람은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 때문에 심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고난과 실패는 예고도 없이 찾아옵니다. 요나도 지금 실패의 아픔 중에 여호와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불순종하다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제대로 숨도 쉴 수 없는 물고기 뱃속에서, 그리고 살이 녹아 내리는 극심한 고통을 당할 때 요나는 몸부림을 치면서 생사의 확신이 없는 그 두려움의 고통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2절에 보면 "스올의 뱃속에서 내가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스올" 은 지옥을 의미합니다. 요나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했던지‘이게 바로 지옥이구나!’싶어서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그런 내용입니다.
본문의 내용,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했다는 사실이 나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부르짖으면서 기도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가요 오늘 요나서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영적은 교훈은 ‘요나는 그 고난과 실패의 그 자리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가’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오늘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O어느날 갑자기 계산하지 못한 고난과 실패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O이 고난과 실패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o어떻게 하면 이 실패의 환경과 사건을 오히려 긍정적인 기회로 삼을 수가 있을까요 본문은 이러한 질문에 분명한 영적인 답변을 우리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고난과 실패의 자리에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 영적인 답변과 교훈은 우리가 그 어떤 실패의 자리에 빠졌다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입시에 실패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질병 때문에 고통 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녀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지여 잘 믿어보겠다던 신앙생활에 실패하고 실수하여 넘어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환경과 사건의 경우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예화/성경을 보세요. 가롯 유다도 베드로도 예수님의 제자로 실패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실패감을 극복 하지 못했던 가롯 유다는 목매달아 자결했고 창자가 터져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실패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회개하고 일어선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초대교회 최고의 지도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실패감, 실패의식에 매이면 안됩니다. 그것을 극복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예화/아프리카 밀림에 최고의 맹수는 사자입니다. 사자가 한번 나타나면 모든 짐승들이 꼬리를 내리고 숨습니다. 그러나 이 무서운 사자도 코끼리 곁에는 함부로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긴 코를 휘저었다가 사자를 한번 내리치면 20-30m 가서 내동댕이 쳐진다고 하는 얘기입니다. 또 코끼리는 그 코로 1 톤짜리 통나무를 번쩍들어 실어주기도 하고 옮겨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거 대한 힘을 가진 코끼리가 어린아이 손에 이끌려서 재주를 부리는 서커스단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코끼리가 아주 어릴 때에 강한 쇠말뚝에 묶어 둡니다. 끊어지지 않는 철사로 꽁꽁 묶어두면 몸부림을 해 봅니다. 목에 피가 납니다. 그래도 쇠말뚝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말뚝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지나는 사이에 코끼리는 실패감에 좌절감에 젖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저 말뚝은 절대로 뽑을 수 없다. 이 쇠사슬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다. ’이쯤 되어졌을 때에 쇠사슬 대신 노끈 하나를 묶어둡니다. 쇠말뚝이야 적당히 그냥 갖다 걸쳐 놓습니다. 그러면 코끼리는 이미 실패의식 좌절감 속에 빠졌기 때문에 저 쇠말뚝은 절대로 뽑혀지지 않는다. 이 끈은 절대로 끊을 수 없다. 그래서 끌어가는대로 조금만 자극이 되면 질질 끌려온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실패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실패의 내용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두려움의 문제는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없어" 라고 하는 실패의식이 문제입니다. ‘나는 결코 다시 일어날 수 없다’는 패배의식의 좌절감이 문제입니다. 패배의식과 좌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면 결코 그 어떤 사람의 인생도 승리하며 성공적인 삶도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의 문이 닫혀질 때에는 또 다른 문을 우리를 향하여 열어 놓고 기다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은 멈춤표시, 정지표시가 아니라 방향 표시일 뿐입니다.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도전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실패 가운데서도 낙담하지 맙시다. 결코 포기하지 맙시다. 오히려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면서 기도하는 중에 더욱 더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성도들은 실패는 오히려 승리와 성공의 디딤돌이었음을 깨닫고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요나는 실패의 자리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그렇게 시작합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 요나는 처절한 실패의 순간 가장 먼저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그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라고 강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저 멀리 끝없이 도망가던 요나, 그러나 바로 그 실패와 고통의 자리에서 그는 고개를 들어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등지고 도망가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명히 내게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주셨는데.. 그 영혼구원의 사명을 벗어 던져버리고 구경꾼이 되어서 의미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분 아니계십니까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위해 물고기를 준비하실런지도 모릅니다. 요나를 살리기 위한 물고기.. 가정에 풍파가 일어남으로, 육체적인 질병으로, 자녀들이 당하는 어려움으로.. 아니면 너무나도 무서운 신앙의 깊은 침체의 늪으로 몰아 넣으심으로..
그러나 그 물고기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실패의 그 순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회개하는 기회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절 앞부분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 요나는 그 고통의 자리에서 고난의 의미를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왜 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내가 당하는 이 고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당하는 이 고난의 이유는 무엇인가 이 고난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어느 방향으로 인도하기를 원하신단 말인가 여호와 하나님은 내게 그 무엇을 주시기 위하여 나를 실패의 자리에 던져 넣었단 말인가..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
지금도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기 전까지 도무지 회개하지 않고, 또한 기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평안하다는 사실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살아가는 교만한 사람들, 모든 것이 형통하며 평안하다는 사실 때문에 충성하지 않으며 나태함으로 믿음생활을 하는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큰 풍랑을 만났습니까 남 모르는 실패 때문에 울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좋은 환경 속에서, 그리고 그 아름다운 상황 속에서찬송하지 아니하고, 헌신하지 아니하며, 또한 기도하지 아니하는 우리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대하시고,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4절을 보시면 회복과 응답에 감격이 있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찌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 마음놓고 예배할 수 있을 때에 예배를 소홀히 하던 사람들, 마음놓고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을 때에 찬송하기를 소홀이 했던 사람들, 기도하여야 할 상황 속에서 방황하면서 기도를 소홀히 하던 사람들, 그래서 예배가 막혀질 때에 그리고 찬송이 막히고, 기도가 통로가 막히고 축복의 통로가 막히고, 문제가 생기고, 두려움과 좌절에 휩싸여 있을 때.. , 나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 다시 말씀을 펼치기 시작하겠나이다! 다시 기도하기 시작하겠나이다! 다시 순종해 보겠습니다! 다시 말씀을 가슴에 움켜쥐고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하겠나이다!... “주여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
예화/기쁨으로 찬양집에도 설명되어 있습니다만... 최용덕 집사는 성령충만한 삶, 기쁨의 시간을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소한 실패로 인하여 영적인 침체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 영적인 침체는 무섭게 중첩되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침체가 점점 깊어지더니 심한 좌절감이 몰려왔습니다. ‘너는 위선자다. ’드디어 자학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버리신 것 아닌가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떠나신 것 아닌가’ 몸부림하며 그 날도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84년 9월 어느 새벽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를 버리시겠나이까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몸부림하고 젖은 눈으로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 때에 그의 등 뒤에서 안타까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날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는 너를 떠난 적이 없느니라. 네가 나를 배신하고 등지고 도망가는 그 자리에서도 나는 너의 등 뒤에서 한번도 눈길을 뗀 적이 없느니라. 나는 언제나 너를 밀어주고 있었느니라. 네가 울고 있을 때 언제나 나는 다시 승리하고 일어서리라 기대하고 잔잔한 미소로 나는 너를 바라보고 있었노라. "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스런 얼굴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여호와 하나님. 그랬군요 여호와 하나님... 흐르는 눈물을 두 주먹으로 닦아 내리며 가사를 써 내려 가기 시작했고 피아노를 두드리며 곡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노래가 "나의 등 뒤에서"라는 찬양의 노래입니다... ”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난 16년 동안 이 한 곡의 찬양을 통하여 절망과 좌절과 낙담의 자리에서 용기와 새 희망을 가지고 일어섰습니까
나의 등 뒤에서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키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평안히 길을 갈땐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OO야 일어나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OO야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 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하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할렐루야!!!
세째, 고난과 실패의 사건과 시간은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신호였습니다.
우리들은 광야인생을 지나가면서 수 많은 문제들이 다가올 때마다 나 혼자 힘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풀어보려고 그 얼마나 몸부림을 쳐 보았습니까 해결이 되던가요 그러면 그럴수록 그 문제는 더욱 꼬여져 가고, 더욱 더 헝클어져 가지 않던 가요 문제가 또 다른 문제를 낳지는 않았습니까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병이 들게 되면 이런한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이 싫어집니다. 그래서 예배도, 찬양도, 기도도, 헌신도, 교제도.. 다 싫어집니다. 교회에 가기가 싫어집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그 결과로 목사가 괜히 싫어집니다. 특히 담임 목사가 싫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섭섭한 마음만 들어갑니다. 권면을 들어도 섭섭합니다. 그리고 구역장이 싫어지고..
세번째는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려고 시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꺼리낌도 자기의 방법대로 해결하려고 하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질의 문제도, 질병의 문제도, 자녀들의 문제도 자기가 해결하려고 하면서 점점 상처와 아픔을 당하게 됩니다. 그 결과 불만과 불신으로 좌절하고 낙망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됩니다. 구약 광야 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러나 문제의 해답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인생문제의 모든 해답을 가지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그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정답을 찾아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고난과 실패의 사건과 환경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이고 싸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사람들은 고난과 실패 또한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었고 싸인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돌아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뿐이었습니다. ’
넷째, 가장 큰 실패의 순간에, 그리고 고난의 자리에서 가장 큰 감사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나의 마지막 기도의결론을 보십시오. 9절입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
요나는 편안하게 살 때 일찍이 그의 입술에 감사의 언어가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 형통한 상황 가운데 감사의 언어를 잃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캄캄한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의 언어를 회복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내 뜻대로 되어질 때에, 수 많은 사람들이 내게 박수와 갈채를 아끼지 아니할 때에 감사의 노래를 잃어버렸던 요나였습니다. 그러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심한 고통과 숨을 쉴 수 조차 없었던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감사의 노래를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감사 노래의 주제는 "구원"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조금 일찍 떠나느냐 조금 더 오래 사느냐의 문 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조금 더 가지느냐 더 편안하게 사느냐 좀더 많은 박수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구원의 문제’였습니다.
그토록 아픈 실패의 순간에도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는 한가지 사실 때문에 그는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그 절망감 속에서도 구원 받은 백성으로 죽어갈 수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또한 여호와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가 있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나니... " 여호와 하나님 이대로 죽어도 좋아요..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면 이대로 내 인생이 끝장난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나는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죽어갈 거예요.. 요나의 인생살이 그 실패의 자리에서 막다른 인생의 골목의 자리에서 끝장났다 할지라도 할말없는 존재가 요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감사를 회복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예화/베스트 셀러에 올라있는 책 가운데 스펜서 존슨의 책 Who moved my cheese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 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 나오는 주인공은 두 마리의 생쥐와 두 명의 꼬마인간입니다. 이 넷은 ‘행복의 치즈’를 찾아 여행을 떠나갑니다. 저자는 이것이 인생이라고 본 것입니다. 우리가 펼쳐가는 신앙생활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치즈 창고를 발견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마냥 행복해 하고 좋아합니다. 쌓인 치즈를 즐기는 사이에 거기서 그들은 안주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치즈가 말라간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또한 치즈가 썩어 가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치즈가 떨어지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행복의 치즈와 함께 살 줄 알았는데 그만 치즈가 다 상하고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화적용/직장이 내 곁을 떠나갔습니다. 사랑이 상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이 내 곁을 떠나갑니다. 돈이 배신을 합니다. 친구가 내게 원망 을 하며 내 곁을 떠나갔습니다. 소위 실패의 자리에 빠지게 된 것이지요.
이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이 두 생쥐와 두 꼬마인간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두 마리의 생쥐는 떠나간 치즈에 연연하지 않고 다음 치즈를 향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한 꼬마는 며칠 동안 고민하고 실의에 빠져있는 듯 하다가 다시 치즈를 찾아 보기로 했습니다. 그 길은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넘어져야 했고 때로 피를 흘려야 했고 고독에 울어야 했습니다. 이게 치즈 창고인가 싶어서 기쁨에 뛰어들어가 보면 별 것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도전하고 또 도전하여 커다란 치즈 창고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머지 한 꼬마는 그대로 빈 창고에 웅크리고 앉아서 넋두리를 늘어 놓았습니다. ‘행복의 치즈는 어디로 갔을까’분석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내 치즈를 훔쳐갔을까’두리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난 최선을 다했는데.. 허탈감 좌절감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웃을 향하여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과 불평의 입술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고난과 실패를 맛보며 마침내 인생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러나 새 치즈를 찾아 떠나서 마침내 치즈 창고를 발견했던 한 꼬마는 그가 가는 인생 길에 발견했던 진리들을 다음 찾아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나와 여러분들을 향하여 몇자를 적어 둡니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면 성공의 길은 반드시 당신 앞에 열려지게 될 것입니다. 치즈 냄새를 부지런히 맡다보면 치즈가 상해가고 있음을 빨리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치즈를 마음 속에 그리며 영상을 그리며 살 아가면 행복의 치즈를 향하여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사라져 버린 치즈에 대한 미련을 빨리 떨쳐 버릴수록 새 치즈를 향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실패의 창고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것은 무익합니다. 과거의 사고방식은 우리를 새 치즈 곁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환경과 함께 자신도 변해야 합니다. 세상과 함께 당신도 변해가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 변화를 차라리 즐기십시오. 그리고 도전하십시오. "
그레서 크로니는 이 책을 그렇게 요약했습니다. "인생은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도록 시원하게 뚫린 대로가 아닙니다.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때로는 막다른 길에서 좌절하기도 하는 미로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개척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노라면 원치 않았던 실패를 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나 승리의 행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패의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을 붙들어 주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한번의 실패를 영원한 실패인양 낙담하지 마십시오. 한번의 실패가 인생전체의 실패인양, 인생자체의 실패인 양 포기하지 마십시오. 특별히 여러분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은 절대로 실패하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하여 만들어 놓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름다운 축복의 계획은 절대로 패배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감사를 회복했을 때에 기적이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10절은 어떻게 기록되고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감사를 회복하는 바로 그 순간 여호와께서 요나를 물고 있는 바로‘그 물고기’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물고기야 토해 내라!’
질병 가운데 신음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 가운데 질병의 의미를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순간, 감사를 회복하는 순간 하늘의 음성이 들려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을 딸을 묶고 있는 질병의 마귀야 그를 토해 내라. " 사업의 실패의 자리에서 신음하는 사람 있습니까 넘어 지고 깨어져 피투성이가 되신 분 계십니까 그 자리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하는 그 순간,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경험하고, 그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그 새로운 믿음을 가지고 벌떡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 ,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를 회복하는 바로 그 순간, "사랑하는 내 자녀의 사업을 묶고 있는 물고기야 토해 내라. " 여러분의 자녀를 방황 가운데로 이끌어가고 있는 악한 사탄의 역사를 여러분이 발견하셨습니까 여러분의 남편을 묶고 있는, 여러분의 가정을 불행의 길로 몰고 있는 악한 마귀를 여러분이 발견하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었을 때에 "악한 병마야 떠나가라. 물고기야 토해 내라. 더러운 귀신아 토해 내라. "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행복으로 인도 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새로운 길을 새로운 기회를 여러분에게 허락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과 실패는 인생의 낭비가 아니올시다. 새로운 출발이 될 뿐입니다. 실패는 포기하라는 신호가 아니었습니다. 방향을 바꾸어 새롭게 시작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실패는 무능력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전능자 여호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라는 뜻이었습니다. 실패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리셨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향한 더 좋은 생각 이 전능하신 사랑많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품에 있음을 의미할 뿐입니다. 실패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이 그에게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요나는 아픈 실패의 순간에 기도했습니다. 고난의 자리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가까이 나아가리라 결단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축복의 길을 그에게 열어 주었습니다. ‘물고기야 요나를 토해내라!’감사가 회복되어졌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의 축복으로 체험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다시 한번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원수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본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입장을 바꾸어 요나에게 철저하게 배반을 당하신 여호와 하나님, 그분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요나를 다시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아름답게 당신의 사역자로 쓰임을 받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너무나도 크신 은혜와 사랑을 볼 때에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때론 광야 인생의 길에 계산하지 않은 이런저런 실패들 때문에 인생살이를 버겁기만 합니다. 이 땅에 많은 청소년들과 부모님들이 상급학교 진학문제 때문에 마음 아파합니다. 때론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 예기치 않은 문제에 봉착하면서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질병의 고통 때문에, 그리고 어떤 사람은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 때문에 심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고난과 실패는 예고도 없이 찾아옵니다. 요나도 지금 실패의 아픔 중에 여호와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불순종하다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제대로 숨도 쉴 수 없는 물고기 뱃속에서, 그리고 살이 녹아 내리는 극심한 고통을 당할 때 요나는 몸부림을 치면서 생사의 확신이 없는 그 두려움의 고통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2절에 보면 "스올의 뱃속에서 내가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스올" 은 지옥을 의미합니다. 요나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했던지‘이게 바로 지옥이구나!’싶어서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그런 내용입니다.
본문의 내용,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했다는 사실이 나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부르짖으면서 기도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가요 오늘 요나서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영적은 교훈은 ‘요나는 그 고난과 실패의 그 자리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가’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오늘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O어느날 갑자기 계산하지 못한 고난과 실패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O이 고난과 실패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o어떻게 하면 이 실패의 환경과 사건을 오히려 긍정적인 기회로 삼을 수가 있을까요 본문은 이러한 질문에 분명한 영적인 답변을 우리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고난과 실패의 자리에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 영적인 답변과 교훈은 우리가 그 어떤 실패의 자리에 빠졌다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입시에 실패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질병 때문에 고통 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녀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지여 잘 믿어보겠다던 신앙생활에 실패하고 실수하여 넘어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환경과 사건의 경우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예화/성경을 보세요. 가롯 유다도 베드로도 예수님의 제자로 실패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실패감을 극복 하지 못했던 가롯 유다는 목매달아 자결했고 창자가 터져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실패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회개하고 일어선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초대교회 최고의 지도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실패감, 실패의식에 매이면 안됩니다. 그것을 극복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예화/아프리카 밀림에 최고의 맹수는 사자입니다. 사자가 한번 나타나면 모든 짐승들이 꼬리를 내리고 숨습니다. 그러나 이 무서운 사자도 코끼리 곁에는 함부로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긴 코를 휘저었다가 사자를 한번 내리치면 20-30m 가서 내동댕이 쳐진다고 하는 얘기입니다. 또 코끼리는 그 코로 1 톤짜리 통나무를 번쩍들어 실어주기도 하고 옮겨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거 대한 힘을 가진 코끼리가 어린아이 손에 이끌려서 재주를 부리는 서커스단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코끼리가 아주 어릴 때에 강한 쇠말뚝에 묶어 둡니다. 끊어지지 않는 철사로 꽁꽁 묶어두면 몸부림을 해 봅니다. 목에 피가 납니다. 그래도 쇠말뚝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말뚝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지나는 사이에 코끼리는 실패감에 좌절감에 젖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저 말뚝은 절대로 뽑을 수 없다. 이 쇠사슬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다. ’이쯤 되어졌을 때에 쇠사슬 대신 노끈 하나를 묶어둡니다. 쇠말뚝이야 적당히 그냥 갖다 걸쳐 놓습니다. 그러면 코끼리는 이미 실패의식 좌절감 속에 빠졌기 때문에 저 쇠말뚝은 절대로 뽑혀지지 않는다. 이 끈은 절대로 끊을 수 없다. 그래서 끌어가는대로 조금만 자극이 되면 질질 끌려온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실패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실패의 내용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두려움의 문제는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없어" 라고 하는 실패의식이 문제입니다. ‘나는 결코 다시 일어날 수 없다’는 패배의식의 좌절감이 문제입니다. 패배의식과 좌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면 결코 그 어떤 사람의 인생도 승리하며 성공적인 삶도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의 문이 닫혀질 때에는 또 다른 문을 우리를 향하여 열어 놓고 기다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은 멈춤표시, 정지표시가 아니라 방향 표시일 뿐입니다.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도전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실패 가운데서도 낙담하지 맙시다. 결코 포기하지 맙시다. 오히려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면서 기도하는 중에 더욱 더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성도들은 실패는 오히려 승리와 성공의 디딤돌이었음을 깨닫고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요나는 실패의 자리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그렇게 시작합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 요나는 처절한 실패의 순간 가장 먼저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그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라고 강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저 멀리 끝없이 도망가던 요나, 그러나 바로 그 실패와 고통의 자리에서 그는 고개를 들어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등지고 도망가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명히 내게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주셨는데.. 그 영혼구원의 사명을 벗어 던져버리고 구경꾼이 되어서 의미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분 아니계십니까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위해 물고기를 준비하실런지도 모릅니다. 요나를 살리기 위한 물고기.. 가정에 풍파가 일어남으로, 육체적인 질병으로, 자녀들이 당하는 어려움으로.. 아니면 너무나도 무서운 신앙의 깊은 침체의 늪으로 몰아 넣으심으로..
그러나 그 물고기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실패의 그 순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회개하는 기회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절 앞부분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 요나는 그 고통의 자리에서 고난의 의미를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왜 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내가 당하는 이 고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당하는 이 고난의 이유는 무엇인가 이 고난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어느 방향으로 인도하기를 원하신단 말인가 여호와 하나님은 내게 그 무엇을 주시기 위하여 나를 실패의 자리에 던져 넣었단 말인가..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
지금도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기 전까지 도무지 회개하지 않고, 또한 기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평안하다는 사실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살아가는 교만한 사람들, 모든 것이 형통하며 평안하다는 사실 때문에 충성하지 않으며 나태함으로 믿음생활을 하는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큰 풍랑을 만났습니까 남 모르는 실패 때문에 울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좋은 환경 속에서, 그리고 그 아름다운 상황 속에서찬송하지 아니하고, 헌신하지 아니하며, 또한 기도하지 아니하는 우리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대하시고,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4절을 보시면 회복과 응답에 감격이 있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찌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 마음놓고 예배할 수 있을 때에 예배를 소홀히 하던 사람들, 마음놓고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을 때에 찬송하기를 소홀이 했던 사람들, 기도하여야 할 상황 속에서 방황하면서 기도를 소홀히 하던 사람들, 그래서 예배가 막혀질 때에 그리고 찬송이 막히고, 기도가 통로가 막히고 축복의 통로가 막히고, 문제가 생기고, 두려움과 좌절에 휩싸여 있을 때.. , 나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 다시 말씀을 펼치기 시작하겠나이다! 다시 기도하기 시작하겠나이다! 다시 순종해 보겠습니다! 다시 말씀을 가슴에 움켜쥐고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하겠나이다!... “주여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
예화/기쁨으로 찬양집에도 설명되어 있습니다만... 최용덕 집사는 성령충만한 삶, 기쁨의 시간을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소한 실패로 인하여 영적인 침체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 영적인 침체는 무섭게 중첩되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침체가 점점 깊어지더니 심한 좌절감이 몰려왔습니다. ‘너는 위선자다. ’드디어 자학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버리신 것 아닌가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떠나신 것 아닌가’ 몸부림하며 그 날도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84년 9월 어느 새벽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를 버리시겠나이까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몸부림하고 젖은 눈으로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 때에 그의 등 뒤에서 안타까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날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는 너를 떠난 적이 없느니라. 네가 나를 배신하고 등지고 도망가는 그 자리에서도 나는 너의 등 뒤에서 한번도 눈길을 뗀 적이 없느니라. 나는 언제나 너를 밀어주고 있었느니라. 네가 울고 있을 때 언제나 나는 다시 승리하고 일어서리라 기대하고 잔잔한 미소로 나는 너를 바라보고 있었노라. "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스런 얼굴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여호와 하나님. 그랬군요 여호와 하나님... 흐르는 눈물을 두 주먹으로 닦아 내리며 가사를 써 내려 가기 시작했고 피아노를 두드리며 곡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노래가 "나의 등 뒤에서"라는 찬양의 노래입니다... ”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난 16년 동안 이 한 곡의 찬양을 통하여 절망과 좌절과 낙담의 자리에서 용기와 새 희망을 가지고 일어섰습니까
나의 등 뒤에서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키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평안히 길을 갈땐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OO야 일어나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OO야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 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하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할렐루야!!!
세째, 고난과 실패의 사건과 시간은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신호였습니다.
우리들은 광야인생을 지나가면서 수 많은 문제들이 다가올 때마다 나 혼자 힘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풀어보려고 그 얼마나 몸부림을 쳐 보았습니까 해결이 되던가요 그러면 그럴수록 그 문제는 더욱 꼬여져 가고, 더욱 더 헝클어져 가지 않던 가요 문제가 또 다른 문제를 낳지는 않았습니까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병이 들게 되면 이런한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이 싫어집니다. 그래서 예배도, 찬양도, 기도도, 헌신도, 교제도.. 다 싫어집니다. 교회에 가기가 싫어집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그 결과로 목사가 괜히 싫어집니다. 특히 담임 목사가 싫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섭섭한 마음만 들어갑니다. 권면을 들어도 섭섭합니다. 그리고 구역장이 싫어지고..
세번째는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려고 시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꺼리낌도 자기의 방법대로 해결하려고 하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질의 문제도, 질병의 문제도, 자녀들의 문제도 자기가 해결하려고 하면서 점점 상처와 아픔을 당하게 됩니다. 그 결과 불만과 불신으로 좌절하고 낙망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됩니다. 구약 광야 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러나 문제의 해답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인생문제의 모든 해답을 가지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그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정답을 찾아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고난과 실패의 사건과 환경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이고 싸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사람들은 고난과 실패 또한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었고 싸인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돌아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뿐이었습니다. ’
넷째, 가장 큰 실패의 순간에, 그리고 고난의 자리에서 가장 큰 감사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나의 마지막 기도의결론을 보십시오. 9절입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
요나는 편안하게 살 때 일찍이 그의 입술에 감사의 언어가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 형통한 상황 가운데 감사의 언어를 잃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캄캄한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의 언어를 회복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내 뜻대로 되어질 때에, 수 많은 사람들이 내게 박수와 갈채를 아끼지 아니할 때에 감사의 노래를 잃어버렸던 요나였습니다. 그러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심한 고통과 숨을 쉴 수 조차 없었던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감사의 노래를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감사 노래의 주제는 "구원"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조금 일찍 떠나느냐 조금 더 오래 사느냐의 문 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조금 더 가지느냐 더 편안하게 사느냐 좀더 많은 박수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구원의 문제’였습니다.
그토록 아픈 실패의 순간에도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는 한가지 사실 때문에 그는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그 절망감 속에서도 구원 받은 백성으로 죽어갈 수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또한 여호와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가 있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나니... " 여호와 하나님 이대로 죽어도 좋아요..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면 이대로 내 인생이 끝장난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나는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죽어갈 거예요.. 요나의 인생살이 그 실패의 자리에서 막다른 인생의 골목의 자리에서 끝장났다 할지라도 할말없는 존재가 요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감사를 회복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예화/베스트 셀러에 올라있는 책 가운데 스펜서 존슨의 책 Who moved my cheese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 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 나오는 주인공은 두 마리의 생쥐와 두 명의 꼬마인간입니다. 이 넷은 ‘행복의 치즈’를 찾아 여행을 떠나갑니다. 저자는 이것이 인생이라고 본 것입니다. 우리가 펼쳐가는 신앙생활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치즈 창고를 발견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마냥 행복해 하고 좋아합니다. 쌓인 치즈를 즐기는 사이에 거기서 그들은 안주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치즈가 말라간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또한 치즈가 썩어 가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치즈가 떨어지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행복의 치즈와 함께 살 줄 알았는데 그만 치즈가 다 상하고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화적용/직장이 내 곁을 떠나갔습니다. 사랑이 상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이 내 곁을 떠나갑니다. 돈이 배신을 합니다. 친구가 내게 원망 을 하며 내 곁을 떠나갔습니다. 소위 실패의 자리에 빠지게 된 것이지요.
이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이 두 생쥐와 두 꼬마인간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두 마리의 생쥐는 떠나간 치즈에 연연하지 않고 다음 치즈를 향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한 꼬마는 며칠 동안 고민하고 실의에 빠져있는 듯 하다가 다시 치즈를 찾아 보기로 했습니다. 그 길은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넘어져야 했고 때로 피를 흘려야 했고 고독에 울어야 했습니다. 이게 치즈 창고인가 싶어서 기쁨에 뛰어들어가 보면 별 것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도전하고 또 도전하여 커다란 치즈 창고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머지 한 꼬마는 그대로 빈 창고에 웅크리고 앉아서 넋두리를 늘어 놓았습니다. ‘행복의 치즈는 어디로 갔을까’분석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내 치즈를 훔쳐갔을까’두리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난 최선을 다했는데.. 허탈감 좌절감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웃을 향하여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과 불평의 입술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고난과 실패를 맛보며 마침내 인생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러나 새 치즈를 찾아 떠나서 마침내 치즈 창고를 발견했던 한 꼬마는 그가 가는 인생 길에 발견했던 진리들을 다음 찾아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나와 여러분들을 향하여 몇자를 적어 둡니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면 성공의 길은 반드시 당신 앞에 열려지게 될 것입니다. 치즈 냄새를 부지런히 맡다보면 치즈가 상해가고 있음을 빨리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치즈를 마음 속에 그리며 영상을 그리며 살 아가면 행복의 치즈를 향하여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사라져 버린 치즈에 대한 미련을 빨리 떨쳐 버릴수록 새 치즈를 향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실패의 창고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것은 무익합니다. 과거의 사고방식은 우리를 새 치즈 곁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환경과 함께 자신도 변해야 합니다. 세상과 함께 당신도 변해가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 변화를 차라리 즐기십시오. 그리고 도전하십시오. "
그레서 크로니는 이 책을 그렇게 요약했습니다. "인생은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도록 시원하게 뚫린 대로가 아닙니다.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때로는 막다른 길에서 좌절하기도 하는 미로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개척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노라면 원치 않았던 실패를 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나 승리의 행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패의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을 붙들어 주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한번의 실패를 영원한 실패인양 낙담하지 마십시오. 한번의 실패가 인생전체의 실패인양, 인생자체의 실패인 양 포기하지 마십시오. 특별히 여러분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은 절대로 실패하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하여 만들어 놓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름다운 축복의 계획은 절대로 패배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감사를 회복했을 때에 기적이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10절은 어떻게 기록되고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감사를 회복하는 바로 그 순간 여호와께서 요나를 물고 있는 바로‘그 물고기’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물고기야 토해 내라!’
질병 가운데 신음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 가운데 질병의 의미를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순간, 감사를 회복하는 순간 하늘의 음성이 들려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을 딸을 묶고 있는 질병의 마귀야 그를 토해 내라. " 사업의 실패의 자리에서 신음하는 사람 있습니까 넘어 지고 깨어져 피투성이가 되신 분 계십니까 그 자리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하는 그 순간,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경험하고, 그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그 새로운 믿음을 가지고 벌떡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 ,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를 회복하는 바로 그 순간, "사랑하는 내 자녀의 사업을 묶고 있는 물고기야 토해 내라. " 여러분의 자녀를 방황 가운데로 이끌어가고 있는 악한 사탄의 역사를 여러분이 발견하셨습니까 여러분의 남편을 묶고 있는, 여러분의 가정을 불행의 길로 몰고 있는 악한 마귀를 여러분이 발견하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었을 때에 "악한 병마야 떠나가라. 물고기야 토해 내라. 더러운 귀신아 토해 내라. "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행복으로 인도 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새로운 길을 새로운 기회를 여러분에게 허락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과 실패는 인생의 낭비가 아니올시다. 새로운 출발이 될 뿐입니다. 실패는 포기하라는 신호가 아니었습니다. 방향을 바꾸어 새롭게 시작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실패는 무능력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전능자 여호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라는 뜻이었습니다. 실패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리셨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향한 더 좋은 생각 이 전능하신 사랑많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품에 있음을 의미할 뿐입니다. 실패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이 그에게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요나는 아픈 실패의 순간에 기도했습니다. 고난의 자리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가까이 나아가리라 결단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축복의 길을 그에게 열어 주었습니다. ‘물고기야 요나를 토해내라!’감사가 회복되어졌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의 축복으로 체험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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