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고난의 십자가
본문
오늘 금요기도회는 참으로 의미가 있는 기도회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성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아 보혈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들은 그날을 생각하면서 고난주간을 한 주간 지켰습니다. 그 고난주간의 절정은 금요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매주 금요기도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의미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하여 기도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묵상해야 합니다.
오늘 저녁에 우리들은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 상황이 잘 기록된 막15:15-41절까지를 살펴보면서 오늘 이 밤에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15절),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는 것 자체가 고난이셨습니다. 그래서 조직신학에서 예수님의 신분을 "낮아지신 신분"(비하의 신분)과“높아지신 신분”(승귀의 신분)으로 구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낮아지신 신분의 출발점은 "잉태"로 봅니다.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오셨는데 이렇게 잉태된 사실 자체가 고난입니다.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높고 높은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죄없으신 분이 당시 권력자들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을 미리 다 예견하셨습니다. 집권자들의 손에 넘겨질 것을 미리 말씀하신 내용대로 예수님은 그들의 손에 넘겨져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많은 군중들은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15:13절)라고 외쳤습니다.
빌라도는 죄없으신 예수님을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15:15)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예수님은 성경이 예언하신 대로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동원된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불법이 성행하는 것을 우리들이 많이 봅니다. 그러한 불법이 득세해도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불법을 자행한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고 전도를 하다 보면 왜 그렇게 핍박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들은 낙심이 되고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결실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그 전도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그 복음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고난을 제공한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목회자가 고난을 받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고난 받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을 제공한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고난을 받은 자입니까 아니면 고난을 제공한 자들입니까 고난을 제공하여 복음을 방해했다고 한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한 불순한 행동과 생각들이 십자가 보혈의 피로 다 해결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침을 뱉으며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19-20)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장면을 성화 그림으로 보셨을 것입니다. 그 성화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옷이 벗겨진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 보니까 침을 뱉으며 희롱을 한 후 옷을 벗겼다는 기록 때문입니다. 창9:22절에 보시면 노아가 포도주에 취했을 때 그의 아들 가운데 함이 두 형제에게 고했습니다. 이 이유 때문에 함이 저주를 받습니다. 함의 행동은 수치를 공개했다는 이유 때문에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수치를 덮어 주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축복을 받습니다. 함은 수치를 덮어 주지 않고 공개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한 자로 등장하여 저주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겼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노아의 아들 "함"과 같이 저주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수치와 모멸과 조롱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런 수치를 받아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을 대신하여 그런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의 수치와 실수, 그리고 모든 죄와 허물을 덮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들의 온갖 허물을 덮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요,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큰 소리 친 우리들이 오히려 상대방의 죄와 허물, 그리고 실수를 공개하려고 합니다. 덮어 주지를 않습니다. 상대의 약점과 결점을 폭로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죄를 범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와 수치를 덮어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는데 우리들은 반대로 그것을 들추어내려고 합니다. 그런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헛되게 하려는 자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노아의 아들 함과 같은 사람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주간에 우리들이 기도해야 할 기도 제목들입니다.
3.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31절)라고 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군중과 함께 예수님을 희롱합니다. 이들은 당시 종교적인 지도자들입니다. 모든 특권을 누리며 기득권을 보장받아 왔습니다.
이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하면서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조롱합니다.
그러면 이들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것 자체가 가짜입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께 저주받아 마땅한 자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목사인 저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하면서 저의 아들 딸들을 싫어하고 죽인다면 제가 여러분들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이 저를 존경한다는 그 말은 한낱 위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그런 위선을 떨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육신의 열매를 맺으면 그게 어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인 체하는 것뿐입니다.
히6:4-6절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들은 다 믿는 척했던 자들입니다. 교회 일꾼인척 했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를 맛본 척 했습니다. 이런 자들이 계속 더 타락해서 여호와 하나님 품을 떠나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4.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39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했고 조롱했던 이방인과 같이 똑같은 사람이었던 백부장의 고백이 등장합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었 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야말로 아멘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롬5:8절에“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시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에게 확인시키고 증명해 보여주셨습니다.
롬8:32절은"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망의 그늘 진 땅에 거하는 우리들에게 희망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위로와 축복과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의 고난은 바로 우리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은 무슨 죄가 저렇게 크기에 천벌을 받아서 저런 고통을 당하는가 하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이렇게 비난한 자들은 죄가 없어서 그렇게 조롱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들은 죄인인줄 모르고, 자칭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착각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 착각을 허물어 뜨려야 합니다. 이 고난 주간에 무엇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합니까 우리들의 착각으로부터 깨어나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이 고난주간 금요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나의 존재에 관해서 깊이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통한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들은 오늘과 같은 신분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 신분은 어떤 신분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와 신분을 값없이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들은 너무나 게을렀고 죄를 많이 졌습니다. 회개합시다. 어렵다고만 했지 왜 어렵게 되었는지를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만 했지 감사는 없었습니다. 말로만 감사한다고 하지나 않았습니까
어렵다는 것을 핑계로 교회 헌금하는 것 봉사하고, 헌신 하는 것마저 외면하고 우리들에게 더 많은 어려움이 온다면 우리들은 할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약한 부분들을 모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약한 부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나의 약점과 약한 부분 때문에 고민하고 방황하지 않습니다. 그 약한 부분도 은혜라고 생각되면 왠지 모르게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런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가 여러분들에게 늘 충만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매주 금요기도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의미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하여 기도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묵상해야 합니다.
오늘 저녁에 우리들은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 상황이 잘 기록된 막15:15-41절까지를 살펴보면서 오늘 이 밤에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15절),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는 것 자체가 고난이셨습니다. 그래서 조직신학에서 예수님의 신분을 "낮아지신 신분"(비하의 신분)과“높아지신 신분”(승귀의 신분)으로 구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낮아지신 신분의 출발점은 "잉태"로 봅니다.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오셨는데 이렇게 잉태된 사실 자체가 고난입니다.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높고 높은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죄없으신 분이 당시 권력자들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을 미리 다 예견하셨습니다. 집권자들의 손에 넘겨질 것을 미리 말씀하신 내용대로 예수님은 그들의 손에 넘겨져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많은 군중들은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15:13절)라고 외쳤습니다.
빌라도는 죄없으신 예수님을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15:15)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예수님은 성경이 예언하신 대로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동원된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불법이 성행하는 것을 우리들이 많이 봅니다. 그러한 불법이 득세해도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불법을 자행한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고 전도를 하다 보면 왜 그렇게 핍박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들은 낙심이 되고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결실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그 전도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그 복음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고난을 제공한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목회자가 고난을 받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고난 받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을 제공한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고난을 받은 자입니까 아니면 고난을 제공한 자들입니까 고난을 제공하여 복음을 방해했다고 한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한 불순한 행동과 생각들이 십자가 보혈의 피로 다 해결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침을 뱉으며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19-20)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장면을 성화 그림으로 보셨을 것입니다. 그 성화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옷이 벗겨진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 보니까 침을 뱉으며 희롱을 한 후 옷을 벗겼다는 기록 때문입니다. 창9:22절에 보시면 노아가 포도주에 취했을 때 그의 아들 가운데 함이 두 형제에게 고했습니다. 이 이유 때문에 함이 저주를 받습니다. 함의 행동은 수치를 공개했다는 이유 때문에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수치를 덮어 주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축복을 받습니다. 함은 수치를 덮어 주지 않고 공개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한 자로 등장하여 저주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겼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노아의 아들 "함"과 같이 저주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수치와 모멸과 조롱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런 수치를 받아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을 대신하여 그런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의 수치와 실수, 그리고 모든 죄와 허물을 덮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들의 온갖 허물을 덮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요,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큰 소리 친 우리들이 오히려 상대방의 죄와 허물, 그리고 실수를 공개하려고 합니다. 덮어 주지를 않습니다. 상대의 약점과 결점을 폭로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죄를 범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와 수치를 덮어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는데 우리들은 반대로 그것을 들추어내려고 합니다. 그런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헛되게 하려는 자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노아의 아들 함과 같은 사람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주간에 우리들이 기도해야 할 기도 제목들입니다.
3.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31절)라고 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군중과 함께 예수님을 희롱합니다. 이들은 당시 종교적인 지도자들입니다. 모든 특권을 누리며 기득권을 보장받아 왔습니다.
이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하면서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조롱합니다.
그러면 이들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것 자체가 가짜입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께 저주받아 마땅한 자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목사인 저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하면서 저의 아들 딸들을 싫어하고 죽인다면 제가 여러분들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이 저를 존경한다는 그 말은 한낱 위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그런 위선을 떨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육신의 열매를 맺으면 그게 어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인 체하는 것뿐입니다.
히6:4-6절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들은 다 믿는 척했던 자들입니다. 교회 일꾼인척 했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를 맛본 척 했습니다. 이런 자들이 계속 더 타락해서 여호와 하나님 품을 떠나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4.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39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했고 조롱했던 이방인과 같이 똑같은 사람이었던 백부장의 고백이 등장합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었 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야말로 아멘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롬5:8절에“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시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에게 확인시키고 증명해 보여주셨습니다.
롬8:32절은"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망의 그늘 진 땅에 거하는 우리들에게 희망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위로와 축복과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의 고난은 바로 우리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은 무슨 죄가 저렇게 크기에 천벌을 받아서 저런 고통을 당하는가 하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이렇게 비난한 자들은 죄가 없어서 그렇게 조롱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들은 죄인인줄 모르고, 자칭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착각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 착각을 허물어 뜨려야 합니다. 이 고난 주간에 무엇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합니까 우리들의 착각으로부터 깨어나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이 고난주간 금요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나의 존재에 관해서 깊이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통한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들은 오늘과 같은 신분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 신분은 어떤 신분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와 신분을 값없이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들은 너무나 게을렀고 죄를 많이 졌습니다. 회개합시다. 어렵다고만 했지 왜 어렵게 되었는지를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만 했지 감사는 없었습니다. 말로만 감사한다고 하지나 않았습니까
어렵다는 것을 핑계로 교회 헌금하는 것 봉사하고, 헌신 하는 것마저 외면하고 우리들에게 더 많은 어려움이 온다면 우리들은 할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약한 부분들을 모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약한 부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나의 약점과 약한 부분 때문에 고민하고 방황하지 않습니다. 그 약한 부분도 은혜라고 생각되면 왠지 모르게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런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가 여러분들에게 늘 충만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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