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신앙개혁
본문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입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면서 발전하는 특성은, 다른 존재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만의 특징입니다. 자신이 원하든 원치않튼, 또 그것이 옳튼 그르든 주어진 환경속 에서 나름대로의 변화가 있게 마련인데…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발전"이라고 한다면,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일컬어 "변질" 또는 "퇴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천년전, 유대땅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성령께서 임하시므로 이땅에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우리는 그 교회를 일컬어 초대 교회라고 부르는데, 그 초대교회의 이름은 예루살렘 교회였습 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고, 얼마 후에 생긴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복음의 포문을 열었습 니다. 그 결과로 유대 전역과 소아시아 지방, 즉 지금의 터어키. 그리이스, 로마, 인도, 중국 당나라에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가 나 타났고, 우리나라에도 가야시대의 유물을 보면 기독교가 들어온 흔적이 있습니다. (당나라를 통해 들어온 景敎)
어떻게 교통이 불편했던 그 옛날에 복음이 전 세계로 퍼질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지 않 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라는 심정으로 복음전파에 열을 올 렸기 때문입니다. 초대교인들의 가장 중요한 신앙적 특징은, 성령충만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의 결과로서 순수한 신앙, 능력있는 신앙,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전파에 힘쓰는 신앙, 사랑으로 충만한 신앙. 자기를 희생하는 신앙이 나타났습니다. 로마의 10명의 황제가 대를 이어가며 무섭게 기독교를 핍박했 음에도 그들의 복음을 전파하려는 열정은 식을 줄 몰랐고, 오히려 그들의 순교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기독교도화하는 기이한 현상 까지 나타나자, 마침내 로마는 기독교를 공인하기에 이르렀고, 핍 박의 최고 우두머리였던 황제까지 기독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후 313년 기독교는 믿음의 자유를 얻었고, 얼마 후에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기독교를 쇠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 다. 기독교는 예나 지금이나 핍박속에서는 무섭게 성장해 나가지 만, 오히려 평안속에서는 나태해지고, 그 힘을 잃어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의 국교가 된 기독교는 안정속에서 발전해 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차 타락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의 순수한 기독교가 로마의 정권안에서 이방종교와 혼합되 어 천주교(로만 캐톨릭)가 되었고, 권력과 결탁한 종교지도자들이 성직을 돈으로 사고 파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종교의 이름으로 수많은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성령충만한 사람들을 귀신과 대화한다고 해서 끔찍한 고문을 통해 화형을 시키고, 마녀사냥이란 이름으로 수많 은 성도들을 무섭게 핍박했습니다. 바티칸 공식문서에 의하면 이 중세 암흑시대에 "예수의 이름으로 정말 올바른 믿음의 성도들 을 5천만명이나 학살하는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 물론 그중에는 정말 잘못된 사람도 있고, 귀신들린 사람도 있었 지만, 대개는 뜨겁고 능력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천주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죽인 것입니다. 최근에 발표된 보도는 5천 만명이 아니라, 8천만명이라고 정정 보도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학살 현장에 예수님이 계셨다면 뭐라고 말씀하셨 을까요 잘못된 신앙은 이토록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신앙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잘못된 신앙을 개혁하기 위하여 한 사람을 예비하 셨는데, 그가 바로 비텐베르그 대학의 교수이며 수도사인 마르틴 루터입니다. 그는 잘못된 신앙에 대해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었습 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대학 게 시판에 95개 조항을 써붙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95개 조항은 주로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에 관한 것인데, 이 것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루터는 ①오직 믿음으로(Sola Fide)②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③오직 은혜로(Sola Gratia)라는 슬로건을 종교개혁 의 3대 원리로 삼았습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인간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가 아 니라, 인간이 율법을 지킨다든가, 선행을 한다든가 하는 행위에 의해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벗어난 구원 교리이며, 이러한 잘못된 성경 해 석으로 인해서 면죄부를 판매하는 해괴한 일이 생겨났던 것입니 다. 이것을 예리하게 간파한 루터는 "속죄와 구원은 인간의 행위 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 고 외쳤습니다.
이러한 루터의 주장, 곧 "오직 믿음으로"라는 슬로건은 로마 카톨릭 교회편에서 볼 때는 대단한 도전이요 반항이었습니다. 또 그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경을 제쳐놓고 교회의 제도 와 전통을 만들고,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교황의 말을 더 강조하 니 교회가 타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성경대로 살아야 한 다고 주장하고, 교황무오설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성경무오설을 주장했습니다.
또 루터는 교회의 권위는 교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듣기에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의 분위기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이고 용기있는 발언이었습니다. 또 지금도 로마 카톨릭은 여전히 "교회의 권위는 교황으로부터 나온다"는 주장을 그대로 고수할 뿐만 아니라,
지난 (2000년) 9월말 교황청은 "로마 카톨릭 교회만이 유일한 전통성을 지닌 교회이며, 개신교의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 다"라는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인 요제츠 라칭거 추기경이 발표한 "주 님이신 예수님"(Dominus Jesus) 이란 36쪽 분량의 선언문은 "성 베드로와 그의 영적인 교감을 가진 주교들에 의해 주도되는 카톨릭교회만이 유일한 참된 교회"라며 로마 카톨릭교회가 유일 한 교회임을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베드로의 법통을 이어온 교황의 지위, 사제들에 의해 진행되는 성찬의식을 개신교회는 인정치 않 고 있기에 개신교는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회가 아니라 "교회적 공동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교황청은 그동안 "자매교회"로 불러온 개신교를 "교회 적 공동체"로 부르라는 지침을 각국 카톨릭 주교회 의장들에게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상 신앙계 2000년 11월호 48쪽 참조)
사실 천주교는 그 교리가 성경과는 너무나 다르며, 엄청난 모순 을 스스로 끌어안고 있는 괴상한 단체입니다. 그런 단체가 그동안 개신교회를 "자매교회" 운운 했던 것도 용 납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천주교에서 기독교로 전환하면 "개종"했다고 하지 교회 를 옮겼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만 봐도 천주교는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단체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 그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인간의 죄를 교황이 용서해 줄 수 있고, 또 교황만이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라고 생각했습 니다.
그러나 루터는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시는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이것 역시 교황편에서 볼 때는 대단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죄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주장들로 인해서 루터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했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을 당당히 펴나갔습니다. 그후 루터는 교황청으로부터 가해지는 무서운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편에 서서 개혁을 성공시키므로 초대 교회의 훌륭한 전통을 그대로 잇는 개신교가 이 땅에 나타나게 된것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개신교는 새로운 종교의 탄생도 아니고, 천주 교인들이 말하는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집도 아닙니다. 초대교회의 올바른 믿음이 로마 국교화되면서 이방종교와 혼합 되어지고, 권력을 등에 업고 호사스런 지위를 누리면서 자기들에 게 유리한 대로 변질시켜버린,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무 리들에게서, 올바른 믿음을, 정상적인 믿음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이 종교개혁의 정신이 오늘 우리 기독교의 뿌리요 기둥인것입니 다.
그러므로 개신교에 몸담은 우리들은 끊임없는 자기 갱신, 자기 개혁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97년 11월에 시작된 IMF로 인해서 우리사회에 잘 못된 부분들을 개혁할 것을 요구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이미 했어야할 것들입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릴 때, 이미 그 원인을 발견하고 치료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개혁을 하지 못하고 총체적인 부패로 인한 나라의 국운이 흔들리는 위기 에 처해서, 그것도 외부의 강제적인 힘에 의해서 고통스런 개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민족적 수치요,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부패공화국, 뇌물공화국, 유전무죄 무전유죄, 상납, 부패의 고리, 무사안일, 복지부동, 무책임 행정 등 이런 낱말이 우리 곁에서 영 원히 사라지도록 우리는 개혁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개혁의 시작은 외부의 힘으로 시작되었다 해도, 개혁의 추진과 결과는 우리들 스스로가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길은 지금의 고통 속에서 절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개혁 을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푸대에 담으라. "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그대로 놔둔채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입니다. 될 수도 없고, 되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 개신교인들은 어떻 게 사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유익을 주고,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 기에도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1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Sola Fide)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 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히 11: 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크리스챤"이란 말의 의미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예수를 쫓아 사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잘못된 사람들과 한번도 타협하신 적 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 분이 타협을 시도하셨다면 33살 젊은 나 이로 요절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잘못된 무리들과의 타협은 꿈도 꾸지 말아 야 합니다. 정말 "크리스챤"답게 살려면 얼마나 많은 고통이 따르는지 모 릅니다. 부끄러운 것은, 이 나라 부패자로 찍힌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크리스챤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약방의 감초처럼 부정부패의 그 늘 속에는 거의라고 할만큼 기독교인들이 가세해 있습니다. 그것도 초신자가 아니라 집사, 장로들이라는 사실이 더욱 우리 를 부끄럽게 합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살지 못한 결과가, 자신의 인생은 물론, 교회와 여호와 하나님까지 망신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구조조정! 이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도 절실히 필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2 오직 성경으로 살아야 합니다. (Sola Scriptura)
종교개혁의 가장 큰 필요성은 그들이 성경대로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보다 교황의 권위가 우위에 있어서, 성경도 교황이 인정해야 성경으로 대접을 받지 그렇지 않으면 휴지조각에 불과 한 것이 천주교의 성경관입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 성경을 교황이 인정해야만 하나 님의 말씀이라면 ,여호와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것이 교황이라는 말입니 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신앙의 모든 표준은 성경입니다. 이것이 개신교인들에겐 너무나 당연한데 그들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Cannon 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척도"요 "잣대" 라는 뜻입니다. 즉 모든 것을 잴 수 있는 기준이라는 말입니다. 그 기준을 교황이 마음대로 고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다스릴 수 있는 인간! 그것이 교황입니다. 얼마나 무 서운 말입니까
루터는 바로 그런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오직 성경으로! 라는 말을 다시 한번 깊이 음미해봐야 합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논란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 직, 순종할 것이냐 불순종할 것이냐의 문제만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절대 기준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3 오직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Sola Gratia) 우리의 구원은 행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전적 인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란 값없이 받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무엇으로 값을 지불했습니까 율법을 지켰습니까 그런데 롬 3:2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또 롬 3:28에는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 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렇습니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 의 죄를 깨닫게 할 뿐입니다. 진찰 받았다고 병이 치료되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진찰의 효 과만 있을 뿐입니다. 치료는 별도로 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진단해보고 내린 결론은 로마서 3:10절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이런 불의한 죄인들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직접 오시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독생자를 십 자가에 내어주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피만이 우리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 한 방법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그 분의 긍휼 때문입니다. 죄인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바로 긍휼입니다. 이 긍휼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공로의식을 버리고 은혜를 구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잘난 체하고 살아가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 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긍휼의 은혜를 입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요 롬 12장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롬 12:1) 너희 몸을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 리라. 또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 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은 자 답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모든 기업들은 살아 남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벤처 기업은 벤처 기업대로, 대기업은 대기업들대로 자기 개혁 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때에 자기 갱신과 개혁에 게으름을 피우면 살아남지 못합 니다. 신앙개혁의 주간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자신의 신앙을 돌아봅 시다. 그리고 나는 과연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직 성경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직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살펴봄으로 스스로의 개혁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 니다.
2천년전, 유대땅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성령께서 임하시므로 이땅에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우리는 그 교회를 일컬어 초대 교회라고 부르는데, 그 초대교회의 이름은 예루살렘 교회였습 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고, 얼마 후에 생긴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복음의 포문을 열었습 니다. 그 결과로 유대 전역과 소아시아 지방, 즉 지금의 터어키. 그리이스, 로마, 인도, 중국 당나라에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가 나 타났고, 우리나라에도 가야시대의 유물을 보면 기독교가 들어온 흔적이 있습니다. (당나라를 통해 들어온 景敎)
어떻게 교통이 불편했던 그 옛날에 복음이 전 세계로 퍼질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지 않 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라는 심정으로 복음전파에 열을 올 렸기 때문입니다. 초대교인들의 가장 중요한 신앙적 특징은, 성령충만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의 결과로서 순수한 신앙, 능력있는 신앙,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전파에 힘쓰는 신앙, 사랑으로 충만한 신앙. 자기를 희생하는 신앙이 나타났습니다. 로마의 10명의 황제가 대를 이어가며 무섭게 기독교를 핍박했 음에도 그들의 복음을 전파하려는 열정은 식을 줄 몰랐고, 오히려 그들의 순교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기독교도화하는 기이한 현상 까지 나타나자, 마침내 로마는 기독교를 공인하기에 이르렀고, 핍 박의 최고 우두머리였던 황제까지 기독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후 313년 기독교는 믿음의 자유를 얻었고, 얼마 후에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기독교를 쇠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 다. 기독교는 예나 지금이나 핍박속에서는 무섭게 성장해 나가지 만, 오히려 평안속에서는 나태해지고, 그 힘을 잃어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의 국교가 된 기독교는 안정속에서 발전해 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차 타락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의 순수한 기독교가 로마의 정권안에서 이방종교와 혼합되 어 천주교(로만 캐톨릭)가 되었고, 권력과 결탁한 종교지도자들이 성직을 돈으로 사고 파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종교의 이름으로 수많은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성령충만한 사람들을 귀신과 대화한다고 해서 끔찍한 고문을 통해 화형을 시키고, 마녀사냥이란 이름으로 수많 은 성도들을 무섭게 핍박했습니다. 바티칸 공식문서에 의하면 이 중세 암흑시대에 "예수의 이름으로 정말 올바른 믿음의 성도들 을 5천만명이나 학살하는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 물론 그중에는 정말 잘못된 사람도 있고, 귀신들린 사람도 있었 지만, 대개는 뜨겁고 능력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천주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죽인 것입니다. 최근에 발표된 보도는 5천 만명이 아니라, 8천만명이라고 정정 보도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학살 현장에 예수님이 계셨다면 뭐라고 말씀하셨 을까요 잘못된 신앙은 이토록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신앙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잘못된 신앙을 개혁하기 위하여 한 사람을 예비하 셨는데, 그가 바로 비텐베르그 대학의 교수이며 수도사인 마르틴 루터입니다. 그는 잘못된 신앙에 대해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었습 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대학 게 시판에 95개 조항을 써붙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95개 조항은 주로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에 관한 것인데, 이 것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루터는 ①오직 믿음으로(Sola Fide)②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③오직 은혜로(Sola Gratia)라는 슬로건을 종교개혁 의 3대 원리로 삼았습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인간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가 아 니라, 인간이 율법을 지킨다든가, 선행을 한다든가 하는 행위에 의해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벗어난 구원 교리이며, 이러한 잘못된 성경 해 석으로 인해서 면죄부를 판매하는 해괴한 일이 생겨났던 것입니 다. 이것을 예리하게 간파한 루터는 "속죄와 구원은 인간의 행위 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 고 외쳤습니다.
이러한 루터의 주장, 곧 "오직 믿음으로"라는 슬로건은 로마 카톨릭 교회편에서 볼 때는 대단한 도전이요 반항이었습니다. 또 그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경을 제쳐놓고 교회의 제도 와 전통을 만들고,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교황의 말을 더 강조하 니 교회가 타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성경대로 살아야 한 다고 주장하고, 교황무오설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성경무오설을 주장했습니다.
또 루터는 교회의 권위는 교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듣기에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의 분위기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이고 용기있는 발언이었습니다. 또 지금도 로마 카톨릭은 여전히 "교회의 권위는 교황으로부터 나온다"는 주장을 그대로 고수할 뿐만 아니라,
지난 (2000년) 9월말 교황청은 "로마 카톨릭 교회만이 유일한 전통성을 지닌 교회이며, 개신교의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 다"라는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인 요제츠 라칭거 추기경이 발표한 "주 님이신 예수님"(Dominus Jesus) 이란 36쪽 분량의 선언문은 "성 베드로와 그의 영적인 교감을 가진 주교들에 의해 주도되는 카톨릭교회만이 유일한 참된 교회"라며 로마 카톨릭교회가 유일 한 교회임을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베드로의 법통을 이어온 교황의 지위, 사제들에 의해 진행되는 성찬의식을 개신교회는 인정치 않 고 있기에 개신교는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회가 아니라 "교회적 공동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교황청은 그동안 "자매교회"로 불러온 개신교를 "교회 적 공동체"로 부르라는 지침을 각국 카톨릭 주교회 의장들에게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상 신앙계 2000년 11월호 48쪽 참조)
사실 천주교는 그 교리가 성경과는 너무나 다르며, 엄청난 모순 을 스스로 끌어안고 있는 괴상한 단체입니다. 그런 단체가 그동안 개신교회를 "자매교회" 운운 했던 것도 용 납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천주교에서 기독교로 전환하면 "개종"했다고 하지 교회 를 옮겼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만 봐도 천주교는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단체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 그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인간의 죄를 교황이 용서해 줄 수 있고, 또 교황만이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라고 생각했습 니다.
그러나 루터는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시는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이것 역시 교황편에서 볼 때는 대단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죄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주장들로 인해서 루터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했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을 당당히 펴나갔습니다. 그후 루터는 교황청으로부터 가해지는 무서운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편에 서서 개혁을 성공시키므로 초대 교회의 훌륭한 전통을 그대로 잇는 개신교가 이 땅에 나타나게 된것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개신교는 새로운 종교의 탄생도 아니고, 천주 교인들이 말하는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집도 아닙니다. 초대교회의 올바른 믿음이 로마 국교화되면서 이방종교와 혼합 되어지고, 권력을 등에 업고 호사스런 지위를 누리면서 자기들에 게 유리한 대로 변질시켜버린,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무 리들에게서, 올바른 믿음을, 정상적인 믿음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이 종교개혁의 정신이 오늘 우리 기독교의 뿌리요 기둥인것입니 다.
그러므로 개신교에 몸담은 우리들은 끊임없는 자기 갱신, 자기 개혁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97년 11월에 시작된 IMF로 인해서 우리사회에 잘 못된 부분들을 개혁할 것을 요구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이미 했어야할 것들입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릴 때, 이미 그 원인을 발견하고 치료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개혁을 하지 못하고 총체적인 부패로 인한 나라의 국운이 흔들리는 위기 에 처해서, 그것도 외부의 강제적인 힘에 의해서 고통스런 개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민족적 수치요,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부패공화국, 뇌물공화국, 유전무죄 무전유죄, 상납, 부패의 고리, 무사안일, 복지부동, 무책임 행정 등 이런 낱말이 우리 곁에서 영 원히 사라지도록 우리는 개혁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개혁의 시작은 외부의 힘으로 시작되었다 해도, 개혁의 추진과 결과는 우리들 스스로가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길은 지금의 고통 속에서 절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개혁 을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푸대에 담으라. "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그대로 놔둔채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입니다. 될 수도 없고, 되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 개신교인들은 어떻 게 사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유익을 주고,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 기에도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1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Sola Fide)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 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히 11: 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크리스챤"이란 말의 의미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예수를 쫓아 사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잘못된 사람들과 한번도 타협하신 적 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 분이 타협을 시도하셨다면 33살 젊은 나 이로 요절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잘못된 무리들과의 타협은 꿈도 꾸지 말아 야 합니다. 정말 "크리스챤"답게 살려면 얼마나 많은 고통이 따르는지 모 릅니다. 부끄러운 것은, 이 나라 부패자로 찍힌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크리스챤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약방의 감초처럼 부정부패의 그 늘 속에는 거의라고 할만큼 기독교인들이 가세해 있습니다. 그것도 초신자가 아니라 집사, 장로들이라는 사실이 더욱 우리 를 부끄럽게 합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살지 못한 결과가, 자신의 인생은 물론, 교회와 여호와 하나님까지 망신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구조조정! 이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도 절실히 필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2 오직 성경으로 살아야 합니다. (Sola Scriptura)
종교개혁의 가장 큰 필요성은 그들이 성경대로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보다 교황의 권위가 우위에 있어서, 성경도 교황이 인정해야 성경으로 대접을 받지 그렇지 않으면 휴지조각에 불과 한 것이 천주교의 성경관입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 성경을 교황이 인정해야만 하나 님의 말씀이라면 ,여호와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것이 교황이라는 말입니 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신앙의 모든 표준은 성경입니다. 이것이 개신교인들에겐 너무나 당연한데 그들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Cannon 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척도"요 "잣대" 라는 뜻입니다. 즉 모든 것을 잴 수 있는 기준이라는 말입니다. 그 기준을 교황이 마음대로 고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다스릴 수 있는 인간! 그것이 교황입니다. 얼마나 무 서운 말입니까
루터는 바로 그런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오직 성경으로! 라는 말을 다시 한번 깊이 음미해봐야 합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논란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 직, 순종할 것이냐 불순종할 것이냐의 문제만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절대 기준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3 오직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Sola Gratia) 우리의 구원은 행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전적 인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란 값없이 받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무엇으로 값을 지불했습니까 율법을 지켰습니까 그런데 롬 3:2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또 롬 3:28에는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 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렇습니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 의 죄를 깨닫게 할 뿐입니다. 진찰 받았다고 병이 치료되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진찰의 효 과만 있을 뿐입니다. 치료는 별도로 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진단해보고 내린 결론은 로마서 3:10절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이런 불의한 죄인들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직접 오시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독생자를 십 자가에 내어주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피만이 우리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 한 방법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그 분의 긍휼 때문입니다. 죄인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바로 긍휼입니다. 이 긍휼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공로의식을 버리고 은혜를 구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잘난 체하고 살아가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 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긍휼의 은혜를 입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요 롬 12장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롬 12:1) 너희 몸을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 리라. 또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 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은 자 답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모든 기업들은 살아 남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벤처 기업은 벤처 기업대로, 대기업은 대기업들대로 자기 개혁 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때에 자기 갱신과 개혁에 게으름을 피우면 살아남지 못합 니다. 신앙개혁의 주간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자신의 신앙을 돌아봅 시다. 그리고 나는 과연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직 성경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직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살펴봄으로 스스로의 개혁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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