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그 부활의 권능/빌 3:10-12
본문
그 부활의 권능/빌 3:10-12
오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기독교는 탄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초대 교회를 일으킨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이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끝이 났다면 제자들은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주님은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며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다,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셔서 주님의 부활을 능력있게 증언하게 하셨다.
주님이 자기 피로 사신 그분의 교회는 그렇게 해서 세워진 것이다
우리도 성령이 오셔야 그리스도를 알고 그 부활의 권능을 알고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게 된다.
1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알고자 하여”(빌3:10)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경험해서 체험으로 알고 마음 중심 곧 영혼 중심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머리로만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다. 입술로만 아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분을 영접하여 믿고 섬기는 것을 말한다.
그분이 하나님이 하늘에서 보내신 자 그리스도이시고,
그분이 동시에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믿어야 한다.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이 고백이 기독교의 초석이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 주님의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이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하시는 주님의 칭찬이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7-18)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셨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동정녀 마리에게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사람 곧 예수로 오셨다.
예수 이름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다.
이름은 그분의 사역과 사명을 밝히 말씀해 주고 있다
그분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말씀하시니”(마16:21)
이때로부터,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고 즉, 주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게 하신 때로부터,
비로소 주님은 자기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주님이 모르고 힘이 없어서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니었다.
주님은 지상에서 공생애를 사시는 3년반 동안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시고
하나님이 아니면 하실 수 없는 말씀들을 하셨다.
그러나 유대인 지도자들은 정치적이고도 군사적인 권능을 가진 그리스도만을 기다렸기에
믿지 못하고 오히려 신성모독으로 참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이다.
기독교가 전하고 가르치고 선포하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삼일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그리스도이시다.
동시에 그분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 성자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역사적 사건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도 없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종교를 자랑하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지식을 자랑하는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것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우리 주님은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후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
맨 나중에는 바울에게 보이시고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기독교도 믿음도 헛것일 것이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하는 사도들은 거짓 증인들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고 망했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인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최후의 심판이 있고 그 심판에 따라 영벌이 있고 영생이 있다.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음이 있을 것이다.
2 그 부활의 권능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셨다. 부활의 권능이셨다.
성경은 그냥 부활이라 하지 않고 항상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렸다고 한다.
하나님의 그 부활의 권능으로 우리도 함께 일으키셨고 보좌 우편에 함께 앉히셨다고 하신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신 하나님의 그 부활의 권능으로
우리의 썩어진 육체도 부활하게 될 것이다.
산 자들은 그분과 같은 형체로 변화되어 영원히 영원히 주님과 함께 영생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믿지 않은 자들은 영원히 영원히 영벌에 처해질 것이다.
이 심판은 공갈 협박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 온 자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고 선포이다.
양의 무리와 염소의 무리들이 나뉘어지고 영생과 영벌이 주어진다고 하셨다.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과 심판을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부활의 권능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부활의 권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부활의 의미만 취하려는 자들이 있다.
이름하여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한다.
성경이 증거하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그 부활의 의미만 취한다는 것은
자기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겉에 포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믿음은 사탄으로부터 온 믿음이고, 성령으로부터 온 믿음이 아닌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피조물 중에 부활의 첫 열매이다.(약1:18)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성령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낳으셨다.
하나님의 처음 창조보다 훨씬 더 귀하고 값진 재창조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부활의 권능으로 거듭나고 회심하고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 자녀가 된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질 옛 습관들로 뭉쳐진 옛 사람을 벗게 해주신다.
그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은 새 사람을 입혀 주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그 부활의 권능이 역사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4)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권능,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은 그 부활의 권능으로,
우리 옛 사람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게 하시고
부활의 새 생명을 주셔서 그 새 생명으로 행하게 하신다고 하신다.
부활의 새 생명으로 살게 하게 하시기 위해 새 생명을 주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주신 것이다.
이 새 생명으로 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 사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의 출생이고 그 생명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야 하는 것이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이요,
그 부활의 권능으로만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다.
부활의 첫 열매는 그리스도이지시만,
그 부활의 권능으로 피조물 중에 부활한 첫 열매가 그리스도인이다.
주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으로 거듭나고 새 생명을 주셨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이 새 생명 거듭난 생명으로 살다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의 몸까지도 부활하여 영광스러운 영생에 들어간다.
“에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3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고난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고난의 죽음이 없는 부활은 진정한 부활이라고 할 수 없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히5:8-9)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 가야 할 구원이 있는 것처럼,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고난을 통해 이뤄가야 할 부활이 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0-12)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부활에 이르기 위해 통과해야 할 고난이 있다.
구원을 위한 고난은 십자가에서 주님이 다 이루셨지만,
성전을 이루고 성품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고난은 우리에게 남겨 주셨다.
그것이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이고 그것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바울은 성도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는 것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남겨준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의 성전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간다.
우리의 성품과 삶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이루기 위한 고난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다.
고난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는 것이다.
그 고난이 인내를 이루고 그 인내를 통한 연단이 축복과 영광의 소망을 이룬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많은 것은 그 까닭이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라고 하셨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12:6)
다윗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하신 후에 왕으로 세우셨다.
요셉도 노예생활, 감옥생활을 겪은 후에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다.
모세도 40년간의 목동생활을 보낸 후에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로 세우셨다.
아브라함도 25년의 고난의 세월을 보낸 후에 이삭을 주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다.
그리스도도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여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시인케 하셨다.
고난의 의미와 목적을 알기에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다.
고난과 인내, 연단과 소망의 관계를 알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가볍게 잠시 받은 고난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중하게 이룬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믿음과 인내로 고난의 시절을 하나님만 바라고 잠잠히 참고 견딜 수 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 살기 위해 힘을 다해 수고해야 할 것이다.
악인들은 우리를 만드는 데 쓰시는 도구일 뿐이고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 날이 반드시 온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 하시고 위해서 기도하라 하시는 것이다.
바로를 강퍅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고, 애굽 군대를 홍해 속에 몰살하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애굽으로 보낸 자는 형들이 아니었고 하나님이셨다.
많은 생명들을 구원하시려고 요셉을 먼저 고난 속에 보내셨던 것이다.
고난들은 하나님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고,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본을 보이시고 우리로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시는 것이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해야 한다.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자녀로 삼으셨다.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자.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부활에 이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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