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개혁하는 신앙
본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흐름도 가끔씩 지켜보아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세상 문화의 흐름을 잘 보시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제가 문제를 하나 내도록 하겠습니다.
이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정현"이라는 신세대 가수입니다. 대단히 인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가수가 부른 재미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는 이렇게 됩니다.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런 가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좀 바꾸기를 원합니다. 한번 변화시켜 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는 옛날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연세가 높으신 분들은 자유당 정권 때 벽보에 붙어 있던 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못살겠다. 갈아 보자. 죽기 전에 살길을 찾자" 요즘 광고에 등장하는 카피가 있습니다. 이 카피는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카피입니다. 그것은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 변화와 개혁이 얼마나 중요해서 변화와 개혁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무조건 다 바꾸는 것은 곤란합니다.
무조건 다 바꾸고, 무조건 개혁해 버리면 잘못하면 옛날보다 훨씬 더 못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열심히 바꾸어 보아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개혁한다고 해도 껍데기만 개혁할 뿐 알맹이는 손도 대지 못하는 개혁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바꾸되 바로 바꾸어야 합니다. 개혁하되 분명한 원칙에 맞게 해야 합니다. 갈아치우되 분명한 철학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변화와 개혁의 원칙을 성경이 제공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 성경 위에 건설된 믿음이 바른 개혁과 바른 변화를 추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좀 답답하다. 예수 믿는 사람은 고집 불통이다. "라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만나는 사람은 고집 불통이 아닙니다. 변함없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은 변해야 되는 믿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데, 변화 시켜야 되는 것은 아주 서슴지 않고 과감하게 변화하고 자기를 변혁시켜 나가는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바꾸는 원리를 성경 속에서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갈 수 있는 용기를 믿음이 주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꾸었습니다. 사께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철학들, 모습들을 다 바꾸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주변을 원칙에 맞게, 말씀에 맞게 개혁시켜 주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어스팀파 신부이면서, 비텐부르크 대학의 교수였던 말틴 루트가 1517년 비텐부르크 성당의 벽에 그 당시 잘못된 로마 천주교의 잘못된 점, 95가지를 벽에 붙임으로 시작했던 종교개혁이 일어 난지 무려 483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교회를 우리는 흔히 대신 교회, 혹은 개혁 교회라고 말을 합니다. 개혁 교회를 영어로 쓰면 이렇게 됩니다. 바로 "Reformed Church"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좀 문제가 있는 번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개혁된 교회,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개혁 교회의 의미는 바로 그 아래에 있는 글, "Reforming Church" 다시 말하면 "지금도 개혁하고 있는 교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쉴새 없이 변화시켜 나가고 변혁하고, 개혁시켜 나가는 그런 신앙을 가진 교회가 바로 개혁 교회입니다. 우리는 다 개혁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종교 개혁의 전통을 이어가는 개혁하는 신앙으로 성숙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남왕국 16번째 임금으로 아주 어린 "요시야"라고 하는 임금이 등급을 했습니다. 그는 8세 때, 아주 어린 나이로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이 볼 때, 마지막 등불과도 같은 아주 중요한 왕이었습니다. 그가 20살이 되었을 때, 드디어 잘못된 나라를 개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수많은 제단이 있었는데 그 제단을 다 부수었습니다.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까지도 다 부수고 불을 태웠습니다. 심지어 우상을 섬기다가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무덤을 다 파헤쳤습니다.
그리고 뼈들을 부수고 불태웠습니다. 이런 개혁을 6년 동안 했습니다. 그리고 26살이 되었을 때는 그 동안 200년 동안에 방치되었던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했지만, 다분히 외형적인 개혁을 계속 단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상 제단은 부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그 우상을 섬기는 마음은 부수지 못했습니다.
우상은 부수었지만, 사람들이 우상 숭배하려고 하는 의도는 다 부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보다 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바로 우리에게 종교 개혁의 기본 원리와 개혁하는 신앙의 참된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말씀의 제 발견입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연보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요시야 왕이 우상 제단도 부수고, 상전도 수리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것을 개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말한 것은 껍데기의 개혁입니다.
형식의 개혁입니다. 요즘 쓰는 말로 말하면 "하드웨어"의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개혁의 알맹이가 되는 그 내용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개혁의 중심이 되는 말씀이 재발견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소프트웨어"가 드디어 발견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컴퓨터가 비싸고, 훌륭하고 좋다고 해도 컴퓨터 안에 프로그램이 없으면 컴퓨터의 기능은 발휘될 수가 없는 것처럼, 참된 개혁은 여호와 하나님 말씀의 제 발견과 함께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200년 동안이나 팽개쳐 있었습니다. 이 전왕인 므낫세나, 아몬 같은 왕들은 말씀을 버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우상을 섬기던 그런 악한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종교 개혁이 일어날 그 당시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로마 천주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팽개쳐 두고, 교황의 권위만을 계속 올렸습니다. 그리고 교회 치장에만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교황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여러분 고등학교 때 배우셨을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바로 "레오 10세"입니다. 이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을 지어 나갔습니다. 훌륭하게 생긴 아름다운 성 베드로 성당을 여러분이 지금 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성당을 지어 나가는데 돈이 부족했습니다. 부족하다 보니 성경에 없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면제부라고 하는 것을 팔게 되었는데 테첼이라는 신부를 통해서 종을 흔들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말을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 면제부를 사시면 죄를 사함 받습니다. 여러분 혹시 부모님들이나 형제들 친척들 가운데 예수를 믿지 않고 연옥에 간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 만약에 이 면제부 한 장만 사면 떨어지는 순간에 연옥에 있던 영혼들이 날아서 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 이렇게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대하여 말틴루트는 말을 분명히 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사함 받습니다. 믿음으로 죄를 사함 받습니다. 면제부는 필요가 없습니다. " 그 당시 사람들은 교황의 말만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말틴루트는 잃어버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제 발견했습니다.
기가 비텐부르크 대학에서 로마서를 강의하고 있었을 때, 그는 "오직 의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제 발견했습니다.
그가 1510년 로마에 성 과테란 교회에 갔을 때 일입니다. 이 교회는 저 멀리 예루살렘에 있는 빌라도 총독 관제에 있었던 싼따스칼라,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실 때, 계시던 그 계단을 이 콜스탄트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황후가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 성당 안에다가 두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올라갔다 오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는 다고 하는 그런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틴루트가 그 곳을 기어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기어올라가다가 그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고행으로 구원받고 선행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고 죄 사함 받는 것을 그는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 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종교 개혁의 중요한 핵심 원리가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성경으로" 이 세 가지의 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된다는 놀라운 사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재발견하면 그때 비로소 개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하는 이런 놀이가 있습니다. 말 전하기 게임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사회자가 글을 써서 한 사람이게 줍니다. 그것을 읽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전해야 합니다. 물론 귀에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무엇을 끼고 있습니다. 소리를 크게 전합니다. 제일 마지막에 가는 사람에게는 전혀 엉뚱한 말이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분명히 "동서남북"을 전했는데 제일 마지막 사람은 "도라무깡"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집 아기가 감기가 들었다"고 전했는데 저 뒤에 가서는 "우리 집 개가 배탈이 났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기록된 분명한 것이 분명히 내 눈앞에 없으면 이렇게 변질 될 수 있습니다. 말로 전해지는 것, 소문으로 전해지는 것, 이것은 언제든지 변형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팽개쳐 두면 모든 것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개혁하는 신앙을 원하십니까 말씀을 재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괜히 복잡하게 이것 저 것을 손대지 마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다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돌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고쳐야 되며, 무엇을 바로 잡아야 될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참으로 헛되지 않도록, 헛된 소리를 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도하면 길을 잃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1:8절 말씀입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재발견하면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분명한 개혁이 바로 그 곳에서부터 진행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가을에 더욱 성경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맞지 않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거든 성경 속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성경 속에서 발견된 모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참된 개혁의 길로 인도하여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성경을 팽개쳐 두지 마시고 새롭게 재발견하여 성경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개혁시키는 은혜를 발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참된 개혁은 성경 속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나아가서는 잘못된 자아를 다시 발견하고 고치게 해 주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자아를 재발견하게 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자아의 재발견" 19절 말씀입니다.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 " 여러분 여기서 옷을 찢는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그런 모습의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재발견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반이 읽을 때, 개혁은 바로 요시야 왕의 마음에서부터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옷을 찢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1년 동안 많은 개혁을 했습니다. 유상 재단을 허물고 우상 숭배자들의 무덤을 파헤칠 때도 한번도 요시야는 옷을 찢지 않았습니다. 모든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가 서게 될 때, 그는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누추하고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고 옷을 찢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요나선지는 니누에서 사람들이 모든 죽어 마땅한 죄인인 줄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닷잇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러나 풍랑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말씀에 불순종한 것을 깨닫습니다. 자기 때문에 풍랑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원인이 자기에서 있는 것을 알고 그는 소리 칩니다. "나를 던지시오. " 나를 던지라고 말하던 요나, 그는 자기를 재발견했던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저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게 해 주시옵소서. " 아무리 기도해도 세상이 조금도 변화지 않습니다. 답답해서 그는 기도를 이렇게 고쳤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너무 크게 기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면 좋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 시간이 흘렸는데 한 사람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늙어진 다음에 그는 시간이 얼마 없는 것을 알고 그는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주님 지금까지 내가 잘못 기도했나이다. 주여, 내가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원합니다. 저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
그러나 그는 너무 기도가 늦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탄식합니다. "내가 처음부터 했었으면 다른 사람도 변화시키고 세상도 변화시킬 수 있었을 것을 이제야 참된 기도를 하는 구나!"라고 하고 탄식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 눈에 사회 재도가 잘못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돼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환경이 잘못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잘못되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사회 개혁, 재도 개혁보다 시급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의 개혁은 우리 속에서부터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주님을 믿고 제일 먼제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입니까
"죄인 중에 내가 죄수로다. " 주님 만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에 자기가 참된 죄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합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 그는 자신 속의 누추함과 부족함과 더러움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사람들은 멱살을 잡고, 옷을 찢고 싶은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더러는 정치가의 옷을 잡고 그것을 찢기 원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저 사람들이 정치를 못해서 그렇다고 옷을 찢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은 경제인들의 옷을 찢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은 의료인들의 옷마져 찢으려고 하고, 더러는 약사의 옷을 찢으려고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때문이라고 말을 하며, 여기저기에 사람들의 멱살을 쥐고 옷을 찢으려고 하는 시도를 하는 것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개혁하는 신앙은 요시야처럼 자신의 옷을 찢습니다. "내 탓이요. "하면서 자기 속에 있는 허물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구의 옷을 잡고 있습니까 누구의 옷을 찢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그러나 요시야처럼 우리의 옷을 먼저 찢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우리의 죄를 먼저 주님 앞에 회개합시다. 사회가 잘못된 것을 사회로 돌리지 말고, 나라가 잘못되는 이유를 나라로 돌리지 말고, 바로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지 못하여 그렇게 되었다. 성도들이 나라를 위하여 주님 앞에 부르짖지 못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우리가 바로 살지를 못하고, 우리가 바로 그들을 가르치지 못하고, 우리가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우리의 옷을 찢는 우리 자아를 재발견하는 귀한 종교 개혁 주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재발견한 요시야는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서는 자신의 사명을 재발견했습니다. "사명의 재발견" 자신을 왕으로 세운 것은 바로 백성들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하여 참된 모습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을 섬기도록 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세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 있는 귀한 사명을 그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33절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을 다 제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 열조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 말씀을 통하여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확신한 말틴루트, 그는 자기만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말씀 앞에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또 자기의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1517년 10월 31일 95개 주항을 비텐부르크 성당에 붙였습니다. 종교 개혁을 시도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바른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이런 개혁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3년 뒤에 교황은 그에게 교서 하나를 보냈습니다.
2단 종교의 교서입니다. 2단으로 정제되면 그는 죽은목숨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 교서를 받아 든 말틴루트는 비텐부르크 대학에 제자들과 교수들이 있는 가운데 불태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조금도 위축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521년 보름스 국회에 소완을 당했습니다.
그 앞에는 지금 자기가 기록한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찰스5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들이 사실이냐! 아니라고 말 한마디만 하면 살려 주겠노라. 용서해 주겠노라!" 살기 등등한 국회 앞에서 말틴루트는 조금도 위축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내 잘못이 성경에 의해서 증명되지 않는 한, 내 주장을 절대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내 양심은 성경에 붙잡혀 있습니다.
나는 양심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주님, 나는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나를 도와주옵소서. " 이렇게 담대하게 고백을 하고 보름스 국회를 빠져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명을 위하여 개혁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개혁은 이렇게 시작하여 온 유럽의 영원의 불길처럼 타올랐습니다. 스위치, 영국, 스코틀랜드, 프랑스, 미국까지 이 귀한 개혁 신앙에 전파는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싣고 간 그 귀한 개혁 신앙은 미국을 세웠고, 미국에서부터 이어 나온 모든 놀라운 선교 운동에 의하여 우리 한국까지 개혁 신앙이 전파되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그 신앙을 받은 우리가 바로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 들이 역사를 이렇게 분류합니다. 고대, 중세, 근를 분류하는 방법이 있는데 고대는 바로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를 그렇게 고대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중세는 종교 개혁이 시작된 1517년까지를 중세로 보았습니다.
이 어두운 천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바로 이 암흑기와 봉건시대에는 한 사람, 말틴루트가 말씀을 재발견하고 자신을 재발견하고, 사명을 재발견하여 목숨을 각오하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으로라는 말을 외쳤을 때, 중세는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개혁 신앙과 함께 근세의 새 아침이 동트고 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개혁하는 신앙은 내가 매일 내 사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왔습니다. 루트처럼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이 땅에 왔습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하기 위하여 주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품을 떠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을 증거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서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가 이 땅에 펼쳐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한 사람 요시야가 유대를 개혁했습니다. 한 사람 루트가 잘못된 종교를 개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 사람 때문에 가정이 새로워지고, 직장이 새로워지고, 교회가 새로워지고, 마을이 새로워지고, 나라가 새로워지도록 하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개혁 교회에 성도들입니다. 개혁 교회의 성도들은 언제나 고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노래 가사가 있습니다. "사랑을 쓰려면 연필로 쓰세요. 언제나 지우개로 지워야 되니까요. " 이런 가사가 여러분 기억이 나십니까 여러분 개혁 교회의 성도는 날마다 연필로 씁니다. 자기의 주장을 연필로 쓰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생각을 연필로 쓰는 사람이 자기 고집과, 이론과, 철학을 연필로 쓰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언제든지 지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잉크로 쓰지 마십시오. 내 생각과 주장은 언제든지 바꾸어 질 수 있습니다.
내 철학도 언제든지 쓸데없는 생각이 될 수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만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 말씀 앞에 내 삶을 항상 비추어 보고 언제라도 고칠 수 있는 자세로 살아가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루트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발견할 기대를 가지고 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기든 다른 사람의 옷을 찢지 말고, 자신의 옷을 찢읍시다. 회개하며 자아를 새롭게 발견합시다.
그리고 내가 마땅히 발견해야 할 사명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루트처럼 담대히 말씀을 증거 하십시오. 절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 고쳐야 될 것들을 과감히 고쳐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루트처럼 "내 양심은 성경에 붙잡혀 있습니다.
나는 양심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 이렇게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 양심은 성경에 붙잡혀 있습니다. 나는 양심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 이런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틴루트 한 사람 때문에 복음과 함께 근세가 동터 왔듯이 요시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 백성 전체가 여호와 하나님께 복종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듯이 바로 우리 한 사람 때문에 우리 가정이 변화하고, 사회가 변화하고, 직장이 변화하고, 나라가 변화하고 세상이 변화하는 축복이 개혁하는 신앙으로 살기를 원하는 성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세상 문화의 흐름을 잘 보시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제가 문제를 하나 내도록 하겠습니다.
이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정현"이라는 신세대 가수입니다. 대단히 인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가수가 부른 재미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는 이렇게 됩니다.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런 가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좀 바꾸기를 원합니다. 한번 변화시켜 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는 옛날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연세가 높으신 분들은 자유당 정권 때 벽보에 붙어 있던 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못살겠다. 갈아 보자. 죽기 전에 살길을 찾자" 요즘 광고에 등장하는 카피가 있습니다. 이 카피는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카피입니다. 그것은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 변화와 개혁이 얼마나 중요해서 변화와 개혁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무조건 다 바꾸는 것은 곤란합니다.
무조건 다 바꾸고, 무조건 개혁해 버리면 잘못하면 옛날보다 훨씬 더 못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열심히 바꾸어 보아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개혁한다고 해도 껍데기만 개혁할 뿐 알맹이는 손도 대지 못하는 개혁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바꾸되 바로 바꾸어야 합니다. 개혁하되 분명한 원칙에 맞게 해야 합니다. 갈아치우되 분명한 철학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변화와 개혁의 원칙을 성경이 제공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 성경 위에 건설된 믿음이 바른 개혁과 바른 변화를 추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좀 답답하다. 예수 믿는 사람은 고집 불통이다. "라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만나는 사람은 고집 불통이 아닙니다. 변함없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은 변해야 되는 믿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데, 변화 시켜야 되는 것은 아주 서슴지 않고 과감하게 변화하고 자기를 변혁시켜 나가는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바꾸는 원리를 성경 속에서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갈 수 있는 용기를 믿음이 주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꾸었습니다. 사께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철학들, 모습들을 다 바꾸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주변을 원칙에 맞게, 말씀에 맞게 개혁시켜 주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어스팀파 신부이면서, 비텐부르크 대학의 교수였던 말틴 루트가 1517년 비텐부르크 성당의 벽에 그 당시 잘못된 로마 천주교의 잘못된 점, 95가지를 벽에 붙임으로 시작했던 종교개혁이 일어 난지 무려 483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교회를 우리는 흔히 대신 교회, 혹은 개혁 교회라고 말을 합니다. 개혁 교회를 영어로 쓰면 이렇게 됩니다. 바로 "Reformed Church"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좀 문제가 있는 번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개혁된 교회,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개혁 교회의 의미는 바로 그 아래에 있는 글, "Reforming Church" 다시 말하면 "지금도 개혁하고 있는 교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쉴새 없이 변화시켜 나가고 변혁하고, 개혁시켜 나가는 그런 신앙을 가진 교회가 바로 개혁 교회입니다. 우리는 다 개혁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종교 개혁의 전통을 이어가는 개혁하는 신앙으로 성숙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남왕국 16번째 임금으로 아주 어린 "요시야"라고 하는 임금이 등급을 했습니다. 그는 8세 때, 아주 어린 나이로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이 볼 때, 마지막 등불과도 같은 아주 중요한 왕이었습니다. 그가 20살이 되었을 때, 드디어 잘못된 나라를 개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수많은 제단이 있었는데 그 제단을 다 부수었습니다.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까지도 다 부수고 불을 태웠습니다. 심지어 우상을 섬기다가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무덤을 다 파헤쳤습니다.
그리고 뼈들을 부수고 불태웠습니다. 이런 개혁을 6년 동안 했습니다. 그리고 26살이 되었을 때는 그 동안 200년 동안에 방치되었던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했지만, 다분히 외형적인 개혁을 계속 단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상 제단은 부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그 우상을 섬기는 마음은 부수지 못했습니다.
우상은 부수었지만, 사람들이 우상 숭배하려고 하는 의도는 다 부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보다 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바로 우리에게 종교 개혁의 기본 원리와 개혁하는 신앙의 참된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말씀의 제 발견입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연보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요시야 왕이 우상 제단도 부수고, 상전도 수리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것을 개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말한 것은 껍데기의 개혁입니다.
형식의 개혁입니다. 요즘 쓰는 말로 말하면 "하드웨어"의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개혁의 알맹이가 되는 그 내용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개혁의 중심이 되는 말씀이 재발견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소프트웨어"가 드디어 발견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컴퓨터가 비싸고, 훌륭하고 좋다고 해도 컴퓨터 안에 프로그램이 없으면 컴퓨터의 기능은 발휘될 수가 없는 것처럼, 참된 개혁은 여호와 하나님 말씀의 제 발견과 함께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200년 동안이나 팽개쳐 있었습니다. 이 전왕인 므낫세나, 아몬 같은 왕들은 말씀을 버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우상을 섬기던 그런 악한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종교 개혁이 일어날 그 당시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로마 천주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팽개쳐 두고, 교황의 권위만을 계속 올렸습니다. 그리고 교회 치장에만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교황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여러분 고등학교 때 배우셨을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바로 "레오 10세"입니다. 이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을 지어 나갔습니다. 훌륭하게 생긴 아름다운 성 베드로 성당을 여러분이 지금 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성당을 지어 나가는데 돈이 부족했습니다. 부족하다 보니 성경에 없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면제부라고 하는 것을 팔게 되었는데 테첼이라는 신부를 통해서 종을 흔들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말을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 면제부를 사시면 죄를 사함 받습니다. 여러분 혹시 부모님들이나 형제들 친척들 가운데 예수를 믿지 않고 연옥에 간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 만약에 이 면제부 한 장만 사면 떨어지는 순간에 연옥에 있던 영혼들이 날아서 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 이렇게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대하여 말틴루트는 말을 분명히 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사함 받습니다. 믿음으로 죄를 사함 받습니다. 면제부는 필요가 없습니다. " 그 당시 사람들은 교황의 말만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말틴루트는 잃어버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제 발견했습니다.
기가 비텐부르크 대학에서 로마서를 강의하고 있었을 때, 그는 "오직 의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제 발견했습니다.
그가 1510년 로마에 성 과테란 교회에 갔을 때 일입니다. 이 교회는 저 멀리 예루살렘에 있는 빌라도 총독 관제에 있었던 싼따스칼라,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실 때, 계시던 그 계단을 이 콜스탄트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황후가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 성당 안에다가 두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올라갔다 오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는 다고 하는 그런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틴루트가 그 곳을 기어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기어올라가다가 그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고행으로 구원받고 선행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고 죄 사함 받는 것을 그는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 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종교 개혁의 중요한 핵심 원리가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성경으로" 이 세 가지의 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된다는 놀라운 사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재발견하면 그때 비로소 개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하는 이런 놀이가 있습니다. 말 전하기 게임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사회자가 글을 써서 한 사람이게 줍니다. 그것을 읽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전해야 합니다. 물론 귀에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무엇을 끼고 있습니다. 소리를 크게 전합니다. 제일 마지막에 가는 사람에게는 전혀 엉뚱한 말이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분명히 "동서남북"을 전했는데 제일 마지막 사람은 "도라무깡"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집 아기가 감기가 들었다"고 전했는데 저 뒤에 가서는 "우리 집 개가 배탈이 났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기록된 분명한 것이 분명히 내 눈앞에 없으면 이렇게 변질 될 수 있습니다. 말로 전해지는 것, 소문으로 전해지는 것, 이것은 언제든지 변형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팽개쳐 두면 모든 것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개혁하는 신앙을 원하십니까 말씀을 재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괜히 복잡하게 이것 저 것을 손대지 마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다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돌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고쳐야 되며, 무엇을 바로 잡아야 될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참으로 헛되지 않도록, 헛된 소리를 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도하면 길을 잃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1:8절 말씀입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재발견하면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분명한 개혁이 바로 그 곳에서부터 진행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가을에 더욱 성경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맞지 않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거든 성경 속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성경 속에서 발견된 모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참된 개혁의 길로 인도하여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성경을 팽개쳐 두지 마시고 새롭게 재발견하여 성경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개혁시키는 은혜를 발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참된 개혁은 성경 속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나아가서는 잘못된 자아를 다시 발견하고 고치게 해 주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자아를 재발견하게 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자아의 재발견" 19절 말씀입니다.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 " 여러분 여기서 옷을 찢는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그런 모습의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재발견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반이 읽을 때, 개혁은 바로 요시야 왕의 마음에서부터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옷을 찢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1년 동안 많은 개혁을 했습니다. 유상 재단을 허물고 우상 숭배자들의 무덤을 파헤칠 때도 한번도 요시야는 옷을 찢지 않았습니다. 모든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가 서게 될 때, 그는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누추하고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고 옷을 찢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요나선지는 니누에서 사람들이 모든 죽어 마땅한 죄인인 줄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닷잇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러나 풍랑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말씀에 불순종한 것을 깨닫습니다. 자기 때문에 풍랑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원인이 자기에서 있는 것을 알고 그는 소리 칩니다. "나를 던지시오. " 나를 던지라고 말하던 요나, 그는 자기를 재발견했던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저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게 해 주시옵소서. " 아무리 기도해도 세상이 조금도 변화지 않습니다. 답답해서 그는 기도를 이렇게 고쳤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너무 크게 기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면 좋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 시간이 흘렸는데 한 사람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늙어진 다음에 그는 시간이 얼마 없는 것을 알고 그는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주님 지금까지 내가 잘못 기도했나이다. 주여, 내가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원합니다. 저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
그러나 그는 너무 기도가 늦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탄식합니다. "내가 처음부터 했었으면 다른 사람도 변화시키고 세상도 변화시킬 수 있었을 것을 이제야 참된 기도를 하는 구나!"라고 하고 탄식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 눈에 사회 재도가 잘못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돼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환경이 잘못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잘못되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사회 개혁, 재도 개혁보다 시급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의 개혁은 우리 속에서부터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주님을 믿고 제일 먼제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입니까
"죄인 중에 내가 죄수로다. " 주님 만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에 자기가 참된 죄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합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 그는 자신 속의 누추함과 부족함과 더러움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사람들은 멱살을 잡고, 옷을 찢고 싶은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더러는 정치가의 옷을 잡고 그것을 찢기 원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저 사람들이 정치를 못해서 그렇다고 옷을 찢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은 경제인들의 옷을 찢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은 의료인들의 옷마져 찢으려고 하고, 더러는 약사의 옷을 찢으려고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때문이라고 말을 하며, 여기저기에 사람들의 멱살을 쥐고 옷을 찢으려고 하는 시도를 하는 것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개혁하는 신앙은 요시야처럼 자신의 옷을 찢습니다. "내 탓이요. "하면서 자기 속에 있는 허물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구의 옷을 잡고 있습니까 누구의 옷을 찢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그러나 요시야처럼 우리의 옷을 먼저 찢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우리의 죄를 먼저 주님 앞에 회개합시다. 사회가 잘못된 것을 사회로 돌리지 말고, 나라가 잘못되는 이유를 나라로 돌리지 말고, 바로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지 못하여 그렇게 되었다. 성도들이 나라를 위하여 주님 앞에 부르짖지 못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우리가 바로 살지를 못하고, 우리가 바로 그들을 가르치지 못하고, 우리가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우리의 옷을 찢는 우리 자아를 재발견하는 귀한 종교 개혁 주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재발견한 요시야는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서는 자신의 사명을 재발견했습니다. "사명의 재발견" 자신을 왕으로 세운 것은 바로 백성들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하여 참된 모습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을 섬기도록 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세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 있는 귀한 사명을 그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33절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을 다 제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 열조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 말씀을 통하여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확신한 말틴루트, 그는 자기만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말씀 앞에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또 자기의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1517년 10월 31일 95개 주항을 비텐부르크 성당에 붙였습니다. 종교 개혁을 시도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바른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이런 개혁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3년 뒤에 교황은 그에게 교서 하나를 보냈습니다.
2단 종교의 교서입니다. 2단으로 정제되면 그는 죽은목숨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 교서를 받아 든 말틴루트는 비텐부르크 대학에 제자들과 교수들이 있는 가운데 불태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조금도 위축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521년 보름스 국회에 소완을 당했습니다.
그 앞에는 지금 자기가 기록한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찰스5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들이 사실이냐! 아니라고 말 한마디만 하면 살려 주겠노라. 용서해 주겠노라!" 살기 등등한 국회 앞에서 말틴루트는 조금도 위축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내 잘못이 성경에 의해서 증명되지 않는 한, 내 주장을 절대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내 양심은 성경에 붙잡혀 있습니다.
나는 양심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주님, 나는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나를 도와주옵소서. " 이렇게 담대하게 고백을 하고 보름스 국회를 빠져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명을 위하여 개혁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개혁은 이렇게 시작하여 온 유럽의 영원의 불길처럼 타올랐습니다. 스위치, 영국, 스코틀랜드, 프랑스, 미국까지 이 귀한 개혁 신앙에 전파는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싣고 간 그 귀한 개혁 신앙은 미국을 세웠고, 미국에서부터 이어 나온 모든 놀라운 선교 운동에 의하여 우리 한국까지 개혁 신앙이 전파되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그 신앙을 받은 우리가 바로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 들이 역사를 이렇게 분류합니다. 고대, 중세, 근를 분류하는 방법이 있는데 고대는 바로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를 그렇게 고대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중세는 종교 개혁이 시작된 1517년까지를 중세로 보았습니다.
이 어두운 천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바로 이 암흑기와 봉건시대에는 한 사람, 말틴루트가 말씀을 재발견하고 자신을 재발견하고, 사명을 재발견하여 목숨을 각오하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으로라는 말을 외쳤을 때, 중세는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개혁 신앙과 함께 근세의 새 아침이 동트고 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개혁하는 신앙은 내가 매일 내 사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왔습니다. 루트처럼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이 땅에 왔습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하기 위하여 주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품을 떠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을 증거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서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가 이 땅에 펼쳐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한 사람 요시야가 유대를 개혁했습니다. 한 사람 루트가 잘못된 종교를 개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 사람 때문에 가정이 새로워지고, 직장이 새로워지고, 교회가 새로워지고, 마을이 새로워지고, 나라가 새로워지도록 하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개혁 교회에 성도들입니다. 개혁 교회의 성도들은 언제나 고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노래 가사가 있습니다. "사랑을 쓰려면 연필로 쓰세요. 언제나 지우개로 지워야 되니까요. " 이런 가사가 여러분 기억이 나십니까 여러분 개혁 교회의 성도는 날마다 연필로 씁니다. 자기의 주장을 연필로 쓰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생각을 연필로 쓰는 사람이 자기 고집과, 이론과, 철학을 연필로 쓰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언제든지 지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잉크로 쓰지 마십시오. 내 생각과 주장은 언제든지 바꾸어 질 수 있습니다.
내 철학도 언제든지 쓸데없는 생각이 될 수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만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 말씀 앞에 내 삶을 항상 비추어 보고 언제라도 고칠 수 있는 자세로 살아가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루트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발견할 기대를 가지고 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기든 다른 사람의 옷을 찢지 말고, 자신의 옷을 찢읍시다. 회개하며 자아를 새롭게 발견합시다.
그리고 내가 마땅히 발견해야 할 사명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루트처럼 담대히 말씀을 증거 하십시오. 절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 고쳐야 될 것들을 과감히 고쳐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루트처럼 "내 양심은 성경에 붙잡혀 있습니다.
나는 양심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 이렇게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 양심은 성경에 붙잡혀 있습니다. 나는 양심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 이런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틴루트 한 사람 때문에 복음과 함께 근세가 동터 왔듯이 요시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 백성 전체가 여호와 하나님께 복종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듯이 바로 우리 한 사람 때문에 우리 가정이 변화하고, 사회가 변화하고, 직장이 변화하고, 나라가 변화하고 세상이 변화하는 축복이 개혁하는 신앙으로 살기를 원하는 성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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