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개혁하는 교회
본문
우리주변에서 흔하게 쓰여지는 말 중에 하나가 개혁이란 말입니다. 개혁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새롭게 뜯어고친다는 건데 혁명이란 것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혁명이란 비합법적 수단으로 체제를 바꾸는 걸 말합니다. 그러나 개혁, reform 이란 합법적 절차를 밟아 묶은 체제를 고치고 바꾸는 걸 말합니다. 정치인들은 정치개혁을 부르짖고 있으며 경제인들은 경제개혁을 말합니다. 교육가들은 교육개혁을 제창합니다. 물론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시급한 건 오늘의 교회가 이래선 안된다. 달라져야 한다. 개혁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말세교회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오늘의 교회는 에베소 교회처럼 기독교 사랑의 본질이 상실되었고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겉보기엔 그럴 듯 해도 실상은 안일함과 물질지향과 세속주의에 급속히 빠져들어 교회로서의 구실을 못하는 무기력함에 빠져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건 성인병이라고 합니다. 고혈압, 당뇨병, 신부전증, 골다공증,…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비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저도 당뇨를 앓고 있는데 간혹 성도들이 물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목사님을 참 사랑하시는 것 같은데 왜 당뇨병이 걸렸어요 라는 겁니다. 물론 의학적으로, 들은 상식 가지고 답할 수 있지만 저는 당뇨는 게으른 자에게 오는 병이라고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많이 먹을 걸 주셨는데 그 calory를 활동하여 소비하지 않고 게으름을 부린 자에게 준 병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오늘의 교회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을 해 주셨으나 그 영적 energy를 쓰지 않고 나태하니까 꼭 성인병이 든 환자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이대로 두면 어떤 합병증이 일어나서 교회를 침몰시킬는지 대단히 불안한 오늘의 현상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교회조직은 비대해지고 권력화가 되어 세속집단처럼 운영되어가고 있으며 무속신앙, 기복신앙, 종교다원주의 등이 신앙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으나 저항력을 잃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곧 교회 개혁의 적기라는 겁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하나는 Renaissance이며 다른 하나는 Reformation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Renaissance, 문예부흥은 인본주의로 돌아가는 것이며 Reformation은 신본주의로 돌아가는 운동입니다. 중세 교회가 인본주의로 부패하고 타락했을 때 신본주의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Reform입니다. 원래 의 form으로,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1. 종교개혁의 배경
주후 313년 Constantine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를 하게 되는 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제는 로마의 황제도 교인이요 대신들도 교인이요 평민들도, 노예들도 동등한 교인이 되었습니다. 교회당은 크게 건축이 되어 성도는 꽉 찼는데 큰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핍박을 받으면서 뜨겁게 기도하던 기도의 열기가 식어지고 환란을 이기기 위해 부르던 뜨거운 찬송도 사라지고 전도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교회를 목회하던 교부들은 자연 큰 교권을 가지게 되고 교권이 커지니까 세상의 물욕이 들어오고, 거대한 교회를 다스리기 위해서 제도를 만들게 되고 제도를 주관하는 이들은 권력으로 교회를 다스리게 되니 교회 안에는 영적 생명도, 구원의 감격도, 말씀을 통한 확신도, 기도의 능력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성직자들은 수도원을 만들고 깊은 산 속이나 동굴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더욱 부패하고 타락되어 갔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일반 성도들에게는 성경을 읽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경이 라틴어로 되어 있어 라틴어를 모르는 사람은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고, 설교도 라틴어로만 했습니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설교 들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평신도는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성직도 돈을 주고 샀습니다. 그러니 교직자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다. 고해성사를 신부에게 하게 합니다. 교황 무오설을 주장합니다. 교황의 한마디가 성경과 꼭 같은 권위를 가진다느니, 주교회의 결정이 성경의 권위와 같다고 하며 평신도를 욱박질렀습니다. 선행과 공력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했습니다. 면죄부, 혹은 속죄표를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이중에 속죄표 한가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교황 레오 10세가 베드로 대성당의 막대한 공사비 충당의 일환으로서 알베르트(Albert of Brandenburg. 1490-1545) 대주교에게 속죄표 판매를 청부하였고 이들은 수도사요 웅변가인 테첼(Tetzel, Johann. 1450-1519)을 고용하여 신학박사의 학위를 주고는 가는 곳마다 면죄부에 대하여 설교하고 주장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Tetzel은 가는 곳마다 속죄표(면죄부)를 사면 살아 있는 사람은 즉시 죄를 용서받을 것이요 심지어 부모나 형제 또한 조상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었을 때는 연옥에 가 있는데 그러한 자를 위하여도 그 자녀나 가족들이 속죄표를 사기만 하면 그 돈 (은화)이 헌금함 속에 떨어져 소리가 땡 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 지옥 대기실인 연옥에서 곧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설교를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비성경적이며 황당한 일입니까 그러자 Thomas Akempis(1380-1471)는 교회에는 은과 금은 많지만 예수의 이름이 없다고 한탄했습니다. ,
2. 개혁자들의 주장
종교개혁이란 지금으로부터 485년전인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의 루터에 의해 로마 카톨릭교가 총체적으로 잘못된 사실을 지적한데서부터 출발합니다. 루터가 Wittenberg대성당의 대문에 로마 카톨릭교의 부당한 일 95개 조항의 대자보를 게시하였습니다. 95개 조항의 골자는 속죄표의 잘못을 지적한 것과 구원은 선행이나 공로에 의하지 않고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란 것과 사제만 아니라 모든 성도는 다 제사장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한 겁니다. 즉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 개혁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네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 둘째는 오직 믿음(Sola Fide), 혹은 오직 은혜(Sola Gratia), 셋째는 만인 제사장(Priesthood of all believers)입니다.
1). 루터는 말씀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했습니다.
루터는 개혁운동을 하면서 신구약 성경을 Melanchthon의 협력을 얻어 독일어로 번역을 하였고 Wittenberg대학에서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 등 성경 주석을 집필하였습니다. 이렇게 번역된 성경이 전 독일에 퍼졌을 때 교회가 새롭게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새로워지려면 우리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개혁된 교회가 아니라 말씀으로 날마다. 개혁되는 교회 reforming church인 것입니다. 1517년에 개혁된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날마다 끊임없이 말씀으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뭡니까 거울이죠 거울을 왜 봅니까 거울을 보면서 맵시를 고쳐야죠 여러분들은 거울도 안 보는 여자입니까 말씀은 canon입니다. 자(尺)란 말입니다. 높이, 길이, 넓이, 깊이를 측량하는 기준이 뭐냐, 바로 자입니다. 성경인 것입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내가 지금 바르게 믿고 있는가, 바르게 행동하고 있는가 끊임없이 점검을 하며 개혁해야 합니다.
교황무오설이나 교회의 법령이 무오하다는 건 잘못입니다. 고해성사도 잘못입니다. 개혁의 표준은 말씀입니다. 개혁의 원동력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에 내 신앙과 삶을 비추어보고 말씀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고쳐나가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사에 보면 1521.4. 17에 Worms 성당에서 모인 국회에 끌려가서 재판을 받습니다. 재판장은 말합니다. 네가 25부의 저서에서 한 말을 취소할 마지막 기회를 줄 터이니 취소하면 살아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으리라는 무서운 선언을 합니다. 이때 Luther는 이 25부의 저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준으로 한 것임으로 성경이 진리가 아니란 것을 설명하기 전에는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도 부인할 수 없다고 대답을 하고 Worms회의장의 의리의리한 재판정에 서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서 있어서 다른 도리가 없사오니 나를 도우소서. " 얼마나 굉장합니까 그는 말씀에 굳게 섰습니다. 말씀을 확신했습니다. 91년 5월에 저도 루터가 서서 기도하던 그 자리에 서 보았습니다. 감격했습니다. 루터는 살아 있는 말씀으로 개혁을 했습니다.
2).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①속죄표(면죄부)는 사람의 죄를 속할 수 없고 ②속죄표는 죄의 벌을 면할 수 없고 ③속죄표는 연옥에 있는 영혼을 구할 수 없고 ④인간의 고행과 공로가 결코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과 믿음으로 회개한 자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를 받았다 라고 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루터에게 구원론의 눈을 뜨게 한 말씀이 본문 17절 말씀입니다. 다같이 큰 소리로 읽어봅시다. "복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멘
루터는 1510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수도사들의 순례 여행 코스 중에 하나가 성 계단 성당(Scala Santa) 내부에 "빌라도의 계단, 또는 거룩한 계단" 이라는 이름의 28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일이었습니다. 1994년 5월 25일에 저도 그 계단교회에 가서 무릎으로 기어올라가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계단교회는 Constantine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러 밟고 올라가신 계단을 생각하며 빌라도 법정의 그 계단을 로마로 옮겨 그대로 축조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도 로마를 방문하여 스칼라 산타 28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올라가면서 고통스런 고행을 체험하고 있는데 갑자기 롬1:17절 말씀이 가슴속에서 벅차 오른 겁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렇습니다. 아멘 하면서 벌떡 일어나 계단을 밟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요 오직 믿음입니다.
3). 만인은 제사장이란 겁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이 따로 있어서 제사장 외에는 어느 누구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와서 죄 사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직 제사장을 통해서만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천주교의 신부는 제사장과 같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신부 앞에 가서 죄를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회는 교황이나 신부나 어떤 성직자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직접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는 다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목사는 제사장이란 성격보다도 설교자, 목회자의 성격을 갖습니다. 물론 목사의 권위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말씀의 권위와 성례전을 집행하는 권위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라는 점에서는 만인이 동등합니다. 만인이 제사장이라고 해서 목사나 평신도가 동등하다는 건 아닙니다. 목사든 신자이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가 기도할 수 있고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칠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않고도 여호와 하나님께 바로 회개하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만인 제사장설입니다.
3. 오늘의 교회는 개혁되어야 합니다.
M. Luther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Jhon Calvin에 의하여 확고한 신학적인 체계를 이루었습니다. 이들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 모든 신자는 제사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는 종교개혁 485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종교 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말씀의 권위는 어디 가고 교권주의 자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돈으로 성직을 사고 있습니다. 인간의 공로가 구원의 방편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헌금 많이 하는 사람에겐 새로운 종류의 면죄부가 생겨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안에 어려움이 있으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헌금을 많이 바치면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합니다.
기득권이 있는 사람은 개혁을 싫어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어긋나는 걸 고쳐야 합니다. 교회 헌금이나 충성을 성령의 감동으로, 은혜로,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전통과 관습도 중요하지만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권중심에서 평신도 중심으로, 제도와 규례에 매여서 보다는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충성하고 봉사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로 개혁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시급한 건 오늘의 교회가 이래선 안된다. 달라져야 한다. 개혁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말세교회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오늘의 교회는 에베소 교회처럼 기독교 사랑의 본질이 상실되었고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겉보기엔 그럴 듯 해도 실상은 안일함과 물질지향과 세속주의에 급속히 빠져들어 교회로서의 구실을 못하는 무기력함에 빠져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건 성인병이라고 합니다. 고혈압, 당뇨병, 신부전증, 골다공증,…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비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저도 당뇨를 앓고 있는데 간혹 성도들이 물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목사님을 참 사랑하시는 것 같은데 왜 당뇨병이 걸렸어요 라는 겁니다. 물론 의학적으로, 들은 상식 가지고 답할 수 있지만 저는 당뇨는 게으른 자에게 오는 병이라고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많이 먹을 걸 주셨는데 그 calory를 활동하여 소비하지 않고 게으름을 부린 자에게 준 병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오늘의 교회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을 해 주셨으나 그 영적 energy를 쓰지 않고 나태하니까 꼭 성인병이 든 환자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이대로 두면 어떤 합병증이 일어나서 교회를 침몰시킬는지 대단히 불안한 오늘의 현상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교회조직은 비대해지고 권력화가 되어 세속집단처럼 운영되어가고 있으며 무속신앙, 기복신앙, 종교다원주의 등이 신앙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으나 저항력을 잃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곧 교회 개혁의 적기라는 겁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하나는 Renaissance이며 다른 하나는 Reformation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Renaissance, 문예부흥은 인본주의로 돌아가는 것이며 Reformation은 신본주의로 돌아가는 운동입니다. 중세 교회가 인본주의로 부패하고 타락했을 때 신본주의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Reform입니다. 원래 의 form으로,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1. 종교개혁의 배경
주후 313년 Constantine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를 하게 되는 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제는 로마의 황제도 교인이요 대신들도 교인이요 평민들도, 노예들도 동등한 교인이 되었습니다. 교회당은 크게 건축이 되어 성도는 꽉 찼는데 큰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핍박을 받으면서 뜨겁게 기도하던 기도의 열기가 식어지고 환란을 이기기 위해 부르던 뜨거운 찬송도 사라지고 전도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교회를 목회하던 교부들은 자연 큰 교권을 가지게 되고 교권이 커지니까 세상의 물욕이 들어오고, 거대한 교회를 다스리기 위해서 제도를 만들게 되고 제도를 주관하는 이들은 권력으로 교회를 다스리게 되니 교회 안에는 영적 생명도, 구원의 감격도, 말씀을 통한 확신도, 기도의 능력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성직자들은 수도원을 만들고 깊은 산 속이나 동굴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더욱 부패하고 타락되어 갔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일반 성도들에게는 성경을 읽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경이 라틴어로 되어 있어 라틴어를 모르는 사람은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고, 설교도 라틴어로만 했습니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설교 들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평신도는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성직도 돈을 주고 샀습니다. 그러니 교직자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다. 고해성사를 신부에게 하게 합니다. 교황 무오설을 주장합니다. 교황의 한마디가 성경과 꼭 같은 권위를 가진다느니, 주교회의 결정이 성경의 권위와 같다고 하며 평신도를 욱박질렀습니다. 선행과 공력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했습니다. 면죄부, 혹은 속죄표를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이중에 속죄표 한가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교황 레오 10세가 베드로 대성당의 막대한 공사비 충당의 일환으로서 알베르트(Albert of Brandenburg. 1490-1545) 대주교에게 속죄표 판매를 청부하였고 이들은 수도사요 웅변가인 테첼(Tetzel, Johann. 1450-1519)을 고용하여 신학박사의 학위를 주고는 가는 곳마다 면죄부에 대하여 설교하고 주장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Tetzel은 가는 곳마다 속죄표(면죄부)를 사면 살아 있는 사람은 즉시 죄를 용서받을 것이요 심지어 부모나 형제 또한 조상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었을 때는 연옥에 가 있는데 그러한 자를 위하여도 그 자녀나 가족들이 속죄표를 사기만 하면 그 돈 (은화)이 헌금함 속에 떨어져 소리가 땡 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 지옥 대기실인 연옥에서 곧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설교를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비성경적이며 황당한 일입니까 그러자 Thomas Akempis(1380-1471)는 교회에는 은과 금은 많지만 예수의 이름이 없다고 한탄했습니다. ,
2. 개혁자들의 주장
종교개혁이란 지금으로부터 485년전인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의 루터에 의해 로마 카톨릭교가 총체적으로 잘못된 사실을 지적한데서부터 출발합니다. 루터가 Wittenberg대성당의 대문에 로마 카톨릭교의 부당한 일 95개 조항의 대자보를 게시하였습니다. 95개 조항의 골자는 속죄표의 잘못을 지적한 것과 구원은 선행이나 공로에 의하지 않고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란 것과 사제만 아니라 모든 성도는 다 제사장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한 겁니다. 즉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 개혁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네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 둘째는 오직 믿음(Sola Fide), 혹은 오직 은혜(Sola Gratia), 셋째는 만인 제사장(Priesthood of all believers)입니다.
1). 루터는 말씀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했습니다.
루터는 개혁운동을 하면서 신구약 성경을 Melanchthon의 협력을 얻어 독일어로 번역을 하였고 Wittenberg대학에서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 등 성경 주석을 집필하였습니다. 이렇게 번역된 성경이 전 독일에 퍼졌을 때 교회가 새롭게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새로워지려면 우리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개혁된 교회가 아니라 말씀으로 날마다. 개혁되는 교회 reforming church인 것입니다. 1517년에 개혁된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날마다 끊임없이 말씀으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뭡니까 거울이죠 거울을 왜 봅니까 거울을 보면서 맵시를 고쳐야죠 여러분들은 거울도 안 보는 여자입니까 말씀은 canon입니다. 자(尺)란 말입니다. 높이, 길이, 넓이, 깊이를 측량하는 기준이 뭐냐, 바로 자입니다. 성경인 것입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내가 지금 바르게 믿고 있는가, 바르게 행동하고 있는가 끊임없이 점검을 하며 개혁해야 합니다.
교황무오설이나 교회의 법령이 무오하다는 건 잘못입니다. 고해성사도 잘못입니다. 개혁의 표준은 말씀입니다. 개혁의 원동력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에 내 신앙과 삶을 비추어보고 말씀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고쳐나가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사에 보면 1521.4. 17에 Worms 성당에서 모인 국회에 끌려가서 재판을 받습니다. 재판장은 말합니다. 네가 25부의 저서에서 한 말을 취소할 마지막 기회를 줄 터이니 취소하면 살아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으리라는 무서운 선언을 합니다. 이때 Luther는 이 25부의 저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준으로 한 것임으로 성경이 진리가 아니란 것을 설명하기 전에는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도 부인할 수 없다고 대답을 하고 Worms회의장의 의리의리한 재판정에 서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서 있어서 다른 도리가 없사오니 나를 도우소서. " 얼마나 굉장합니까 그는 말씀에 굳게 섰습니다. 말씀을 확신했습니다. 91년 5월에 저도 루터가 서서 기도하던 그 자리에 서 보았습니다. 감격했습니다. 루터는 살아 있는 말씀으로 개혁을 했습니다.
2).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①속죄표(면죄부)는 사람의 죄를 속할 수 없고 ②속죄표는 죄의 벌을 면할 수 없고 ③속죄표는 연옥에 있는 영혼을 구할 수 없고 ④인간의 고행과 공로가 결코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과 믿음으로 회개한 자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를 받았다 라고 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루터에게 구원론의 눈을 뜨게 한 말씀이 본문 17절 말씀입니다. 다같이 큰 소리로 읽어봅시다. "복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멘
루터는 1510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수도사들의 순례 여행 코스 중에 하나가 성 계단 성당(Scala Santa) 내부에 "빌라도의 계단, 또는 거룩한 계단" 이라는 이름의 28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일이었습니다. 1994년 5월 25일에 저도 그 계단교회에 가서 무릎으로 기어올라가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계단교회는 Constantine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러 밟고 올라가신 계단을 생각하며 빌라도 법정의 그 계단을 로마로 옮겨 그대로 축조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도 로마를 방문하여 스칼라 산타 28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올라가면서 고통스런 고행을 체험하고 있는데 갑자기 롬1:17절 말씀이 가슴속에서 벅차 오른 겁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렇습니다. 아멘 하면서 벌떡 일어나 계단을 밟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요 오직 믿음입니다.
3). 만인은 제사장이란 겁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이 따로 있어서 제사장 외에는 어느 누구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와서 죄 사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직 제사장을 통해서만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천주교의 신부는 제사장과 같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신부 앞에 가서 죄를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회는 교황이나 신부나 어떤 성직자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직접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는 다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목사는 제사장이란 성격보다도 설교자, 목회자의 성격을 갖습니다. 물론 목사의 권위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말씀의 권위와 성례전을 집행하는 권위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라는 점에서는 만인이 동등합니다. 만인이 제사장이라고 해서 목사나 평신도가 동등하다는 건 아닙니다. 목사든 신자이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가 기도할 수 있고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칠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않고도 여호와 하나님께 바로 회개하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만인 제사장설입니다.
3. 오늘의 교회는 개혁되어야 합니다.
M. Luther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Jhon Calvin에 의하여 확고한 신학적인 체계를 이루었습니다. 이들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 모든 신자는 제사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는 종교개혁 485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종교 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말씀의 권위는 어디 가고 교권주의 자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돈으로 성직을 사고 있습니다. 인간의 공로가 구원의 방편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헌금 많이 하는 사람에겐 새로운 종류의 면죄부가 생겨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안에 어려움이 있으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헌금을 많이 바치면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합니다.
기득권이 있는 사람은 개혁을 싫어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어긋나는 걸 고쳐야 합니다. 교회 헌금이나 충성을 성령의 감동으로, 은혜로,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전통과 관습도 중요하지만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권중심에서 평신도 중심으로, 제도와 규례에 매여서 보다는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충성하고 봉사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로 개혁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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