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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아사왕의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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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34세의 루터는 인격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성숙기에 접어들었을 때에 로마의 카톨릭 교회에 면죄부 사건으로 말미암아 루터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해 더욱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볼때 그는 더욱 악명 높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성례전이 세례와 성만찬 2개만 인정하고 있지만, 카톨릭교회는 7개의 성례전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세례와 견신례, 성찬, 종유, 고해성사, 서품, 혼인례 입니다. 그런데 면죄부는 이 고해성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고해성사란 이미 카톨릭 신자가 된 사람이 일상 생활 속에서 죄를 범할 경우 사제를 찾아가서 이 죄를 통회하고 고백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제는 이 죄인을 용서하되 그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면죄부는 십자군 전쟁때에 참전 용사들에게 면죄를 허락한데서 기인합니다.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는 돈과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경건심의 발로에서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경우 이것은 고해성사에 해당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점차로 돈이 개입하며서 교회, 수도원, 병원, 가난한 자, 병든 자 등을 위해 돈을 냄으로써 형벌을 면케 되었으나 급기야는 더욱 세속화 하여 면죄부를 판매하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면죄부를 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들은 면죄부 판매에서 들어오는 수입을 교회의 예산으로 삼았고,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교회를 건립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면죄부를 더 많이 팔기 위해 교회에서는 고해성사, 연옥, 성례전적 은혜와 면죄부 판매를 더욱 많이 설교해야 하고 면죄부를 팔아야 한다고 요약 교서를 선포하였습니다.
이 문서를 읽어 본 루터는 면죄부 판매 사건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95개의 조항에 달하는 면죄부 비판서를 작성하여 비텐베르크 성내 교회에 붙였습니다. 이 루터의 95개의 비판서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지성들에게는 폭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부패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개혁의 일꾼을 세워 교회를 새롭게 하는 개혁의 물결을 일으키셨습니다.
이러한 종교개혁은 루터 당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유다 3대 왕인 아사의 종교개혁을 보게 됩니다. 유다는 솔로몬 왕이 이방 여인들과 결혼함으로 이방여인들이 가져온 우상숭배를 허용함으로 부터 시작된 신앙의 혼합종교적인 부패가 그의 아들 르호보암과 아비야에게까지 이어내려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비야의 아들 아사가 유다의 3대왕으로 등극하자마자 그는 유다의 부패한 종교를 개혁하는 깃발을 들게 됩니다. 유다 나라의 아사왕과 더불어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아왕을 4대 종교개혁자라고 합니다. 이들을 향한 성경의 평가는 하나같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라는 말입니다. 오늘은 유다의 제 1대 종교개혁자인 아사왕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들려주시는 종교 개혁의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기독교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겠습니까
1.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해야 합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부산에서 지하철을 타게 되었는데 지금은 신문을 파는 사람이 다니지 않지만 그때는 지하철 열차 사이를 오가며 신문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신문을 파는 사람이 단순하게 “신문 사이소” 외치면서 신문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곁들어서 신문을 파는데 지금도 분명히 생각이 나는 것은 “오늘의 최대의 빅 뉴스는 사람들이 신문을 너무 팔아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신문 사이소” 하면서 신문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최대의 위기는 무엇일까요 교회 성장이 정체되어 있고,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적어지는 것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직장이 주 5일 근무로 인해 토요일부터 주일 까지 산으로 들로 놀러가는 프로그램이 많아져 교회의 예배 출석 인원이 줄어드는 것입니까 그것도 하나의 위기가 되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위기의 본질 일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교회의 위기는 교회가 세상에서 감당해야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정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인이고 누가 비 그리스도인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에 찬송과 성경을 들고 와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그리스도인이 맞는데, 직장이나 가정이나 사회에서는 비 그리스도인과 구별되지 못한 삶을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를 새롭게하고 갱신을 꿈꾸기 전에 우리들이 먼저 해야할 것이 있다면 먼저 나 자신을 갱신하는 것입니다. 내가 거듭나지 않고는 결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내가 새로워지지 않고서는 결코 교회를 새롭게 만들 수 없습니다.
내가 새로워지는 첫 번째 모습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주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기를 원하시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셔야 합니다. 위선의 허울을 쓰고, 가식의 가면을 쓰고 정직한 척, 의로운 척 하는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외친 것은 가식과 위선의 가면을 쓰고 의로운척 하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동자로 우리들의 폐부를 감찰하시며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속이며 의로운 척하는 모습은 여호와 하나님을 역겹게 할 뿐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거짓말 하는 아이들은 순진하기에 눈에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는 것을 써 놓고 거짓말을 합니다. 아이들의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하면 눈 마주치기를 부담스러워하고, 어떤 경우에는 실실 웃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화낼 일도 아닌데 화를 버럭 냅니다. 이 세가지 중의 하나에 들어가면 십중팔구는 거짓말입니다. 부모가 속는다는 맘이 들면 화가 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정직하지 아니한 모습도 다를 바가 아닐 것입니다.
교회의 부패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정직하게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를 두려워 했다면 어찌 추하고 더러운 일들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위선자였으며, 신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카톨릭 교회의 부패가 이제 교회에도 만연하여 있습니다. 합리주의에 정직이 밀리고 믿음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결코 가정을 교회를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없습니다. 먼저 나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는 변화가 있어져야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갱신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우상을 제해야 합니다.
아사왕의 종교 개혁은 3절에서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이하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 상을 찍고” 이어 5절에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이하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5장 13절에서는 이방신상을 파괴한 것 외에 아세라를 섬기는 태후를 폐위시킨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아사왕의 종교개혁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방여인과 결혼을 함으로 시작하여 우상숭배가 유다나라에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왕상11장 3절- 8절 사이를 보면 “왕은 후비가 칠백인이요 빈장이 삼백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으며...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같이 하였으며, 저가 또 이족 후비들을 위하여 다 그와같이 한지라 저희가 자기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나라에 온갖 우상이 들어와 유다를 우상의 도시로 만들어 버림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내게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왕상15:11)고 말씀하시게 되었습니다. 유다 나라가 우상이 범람하는 도시가 되어 부패할 때 진노하시고 나라가 갈라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500년 당시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할 때도 카톨릭은 부패되고 금전이 여호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우상이 되고 믿음이 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교회가 갈라지도록 만드셨습니다.
오늘날의 우상은 역시 금전입니다. 금전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맘몬(돈) 앞에 사람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집니다. 아무리 위대한 신앙인이라도 돈의 시험앞에 넘어지고 무너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돈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돈이 여호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맘몬을 숭배하고 스스로 맘몬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우상을 우리에게서 제하지 않고는 우리는 결코 신앙의 갱신을 이룰 수 없으며, 이 우상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계속 맘몬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맘몬이 우리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풍성한 물질을 청지기 적인 정신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사용할 때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들 주위에서 건설되게 될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만들어 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3.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고 그의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아사왕은 자신의 증조 할아버지때로부터 내려오던 이방의 제단과 산당과 주상들과 태양상들을 깨어 부수고 우상숭배를 철저하게 근절하였습니다. 아울러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구하고 그의 말씀대로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 당시를 머리에 그려보면 정말 대단했을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산당들이 무너지고 우상들이 깨어지고 사라지는 모습과 아울러 온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께만 예배드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만 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개혁을 하는 것을 보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남해대교를 많은 사람들이 가 보셨을 것입니다. 육지에서 남해쪽으로 대교를 건너가면서 오른쪽으로 보면 주차장이 보이고 주차장 끝에는 짖은 회색을 칠한 교회가 보일 것입니다. 그 교회가 남해대교교회입니다. 감리교회인데 박정기 장로님께서 전도사님으로 오셔서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 동네는 설천으로 이순신 장군의 산당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동네 사람들은 신중에 최고의 신은 이순신이라고 한답니다. 그러니 얼마나 복음화가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그 교회 옆으로 도로가 있는데 그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산당이 있었고 당나무들이 많이 있는데 나무들이 너무 커서 겨울이 되면 전도사님께서 교회 지붕에 올라가 나뭇잎을 치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답니다. 또한 당나무에서는 무당들이 매일 북치고 괭과리치고 징을 치면서 굿을 하는데 도저히 못견디겠더랍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여리고 작전이었답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제일 큰 당나무를 일곱 번 돌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찍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지 얼마 안되어 그 당산을 중심으로 도로가 나게 되었고 당나무들은 당연히 잘려나가게 되었답니다. 동네 사람들은 처음에 반대를 하다가 도로가 생기지 않으면 생활에 많은 불편이 있으니까 당산 중간에 제일 큰 당나무는 자르지 말고 길을 조금 돌려서 내어달라고 하고 도로공사와 합의을 하고 나무를 베게 되었는데 나무를 베는 사람이 착각하여 베지 말아야 하는 나무를 베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길은 반듯하게 나게 되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당나무를 건들면 죽는다고 해서 그대로 방치 되어 누구도 치우려고 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전도사님께서 톱을 빌려 자르고 도끼로 패고해서 겨울동안 아주 장작으로 잘 썼다고 합니다.
우상의 나무가 쓰러지고 무당이 교회 앞에서 굿을 못하게 되던 그날 목사님은 기뻐 어쩔줄 몰랐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구했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상한 방법으로 우상의 나무를 치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만 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찾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들어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자 할 때 성도들은 변화되고 교회는 새로워지고 개혁의 역사가 이루어지게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기도라는 무기가 녹슬어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머리잘린 삼손처럼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면서 세 가지 모토가 있었는데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이었습니다.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고 말씀을 세우자는 것이었습니다. 카톨릭 교회의 부패는 필연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부패할 수 밖에 없고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새로워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어지는 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내 집이 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 가는데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살 때 이것이 가능합니다.
얄팍한 술수나 인간적인 합리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려고하면 필연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디게 보이고 어리석게 보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게 행해야 합니다. 우상을 제하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구하며 말씀을 삶속에 적용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을 거룩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가면 분명 나를 통해, 우리 교회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은 교회를 새롭게 하심으로 오늘날의 교회의 위기를 이기게 하시고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아사왕의 종교개혁의 모습을 본받아 우리들의 신앙을 갱신하여 오늘날 교회의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삼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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