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개혁의 원리
본문
오늘은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종교를 개혁한 주일입니다.
오늘 주님의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개혁에는 항상 두 가지 목적이 포함됩니다. 변질되고 왜곡된 본질을 본래의 것으로 바로잡고 고치는 것이요, 또 취약하고 미숙하고 부족한 것을 더 낫고 온전한 것으로 개선시키는 것이 개혁의 참 의미입니다.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개혁의 슬로건은 첫째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은 개혁의 원리가 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말씀을 드리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마르틴 루터는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딤후3:16)
1)절대 권위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계시 수단 중 가장 중요하고 구체적인 수단입니다. 만일 성경의 권위나 내용이 왜곡되고 변질된다면 교회의 본질에 치명적인 위기가 닥치며 그로 인해 온갖 문제가 발생될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의 발단도 성경보다 교권을 더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그릇됨을 지적한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교황의 절대 권위를 이용한 면죄부 판매가 성경에 근거도 없는 허황한 것임을 지적한 것이 1517년 10월 31일의 비텐부르크 대학 게시판에 붙은 95개조 선언문의 주제입니다. 후에 루터는 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교회는 오직 성경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은 이처럼 성경의 권위를 회복시키기 위해 시작된 것입니다.
2)유일한 삶의 표준인 성경입니다.
당시에는 교황만이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여 성직자들만 성경을 읽고 연구할 수 있었으며 일반 성도들은 성경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성경 해석은 오직 교황에 의해 행해졌으며 교황의 명령이 곧 교회의 법이 되었고, 이 법이 성도들의 삶의 표준이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교회에는 온갖 비리와 부조리가 판을 치게 되었으며 성도들은 복음 진리의 은혜와 능력에서 동떨어진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루터는 '모든 성도들도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해석할 수 있으며, 교황만이 성경에 대한 특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했습니다. 루터는 후에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누구나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접할 수 있게 하였으며, 성경에 없는 잡다한 예식을 폐지시키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예식을 갖는 카톨릭과 다르게 우리 개신교에서 단지 말씀 중심의 예배, 그리고 세례와 성만찬을 교회 예식으로 거행하게 된 것은 성경의 원리를 되찾은 마르틴 루터로부터 개혁에 의한 것입니다. 교회는 성경의 권위와 가치가 '절대성'을 지녀야 합니다. 교회의 전통과 권위, 또는 소수의 세력, 또는 세상의 사상이나 가치를 성경보다 더 우위에 둘 때 교회가 타락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성경 이외의 계시는 없습니다. 기록된 성경만이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고 신자들의 삶의 구원과 생활의 표준입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서 나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개혁해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1517년 10월 31일 종교 개혁의 슬로건은 오직 은혜입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구원입니다.
성경의 권위와 가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지킨다는 것은 곧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의 진리를 절대적으로 지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교회는 인간이 죄로부터 구원 얻는 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즉 '면죄부'를 돈주고 사야 죄를 완전히 사함 받는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킨 것입니다. 복음 진리의 변질은 곧 교회 생명의 파괴를 뜻합니다. 교회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 은혜를 근거로 존재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수도사, 신부, 대학 교수와 연구원장 시절을 거쳐 깊이 인식한 루터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과 그 속죄권은 아무 효력도 없는 것이며, 죄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해질 수가 있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2)그 은혜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저와 여러분은 깨달아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중세의 로마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 진리를 변질시키고 악용하는 죄를 범했다면 현재 우리 교회도 그 은혜의 진리를 잘못 남용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봐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롬6:15-19).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예정론에 치우쳐 성도의 본분과 의무를 등한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루터도 먼저 죄에 대한 뼈저린 고통과 자각과 회개의 생활을 했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가치를 올바로 알게 된 것입니다(롬7:21-25).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폐단을 개혁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은혜에 참되게 응답하는 교회들이 되도록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이 구원을 받는 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값없이 거저 주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3. 개혁의 영원 불변의 진리는 오직 믿음입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최대의 슬로건입니다. 롬1:17에 복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이 것은 바로 루터가 깨달은 가장 큰 진리요 이로써 그는 종교개혁의 용기를 얻은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 곧 사죄와 영생을 얻는 것은 인간 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의 노력으로 공로를 이룰 수 없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데 이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의라 고 합니다. 그리고 죄인이 구원을 얻는다는 소식이 복음이요 그 복음의 내용은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곧 우리 인간이 수행해야 할 율법의 의무를 지시고 그가 율법 아래 나시고 율법을 지키셔서 우리의 대신이 되셨으며 우리가 이미 범한 율법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그 죄과를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우리를 의롭다고 내세웠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수의 율법 수행의 의와 대속의 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그 의를 나타내십니까 그것은 다만 예수의 탄생,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을 나 위해 하심을 믿는 자에게만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구원을 얻고 오직 그 믿음으로 산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대 진리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면죄부를 사거나, 로마 성지를 순례하거나, 고해성사를 하거나, 고행을 하거나, 성자 숭배나, 천사 숭배나, 유물 숭배나, 마리아 숭배나, 신부 대언이나, 교황의 법령을 준수하거나, 성의에 입맞춤이나, 그 어떤 행동도 필요 없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교개혁의 원리는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구원의 영원한 진리임을 굳게 믿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다른 것이 가만히 들어와 어떤 말을 해도 유혹되거나 미혹됨이 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받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저 값없이 주시는 사랑으로 구원받고 오직 믿음이 구원받는 진리임을 명심하고 오늘의 잘못된 것이 있다면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의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개혁에는 항상 두 가지 목적이 포함됩니다. 변질되고 왜곡된 본질을 본래의 것으로 바로잡고 고치는 것이요, 또 취약하고 미숙하고 부족한 것을 더 낫고 온전한 것으로 개선시키는 것이 개혁의 참 의미입니다.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개혁의 슬로건은 첫째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은 개혁의 원리가 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말씀을 드리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마르틴 루터는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딤후3:16)
1)절대 권위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계시 수단 중 가장 중요하고 구체적인 수단입니다. 만일 성경의 권위나 내용이 왜곡되고 변질된다면 교회의 본질에 치명적인 위기가 닥치며 그로 인해 온갖 문제가 발생될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의 발단도 성경보다 교권을 더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그릇됨을 지적한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교황의 절대 권위를 이용한 면죄부 판매가 성경에 근거도 없는 허황한 것임을 지적한 것이 1517년 10월 31일의 비텐부르크 대학 게시판에 붙은 95개조 선언문의 주제입니다. 후에 루터는 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교회는 오직 성경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은 이처럼 성경의 권위를 회복시키기 위해 시작된 것입니다.
2)유일한 삶의 표준인 성경입니다.
당시에는 교황만이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여 성직자들만 성경을 읽고 연구할 수 있었으며 일반 성도들은 성경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성경 해석은 오직 교황에 의해 행해졌으며 교황의 명령이 곧 교회의 법이 되었고, 이 법이 성도들의 삶의 표준이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교회에는 온갖 비리와 부조리가 판을 치게 되었으며 성도들은 복음 진리의 은혜와 능력에서 동떨어진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루터는 '모든 성도들도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해석할 수 있으며, 교황만이 성경에 대한 특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했습니다. 루터는 후에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누구나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접할 수 있게 하였으며, 성경에 없는 잡다한 예식을 폐지시키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예식을 갖는 카톨릭과 다르게 우리 개신교에서 단지 말씀 중심의 예배, 그리고 세례와 성만찬을 교회 예식으로 거행하게 된 것은 성경의 원리를 되찾은 마르틴 루터로부터 개혁에 의한 것입니다. 교회는 성경의 권위와 가치가 '절대성'을 지녀야 합니다. 교회의 전통과 권위, 또는 소수의 세력, 또는 세상의 사상이나 가치를 성경보다 더 우위에 둘 때 교회가 타락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성경 이외의 계시는 없습니다. 기록된 성경만이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고 신자들의 삶의 구원과 생활의 표준입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서 나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개혁해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1517년 10월 31일 종교 개혁의 슬로건은 오직 은혜입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구원입니다.
성경의 권위와 가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지킨다는 것은 곧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의 진리를 절대적으로 지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교회는 인간이 죄로부터 구원 얻는 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즉 '면죄부'를 돈주고 사야 죄를 완전히 사함 받는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킨 것입니다. 복음 진리의 변질은 곧 교회 생명의 파괴를 뜻합니다. 교회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 은혜를 근거로 존재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수도사, 신부, 대학 교수와 연구원장 시절을 거쳐 깊이 인식한 루터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과 그 속죄권은 아무 효력도 없는 것이며, 죄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해질 수가 있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2)그 은혜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저와 여러분은 깨달아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중세의 로마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 진리를 변질시키고 악용하는 죄를 범했다면 현재 우리 교회도 그 은혜의 진리를 잘못 남용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봐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롬6:15-19).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예정론에 치우쳐 성도의 본분과 의무를 등한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루터도 먼저 죄에 대한 뼈저린 고통과 자각과 회개의 생활을 했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가치를 올바로 알게 된 것입니다(롬7:21-25).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폐단을 개혁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은혜에 참되게 응답하는 교회들이 되도록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이 구원을 받는 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값없이 거저 주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3. 개혁의 영원 불변의 진리는 오직 믿음입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최대의 슬로건입니다. 롬1:17에 복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이 것은 바로 루터가 깨달은 가장 큰 진리요 이로써 그는 종교개혁의 용기를 얻은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 곧 사죄와 영생을 얻는 것은 인간 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의 노력으로 공로를 이룰 수 없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데 이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의라 고 합니다. 그리고 죄인이 구원을 얻는다는 소식이 복음이요 그 복음의 내용은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곧 우리 인간이 수행해야 할 율법의 의무를 지시고 그가 율법 아래 나시고 율법을 지키셔서 우리의 대신이 되셨으며 우리가 이미 범한 율법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그 죄과를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우리를 의롭다고 내세웠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수의 율법 수행의 의와 대속의 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그 의를 나타내십니까 그것은 다만 예수의 탄생,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을 나 위해 하심을 믿는 자에게만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구원을 얻고 오직 그 믿음으로 산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대 진리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면죄부를 사거나, 로마 성지를 순례하거나, 고해성사를 하거나, 고행을 하거나, 성자 숭배나, 천사 숭배나, 유물 숭배나, 마리아 숭배나, 신부 대언이나, 교황의 법령을 준수하거나, 성의에 입맞춤이나, 그 어떤 행동도 필요 없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교개혁의 원리는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구원의 영원한 진리임을 굳게 믿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다른 것이 가만히 들어와 어떤 말을 해도 유혹되거나 미혹됨이 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받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저 값없이 주시는 사랑으로 구원받고 오직 믿음이 구원받는 진리임을 명심하고 오늘의 잘못된 것이 있다면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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