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종교개혁의 3대 명제
본문
우리는 참으로 답답하고 절망적인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통치자금의 수치가 계속 불거져 나올 때마다 온 국민들의 마음에는 한숨과 절망과 분노가 교차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불의라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정치의 어두운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돈(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인이나 종교인이나 가리지 않고 삼켜버려 불의에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중세시대에도 돈이 성직자를 부패시켰고,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까지 판매함으로써 교회의 교리까지도 파괴하는 일만 악의 뿌리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은 478주년을 맞는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1511년의 어느 날 마틴 루터(M. Luther)신부는 거룩한 성 로마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30세의 청년 신부로서 거룩한 로마 여행이 자기 인생을 새롭게 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자기 영혼을 괴롭히는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많은 순례자의 무리 속에 끼어 거룩한 '빌라도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전통을 따라 그 계단을 기어오르면 층계마다 자기의 죄가 용서를 받고 평화가 온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땀을 흘리며 기어오르던 루터에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번개처럼 그의 뇌리를 스쳤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무릎으로 기어오르던 계단을 서서 걸어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 위대한 진리가 그를 사망의 음침한 계단에서 부활시켰고, 마침내 이 진리의 말씀이 전 독일과 구라파와 세계의 영계에 불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이 발견한 것은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요 인간의 공로가 전혀 아니라는 진리입니다.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셨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결코 인간이 획득할 수 없다는 진리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쉬운 진리를 눈앞에 두고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성경이 덮여 있어서가 아니라 열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가르침과 제도가 전적으로 진리에서 벗어나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중세 교회는 구원은 거져 받을 수 없고 고행과 선행으로 값을 치를 때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당시 교권주의자들은 이렇게 구원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 신적 진리를 어둡게 하여 구원을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 아닌 인간의 것으로 탈바꿈한 역사는 로마 교회에만 국한되었던 것이 아니라 유대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일이 아니라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룰 수 있다고 저들은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이단자들은 은혜의 종교를 율법의 종교로 바꾸어 놓았고, 은혜의 기독교를 공로(행위)의 기독교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오늘 종교 개혁 주일을 맞아 본문을 근거로 하여 "종교개혁의 3대 명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 때 확실한 구원관을 확립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종교개혁의 3대 명제!
1. 오직 성경입니다(Sola Scriptura).
이것은 곧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는 진리를 파악하는 기준을 인간의 이성과 교회의 전통의 가르침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타락한 로마 카톨릭교회는 신앙과 행위의 규범을 오직 성경에서만 구하는 사상에서 탈선하고 말았습니다.
저들은 여러 가지 유전(기록되지 않은 구전)을 성경과 동등하게 여겼고, 종교회의에서 채택한 어떤 신조나 역대 교황들의 포고에도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이러한 로마 카톨릭교회의 반성경적인 사상에 반대하여 루터는 "나의 신앙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사로잡힌 포로이다"라고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이 여호와 하나님과 종교문제에 대한 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기록된 말씀밖에는 넘어가지 말라"는 사상에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복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개혁주의 성경관을 통하여 '오직 성경'이라는 의미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① 신구약 성경 66권만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입니다(딤후3:16).
② 성경이 옛날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나 그 시대 사람들에게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특히 후대 사람 곧 말세를 만난 우리의 거울로 믿는 것입니다(롬15:4).
③ 성경의 원본(선지자와 사도들이 기록)이 그릇됨이 전혀 없음을 믿은 것입니다(딤후3:12-17, 벧후 1:20-21, 요10:35).
④ 많은 사본들로 말미암은 엄격한 전사를 믿는 것입니다.
⑤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유일무이한 최종의 권위요, 법칙임을 믿는 것입니다.
⑥ 성경을 해석할 무오한 법칙은 오직 성경 그 자체뿐임을 믿는 것입니다(사34:16).
⑦ 모든 종교적 논쟁을 결정하고 또 학자들의 의견과 인간의 교훈과 개인의 정신문제를 감독하고 판단하시는 최고의 심판자도 성령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경 외에 아무 것도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마22:29,31 엡2:20, 행28:25).
중세 시대에는 신자들에게는 성경이 주어지지 않았고, 성경을 읽거나 해석할 자유도 없었고, 자국어로 번역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성경!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생명은 언제나 바른 말씀 선포에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의 3대 명제!
2. 오직 은혜입니다(Sola Gratia)
로마 카톨릭교회의 구원관은 공덕축적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구원이 은혜가 아닌 행위에 근거하기에 수많은 성자를 숭배하고, 금식기도와 고행이 수반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발전하여 면죄부를 판매함으로 그것으로 지옥간 영혼일지라도 구원에 이룰 수 있다고 그릇된 교리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결코 구원은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의 산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는 구원의 문을 닫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바울의 사상을 좇아 "나의 나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15:10)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습니다. 나의 선행과 고행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거저 주신 바 된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구원은 은혜 만이라고 하는 종교개혁의 원리는 지금도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구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장 5절에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라고 하였고, 에베소서 2장 8절에서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종교개혁 운동 즉 은혜로 구원 얻음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을 동원하여 핍박하였습니다.
선행과 고행이 아니고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만 나오면 그들은 담대하게 처벌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은혜로의 구원'을 외친 사람들은 여지없이 살해당하였고 그 수는 이루 셀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직 은혜!(Sola Gratia).
이것은 지금도 변함 없는 구원의 길입니다.
은혜 속에서 구원을 얻은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면서 담대히 그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3대 명제!
3. 오직 믿음입니다(Sola Fide)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한마디의 진리가 인류 역사를 위기 때마다 건져낸 결정적 메시지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복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진리 앞에서 생명의 빛을 얻게 되었습니다.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만 진행하고, 믿음으로만 끝맺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최고의 선은 그리스도를 믿는 이것 뿐"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정치인들은 정략으로 살아갑니다. 사업가들은 이윤을 보고 살아갑니다. 학자는 지식에 의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믿음으로만 사는 생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을 수 있다는 '이신득구'의 복음진리가 종교개혁의 분화구가 되었습니다.
루터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100년 동안 끌어오던 베드로 성당의 완공을 위해 1506년부터 속죄권 판매를 재개하여 막대한 공사비를 충당하게 하였습니다.
판매의 촉진을 위해 판매수의의 반액은 지방 감독이 차지하고 판매 책임자는 판매량에 따라 보상을 받게 하고 나머지는 교황청으로 보내도록 했습니다.
독일 마인즈의 감독 알브레흐트(Albreght)의 파송을 받은 판매 책임자 도미닉 교단 수도사 텟젤(Johann Tetzel:465-1519)은 당대의 웅변가요 학자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속죄권을 사는 사람은 즉시 죄의 용서를 받을 것이요, 연옥에 있는 자를 위해 사면, 그 은화가 헌금함 속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곧 천국으로 올라가게 됩니다'고 외쳤습니다.
바로 이때 루터 신부는 텟젤 일행의 입성을 금하고 속죄권 판매에 대한 반대 설교를 했습니다. 또한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빗덴베르그 예배당 문 앞에 게시했습니다. 그 중요 내용 중 몇 가지만 보면 ① 속죄권은 죄를 속할 수 없다 ② 속죄권은 죄의 벌을 면케 할 수 없다 ③ 연옥에 있는 영혼을 속죄권이 구할 수 없다 ④ 회개한 자는 이미 죄 용서를 받았다는 등이 중심 요지였습니다.
이 95개 조항의 항의문서 때문에 빗덴베르그 문전은 인파를 이루었고 2주만에 전 독일이, 4주만에 전 구라파에 이 소식이 불꽃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점화되었습니다.
마침내 루터는 그 다음 7월에 교황으로부터 로마로 소환령이 내렸으나 불응하자 추기경 카제타누스(Cajetanus)를 보내 주장을 철회하도록 했으나 교황청은 실패했습니다.
그 후 1520년 6월 15일 루터를 파문하는 파문장이 발행되었고, 그 해 12월에 교황의 사절이 파문장을 가지고 빗덴베르그에 도착했습니다.
루터는 그 파문장을 12월 10일에 받고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주저 없이 불태워 버렸고 로마교회 법전까지 불태워 버렸습니다.
교황청은 2차 파문장을 보낸 뒤 독일 국회와 황제 찰스 5세(1500-1588)에게 압력을 가하여 루터를 처리하도록 명했습니다.
마침내 보룸스(Worms)에서 1521년 4월17일에 황제는 국회를 소집하고 루터의 출두를 명했습니다.
루터는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면서 '원수들이 보룸스의 기왓장만큼 많아도 나는 가리라'는 말을 남기고 국회에 출두한 루터는 자기 주장 취소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때 '나는 굳게 여기 섰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입니다. 아멘'하였습니다.
마침내 황제는 루터에게 정죄를 선언했습니다. 그 후에 루터의 모든 책들은 불태우도록 명해졌고, 설교 금지령이 내려졌고, 루터 체포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신앙의 선제후 프레드릭공의 치밀한 계획에 의하여 그의 기사들이 출동하여 루터의 신변이 극적인 보호를 받아 납치되듯 발트브르그(Wartburg)성으로 안내되어 그곳에서 약 1년 간 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1522년에 다시 빗덴베르그로 돌아온 후 루터는 본격적인 종교개혁운동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인생에게 주신 가장 값진 사랑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작금의 한국 교회들의 모습이 중세시대의 교회와 모습이 같아진다는 우려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부를 축적하는 교회들, 거기에 따른 목회자들의 사치 풍조, 이것이 중세시대의 타락상과 흡사한 시대임을 강조하는 경종을 울리는 소수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외침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경건의 모양만 가졌지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체 세상과 동화되어 가는 현실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길밖에 다른 살 길이 없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우리의 힘이요, 능력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믿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통치자금의 수치가 계속 불거져 나올 때마다 온 국민들의 마음에는 한숨과 절망과 분노가 교차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불의라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정치의 어두운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돈(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인이나 종교인이나 가리지 않고 삼켜버려 불의에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중세시대에도 돈이 성직자를 부패시켰고,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까지 판매함으로써 교회의 교리까지도 파괴하는 일만 악의 뿌리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은 478주년을 맞는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1511년의 어느 날 마틴 루터(M. Luther)신부는 거룩한 성 로마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30세의 청년 신부로서 거룩한 로마 여행이 자기 인생을 새롭게 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자기 영혼을 괴롭히는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많은 순례자의 무리 속에 끼어 거룩한 '빌라도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전통을 따라 그 계단을 기어오르면 층계마다 자기의 죄가 용서를 받고 평화가 온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땀을 흘리며 기어오르던 루터에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번개처럼 그의 뇌리를 스쳤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무릎으로 기어오르던 계단을 서서 걸어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 위대한 진리가 그를 사망의 음침한 계단에서 부활시켰고, 마침내 이 진리의 말씀이 전 독일과 구라파와 세계의 영계에 불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이 발견한 것은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요 인간의 공로가 전혀 아니라는 진리입니다.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셨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결코 인간이 획득할 수 없다는 진리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쉬운 진리를 눈앞에 두고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성경이 덮여 있어서가 아니라 열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가르침과 제도가 전적으로 진리에서 벗어나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중세 교회는 구원은 거져 받을 수 없고 고행과 선행으로 값을 치를 때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당시 교권주의자들은 이렇게 구원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 신적 진리를 어둡게 하여 구원을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 아닌 인간의 것으로 탈바꿈한 역사는 로마 교회에만 국한되었던 것이 아니라 유대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일이 아니라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룰 수 있다고 저들은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이단자들은 은혜의 종교를 율법의 종교로 바꾸어 놓았고, 은혜의 기독교를 공로(행위)의 기독교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오늘 종교 개혁 주일을 맞아 본문을 근거로 하여 "종교개혁의 3대 명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 때 확실한 구원관을 확립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종교개혁의 3대 명제!
1. 오직 성경입니다(Sola Scriptura).
이것은 곧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는 진리를 파악하는 기준을 인간의 이성과 교회의 전통의 가르침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타락한 로마 카톨릭교회는 신앙과 행위의 규범을 오직 성경에서만 구하는 사상에서 탈선하고 말았습니다.
저들은 여러 가지 유전(기록되지 않은 구전)을 성경과 동등하게 여겼고, 종교회의에서 채택한 어떤 신조나 역대 교황들의 포고에도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이러한 로마 카톨릭교회의 반성경적인 사상에 반대하여 루터는 "나의 신앙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사로잡힌 포로이다"라고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이 여호와 하나님과 종교문제에 대한 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기록된 말씀밖에는 넘어가지 말라"는 사상에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복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개혁주의 성경관을 통하여 '오직 성경'이라는 의미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① 신구약 성경 66권만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입니다(딤후3:16).
② 성경이 옛날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나 그 시대 사람들에게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특히 후대 사람 곧 말세를 만난 우리의 거울로 믿는 것입니다(롬15:4).
③ 성경의 원본(선지자와 사도들이 기록)이 그릇됨이 전혀 없음을 믿은 것입니다(딤후3:12-17, 벧후 1:20-21, 요10:35).
④ 많은 사본들로 말미암은 엄격한 전사를 믿는 것입니다.
⑤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유일무이한 최종의 권위요, 법칙임을 믿는 것입니다.
⑥ 성경을 해석할 무오한 법칙은 오직 성경 그 자체뿐임을 믿는 것입니다(사34:16).
⑦ 모든 종교적 논쟁을 결정하고 또 학자들의 의견과 인간의 교훈과 개인의 정신문제를 감독하고 판단하시는 최고의 심판자도 성령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경 외에 아무 것도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마22:29,31 엡2:20, 행28:25).
중세 시대에는 신자들에게는 성경이 주어지지 않았고, 성경을 읽거나 해석할 자유도 없었고, 자국어로 번역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성경!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생명은 언제나 바른 말씀 선포에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의 3대 명제!
2. 오직 은혜입니다(Sola Gratia)
로마 카톨릭교회의 구원관은 공덕축적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구원이 은혜가 아닌 행위에 근거하기에 수많은 성자를 숭배하고, 금식기도와 고행이 수반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발전하여 면죄부를 판매함으로 그것으로 지옥간 영혼일지라도 구원에 이룰 수 있다고 그릇된 교리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결코 구원은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의 산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는 구원의 문을 닫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바울의 사상을 좇아 "나의 나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15:10)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습니다. 나의 선행과 고행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거저 주신 바 된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구원은 은혜 만이라고 하는 종교개혁의 원리는 지금도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구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장 5절에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라고 하였고, 에베소서 2장 8절에서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종교개혁 운동 즉 은혜로 구원 얻음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을 동원하여 핍박하였습니다.
선행과 고행이 아니고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만 나오면 그들은 담대하게 처벌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은혜로의 구원'을 외친 사람들은 여지없이 살해당하였고 그 수는 이루 셀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직 은혜!(Sola Gratia).
이것은 지금도 변함 없는 구원의 길입니다.
은혜 속에서 구원을 얻은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면서 담대히 그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3대 명제!
3. 오직 믿음입니다(Sola Fide)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한마디의 진리가 인류 역사를 위기 때마다 건져낸 결정적 메시지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복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진리 앞에서 생명의 빛을 얻게 되었습니다.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만 진행하고, 믿음으로만 끝맺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최고의 선은 그리스도를 믿는 이것 뿐"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정치인들은 정략으로 살아갑니다. 사업가들은 이윤을 보고 살아갑니다. 학자는 지식에 의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믿음으로만 사는 생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을 수 있다는 '이신득구'의 복음진리가 종교개혁의 분화구가 되었습니다.
루터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100년 동안 끌어오던 베드로 성당의 완공을 위해 1506년부터 속죄권 판매를 재개하여 막대한 공사비를 충당하게 하였습니다.
판매의 촉진을 위해 판매수의의 반액은 지방 감독이 차지하고 판매 책임자는 판매량에 따라 보상을 받게 하고 나머지는 교황청으로 보내도록 했습니다.
독일 마인즈의 감독 알브레흐트(Albreght)의 파송을 받은 판매 책임자 도미닉 교단 수도사 텟젤(Johann Tetzel:465-1519)은 당대의 웅변가요 학자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속죄권을 사는 사람은 즉시 죄의 용서를 받을 것이요, 연옥에 있는 자를 위해 사면, 그 은화가 헌금함 속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곧 천국으로 올라가게 됩니다'고 외쳤습니다.
바로 이때 루터 신부는 텟젤 일행의 입성을 금하고 속죄권 판매에 대한 반대 설교를 했습니다. 또한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빗덴베르그 예배당 문 앞에 게시했습니다. 그 중요 내용 중 몇 가지만 보면 ① 속죄권은 죄를 속할 수 없다 ② 속죄권은 죄의 벌을 면케 할 수 없다 ③ 연옥에 있는 영혼을 속죄권이 구할 수 없다 ④ 회개한 자는 이미 죄 용서를 받았다는 등이 중심 요지였습니다.
이 95개 조항의 항의문서 때문에 빗덴베르그 문전은 인파를 이루었고 2주만에 전 독일이, 4주만에 전 구라파에 이 소식이 불꽃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점화되었습니다.
마침내 루터는 그 다음 7월에 교황으로부터 로마로 소환령이 내렸으나 불응하자 추기경 카제타누스(Cajetanus)를 보내 주장을 철회하도록 했으나 교황청은 실패했습니다.
그 후 1520년 6월 15일 루터를 파문하는 파문장이 발행되었고, 그 해 12월에 교황의 사절이 파문장을 가지고 빗덴베르그에 도착했습니다.
루터는 그 파문장을 12월 10일에 받고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주저 없이 불태워 버렸고 로마교회 법전까지 불태워 버렸습니다.
교황청은 2차 파문장을 보낸 뒤 독일 국회와 황제 찰스 5세(1500-1588)에게 압력을 가하여 루터를 처리하도록 명했습니다.
마침내 보룸스(Worms)에서 1521년 4월17일에 황제는 국회를 소집하고 루터의 출두를 명했습니다.
루터는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면서 '원수들이 보룸스의 기왓장만큼 많아도 나는 가리라'는 말을 남기고 국회에 출두한 루터는 자기 주장 취소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때 '나는 굳게 여기 섰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입니다. 아멘'하였습니다.
마침내 황제는 루터에게 정죄를 선언했습니다. 그 후에 루터의 모든 책들은 불태우도록 명해졌고, 설교 금지령이 내려졌고, 루터 체포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신앙의 선제후 프레드릭공의 치밀한 계획에 의하여 그의 기사들이 출동하여 루터의 신변이 극적인 보호를 받아 납치되듯 발트브르그(Wartburg)성으로 안내되어 그곳에서 약 1년 간 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1522년에 다시 빗덴베르그로 돌아온 후 루터는 본격적인 종교개혁운동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인생에게 주신 가장 값진 사랑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작금의 한국 교회들의 모습이 중세시대의 교회와 모습이 같아진다는 우려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부를 축적하는 교회들, 거기에 따른 목회자들의 사치 풍조, 이것이 중세시대의 타락상과 흡사한 시대임을 강조하는 경종을 울리는 소수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외침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경건의 모양만 가졌지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체 세상과 동화되어 가는 현실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길밖에 다른 살 길이 없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우리의 힘이요, 능력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믿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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