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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예수님의 부활 나의 부활(골3:1-4)

본문

예수님의 부활 나의 부활(골3:1-4)


 



할렐루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승천하신 주님의 은총이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부활주일은 모든 교우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기를 원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부득이 영상예배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많이 아쉽습니다만 부활의 기쁨으로 아쉬운 마음을 잘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은총이 바이러스로 힘들어하는 우리에게도 조만간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지난 한 주간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많이 안정된 것 같아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초반에는 50명 내외를 넘나들더니 후반에는 2-30명대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아직도 하루에 수백 명 수천 명이 죽어가고 있는 참으로 엄중한 상황입니다.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몇 백 명, 몇 천 명이 죽어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별 감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구나.’ ‘바이러스가 종식되기는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매일과 같이 전해지는 죽음의 소식에 감각이 무디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와 상관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러분, 나와 상관이 있으면 한 사람의 죽음도 심각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상관이 없으면 수천, 수만의 죽음도 별 감각 없이 느껴지게 됩니다.


 


저는 부활의 문제도 이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부활절도 예수님과 상관없는 불신자들이나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별 감각이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4월 초팔일을 맞이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부활주일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고 행복한 것은 주님의 부활이 나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연관을 부활의 첫 열매로 설명하고 있습니다.(고전15:20)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 다음에는 예수를 믿는 자들이 차례대로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자신의 부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부활이 그렇게 중요한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리스도와 함께’ 라는 말이 3번이나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했고요,


3절에서는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절에서는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을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공동 운명체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미래는 결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의 삶이고 그리스도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고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 살게 되고 구원받게 되고 능력있게 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어떻게 되셨는가? 하는 것은 예수님에게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도 똑같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운명이 우리의 운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고난주일에 우리는 ‘주 달려 죽은 십자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주님은 죄악의 십자가를 지셨고 고통과 수치의 십자가를 지셨고 내려올 수 없는 십자가를 지셨고 버림받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한 대속의 십자가였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주님이 그 후에 어떻게 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만약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시지 못하셨다면 그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로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을 대신하여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숭고한 일이고 흠모할 만한 일입니까?


그럴 사람이 세상에는 거의 없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도 정말 귀한 일이지만 그러나 십자가가 십자가로 끝났다면 온 인류를 구원하는 능력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도 죽음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시고 죽고 말았는데 어떻게 남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남을 살리고 온 인류를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음에서 부활하셔야 했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셔야 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님은 드디어 죽은 지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 부활로 말미암아 주님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부활이 공동운명체인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가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1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하는 말씀이 있는데요,


공동번역에서는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게 되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22절)


나아가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했습니다.(52절)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축복은 주님처럼 우리도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구절이 ‘변화되리니’ 하는 말씀인데요,


이 말씀은 부활하는 우리의 몸이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바꾸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가정하여 다시 부활하는 우리의 몸이 눈물을 흘리고 죽음을 당하고 애통하고 아프고 슬픈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축복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몸을 가지고 또 한 번의 삶을 산다면 그것은 저주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삶이라면 나는 별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할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부활하여 살게 되는 삶의 환경은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썩어질 우리의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됩니다.


육의 사람에서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되고 눈물이 변하여 찬송이 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위로해주시는 삶입니다.


이 세상의 저주가 다 사라지는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되는 부활의 삶이요 축복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부활의 삶은 결코 놓칠 수 없는, 놓쳐서는 절대 안되는 놀라운 축복의 삶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주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1절 하 반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높아지심, 승귀를 표현한 말씀인데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데요,


하나는,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도 살아계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3명의 죽은 자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나 나인성과부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살아난 것을 부활했다고는 말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죽었다가 살아난 것은 분명하지만 다시금 죽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들과 다른 것은 다시 살아나셔서 영원히 죽지 않으시고 지금도 아니 영원토록 살아 계시다는 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또 하나는, 지금도 살아계시는 주님이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이 하시는 일은 우주만물을 다스리시고 역사를 주관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간혹 이 악한 세상은 마귀가 다스리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있는데 여러분, 세상은 결코 마귀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다스리십니다.


 


그러면 그렇게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과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주님이 우리를 눈동자처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지켜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부활승천하신 주님은 이제 우리와 멀리 떨어져서 인간과는 상관이 없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3절에서 이 사실을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고 더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있어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고 하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으며 누가 우리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생명싸개에 싸여있는데 누가 우리를 정죄하며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를 떠나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약속하실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


이러한 약속을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주님 외에 감히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의 보호와 인도하심과 지켜주심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세 번째는, 주님 재림 때에 우리도 그의 영광 중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면,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는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때를 말합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은 그 분의 약속대로 분명히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초림 때는 초라하게 오셨지만 재림 때는 영광 중에 오십니다.


초림 때는 구원자로 오셨지만 재림 때는 심판주로 오십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게 됩니다.(살전4:16)


온 만물의 심판주로 오셔서 양과 염소를 구별하시고 영생과 영벌을 구별하시고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십니다.


이렇게 구별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셔서 영원토록 주와 함께 거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영생의 삶이며 부활의 삶이며 천국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이런 축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했습니다.(고전15:19절)


정말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조금 더 잘살고 건강하게 살고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조금 더 잘 살아봐야 거기가 거기 아닙니까?


신앙생활의 진정한 의미는 영생의 삶, 천국의 삶, 부활의 삶에 있습니다.


이 삶에 참여할 수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부활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영생의 삶으로 천국의 삶으로 영원한 축복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복음주의 신학자 중에 한 사람인 에릭 사우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성도의 부활로 끝난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 두 개의 부활절 사이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믿음의 능력을 가지고 우리의 부활을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 그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 사이에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공동운명체입니다.


그 예수님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사랑의 주님을 넘어서 능력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그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그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주님이 되셨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 주님이 다시 재림하실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광 중에 참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이러한 믿음의 능력을 갖고 우리의 부활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20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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