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루터의 종교 개혁
본문
1517년 10월31일 루터는 천주교를 향한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날이 바로 역사적인 종교개혁의 날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종교개혁482주년을 맞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 세 가지 내용을 살피면서 종교개혁이 주는 교훈을 찾아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종교개혁의 발단입니다.
루터가 성 로마 순례 중이었습니다. 소위 거룩한 빌라도의 사닥다리라고 하는 곳에 이르러 층계를 무릎으로 기어올라 가다가 그 마음에 봉독한 롬1:17말씀이 번개처럼 떠올랐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루터는 가슴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기어올랐던 그 계단을 걸어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자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붙잡힘을 받게 된 것은 바로 롬1:17말씀을 통해서입니다. 따라서 루터의 종교개혁의 당시 표어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였습니다. 루터는 그 때까지도 사람이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천주교의 가르침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경을 통해서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만 구원을 얻은다는 진리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마침 그 무렵 교황레오10세가 베드로 성당 완공을 위하여 막대한 공사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이것을 사면 죄가 면해진다는 뜻의 면죄부를 판매할 것을 강권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황의 깃발을 들고 비텐베르그시의 온 시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끌어들이는 때였습니다. 1517년 10월31일 정오 루터는 성 교회 정문 앞에 나갔습니다. 라틴어로 쓰여진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나무로 만든 교회 문 앞에 못질하여 붙였습니다.
드디어 2주만에 전 독일을 불질렀고 4주만에 전 구라파를 불지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루터 종교개혁의 봉화였습니다. 루터의 항의문 중심내용이 무엇입니까 면죄부가 어찌 사람의 죄를 속할 수 있느냐 면죄부가 어떻게 연옥에 있는 영혼을 구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회개한 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함을 받았다는 중요한 교리를 발표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한 길 뿐입니다. 면죄부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습니다. 우리의 찬송이 무엇입니까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 믿으면 하겠네♬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다고 찬송하지 않습니까 루터는 견딜 수 없어 천주교에 대한 항의문을 발표한 것입니다.
둘째 종교개혁의 요인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들이 천주교에는 너무도 많았습니다. 크게는 셋입니다.
① 신학적 차원에서 이행득구 주의의 개혁이요.
② 도덕적 차원에서 교황청과 교회 부패의 개혁이며,
③ 사회적 차원에서 인간각성의 개혁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습니다. 우선 천주교의 마리아 숭배입니다. 마리아는 죄 없는 몸으로 잉태했고 때문에 기도의 중보자이고 또 그가 사망 후에 무덤가운데서 부활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우리와 같은 죄인이고 그는 결혼해서 자녀를 두었으며 결코 무덤에서 부활한 일이 없습니다. 또 천주교의 성경관을 들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에 성경의 권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교회가 성경 위에 있고 또 교회가 성경을 인정해야 성경의 권위가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전통을 성경과 동일시하고 성경 외에 가경을 성경으로 믿기도 합니다. 기독교는 성경 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교황의 칙령이나 가경이나 전통의 모래 위에 세우고 있으니 어찌 참 기독교라고 말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교황무오설을 주장합니다. 그들은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믿고 그의 한 마디, 한 마디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류가 없다고 교황무오설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임명하신 초대교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비 성경적입니다. 마16:23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실 적에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하셨습니다. 사단이 되기도 했던 베드로에게 어찌 교황무오설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고해성사를 들 수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영세 후에 범한 모든 죄를 신부에게 그대로 고하고 신부로부터 죄 용서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부는 어떤 죄를 범했던 그 죄를 용서하되 죄인에게 고행을 당부합니다.
가령 금식하라, 고행하라, 면죄부를 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지나친 비 성경적인 것입니다. 어떻게 죄인이 죄인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바울의 절규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사망의 몸에서 구원해 내랴" 성경은 말합니다. 인간의 죄를 씻는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습니다. 결코 신부가 아닙니다. 예수의 피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우상숭배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성상숭배가 있습니다. 마리아 상을 위시한 성인들의 상을 조각하고 그것을 신성시하고 경배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유골숭배도 있습니다. 죽은 성자들의 유골에 맞추고 절하고 경배합니다. 천사숭배도 있습니다. 천주교에는 천사에게 드리는 기도와 숭배의 예식까지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유물로 신자들을 미혹하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그 중에는 진짜 십자가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달리셨다고 믿는 십자가인데 천주교의 전통적인 유물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에 박힌 못, 예수님께서 입에 대신 해융,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자색 옷, 예수님께서 쓰신 가시면류관, 최후 만찬에 사용한 잔, 마리아의 머리카락, 마리아의 신발, 요셉의 목수의 도구들, 가룟 유다의 돈주머니, 빌라도의 세수대야, 예수님께서 타셨다는 어린 나귀의 뼈등 많은 유물을 미신적 행위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주교를 향해 어찌 마틴 루터 한 사람만으로 족할 수 있으리요. 오늘에 와서도 천주교 안에서 수많은 루터가 나와야 된다는 말입니다.
셋째 종교개혁의 명제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에는 3대 명제가 있습니다.
① 오직 성경입니다. 당시의 로마 카톨릭은 신앙과 행위의 기본을 성경에서 찾은지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루터는 이것을 가슴아프게 깨닫고 오직 성경을 외쳤습니다. '오직 성경' 라틴어로는 '솔라 스크립투라'인데 이 말은 성경은 성령의 완전 영감 된 것으로 정확 무오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뜻이요, 또 오직 성경만이 신앙과 행위에 기본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 개혁교단 헌법에도 보면 교리신조 제1조에 신구약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유일한 법칙이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성경이 정답을 주고 있습니다. 가령 딤후3:16입니다. "모든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루터 당시의 성경은 만인이 읽는 성경이 아닙니다. 라틴어로만 되어 평신도는 읽을 수 없고 신부만 읽게 했습니다. 그리고 교황의 말이면 일점 일획도 틀림없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게 했습니다. 따라서 천주교 신자들은 저마다 교황의 옷자락에 입맞추는 것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성경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열심히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오래 믿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성경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구만' 아내는 옳다고 긍정했습니다. 계속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내에게 말합니다. '여보 성경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야'아내는 옳다고 또 긍정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 읽는 사람은 여기에서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그 사람은 계속 성경을 읽더니 더 크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여보 성경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살길이 있군'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이 발견한 대로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에게 살길을 주시기 위하여 무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니 너희도 살리라"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살길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요, 성경이 이렇게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② 오직 은혜입니다. 천주교는 구원에 있어서 이행득구주의 입니다. 구원은 행함으로 얻는다 곧 공덕 축척설을 주장합니다. 루터는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비 진리인 것을 깨닫고 오직 은혜를 외쳤습니다. '오직 은혜' 라틴어로 '솔라 그라티아'인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에게 무값으로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뜻합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죄인입니다. 그런데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저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 인생입니다. 인생 스스로는 어떻게 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은혜로 죄인들이 죄 씻음을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요5:24이 무엇입니까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루터는 도둑질한 일이 없고, 간음한 일이 없고, 살인한 죄를 범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수도원에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 세리처럼 고민하였지만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루터는 마침내 성경에서 답을 찾은 것입니다. 요1:29이 무엇입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롬3:24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또 엡1:7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그렇습니다. 기독교가 무엇입니까 은혜의 종교입니다. 고후9:8인데 "여호와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은혜가 아니고는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꼭 필요한 모든 은혜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③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죄인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도 믿음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된 것도 믿음이고 구원을 얻는 것도 믿음이니라"그래서 루터는 '오직 믿음'라틴어로는 '솔라 피데'를 외친 것입니다. 루터가 외치기 전에 성경에서 바울이 외쳤습니다. 이것이 본문 말씀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여기 물을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출처가 어디입니까 사람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신부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또 구원의 이르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결코 인간의 공로가 아닙니다. 고행도 아닙니다. 오직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이제 면죄부를 살 필요가 없고, 마리아를 숭배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신부에게 고해성사 할 필요도 없고, 십자가 등에 종군하고 성지 순례 하면서 고행할 것도 없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자선사업을 많이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성경에도 선한 일에 힘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될 의무요, 사명이지 결코 구원의 조건일수는 없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우리는 남은 믿음 생활을 하면서 이 말씀을 자주자주 암송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루터가 되어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그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하나 다음 종교개혁을 단행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믿음이 무엇입니까 생각해보면 세상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산주의를 믿는 것, 민주주의를 믿는 것도 믿음입니다. 유교를 믿고, 불교를 믿는 것, 천주교를 믿는 것도 믿음입니다. 심지어는 여호와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믿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그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믿음은 지푸라기 믿음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지푸라기가 무슨 힘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헬라어 성경에서 본문의 믿음에는 정관사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천주교에서 말한 대로 천사를 믿고, 마리아를 믿고 이러한 믿음이 아닙니다. 유교, 불교, 마호멧, 천주교를 믿고 그러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나 같은 죄일 살리신♬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가운데서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셨는데 오직 예수를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바울이 제창한 것입니다. 하박국이 주장했고 루터가 주장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믿음으로 사는 것 아닙니다. 그 믿음으로 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또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성경 말씀을 하라, 말라 둘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히11장에 보면 18사람의 간략한 믿음의 전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은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승리한 신앙위인들 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에 제 멋대로 했더라면 그 방주는 물에 뜰 수가 없었을 것이고, 아라랏산에 올라 갈 수도 없습니다. 프로필러를 단 방주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를 믿어 줄 수 있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믿어 줄 수 있게 살고 있는가 어쩌면 종교개혁주일을 지키는 우리 모두에게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다고 여겨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사명을 맡겨 주셨는데 우리가 이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고 있는가 한 번쯤 물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 국가, 민족, 그리고 교회와 가족을 위해서 나는 이 사명을 진정 감당하고 있는가 물으면서 우리의 행함 없는 믿음을 먼저 개혁해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옹졸한 사고방식을 개혁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사고가 주님 앞에서 얼마나 옹졸한지 모릅니다. 꽉 막혀 있을 때가 있습니다. 눈앞이 캄캄할 만큼 절벽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소극적이고 얼마나 부정적이며 때로는 비 성경적일 때가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외식적인 생활양식을 개혁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경건의 모양은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새로운 봄바람을 만나야 합니다. 생동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결단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가 없습니다. 종교개혁주일을 지키는 사랑하는 성도여! 달라져야 합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개혁이라는 개념부터서 개혁해야 할 것입니다. 이대로만은 견딜 수 없어하는 루터의 심정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남은 생애를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모두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는 종교개혁의 발단입니다.
루터가 성 로마 순례 중이었습니다. 소위 거룩한 빌라도의 사닥다리라고 하는 곳에 이르러 층계를 무릎으로 기어올라 가다가 그 마음에 봉독한 롬1:17말씀이 번개처럼 떠올랐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루터는 가슴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기어올랐던 그 계단을 걸어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자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붙잡힘을 받게 된 것은 바로 롬1:17말씀을 통해서입니다. 따라서 루터의 종교개혁의 당시 표어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였습니다. 루터는 그 때까지도 사람이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천주교의 가르침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경을 통해서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만 구원을 얻은다는 진리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마침 그 무렵 교황레오10세가 베드로 성당 완공을 위하여 막대한 공사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이것을 사면 죄가 면해진다는 뜻의 면죄부를 판매할 것을 강권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황의 깃발을 들고 비텐베르그시의 온 시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끌어들이는 때였습니다. 1517년 10월31일 정오 루터는 성 교회 정문 앞에 나갔습니다. 라틴어로 쓰여진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나무로 만든 교회 문 앞에 못질하여 붙였습니다.
드디어 2주만에 전 독일을 불질렀고 4주만에 전 구라파를 불지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루터 종교개혁의 봉화였습니다. 루터의 항의문 중심내용이 무엇입니까 면죄부가 어찌 사람의 죄를 속할 수 있느냐 면죄부가 어떻게 연옥에 있는 영혼을 구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회개한 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함을 받았다는 중요한 교리를 발표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한 길 뿐입니다. 면죄부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습니다. 우리의 찬송이 무엇입니까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 믿으면 하겠네♬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다고 찬송하지 않습니까 루터는 견딜 수 없어 천주교에 대한 항의문을 발표한 것입니다.
둘째 종교개혁의 요인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들이 천주교에는 너무도 많았습니다. 크게는 셋입니다.
① 신학적 차원에서 이행득구 주의의 개혁이요.
② 도덕적 차원에서 교황청과 교회 부패의 개혁이며,
③ 사회적 차원에서 인간각성의 개혁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습니다. 우선 천주교의 마리아 숭배입니다. 마리아는 죄 없는 몸으로 잉태했고 때문에 기도의 중보자이고 또 그가 사망 후에 무덤가운데서 부활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우리와 같은 죄인이고 그는 결혼해서 자녀를 두었으며 결코 무덤에서 부활한 일이 없습니다. 또 천주교의 성경관을 들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에 성경의 권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교회가 성경 위에 있고 또 교회가 성경을 인정해야 성경의 권위가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전통을 성경과 동일시하고 성경 외에 가경을 성경으로 믿기도 합니다. 기독교는 성경 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교황의 칙령이나 가경이나 전통의 모래 위에 세우고 있으니 어찌 참 기독교라고 말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교황무오설을 주장합니다. 그들은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믿고 그의 한 마디, 한 마디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류가 없다고 교황무오설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임명하신 초대교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비 성경적입니다. 마16:23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실 적에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하셨습니다. 사단이 되기도 했던 베드로에게 어찌 교황무오설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고해성사를 들 수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영세 후에 범한 모든 죄를 신부에게 그대로 고하고 신부로부터 죄 용서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부는 어떤 죄를 범했던 그 죄를 용서하되 죄인에게 고행을 당부합니다.
가령 금식하라, 고행하라, 면죄부를 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지나친 비 성경적인 것입니다. 어떻게 죄인이 죄인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바울의 절규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사망의 몸에서 구원해 내랴" 성경은 말합니다. 인간의 죄를 씻는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습니다. 결코 신부가 아닙니다. 예수의 피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우상숭배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성상숭배가 있습니다. 마리아 상을 위시한 성인들의 상을 조각하고 그것을 신성시하고 경배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유골숭배도 있습니다. 죽은 성자들의 유골에 맞추고 절하고 경배합니다. 천사숭배도 있습니다. 천주교에는 천사에게 드리는 기도와 숭배의 예식까지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유물로 신자들을 미혹하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그 중에는 진짜 십자가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달리셨다고 믿는 십자가인데 천주교의 전통적인 유물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에 박힌 못, 예수님께서 입에 대신 해융,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자색 옷, 예수님께서 쓰신 가시면류관, 최후 만찬에 사용한 잔, 마리아의 머리카락, 마리아의 신발, 요셉의 목수의 도구들, 가룟 유다의 돈주머니, 빌라도의 세수대야, 예수님께서 타셨다는 어린 나귀의 뼈등 많은 유물을 미신적 행위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주교를 향해 어찌 마틴 루터 한 사람만으로 족할 수 있으리요. 오늘에 와서도 천주교 안에서 수많은 루터가 나와야 된다는 말입니다.
셋째 종교개혁의 명제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에는 3대 명제가 있습니다.
① 오직 성경입니다. 당시의 로마 카톨릭은 신앙과 행위의 기본을 성경에서 찾은지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루터는 이것을 가슴아프게 깨닫고 오직 성경을 외쳤습니다. '오직 성경' 라틴어로는 '솔라 스크립투라'인데 이 말은 성경은 성령의 완전 영감 된 것으로 정확 무오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뜻이요, 또 오직 성경만이 신앙과 행위에 기본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 개혁교단 헌법에도 보면 교리신조 제1조에 신구약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유일한 법칙이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성경이 정답을 주고 있습니다. 가령 딤후3:16입니다. "모든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루터 당시의 성경은 만인이 읽는 성경이 아닙니다. 라틴어로만 되어 평신도는 읽을 수 없고 신부만 읽게 했습니다. 그리고 교황의 말이면 일점 일획도 틀림없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게 했습니다. 따라서 천주교 신자들은 저마다 교황의 옷자락에 입맞추는 것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성경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열심히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오래 믿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성경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구만' 아내는 옳다고 긍정했습니다. 계속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내에게 말합니다. '여보 성경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야'아내는 옳다고 또 긍정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 읽는 사람은 여기에서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그 사람은 계속 성경을 읽더니 더 크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여보 성경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살길이 있군'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이 발견한 대로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에게 살길을 주시기 위하여 무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니 너희도 살리라"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살길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요, 성경이 이렇게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② 오직 은혜입니다. 천주교는 구원에 있어서 이행득구주의 입니다. 구원은 행함으로 얻는다 곧 공덕 축척설을 주장합니다. 루터는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비 진리인 것을 깨닫고 오직 은혜를 외쳤습니다. '오직 은혜' 라틴어로 '솔라 그라티아'인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에게 무값으로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뜻합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죄인입니다. 그런데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저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 인생입니다. 인생 스스로는 어떻게 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은혜로 죄인들이 죄 씻음을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요5:24이 무엇입니까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루터는 도둑질한 일이 없고, 간음한 일이 없고, 살인한 죄를 범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수도원에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 세리처럼 고민하였지만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루터는 마침내 성경에서 답을 찾은 것입니다. 요1:29이 무엇입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롬3:24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또 엡1:7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그렇습니다. 기독교가 무엇입니까 은혜의 종교입니다. 고후9:8인데 "여호와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은혜가 아니고는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꼭 필요한 모든 은혜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③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죄인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도 믿음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된 것도 믿음이고 구원을 얻는 것도 믿음이니라"그래서 루터는 '오직 믿음'라틴어로는 '솔라 피데'를 외친 것입니다. 루터가 외치기 전에 성경에서 바울이 외쳤습니다. 이것이 본문 말씀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여기 물을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출처가 어디입니까 사람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신부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또 구원의 이르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결코 인간의 공로가 아닙니다. 고행도 아닙니다. 오직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이제 면죄부를 살 필요가 없고, 마리아를 숭배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신부에게 고해성사 할 필요도 없고, 십자가 등에 종군하고 성지 순례 하면서 고행할 것도 없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자선사업을 많이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성경에도 선한 일에 힘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될 의무요, 사명이지 결코 구원의 조건일수는 없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우리는 남은 믿음 생활을 하면서 이 말씀을 자주자주 암송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루터가 되어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그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하나 다음 종교개혁을 단행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믿음이 무엇입니까 생각해보면 세상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산주의를 믿는 것, 민주주의를 믿는 것도 믿음입니다. 유교를 믿고, 불교를 믿는 것, 천주교를 믿는 것도 믿음입니다. 심지어는 여호와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믿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그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믿음은 지푸라기 믿음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지푸라기가 무슨 힘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헬라어 성경에서 본문의 믿음에는 정관사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천주교에서 말한 대로 천사를 믿고, 마리아를 믿고 이러한 믿음이 아닙니다. 유교, 불교, 마호멧, 천주교를 믿고 그러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나 같은 죄일 살리신♬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가운데서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셨는데 오직 예수를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바울이 제창한 것입니다. 하박국이 주장했고 루터가 주장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믿음으로 사는 것 아닙니다. 그 믿음으로 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또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성경 말씀을 하라, 말라 둘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히11장에 보면 18사람의 간략한 믿음의 전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은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승리한 신앙위인들 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에 제 멋대로 했더라면 그 방주는 물에 뜰 수가 없었을 것이고, 아라랏산에 올라 갈 수도 없습니다. 프로필러를 단 방주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를 믿어 줄 수 있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믿어 줄 수 있게 살고 있는가 어쩌면 종교개혁주일을 지키는 우리 모두에게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다고 여겨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사명을 맡겨 주셨는데 우리가 이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고 있는가 한 번쯤 물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 국가, 민족, 그리고 교회와 가족을 위해서 나는 이 사명을 진정 감당하고 있는가 물으면서 우리의 행함 없는 믿음을 먼저 개혁해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옹졸한 사고방식을 개혁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사고가 주님 앞에서 얼마나 옹졸한지 모릅니다. 꽉 막혀 있을 때가 있습니다. 눈앞이 캄캄할 만큼 절벽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소극적이고 얼마나 부정적이며 때로는 비 성경적일 때가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외식적인 생활양식을 개혁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경건의 모양은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새로운 봄바람을 만나야 합니다. 생동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결단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가 없습니다. 종교개혁주일을 지키는 사랑하는 성도여! 달라져야 합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개혁이라는 개념부터서 개혁해야 할 것입니다. 이대로만은 견딜 수 없어하는 루터의 심정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남은 생애를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모두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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