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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오직 믿음으로

본문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신진대사를 통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신진대사라는 것은 옛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생명운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호흡도 더러워진 숨은 뱉고 새 숨을 들이키는 신진대사입니다. 우리의 피부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옛 것을 벗겨 버리고 새 피부로 갈아입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도는 피는 오래된 피와 골수에서 새로 만들어진 피와 끝임 없이 바꾸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신진대사라고 합니다. 우리 몸의 이러한 신진대사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멈추게 되면 그 생명이 유지될 수 없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다 해당됩니다. 식물들도 끝임 없이 이 신진대사를 통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생물만이 아니라 사회나 역사도 역시 이러한 신진대사를 통해서 그 생명을 이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사회나 국가도 이 신진대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고여 있는 물과 같아서 결국은 제풀에 썩고 힘을 잃어 사라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북한 사회가 여러 면에서 뒤떨어진 사회가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폐쇄사회가 되어 세계와 호흡하면서 신진대사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와 역사도 밖의 세계와 교류하면서 신진대사를 잘 이루어 갈 때 생명력이 있고 활발하게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신앙도 그러합니다. 한 번의 경험과 한 번의 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임 없이 경험하고 끝임 없는 고백으로 날마다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믿음으로 거듭나져야 생명력이 있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께 더 가까이 가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성도에게 이러한 거듭남이 없다고 하면 그 신앙은 화석과 같이 굳어져서 바리새인과 같이 자기 자신의 자랑에 머물거나 교만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평생을 주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자신의 인생 전체를 쏟아 부었던 바울사도 조차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립보서3:12-14
지금부터 482년전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개혁의 운동은 부패하고 교만한 교회를 거듭나게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당시의 교회는 오직 교황의 권력과 교회의 잘못된 신앙으로 생명력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교회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여 사람을 잡아다가 사형을 시키기도 하고, 왕도 교황의 승인을 얻어야만 통치자가 되는 세월이었습니다. 교회의 세력이 너무 강해지자 교황도 교회도 타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를 돌아보며 거듭나는 신앙이 사라졌습니다. 신진대사가 멈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성당을 짓기 위해 속죄권이라는 것을 만들어 팔게 되면서 교회의 타락을 극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많이 내는 사람은 그 돈만큼 죄를 용서받는다는 터무니없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심지어 돈만 많이 내면 지옥에 간 영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엉터리 가르침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마틴 루터는 분노하였습니다. 루터는 이러한 교황의 잘못된 가르침을 성경적으로 하나하나 지적하는 대자보를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 문에 붙였습니다. 이 대자보는 많은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일주일만에 전 독일에 퍼져 나갔고 한 달이 못되어 95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 대자보의 내용이 전 유럽에 퍼져나갔습니다. 교황과 교회의 잘못을 보면서도 그 교권이 무서워 입을 다물고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적극적으로 루터의 주장에 동조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개혁의 역사가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다시 초대교회와 같은 생명력이 교회에 돋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시 은혜가 충만해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중심한 신앙이 싹 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통하여 비뚤어지고 잘못된 신앙이 바로 잡히게 된 것입니다.
이 종교개혁을 통하여 개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천주교와 달리 믿음의 뿌리를 성경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의 전통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개신교의 신앙원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통하여 생겨난 개신교의 신앙원리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오직 성경
개신교의 신앙전통은 오직 성경에 바탕을 둔 신앙입니다. 아무리 천사 같은 말을 할지라도 성경에 없는 말은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성경말씀 외에는 세상의 어떤 말도 삶의 푯대가 될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당시에 천주교회는 교황무오설이라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교황의 말은 절대로 실수가 있을 수가 없으며 따라서 교황의 말은 성경과 같은 권위를 지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이같은 주장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인간인 이상 죄인이며 실수가 있으며 잘 못될 수 있으므로 성경말씀에만 절대적인 권위를 두게 된 것입니다.
성경말씀만이 우리 신앙의 푯대이며 기준입니다. 어떤 지식도, 어떤 귄위도, 어떤 기적이나 신비한 체험도, 어떤 위대한 인물도 신앙의 푯대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말씀만이 기준이요, 푯대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편19:7-10
 둘째, 오직 믿음
죄 사함의 은혜는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인간이 선행을 하거나 고행을 한다고 해도 죄가 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 사함의 은혜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을 믿는 믿음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당시 교회가 속죄권이라는 것을 만들어 파는 잘못을 분명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돈을 내는 것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욕하는 일이요, 사탄적인 것이었습니다. 영혼의 구원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어떤 댓가나 행위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인간의 어떤 행위가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의 공로로 되어지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믿음으로만 주어지는 절대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에베소서2:8-9
 셋째, 오직 은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인간이 죄 사함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은혜로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캐톨릭은 교황이 죄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죄 사하는 권세를 신부들에게 물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해서, 교황을 대신해서 신부들이 죄를 사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성경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죄 사하는 권세는 교황도 아니고, 신부도 아니고, 마리아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그 어떤 인간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을 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3:23-24
오늘 우리는 종교개혁기념주일을 맞이하면서 종교개혁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믿음의 전통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갑자기 어디서 굴러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서 이어져 왔고, 성경의 믿음을 바로 해석한 종교개혁자들의 믿음의 전통을 이어 받은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뿌리를 알고 믿음에 굳게 설 때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 스스로의 신앙에 있어서도 날마다 새롭게 거듭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믿음의 신진대사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거듭남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항상 제자리걸음하거나 뒷걸음질치는 게으른 신앙이 되지 마십시오. 영혼의 긴장을 가지십시오. 깨어있는 영혼이 되십시오. 날마다 거듭나는 삶이 되십시오.
옛 경험과 옛 믿음으로 언제나 똑 같이 있다면 신진대사가 없는 몸처럼 병들고 약해져 결국은 생명력이 죽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거듭나는 마음과 믿음으로 다시 한번 이 종교개혁기념주일을 뜻을 깊이 되새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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