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히스기야왕의 종교개혁
본문
주님의 은혜가운데 한주간동안 평안하셨습니까
금년 여름도 예외없이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인해 우리나라 전역에서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의 피해등, 큰 피해를 입었고, 아직까지도 남부지방은 강의 범람위기속에 수해의 위험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보도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더 이상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고 망연자실한 수재민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하심이 넘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 주간에 청년대학부의 수련회까지 무사히 마쳐지고 교단 산상부흥성회를 통해 은혜받게 도우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해마다 겪는 수해지만 그동안 대비를 철저히 한 곳은 다행히 피해가 적었고, 지난 번 수해이후에도 늑장을 부리며 예산타령만 하면서 미온적인 대처를 해왔던 지방에서는 반복되는 어려움을 겪은 곳도 많이있었다는 소식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에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저 잘 지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안일함이 더 많은 피해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잠시겪는 육신적인 재해도 철저한 대비만 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 마지막 날에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이 온전하게 보존되어서 우리가 주 앞에 어엿하게 설 수 있기 위하여는 더욱 철저한 대비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인생길에 또 어떠한 예기치못했던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안에만 휩싸여 있을 것이 아니라 영육간에 철저한 대비로 뜻밖의 그날이 덫과같이 임하는 일들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는 이 8월에 우리는 나의 영적전선에도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보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난 주일에는 우리가 ‘두 종류의 신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주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과 경고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주여주여 하다가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믿음이 차츰 식어지고 주님의 그 고귀한 은혜를 값싼 은혜로 바꾸어 버리려는 명목 상의 신자들에게 다시한 번 경종을 울려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유다왕중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인정받고 사랑받고 기도에 응답받았던 히스기야왕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의 성공적인 종교 개혁처럼 우리의 신앙도 새롭게 개혁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도전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히스기야의 부친인 아하스는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른 후 갖가지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가 저지른 가장 극악한 범죄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우상을 섬기게 했습니다. 왕이 친히 이방신에게 제사하는 것은 물론, 그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이웃나라의 공격을 받아 백성들이 살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깨닫기는 커녕 더욱 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망령되이 행했습니다.
급기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의 기구들을 훼파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면 드디어 성전의 문들을 닫아버리고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서 다른 신에게 분향하는등 여호와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25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그의 부친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않았습니다. 그는 닫혔던 성전 문을 다시 열고 모든 것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의 종교개혁은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인정받고 백성들에게는 존경을 받기에 이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옛날,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치루어냈던 히스기야왕처럼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오늘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참으로 절실한, 신앙생활에 성공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아 주님오실 날이 가까워 오는 이 마지막 시대에 승리로운 신앙의 성공자가 되어 주와 함께 멋지게 사명을 감당하는 명일교회 모든 성도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첫째, 히스기야왕의 개혁은 성전을 청결케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대하29:2-5-"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원년 정월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편 광장에 모으고/저희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케 하고 또 너희 열조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것을 성소에서 없이하라"
25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그의 부친때부터 백성들이 당한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 고통을 받는 백성들의 문제를 스스로 자기의 힘이나 노력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지혜롭게 문제의 원인을 파악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다른데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부터 온 자업자득이란 사실을 간파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왕은 그가 다스리는 유다가 이방의 침략을 받아 노략거리가 된 원인이 여호와의 전을 더럽히면서 제사를 온전히 드리지 않았기 때문임을 선포하면서 성전청결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할 뜻을 밝혔습니다.
유다에게 찾아온 환난과 수치가 여호와를 배반하여 온전히 섬기지 않은 것 때문이라고 한 히스기야왕의 주장은 바로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있었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늘 새기며 그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유다가 모든 환난에서 벗어나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구약에 있어서 성전은 오늘날 성도의 모든 신앙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예루살렘 성전’이 그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심을 의미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는 곧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의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전이 더럽혀지고 성전에 가증한 우상의 단이 놓여질 때는 이스라엘의 신앙이 타락했을 때이고, 성전이 정결하여 여호와께 제사가 드려질 때는 이스라엘의 신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케 하실 때에 제물되어 들어와야 할 짐승이 산 채로 성전안으로 끌려와 매매가 이루어지는등 성전이 더럽혀졌을 때, 거룩한 분노를 일으키면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돈바꾸는 상인들의 상을 뒤엎어 버리시는등 예수님의 일생가운데 가장 진노했던 모습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압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적용되기 위해 우리는 오늘날 성전의 청결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찬송가 200장 2절에 보면 ‘죄악세상 이김으로 거룩한 길가는 나의 마음 성전삼고 주께서 계시네 찬송하세 주의 보혈 그 샘에 지금 나아가 죄에 깊이 빠진 이 몸 그 피로 씻어 맑히네’
그렇습니다. 오늘날의 성전은 바로 주를 믿는 신자의 심령, 즉 마음인 것입니다. 마음은 곧 생각을 말합니다. 모든 신앙의 변질은 생각으로부터 옵니다. 처음 은혜받았을 때는 앉으나 서나 주님생각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모여도 은혜받은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주를 위해 일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기쁨입니다. 삶의 모든 부분이 예수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것들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 시작합니다. ‘신앙생활하는 내가 너무 단순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파고들어오면서 그 때부터 신자의 생각속에 즉 신자의 성전인 마음속에 찬란한 세상 유혹과 쾌락과 명예등의 이방신의 화려한 단이 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삶 가운데 문제가 발생할 때, 우리는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모든 삶을 인도하시고 동행하시어 형통하게 해주시겠다는 언약이 있음을 확실하게 믿으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평탄하고 형통하지만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어려운 문제들로 인해 고민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히스기야왕의 개혁처럼 제일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청결케 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속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나를 살피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주위의 환경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하지 말고 성도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가장 급선무인 것입니다.
둘째, 히스기야왕의 개혁은 제사의 회복운동이었습니다.
대하29:6-11-"우리 열조가 범죄하여 우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또 낭실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한고로/여호와께서 유다 와 예루살렘을 진노하시고 내어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목도하는 바라/이로 인하여 우리의 열조가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가 사로잡혔느니라/이제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맹렬한 노로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노니/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그 앞에 서서 수종들어 섬기며 분향하게 하셨느니라"
히스기야왕의 개혁은 성전을 청결케 한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의 회복을 원했습니다. 언약의 회복이란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고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받는 삶으로의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언약의 회복은 바로 예배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됨을 그는 알았기에 히스기야는 유다백성이 까마득하게 잊고있었던 제사의 회복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유다백성이 당하는 모든 고통의 원인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음에 있었고 그 관계를 연결하는 고리는 다름아닌 제사의 회복 즉,예배가 회복되는 것이었음을 히스기야왕은 알았기에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것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고통받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선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함이 마땅한데, 그렇지 못함을 안타까와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가 받을 복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하여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사57:18-19-"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하리라/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를 여호와 하나님은 돌아보시고 그 인생에 있어 잘 못가고 있는 길을 고쳐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슬퍼하는 자에게는 위로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또한 입술로 주를 찬양하는 자에게 그 열매를 맺도록 평강을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십니까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슬픔이 있습니까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불안하고 두려움이 앞섭니까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우리의 심령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분과의 교제인 예배를 회복하고 항상 그 분과 함께삶의 현장으로 나가십시오. 그리고 그 분과 교제하며 순간순간 범사에 그분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히스기야왕이 성전을 수리하고 성결케 한 후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온 이스라엘을 위해 제사를 드렸습니다. 바로 속죄제였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제사를 드림으로서 이스라엘백성과 여호와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의 회복을 꾀했습니다. 그는 또 노래와 악기로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렸고 회중에게 감사의 제물을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백성이 드린 제물이 너무 많아 그 제물을 처리할 제사장이 부족하여 레위인을 동원하여 그 일을 감당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는 백성에게 임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컸고 그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백성들의 감사 또한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하29:31-36-"이에 히스기야가 일러 가로되 너희가 이제 몸을 깨끗케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마땅히 나아와 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으로 가져오라 회중이 드디어 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 오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또한 번제물을 가져오니/회중의 가져온 제물의 수효는 수소가 칠십이요 수양이 일백이요 어린 양이 이백이니 이는 다 여호와께 번제물로 드리는 것이며/또 구별하여 드린 소가 육백이요 양이 삼천이라/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 형제 레위사람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의 성결케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의 성결케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번제와 화목제 기름과 각 번제에 속한 전제가 많더라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 이 일이 갑자기 되었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음을 인하여 히스기야가 백성으로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히스기야가 믿음으로 성전제사를 회복하였을 때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온 백성이 기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감사함으로 자원의 예물은 흘러넘쳤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를 회복하여 주께 드릴 때에 그 기쁨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었고 평강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회복으로 인한 주님의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떠난 사람에게는 이런 기쁨과 평강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안에서 관계의 회복을 맛본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기쁨과 평강을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천국백성이 누리는 이 기쁨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축복입니다. 이 여름, 기상의 이변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자칫 우울해질 수 있는 때입니다. 히스기야왕의 개혁처럼 우리의 신앙에도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의 개혁이 물결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몸된 성전인 여러분의 마음을 정결케 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이 회복되도록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지긋지긋한 신앙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십시오. 무기력으로부터 탈출하십시오. 그로 인한 감사와 기쁨과 감격을 회복하시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생의 구비구비마다 깊이 맛보시며 여호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때가 되면 일어나 빛을 발하십시오. 할렐루야!
금년 여름도 예외없이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인해 우리나라 전역에서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의 피해등, 큰 피해를 입었고, 아직까지도 남부지방은 강의 범람위기속에 수해의 위험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보도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더 이상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고 망연자실한 수재민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하심이 넘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 주간에 청년대학부의 수련회까지 무사히 마쳐지고 교단 산상부흥성회를 통해 은혜받게 도우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해마다 겪는 수해지만 그동안 대비를 철저히 한 곳은 다행히 피해가 적었고, 지난 번 수해이후에도 늑장을 부리며 예산타령만 하면서 미온적인 대처를 해왔던 지방에서는 반복되는 어려움을 겪은 곳도 많이있었다는 소식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에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저 잘 지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안일함이 더 많은 피해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잠시겪는 육신적인 재해도 철저한 대비만 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 마지막 날에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이 온전하게 보존되어서 우리가 주 앞에 어엿하게 설 수 있기 위하여는 더욱 철저한 대비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인생길에 또 어떠한 예기치못했던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안에만 휩싸여 있을 것이 아니라 영육간에 철저한 대비로 뜻밖의 그날이 덫과같이 임하는 일들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는 이 8월에 우리는 나의 영적전선에도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보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난 주일에는 우리가 ‘두 종류의 신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주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과 경고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주여주여 하다가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믿음이 차츰 식어지고 주님의 그 고귀한 은혜를 값싼 은혜로 바꾸어 버리려는 명목 상의 신자들에게 다시한 번 경종을 울려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유다왕중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인정받고 사랑받고 기도에 응답받았던 히스기야왕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의 성공적인 종교 개혁처럼 우리의 신앙도 새롭게 개혁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도전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히스기야의 부친인 아하스는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른 후 갖가지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가 저지른 가장 극악한 범죄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우상을 섬기게 했습니다. 왕이 친히 이방신에게 제사하는 것은 물론, 그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이웃나라의 공격을 받아 백성들이 살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깨닫기는 커녕 더욱 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망령되이 행했습니다.
급기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의 기구들을 훼파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면 드디어 성전의 문들을 닫아버리고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서 다른 신에게 분향하는등 여호와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25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그의 부친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않았습니다. 그는 닫혔던 성전 문을 다시 열고 모든 것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의 종교개혁은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인정받고 백성들에게는 존경을 받기에 이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옛날,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치루어냈던 히스기야왕처럼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오늘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참으로 절실한, 신앙생활에 성공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아 주님오실 날이 가까워 오는 이 마지막 시대에 승리로운 신앙의 성공자가 되어 주와 함께 멋지게 사명을 감당하는 명일교회 모든 성도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첫째, 히스기야왕의 개혁은 성전을 청결케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대하29:2-5-"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원년 정월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편 광장에 모으고/저희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케 하고 또 너희 열조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것을 성소에서 없이하라"
25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그의 부친때부터 백성들이 당한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 고통을 받는 백성들의 문제를 스스로 자기의 힘이나 노력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지혜롭게 문제의 원인을 파악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다른데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부터 온 자업자득이란 사실을 간파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왕은 그가 다스리는 유다가 이방의 침략을 받아 노략거리가 된 원인이 여호와의 전을 더럽히면서 제사를 온전히 드리지 않았기 때문임을 선포하면서 성전청결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할 뜻을 밝혔습니다.
유다에게 찾아온 환난과 수치가 여호와를 배반하여 온전히 섬기지 않은 것 때문이라고 한 히스기야왕의 주장은 바로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있었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늘 새기며 그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유다가 모든 환난에서 벗어나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구약에 있어서 성전은 오늘날 성도의 모든 신앙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예루살렘 성전’이 그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심을 의미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는 곧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의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전이 더럽혀지고 성전에 가증한 우상의 단이 놓여질 때는 이스라엘의 신앙이 타락했을 때이고, 성전이 정결하여 여호와께 제사가 드려질 때는 이스라엘의 신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케 하실 때에 제물되어 들어와야 할 짐승이 산 채로 성전안으로 끌려와 매매가 이루어지는등 성전이 더럽혀졌을 때, 거룩한 분노를 일으키면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돈바꾸는 상인들의 상을 뒤엎어 버리시는등 예수님의 일생가운데 가장 진노했던 모습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압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적용되기 위해 우리는 오늘날 성전의 청결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찬송가 200장 2절에 보면 ‘죄악세상 이김으로 거룩한 길가는 나의 마음 성전삼고 주께서 계시네 찬송하세 주의 보혈 그 샘에 지금 나아가 죄에 깊이 빠진 이 몸 그 피로 씻어 맑히네’
그렇습니다. 오늘날의 성전은 바로 주를 믿는 신자의 심령, 즉 마음인 것입니다. 마음은 곧 생각을 말합니다. 모든 신앙의 변질은 생각으로부터 옵니다. 처음 은혜받았을 때는 앉으나 서나 주님생각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모여도 은혜받은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주를 위해 일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기쁨입니다. 삶의 모든 부분이 예수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것들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 시작합니다. ‘신앙생활하는 내가 너무 단순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파고들어오면서 그 때부터 신자의 생각속에 즉 신자의 성전인 마음속에 찬란한 세상 유혹과 쾌락과 명예등의 이방신의 화려한 단이 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삶 가운데 문제가 발생할 때, 우리는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모든 삶을 인도하시고 동행하시어 형통하게 해주시겠다는 언약이 있음을 확실하게 믿으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평탄하고 형통하지만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어려운 문제들로 인해 고민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히스기야왕의 개혁처럼 제일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청결케 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속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나를 살피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주위의 환경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하지 말고 성도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가장 급선무인 것입니다.
둘째, 히스기야왕의 개혁은 제사의 회복운동이었습니다.
대하29:6-11-"우리 열조가 범죄하여 우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또 낭실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한고로/여호와께서 유다 와 예루살렘을 진노하시고 내어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목도하는 바라/이로 인하여 우리의 열조가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가 사로잡혔느니라/이제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맹렬한 노로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노니/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그 앞에 서서 수종들어 섬기며 분향하게 하셨느니라"
히스기야왕의 개혁은 성전을 청결케 한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의 회복을 원했습니다. 언약의 회복이란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고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받는 삶으로의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언약의 회복은 바로 예배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됨을 그는 알았기에 히스기야는 유다백성이 까마득하게 잊고있었던 제사의 회복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유다백성이 당하는 모든 고통의 원인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음에 있었고 그 관계를 연결하는 고리는 다름아닌 제사의 회복 즉,예배가 회복되는 것이었음을 히스기야왕은 알았기에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것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고통받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선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함이 마땅한데, 그렇지 못함을 안타까와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가 받을 복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하여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사57:18-19-"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하리라/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를 여호와 하나님은 돌아보시고 그 인생에 있어 잘 못가고 있는 길을 고쳐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슬퍼하는 자에게는 위로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또한 입술로 주를 찬양하는 자에게 그 열매를 맺도록 평강을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십니까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슬픔이 있습니까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불안하고 두려움이 앞섭니까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우리의 심령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분과의 교제인 예배를 회복하고 항상 그 분과 함께삶의 현장으로 나가십시오. 그리고 그 분과 교제하며 순간순간 범사에 그분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히스기야왕이 성전을 수리하고 성결케 한 후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온 이스라엘을 위해 제사를 드렸습니다. 바로 속죄제였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제사를 드림으로서 이스라엘백성과 여호와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의 회복을 꾀했습니다. 그는 또 노래와 악기로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렸고 회중에게 감사의 제물을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백성이 드린 제물이 너무 많아 그 제물을 처리할 제사장이 부족하여 레위인을 동원하여 그 일을 감당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는 백성에게 임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컸고 그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백성들의 감사 또한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하29:31-36-"이에 히스기야가 일러 가로되 너희가 이제 몸을 깨끗케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마땅히 나아와 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으로 가져오라 회중이 드디어 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 오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또한 번제물을 가져오니/회중의 가져온 제물의 수효는 수소가 칠십이요 수양이 일백이요 어린 양이 이백이니 이는 다 여호와께 번제물로 드리는 것이며/또 구별하여 드린 소가 육백이요 양이 삼천이라/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 형제 레위사람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의 성결케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의 성결케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번제와 화목제 기름과 각 번제에 속한 전제가 많더라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 이 일이 갑자기 되었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음을 인하여 히스기야가 백성으로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히스기야가 믿음으로 성전제사를 회복하였을 때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온 백성이 기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감사함으로 자원의 예물은 흘러넘쳤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를 회복하여 주께 드릴 때에 그 기쁨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었고 평강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회복으로 인한 주님의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떠난 사람에게는 이런 기쁨과 평강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안에서 관계의 회복을 맛본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기쁨과 평강을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천국백성이 누리는 이 기쁨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축복입니다. 이 여름, 기상의 이변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자칫 우울해질 수 있는 때입니다. 히스기야왕의 개혁처럼 우리의 신앙에도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의 개혁이 물결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몸된 성전인 여러분의 마음을 정결케 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이 회복되도록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지긋지긋한 신앙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십시오. 무기력으로부터 탈출하십시오. 그로 인한 감사와 기쁨과 감격을 회복하시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생의 구비구비마다 깊이 맛보시며 여호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때가 되면 일어나 빛을 발하십시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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