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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

본문

오늘은 고난주일입니다. 이번 한 주간이 성육하신 예수님의 고난이 절정을 이룹니다. 금요일 오후 3시 갈보리산 골고다 언덕 위의 십자가에서 운명하십니다(눅23:4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큰 소리로 부르짖으시며(마27:46),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요1:29) 대속의 제물이 되셨습니다(막10:45). 다시 말해서 십자가 정사(釘死)가 예수님의 고난의 최고절정입니다.
예수님의 고난....
빌립보 2:6-8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근본 여호와 하나님의 본체시나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성육신의 생애 전체가 고난입니다.
영광 보좌를 비워두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자체가 고난입니다. 성육신하여 이 땅에 사심 자체가 마치 사람이 돼지우리에서 생활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니 실상은 그보다 더 하지요. 더더욱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고 하신 예수님.... 그 고난이 어떠했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할 것을 비로소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은 차원이 다릅니다. 자신이 져야할 대속의 십자가, 그 십자가 지시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고 했습니다.
그 길을 가로막음은,
사랑이 아니라 넘어지게 하는 일이요, 사탄의 일입니다. 그 길은 예수만이 가는 길이 아니요, 주를 따르는 자들도 가야할 길입니다. 제 목숨을 위해 이 십자가의 길을 피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다 목숨을 잃는 자는 부활로 찾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랴....
제 목숨을 잃지 않는 길이 바로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고난의 길이요, 죽음의 길입니다. 이 고난의 긴 터널을 통과해야 인자의 영광을 보리라고 했습니다. 인자의 영광에 참예하리라고 했습니다. 인자의 영광을 누리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
3. 1절, 선열들의 독립운동을 되새겨 보는 달입니다. 육신적인 세상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자주자(自主者)가 되려고 투쟁했습니다. 하물며 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그 천국을 위해서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나의 신앙생활에서 자주자(自主者)가 되기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
첫 주에 자주자(自主者)란 무엇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둘째 주에 모든 얽매이는 것을 벗어버린 자가 자주자(自主者)임을 살펴 보았습니다. 셋째 주인 오늘 고난주일에는 자기 몫에 테인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가 자주자(自主者)임을 살펴보고져 합니다
1 자주자(自主者)란 무엇인가
2 모든 얽매이는 것을 벗어버린 자주자(自主者)
3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가 자주자(自主者)
본문 24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여기의 "나를 따라오려거든"은.... 만약 내 뒤를 따르기로 결심하려면이란 뜻입니다. 여기의 결심은.... 선택, 순종, 묵종(默從)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의 뒤에 "줄서기"가 아닙니다.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나도 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을 "줄서기"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 뒤에 줄만 서면 되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을 나도 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바로 고난이지요. 그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했습니다(요16:33).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롬8:17
1. 주님 지신 십자가
본문 21절/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절정이 십자가에 못을 박혀 죽으신 십자가의 정사(釘死)입니다. 이 십자가의 정사(釘死)를 비로소 공개적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 제자들은 바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를 신앙고백한 제자들입니다(마16:16).
"이 때로부터.... 비로소 가르치시니"....
여기의 "이 때"가 바로 베드로로 대표되는 제자들의 신앙고백이 이루어진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른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에(마16:18) 예수 십자가의 신비를 일러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신앙고백하지 못한 사람은 십자가의 신비를 받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음을 뜻합니다.
예수 십자가의 신비....
그 신비 속에는.... 대속의 제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만이 있는 게 아닙니다(마26:28).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는 부활도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 성도들이 잊기 쉬운 주를 따르는 자들이 걸어가야 할 십자가의 길도 있습니다. 오늘이 고난주일이기에 내가 걸어가야 할 이 십자가의 길을 더욱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은,
①. 버림받은 기입니다.
마태복음 27:46절/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당한 고통의 울부짖음입니다. 자기 땅에 왔습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이 영접지도 아니하고 버렸습니다(요1:11). 주께서 잡히시던 밤에 3년이나 함께 했던 제자들이 버리고 떠나갔습니다(마26:56). 심지어 가룟 유다는 은 30에 팔아먹기까지 했습니다(마26:15). 본래부터 머리 둘 곳도 없었던(마8:20) 주께서 이 땅에 발붙일 곳 없이 버림받았습니다.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하늘 아버지마저 주님을 버렸습니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철저하게 버림받았습니다. 이것이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②. 순종의 길입니다.
마태복음 26:39절/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길을 피하고 싶었던 주님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나의 원이 아닌 아버지의 원대로 따르겠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영화롭게 해야할 사람들이 가야할 순종의 길입니다.
③. 골고다 언덕길입니다.
요한복음 19:17절/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 말로 골고다) 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우리 성도들이 잘 아는 대로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며 넘어지시니 구레네인 시몬이 대신 지고 갔습니다(마27:32). 넘어지고 넘어지는 모습에 여인들이 울었습니다(눅23:27). 그만큼 힘든 길이었습니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져야 자주자(自主者)입니다.
본문 16:24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주를 따를 자는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 가실 십자가의 길을 가지 말라고 간청하는 베드로, 결코 주에게 미칠 수 없다는 십자가의 길을 부인하는 베드로.... 바로 십자가의 길을 피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실족케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십자가의 길은 나를 향해 나를 부정하고, 나를 버리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주를 향해 나를 긍정하고, 나를 이기는 삶으로 주의 발자취를 따릅니다. 한발자욱 두발자국 걸어가신 자욱마다 뜨거운 눈물 붉은 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칠전팔기할지라도 제 십자가 바로 지고 골고다의 높은 고개 나도 가게 하옵소서.... 찬송하며 따라갑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일이 너무도 힘든 고난의 길입니다. 그것은 우리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날마다 경험하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 너무도 힘듭니다. 그래도 주를 따르기 위해서 이 길을 가야만 하니,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길입니다.
제 몫에 테인 십자가를 지는 일....
참으로 힘든 고난의 길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세요. 주님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시다 넘어지고 넘어졌습니다. 그 간악한 로마 병정이 구레네 사람 시몬으로 하여금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 내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했습니다(갈6:2).
3. 육체의 소욕을 이겨야 자주자(自主者)입니다.
갈라디아 5:17절/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과의 싸움에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자주자(自主者)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에서 자주자(自主者)가 되려면 육체의 소욕을 이겨야 합니다. 주님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려는 내 발목을 잡는 것이 바로 육체의 소욕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육체의 일을 이룹니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했습니다(갈5:19-21).
이런 육체의 소욕은,
우리 성도들이 몸의 구속을 입기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저주받은 내 육체를 떠나지 아니합니다. 내 육체가 죽기까지 육체의 소욕은 살아 역사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오호라의 탄식을 부르짖었고(롬7:24),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한다고 했습니다(고전9:27).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부르짖었습니다(고전15:31).
나의 몸이 구속을 입기까지....
곧 나의 몸이 부활/변화하여 신령한 몸으로 바꾸어질 때까지 육신의 소욕은 나의 발목을 잡습니다. 주님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나도 가야 하는데, 자꾸만 발목을 잡고 늘어집니다. 이것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주자(自主者)입니다.
갈라디아 5:24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 곧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그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롬6:4). 육체뿐만 아니라 정과 욕심까지도 못 박았습니다. 여기의 "정파네마(pavqhma)"은.... "충동적 욕구, 고난"을 뜻합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욕구/욕정입니다. 또 "욕심에피뒤미아(ejpiqumiva)"은.... "욕망, 갈망"을 뜻합니다. 주로 나쁜 욕망을 나타냅니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이 정과 욕심도 육체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죽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에게는(고후5:17) 육체의 소욕 곧 정과 욕심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갈2:20).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예수 안에서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도 이미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습니다. 죽고 없습니다. 이 사실을 신앙생활에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늘 고백해야 합니다. 육체와 정과 욕심이 고개를 쳐들 때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런 고백 속에서 이미 죽어버린 나의 육체와 정과 욕심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것이 말과 같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의 육체를 향하여 이미 죽어버린 사실을 확인시켜주어도 육체의 소욕이 고개를 쳐듭니다 그래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시킨다고 했습니다(고전9:27).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고전15:31). 이 싸움이 바로 고난의 길이요, 성도가 걸어가야 할 십자가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가 자주자(自主者)입니다.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 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 내 몫에 테인 십자가를 외면치 말아야 합니다.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친히 그 십자가 지시고 앞서 가시며 나를 따라오너라고 하십니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긴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야 영광의 면류관이 기다립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 없는 면류관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
자기 십자가를 져야 자주자(自主者)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내 몫에 테인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나를 부인하고 버려야 됩니다. 그러나 나의 정과 욕심이 이를 허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자존심"이 이를 허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내 몸을 쳐 복종시켜야 합니다.
나를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입니다. 그러나 영광의 보좌를 비워두시고 자기를 낮추시되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주님의 고난을 바라보며 한발자국 두발자국 주님의 발자국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주자(自主者)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
오늘 고난 주일을 맞아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바라봅시다.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주님이 나의 대속을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자신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그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나를 구속하시기 위해 가셨습니다. 앞서 가시면서 하신 말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나를 부인하고 내 몫에 테인 십자가를 지고 가기가 힘들더라도 그 십자가의 길을 나도 가야지요.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가야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가 자주자(自主者)입니다. 오늘 고난 주일을 맞아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바라봅시다. 내 몫에 테인 십자가를 지고 나도 가야할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가야할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는 자들에게 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오라고 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좁은 길이 아니라 넓은 길이 있습니다. 고난의 길이 아니라 평안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영생에 들어가는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 영벌에 들어가는 멸망의 길입니다(마7:1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
자기 십자가를 져야 자주자(自主者)입니다. 자기를 버려야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자존심을 버려야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내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할 때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또한 육체의 소욕을 이겨야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성령의 소욕을 좇을 때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곧 성령의 소욕을 좇아야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이런 신앙고백으로 내 몫에 테인 십자가를 외면치 아니하고, 피하지 아니하고, 한발자국 두발자국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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