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종교개혁의 원리
본문
10월 4째 주일은 전세계 모든 개신교가 종교개혁 기념 주일로 지키게 됩니다. 그 이유는 1517년 10월 31일에 종교 개혁자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그 교회당 정문에다가 95개조 항의문을 써 붙이고 종교개혁을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세계 역사를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교회 역사의 구분에 따르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주후 590년까지를 고대 교회사라고 하고, 주후 590년-1517년 까지를 중세 교회사라 하며, 주후 1517년 이후 현대까지를 근세 교회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후 590년-1517년 까지를 또 다른 말로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 시대라고 하며, 이 1,000년의 중세사를 암흑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초기 그토록 박해를 받던 기독교가 공인을 받고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부터, 교회는 커다란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황제의 비호를 받게 되자 물질적으로 풍성해지고 발언권이 강해지며, 신앙 외적인 것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교회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잃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교권이 하늘을 찌를 듯 해서 황제의 권위까지 짓누르게 되었습니다. 곧 교황이 황제의 우위에 있게 된 것입니다. '카놋사의 굴욕'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는데, 당시 로마 황제인 하인리히 4세가 3일 동안이나 교황에게 맨발로 눈밭에 서서 잘못을 빈 유명한 사건입니다.
교황 이노센트 3세 때는 교황권의 전성기였습니다. 어떤 날 교황이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공물을 교황청 창고로 싣고 오는 수레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교황이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하는 신학자에게 '우리에게 은과 금은 없다는 말은 이제 지나갔다. 저 많은 물질을 보아라'고 하자, 아퀴나스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는 말이 없어진 것처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는 말도 없어졌습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교회가 세속적으로 부유하게 되자, 성직자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성직을 돈으로 사고 파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구원을 돈으로 파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어졌습니다.
루터는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낸 서한'에서 그 당시 중세 교회의 타락상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황제가 일층 왕관을 쓰는데 교황은 삼층 왕관을 쓰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추기경들도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도적놈처럼 돈에만 정신을 팔고 있다. 교황청은 성직매매, 술주정, 사기, 도둑질, 강도질, 사치, 매춘행위, 협잡질 등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로 가득차 있다"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던 1538년 로마의 추기경들이 교황 바울 3세에 보낸 '개혁의 제안'라는 글에서 로마 교회의 비리와 타락상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 첫째 병폐는 성직자의 임명 문제입니다. 철없는 아이들, 심지어는 전적으로 자격이 없는 무뢰한과 타락자들이 성직자로 임명되고 있습니다. 로마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사제들이 무식하고 부도덕하다는 것은 분통이 터지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로마시 안에는 창녀들이 귀부인들처럼 왕래하는데 그 뒤를 성직자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끄러운 병폐가 중단되어야만 하겠습니다"
당시 교회는 교회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서 거대한 성당을 새로 짓게 되었습니다. 그 건물이 바로 오늘날의 바티칸 궁전이 있는 성 베드로 성당입니다. 얼마나 대단하게 지었든지 시작한지 백 년이 지났는데도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건축비를 모금하기 위해서 면죄부라는 것을 팔게 되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연옥이라는 것을 믿는데, 이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고통의 장소라고 일컬어 집니다. 연옥이란 예수를 믿기는 믿지만 선행이 부족한 사람들이 가서 고난을 받고 있다가, 천국으로 가게 되는 장소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만일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공덕을 쌓아 주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 갈 수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면죄부를 사게 되면 살아 있는 사람은 그냥 천국으로 가게 되고, 만일 죽은 사람을 대신하여 사게 되면 연옥에 있는 영혼이 즉시 천국으로 올라가게 된다고 하면서 팔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이 면죄부를 팔기 위해 루터가 살고 있는 비텐베르크에 와서 면죄부를 사라고 교묘하게 선동하였습니다. 루터는 여기에 심하게 반발하면서 95개조 항의 항의문을 비텐베르크 교회당 정문에 붙여 놓고 공개 논의를 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CD 사진- NO. 35. 5. 15. 40 순으로) 그 날이 바로 1517년 10월 31일 지금으로부터 485년 전입니다. 이 사실이 급기야 전 유럽으로 퍼지게 되었고, 마침내 종교 개혁의 불길이 세차게 일어나서 교회의 모습을 새롭게 변화시켜 놓았고, 교회의 변혁으로 말미암아 중세의 막이 내리고 근대 사회로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개혁자들이 외친 종교 개혁의 원리들이 무엇입니까
1.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이것은 성경의 권위를 교회의 권위밑에 두고 있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통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정경을 결정하였기 때문에 성경이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 권위가 성경의 권위보다 우선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성경의 해석권이나 성경을 읽는 것까지도 평신도들에게는 제한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은 모든 신앙 내용을 교회의 전통이나 교회의 권위보다 먼저 성경에 두었습니다. 교회가 결정하였기 때문에 성경이 된 것이 아니라, 성경 자체의 권위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정경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에 신앙의 표준의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성경을 신자들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개방시킨 것이 종교개혁의 근본 의도이기도 했습니다. 칼빈은 "성서를 떠나서 신앙을 논하는 자들은 광난증 환자(정신병자)"라고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2. 오직 믿음(Sola fide)
마틴 루터를 종교 개혁의 선봉자가 되게 한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복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신득의' 'sola fide' 이것은 벌써 구약의 하박국서에, 그리고 바울의 로마서를 통해서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가르쳐 준 진리이지만, 천주교에서는 이러한 진리를 고의적으로 은폐해 버리고, 구원의 조건으로 인간의 공로나 적선을 내세우며, 암매한 신도들을 속이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개혁자들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얻을 수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같은 주장은 성경에 근거를 둔 구원관이며, 동시에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노력, 즉 공로 사상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것입니다.
3. 오직 은혜(Sola gratia)
당시의 로마 카톨릭은 행위를 통해서만이 구원을 받을 수있다고 하는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고, 특히 교황 레오 10세 시대에는 면죄부를 사야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논리로 우매한 신자들을 속였는데, 개혁자들은 죄를 용서받는 일이나 구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서만이 가능하다고 외친 것입니다. 이같은 주장은 행함으로만 구원받는다고 가르친 1000년이 넘는 로마 카톨릭의 '이행득구'주의 이단 사상에서 모든 영혼을 해방시킨 자유의 복음이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도 하였습니다.
4. 만인 제사장(신자 개위 사제)
이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개인은, 신부나 사제를 통하지 않고서도 직접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있다는 사상이며, 속죄의 근거도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과 나 사이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마치 그 동안 신부들이 속죄의 권한을 가진 것처럼 잘못 가르쳐 온 것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성직자들의 타락과 인간중심주의적인 사상으로 오염된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한 이상과 같은 도전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1000여년 동안 버티어 온 중세 천주 교회의 썩은 뿌리를 흔들어버린 여호와 하나님의 채찍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85년전 한 이름 없는 사제가 비텐베르그 교회당 문에 95개 논제를 붙이므로 독일의 조용한 시골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개혁의 봉화는 기독교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고, 나아가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참으로 종교개혁은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사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세계사의 큰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어떤 형편에 있습니까
1)자유주의 신학의 침투입니다.
18세기 이후 독일을 중심하고 일어났던 각종 자유주의 신학이 우리 한국 교회에 들어와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과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를 격하시키고, 반대로 이성과 인간의 권위를 최고로 내세우는 것이며, 신학을 윤리학으로 격하시키는 것입니다. 사신신학, 살신신학, 혁명신학, 해방신학, 민중신학, 종교 다원주의, 뉴 에이지운동 등은 모두 무신론적 신학인 것입니다.
2)신비주의의 위험입니다.
성령 충만을 빙자하여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용납할수 없는 것들이 난무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한국 교회는 자유주의 신학보다 신비주의 신앙으로부터 크게 위협을 받는다고 할 수있습니다. 성령 충만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하여 여러 가지 이단이 나옵니다. 성령 충만하면 직통 계시를 받고 방언, 입신, 신유, 예언 등을 할 수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 교회가 심각할 정도로 깊은 병에 걸려 있는 것을 몇 가지 말할 수 있다면 1)분열 2)부패 3)물질 만능주의 4)기복신앙 5)개인주의 등을 들 수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개혁되어져야 할 것은 없을까요 예수믿고 학습을 받고 세례를 받고서도 옛 습관이나 관습 그리고 못된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없을 것입니다. 양심이 변하고, 언어가 변하고, 행동이 변화가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된 관습을 버려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잡아먹던 식인종 추장이 예수를 믿고 나서 사람을 잡아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떤 백인 상인이 상업차 아프리카에 가서 그곳의 추장을 만났습니다. 그 때 추장은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백인 상인은 경멸하는 태도로 "그 책은 옛날 인문이 발달되지 못한 시대에나 보던 책이요. 지금같이 과학이 발달된 시대에는 그런 책을 볼 필요가 없소. "라고 말했습니다. 그 추장은 한참 동안 백인 상인을 쳐다보더니 말하기를 "만일 성경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당신은 벌써 내 뱃속에 들어갔을 것이요. 세상은 변하여도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변할 수 없소. 이 말씀이 사람을 잡아먹던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만든 것이요. 과학이 결코 우리를 변하게 한 것이 아니오. "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상인은 부끄러운 얼굴로 그 자리를 떠나가 버렸다고 합니다.
알콜 중독자인 창녀에게 두 딸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두 딸은 자기들의 어머니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곁에서 또렷하게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들은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를 떠나 각각 독립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어머니는 수소문 끝에 큰딸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큰딸은 가슴 아프게도 자기와 똑같이 창녀가 되어 있었고 더욱이 알콜중독자였습니다.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애야,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니"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어찌 지금과 다르게 될 수 있었겠어요"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둘째 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녀는 훌륭한 가정의 착실한 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한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애야, 어떻게 이렇게 되었니"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어찌 지금과 다르게 될 수 있었겠어요" 놀랍게도 두 딸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주어진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종교 개혁을 일으킨 루터는 그의 유명한 저서인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죄로부터 자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교권의 탄압으로부터 자유를 역설했습니다. 이러한 자유를 소유한 자만이 진정한 자유자라 할 수있을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은 결코 죄의 종이 되거나, 황금과 정욕과 권세와 인기의 종이 되거나, 사람의 종이 되거나, 사업이나 일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 시절에 나는 혁명가였고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기도는 이것이 모두였다. '주여, 내게 세상을 개혁할 힘을 주소서' 중년에 이르러 한 사람의 영혼도 고쳐 놓지 못한 채 내 반생이 흘렀음을 깨닫자 내 기도는 이렇게 달라졌다. '주여, 나와 접촉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킬 은총을 주소서. 그저 가족과 친지들만 개종시켜도 만족하겠나이다' 이제 노인이 되어 죽을 날도 오늘 내일로 다가오니 이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알게 되었다. 이제 나의 유일한 기도는 이것이다. '주여, 나 자신을 고칠 은총을 주소서. ' 처음부터 이렇게 빌었던들 일생을 허비하지 않았으련만이라고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또 누군가는 말하기를 '세상의 어두움만을 탓하지 말고, 네가 먼저 작은 촛불이 되라'고 했습니다.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 최초 최고의 행위는 내가 먼저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남을 재는 잣대로 나를 재고, 남에게 들이대는 날카로운 비판의 메스를 내게 가해서, 내가 먼저 개혁되어지고, 내가 먼저 갱신되어지고, 내가 더 성화 되고, 그래서 더 사랑스런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더 진실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더 좋은 신자가 되고, 이러한 신자들로 가득한 우리 송정 중앙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초기 그토록 박해를 받던 기독교가 공인을 받고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부터, 교회는 커다란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황제의 비호를 받게 되자 물질적으로 풍성해지고 발언권이 강해지며, 신앙 외적인 것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교회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잃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교권이 하늘을 찌를 듯 해서 황제의 권위까지 짓누르게 되었습니다. 곧 교황이 황제의 우위에 있게 된 것입니다. '카놋사의 굴욕'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는데, 당시 로마 황제인 하인리히 4세가 3일 동안이나 교황에게 맨발로 눈밭에 서서 잘못을 빈 유명한 사건입니다.
교황 이노센트 3세 때는 교황권의 전성기였습니다. 어떤 날 교황이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공물을 교황청 창고로 싣고 오는 수레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교황이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하는 신학자에게 '우리에게 은과 금은 없다는 말은 이제 지나갔다. 저 많은 물질을 보아라'고 하자, 아퀴나스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는 말이 없어진 것처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는 말도 없어졌습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교회가 세속적으로 부유하게 되자, 성직자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성직을 돈으로 사고 파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구원을 돈으로 파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어졌습니다.
루터는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낸 서한'에서 그 당시 중세 교회의 타락상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황제가 일층 왕관을 쓰는데 교황은 삼층 왕관을 쓰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추기경들도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도적놈처럼 돈에만 정신을 팔고 있다. 교황청은 성직매매, 술주정, 사기, 도둑질, 강도질, 사치, 매춘행위, 협잡질 등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로 가득차 있다"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던 1538년 로마의 추기경들이 교황 바울 3세에 보낸 '개혁의 제안'라는 글에서 로마 교회의 비리와 타락상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 첫째 병폐는 성직자의 임명 문제입니다. 철없는 아이들, 심지어는 전적으로 자격이 없는 무뢰한과 타락자들이 성직자로 임명되고 있습니다. 로마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사제들이 무식하고 부도덕하다는 것은 분통이 터지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로마시 안에는 창녀들이 귀부인들처럼 왕래하는데 그 뒤를 성직자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끄러운 병폐가 중단되어야만 하겠습니다"
당시 교회는 교회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서 거대한 성당을 새로 짓게 되었습니다. 그 건물이 바로 오늘날의 바티칸 궁전이 있는 성 베드로 성당입니다. 얼마나 대단하게 지었든지 시작한지 백 년이 지났는데도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건축비를 모금하기 위해서 면죄부라는 것을 팔게 되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연옥이라는 것을 믿는데, 이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고통의 장소라고 일컬어 집니다. 연옥이란 예수를 믿기는 믿지만 선행이 부족한 사람들이 가서 고난을 받고 있다가, 천국으로 가게 되는 장소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만일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공덕을 쌓아 주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 갈 수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면죄부를 사게 되면 살아 있는 사람은 그냥 천국으로 가게 되고, 만일 죽은 사람을 대신하여 사게 되면 연옥에 있는 영혼이 즉시 천국으로 올라가게 된다고 하면서 팔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이 면죄부를 팔기 위해 루터가 살고 있는 비텐베르크에 와서 면죄부를 사라고 교묘하게 선동하였습니다. 루터는 여기에 심하게 반발하면서 95개조 항의 항의문을 비텐베르크 교회당 정문에 붙여 놓고 공개 논의를 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CD 사진- NO. 35. 5. 15. 40 순으로) 그 날이 바로 1517년 10월 31일 지금으로부터 485년 전입니다. 이 사실이 급기야 전 유럽으로 퍼지게 되었고, 마침내 종교 개혁의 불길이 세차게 일어나서 교회의 모습을 새롭게 변화시켜 놓았고, 교회의 변혁으로 말미암아 중세의 막이 내리고 근대 사회로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개혁자들이 외친 종교 개혁의 원리들이 무엇입니까
1.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이것은 성경의 권위를 교회의 권위밑에 두고 있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통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정경을 결정하였기 때문에 성경이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 권위가 성경의 권위보다 우선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성경의 해석권이나 성경을 읽는 것까지도 평신도들에게는 제한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은 모든 신앙 내용을 교회의 전통이나 교회의 권위보다 먼저 성경에 두었습니다. 교회가 결정하였기 때문에 성경이 된 것이 아니라, 성경 자체의 권위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정경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에 신앙의 표준의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성경을 신자들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개방시킨 것이 종교개혁의 근본 의도이기도 했습니다. 칼빈은 "성서를 떠나서 신앙을 논하는 자들은 광난증 환자(정신병자)"라고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2. 오직 믿음(Sola fide)
마틴 루터를 종교 개혁의 선봉자가 되게 한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복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신득의' 'sola fide' 이것은 벌써 구약의 하박국서에, 그리고 바울의 로마서를 통해서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가르쳐 준 진리이지만, 천주교에서는 이러한 진리를 고의적으로 은폐해 버리고, 구원의 조건으로 인간의 공로나 적선을 내세우며, 암매한 신도들을 속이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개혁자들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얻을 수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같은 주장은 성경에 근거를 둔 구원관이며, 동시에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노력, 즉 공로 사상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것입니다.
3. 오직 은혜(Sola gratia)
당시의 로마 카톨릭은 행위를 통해서만이 구원을 받을 수있다고 하는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고, 특히 교황 레오 10세 시대에는 면죄부를 사야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논리로 우매한 신자들을 속였는데, 개혁자들은 죄를 용서받는 일이나 구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서만이 가능하다고 외친 것입니다. 이같은 주장은 행함으로만 구원받는다고 가르친 1000년이 넘는 로마 카톨릭의 '이행득구'주의 이단 사상에서 모든 영혼을 해방시킨 자유의 복음이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도 하였습니다.
4. 만인 제사장(신자 개위 사제)
이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개인은, 신부나 사제를 통하지 않고서도 직접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있다는 사상이며, 속죄의 근거도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과 나 사이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마치 그 동안 신부들이 속죄의 권한을 가진 것처럼 잘못 가르쳐 온 것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성직자들의 타락과 인간중심주의적인 사상으로 오염된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한 이상과 같은 도전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1000여년 동안 버티어 온 중세 천주 교회의 썩은 뿌리를 흔들어버린 여호와 하나님의 채찍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85년전 한 이름 없는 사제가 비텐베르그 교회당 문에 95개 논제를 붙이므로 독일의 조용한 시골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개혁의 봉화는 기독교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고, 나아가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참으로 종교개혁은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사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세계사의 큰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어떤 형편에 있습니까
1)자유주의 신학의 침투입니다.
18세기 이후 독일을 중심하고 일어났던 각종 자유주의 신학이 우리 한국 교회에 들어와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과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를 격하시키고, 반대로 이성과 인간의 권위를 최고로 내세우는 것이며, 신학을 윤리학으로 격하시키는 것입니다. 사신신학, 살신신학, 혁명신학, 해방신학, 민중신학, 종교 다원주의, 뉴 에이지운동 등은 모두 무신론적 신학인 것입니다.
2)신비주의의 위험입니다.
성령 충만을 빙자하여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용납할수 없는 것들이 난무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한국 교회는 자유주의 신학보다 신비주의 신앙으로부터 크게 위협을 받는다고 할 수있습니다. 성령 충만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하여 여러 가지 이단이 나옵니다. 성령 충만하면 직통 계시를 받고 방언, 입신, 신유, 예언 등을 할 수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 교회가 심각할 정도로 깊은 병에 걸려 있는 것을 몇 가지 말할 수 있다면 1)분열 2)부패 3)물질 만능주의 4)기복신앙 5)개인주의 등을 들 수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개혁되어져야 할 것은 없을까요 예수믿고 학습을 받고 세례를 받고서도 옛 습관이나 관습 그리고 못된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없을 것입니다. 양심이 변하고, 언어가 변하고, 행동이 변화가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된 관습을 버려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잡아먹던 식인종 추장이 예수를 믿고 나서 사람을 잡아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떤 백인 상인이 상업차 아프리카에 가서 그곳의 추장을 만났습니다. 그 때 추장은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백인 상인은 경멸하는 태도로 "그 책은 옛날 인문이 발달되지 못한 시대에나 보던 책이요. 지금같이 과학이 발달된 시대에는 그런 책을 볼 필요가 없소. "라고 말했습니다. 그 추장은 한참 동안 백인 상인을 쳐다보더니 말하기를 "만일 성경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당신은 벌써 내 뱃속에 들어갔을 것이요. 세상은 변하여도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변할 수 없소. 이 말씀이 사람을 잡아먹던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만든 것이요. 과학이 결코 우리를 변하게 한 것이 아니오. "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상인은 부끄러운 얼굴로 그 자리를 떠나가 버렸다고 합니다.
알콜 중독자인 창녀에게 두 딸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두 딸은 자기들의 어머니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곁에서 또렷하게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들은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를 떠나 각각 독립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어머니는 수소문 끝에 큰딸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큰딸은 가슴 아프게도 자기와 똑같이 창녀가 되어 있었고 더욱이 알콜중독자였습니다.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애야,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니"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어찌 지금과 다르게 될 수 있었겠어요"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둘째 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녀는 훌륭한 가정의 착실한 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한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애야, 어떻게 이렇게 되었니"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어찌 지금과 다르게 될 수 있었겠어요" 놀랍게도 두 딸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주어진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종교 개혁을 일으킨 루터는 그의 유명한 저서인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죄로부터 자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교권의 탄압으로부터 자유를 역설했습니다. 이러한 자유를 소유한 자만이 진정한 자유자라 할 수있을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은 결코 죄의 종이 되거나, 황금과 정욕과 권세와 인기의 종이 되거나, 사람의 종이 되거나, 사업이나 일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 시절에 나는 혁명가였고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기도는 이것이 모두였다. '주여, 내게 세상을 개혁할 힘을 주소서' 중년에 이르러 한 사람의 영혼도 고쳐 놓지 못한 채 내 반생이 흘렀음을 깨닫자 내 기도는 이렇게 달라졌다. '주여, 나와 접촉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킬 은총을 주소서. 그저 가족과 친지들만 개종시켜도 만족하겠나이다' 이제 노인이 되어 죽을 날도 오늘 내일로 다가오니 이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알게 되었다. 이제 나의 유일한 기도는 이것이다. '주여, 나 자신을 고칠 은총을 주소서. ' 처음부터 이렇게 빌었던들 일생을 허비하지 않았으련만이라고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또 누군가는 말하기를 '세상의 어두움만을 탓하지 말고, 네가 먼저 작은 촛불이 되라'고 했습니다.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 최초 최고의 행위는 내가 먼저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남을 재는 잣대로 나를 재고, 남에게 들이대는 날카로운 비판의 메스를 내게 가해서, 내가 먼저 개혁되어지고, 내가 먼저 갱신되어지고, 내가 더 성화 되고, 그래서 더 사랑스런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더 진실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더 좋은 신자가 되고, 이러한 신자들로 가득한 우리 송정 중앙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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