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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너 자신을 개혁하라

본문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으고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다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애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 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는 자들로 다 이에 참가하게 하매 예루살렘 거민이 여호와 하나님 곧 그 열조의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좇으니라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을 다 제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 열조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공기나 물인 경우에 압이 높은 쪽에서 압이 약한 쪽으로 밀고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 역사를 보면 영적인 기운이 아주 충만했을 때 그 영적인 기운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영적으로 변화시켜갔던 것을 보게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힘이 쇠약했을 때 세상적인 힘이 교회 안으로 밀고 들어와 그로 말미암아서 교회가 세속화되어지고 타락했던 역사를 보게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은 기독교가 전래된지 이제 100년 조금 넘었습니다. 짧은 기독교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교회는 외형적으로는 무척 성장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봤을 때, 우리 한국 교회는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교회가 바로 종교 개혁이 필요한 그런 교회라는 말들을 많이 듣습니다. 이제는 세상 사람들에게까지 비난을 들어야 되는 그런 판국에 이르렀다고 보아집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성령충만이라는 말을 참 많이 떠들었는데 그 성령충만이라는 말 자체에 상당한 부분에서 오해하고 있었던 점들이 있음을 우리가 인정을 해야합니다. 한국 교회가 성령 충만하고, 은혜 충만하고, 말씀 충만한 교회였다고 한다면 우리 한국 교회는 분명히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를 향해서 강한 영향력을 미쳤어야 했고 그 강한 영향력을 통해서 사회를 변혁시키고 변화시켜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는 그럴 힘을 상실해버렸습니다. 오히려 사회의 기운이, 세속적인 힘이 교회를 세속화시키고 타락시키고 변질시키는 그런 모습들을 보게됩니다.
지난 9월에는 한국에 중요한 교단들의 총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단들의 총회 결과들에 대해서 기독교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을 보면 정말 세속정치판에서 일어나는 부끄러운 추태들이 기독교 교단 정치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교단에는 신구파가 갈등을 일으키며 그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 어떤 교단에는 주류와 비주류가 있는데 서로 모함하고 상대방을 매수했다, 어떤 교단은 아예 교단이 둘로 쪼개어졌다는 부끄러운 기사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도 가장 좋은 신앙적인 전통을 가졌다고 자랑을 하면서도 우리 교단 안에 두 개의 큰 파벌이 계속해서 교회를 병들게하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교회가 부패하고 썩었으니까 교회를 개혁시켜야된다는 개혁파들조차도 썩어있는 모습을 지난 9월 총회에서 목격할 수가 있었습니다. 입으로는 개혁을 부르짖는데 그들의 행동은 전혀 반 개혁적인 그런 작태들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저들은 사람만 속이는 것이 아니고 사람도 속이고 여호와 하나님도 속이고 우롱하는 짓을 한다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개혁파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두 목사에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했다해서 그 사람들이 들을 사람들도 아니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이 개혁을 부르짖어도 당신 두 사람은 입으로 개혁을 부르짖지 말라고 따끔하게 책망을 했습니다. 정말 개혁을 해야될 대상은 너가 아니라 바로 썩어 문드러진 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타도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서 상대방을 모함하고 흑색 선전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자기는 개혁자라고 부르짖는 참 웃지 못할 일들이 우리 한국 교회에 전개되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1. 16세기 종교개혁
지금부터 483년전 10월 31일은 독일의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 교회 문 앞에 95개항에 걸친 교회가 이래서 되겠느냐 우리 이런 문제를 가지고 한번 토론해보자는 토론의 주제 95가지를 나열해서 문 앞에 걸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전 유럽이 개혁의 물결 속에 휩쓸려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천년동안 부패하고 타락하고 썩어 있던 그 교회를 향해서 마틴 루터의 이 외침이 잠자던 교회를 깨우고 잠자던 유럽의 역사를 깨우는 사건이 되어졌습니다. 교회가 영적으로 새로운 힘을 회복하게 되니까 그 교회의 영적인 힘, 영적인 기운이 천년동안 잠자던 구라파 사회를 변화시키고 변혁시켰던 그런 사건을 보게됩니다.
여러분 종교 개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적인 원인은 로마 교황이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서 면죄부를 판매했습니다. 이 면죄부는 성경에 전혀 없는 사실을 사실인 것처럼 왜곡시키고 교황청의 수입을 올리기 위한 하나의 제도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영혼들을 위해서 이 면죄부를 사면 세상에서 어떤 죄를 지어도 다 용서함을 받는다. 죄를 면할 수 있다. 설사 너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가 죄를 지어서 지옥에 떨어져있다 하더라도 너가 이 면죄부를 사고 헌금함에 헌금을 집어넣는 순간에, 돈이 헌금함 밑바닥에 땡그랑 떨어지는 그 순간에 지옥에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연옥으로 올라올 수 있고 연옥에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천당으로 갈 수 있다는 사기를 전 유럽에 있는 교인들을 상대로 해서 치게되어졌습니다.
성경을 왜곡해서 가르치고, 교인들을 성경의 진리대로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권주의가 판을 치면서 성직을 사고 파는 성직 매매 현상이 생겼습니다. 성직자의 무지와 타락 비도덕적인 생활 이런 것이 유럽교회를 타락시켰을 때 마틴 루터는 세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내걸고 종교개혁을 시도했습니다. 첫 번째는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자. 성경으로 돌아가자. 교황의 말도 교회의 어떤 결정도 성경보다 위에 둘 수 없다. 성경이 우리 신앙의 기준이요 표준이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장로교의 시조인 존 칼빈 같은 성경을 떠나서 신앙을 논하는 자는 바로 광신자이거나 미치광이다 이렇게 주장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도, 칼빈도, 쯔빙글리도 전부 성경으로 돌아가자. 우리의 신앙이 올바른 신앙을 회복되기 위해서 성경을 통해서 성령 앞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그 당시 카톨릭에서는 소위 말하는 행위 구원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강조를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행위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의롭다 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이신득의의 사상을 강조했습니다. 그 다음 세 번째 만인 제사장 사상이었습니다. 카톨릭에는 고해성사라는 제도를 통해서 죄 사함의 기도는 본인이 직접 여호와 하나님 앞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신부를 통해서 자기 모든 죄를 다 고하고 신부가 죄사함의 용서의 기도를 할 수 있다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지금도 카톨릭에서는 이 고해성사 제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고해성사 제도는 어떻게 보면 구약의 제도였습니다. 구약의 대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는 그런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를 보면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자신 그 누구나 여호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제사장 이론, 소위 만인 제사장 사상은 카톨릭의 성직 제도에 대한 부패와 타락을 지적하는 그런 사상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 유럽의 교회는 자던 잠을 깨고 일어나서 그 시대를 변화시켰던 그런 중요한 사건이 16세기 유럽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몇 차례 개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특별히 유다 나라에 있었습니다. 아사왕의 종교개혁, 히스기야 왕의 종교 개혁 그리고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을 들 수가 있습니다.
2.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오늘 본문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 역대하 34장 35장은 이스라엘의 왕 요시야의 종교 개혁을 다루고 있습니다. 허물어져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책이 발견되어졌고 그 율법책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들을 바로 세우고 자신들의 신앙을 다시 재 적립시키는 그런 장면이 오늘 34장 35장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요시아 왕이 즉위했을 때는 이 남쪽 왕국 유다는 수많은 정치적 종교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서 강대국의 침략 위협에 시달리게 되어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은 내 팽개쳐졌고 성전 마당에는 우상이 들어와 있었고 성전은 훼파되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우상을 섬기고 우상을 좇는 일에 더 몰두했습니다.
요시야 왕의 아버지 아몬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이 아몬이라는 왕은 매우 사악한 왕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았고, 우상숭배를 조장했던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단군 신상 문제 때문에 굉장히 시끄러운데 사실 이 단군 신상을 교육기관인 학교에 세우는 것도 어쩌면 구약시대 유다 나라의 타락한 우상 숭배를 방조하던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요시야 왕의 아버지 아몬은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하고 타락된 왕의 모습으로 살았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이 굉장히 비참했습니다. 자기 왕들이 묻히는 무덤에 묻히지도 못하고 버림받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실패를 보고 왕위에 올랐던 요시야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철두철미한 종교개혁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 33절을 주목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을 다 제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 열조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그랬습니다. 나라가 영적으로 바로 세워졌다는 것을 여기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요시야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관심하게 내버려두었던 성전을 수리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교회를 너무너무 호화롭게 지어서 사회의 지탄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교회에 들어가면 이게 창고인지 교회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교회를 형편없이 해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재정적으로 힘들어서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자기 집들은 깔끔하게 깨끗하게 잘 단장해놓고 정리하면서 교회는 그냥 창고처럼 해놓고 있다면 그것은 합당하지 않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물론 교회가 우리 믿음의 대상은 아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집인 이 교회를 깨끗하게 잘 관리하는게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타락했을 때 교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요시야가 즉위했을 때 먼저 교회당을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성전을 수리하는 개혁을 추진하다 보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책, 여호와 하나님 말씀 성경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성경을 읽으니까 여호와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분명히 거기에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재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본문 말씀은 보여줍니다.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발견하고 그 말씀을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불러모읍니다. 장로들을 불러모읍니다. 29절부터 31절을 봅시다.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불러모으고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다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왕이 그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그 말씀을 낭독해서 모인 모든 사람으로 그 말씀을 다 듣게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백성들이 그 말씀을 다지켜 행하게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듣는 것으로 그친다면 안됩니다. 우리가 들은 말씀을 우리 생활에 그대로 순종함으로 실천함으로 말씀을 지킬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당시에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우상을 섬겼습니다. 신상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성전 중심의 신앙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성전은 그냥 훼파된 상태로 내버려두고 그들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내 팽개치고 말씀 아닌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른 신앙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무엇인가 하면 나의 신앙이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인가
나의 신앙이 성경말씀 중심의 신앙인가 나의 신앙이 교회 중심의 신앙인가 이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했을 때 이 세 가지 신앙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지금 문제가 있는 신앙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시야 왕은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들려주었고 그 말씀을 듣고 실천하게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요시야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께 복종하였고 여호와께 떠나지 아니하였다 그랬습니다.
그 다음 또 있어진 중요한 사건은 유월절을 지키는 사건이 35장에 보면 나옵니다. 35장 1절 요시야가 예루살렘 여호와 앞에서 유월절을 지켜 정월 십사일에 유월절 어린양을 잡으니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6절에 스스로 성결케 하고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그랬습니다. 그 다음 7절에는 요시야가 유월절 제물을 내어줍니다. 8절에는 방백들이 즐거이 희생 제물을 유월절 제물로 내어줍니다. 9절에는 레위 사람들과 또 다른 사람들이 유월절 제물을 내어놓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유월절을 지켰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유월절을 다시 지켰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유월절은 이스라엘 역사에 잊을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빠져나온 놀라운 역사적인 이야기가 거기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를 때 죽음의 사자가 문설주에 피가 발라져 있는 집을 들어가지 않고 넘어 간다해서 유월절이라는 절기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문설주에 피가 발라져있는 집은 다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이 피는 어린양 예수의 피를 상징합니다. 주님의 보혈의 피가 발라져있는 사람은 죽음을 면하고 영생을 얻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해방 기념일임과 동시에 구원 기념일이고 감사의 절기입니다. 유월절을 다시 지키게 했다. 잊어버렸던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되새기게 했고 그들의 삶속에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게 하는 놀라운 절기였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합니다.
그 다음 요시야 왕이 종교 개혁을 시도하면서 또 한가지 보여 주었던 중요한 사실은 제사장의 직분을 회복시켰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성전이 훼파되어지고 허물어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지 않고 자기들의 삶을 그냥 엉망진창으로 우상을 섬기고 신상을 섬기는 그런 것을 통해서 거룩하게 구별되어졌던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제사의 직분을 감당했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더 이상 성전에 머물 수가 없었고 그냥 뿔뿔이 흩어져서 소위 말해서 업종 전환을 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장사를 하는 사람도 생겼을 것이고 농사를 짓는 사람도 생겼을 것이고 목축업을 하는 사람도 생겼을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 사사기에 보면 레위인과 제사장이 타락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백성을 위해서 택함 받은 제사장과 레위지파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십일조와 예물을 가지고 생활을 할 수가 없어서 직업을 바꾸어버렸습니다. 엉뚱한 행동을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간음을 하고 첩을 얻는 타락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어떤 분이 찾아와서 월부 책을 사달라고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월부 책장사치고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 사람은 전직 목사였습니다. 목사가 목사의 직분을 수행하지 않고 월부 책장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우리 한국에 얼마나 많은 신학교가 있습니까 수많은 신학교에서 배출되어지는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성직인 목사의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지금 수 백 명, 수천 명의 임지가 없는 목회자들이 한국에 늘어가고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 대전 안에도 전직 목사님이 택시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한국 교회가 그만큼 문제가 많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부름 받았고 목회자로서 훈련받았고 그리고 임직을 받았다면 한평생 그 직분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 직분을 그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월부책 장사가 되어있고 또 다른 어떤 직업으로 업종을 바꾸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 한국 교회가 그만큼 병들어 있다는 단면을 보여줍니다.
요시야 왕은 종교개혁을 시도하면서 이렇게 했습니다. 여러분 35장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제사장들에게 그 직분을 맡기고 면려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사무를 행하게 하고 또 여호와 앞에 구별되어서 온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에게 이르되 거룩한 궤를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건축한 전 가운데 두고 다시는 너희 어깨에 메지 말고 마땅히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와 그 백성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라 그랬습니다. 그 다음 6절에서는 스스로 성결케하고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너희 형제를 위하여 예비되는 여호와께서 모세로 전하신 말씀을 좇아 행할지니라 그랬습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레위인은 레위인 직분을 감당하고 제사장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직분자들이 자기 직분을 맡아서 제대로 감당했을 때 이스라엘은 온전한 종교개혁이 시도될 수 있었습니다.
3. 나 자신을 개혁하자.
오늘 본문 말씀을 잘 보시면 세 가지 중요한 회복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말씀이 회복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홀대를 당하고 버림받았던 그 말씀이 성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재발견되어지고 말씀이 회복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삶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두 번째로 유월절을 준비하여 지키게 했습니다. 이 유월절을 준비하여 지킨다. 유월절을 회복시킨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잊지 않고 다시 회복하는 사건입니다. 여러분 삶에 감사를 잊고 사는 분이 있습니까 내가 만약 여호와 하나님 앞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감사하지 못한다면 바로 내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재발견하고 말씀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서 우리 자신이 감사를 회복하는 신앙인 됩니다.
감사를 하지 못하는 신앙인은 바로 영적인 개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 세 번째로 요시야 왕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분을 회복시켰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분을 회복시키고 그 직분을 감당하게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에게 주어져 있는 영적인 직분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흔히들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분을 이야기할 때 교회 목사의 직분만 이야기하기 쉬운데 우리가 신학적인 의미로 봤을 때 목사, 장로, 권사, 집사, 교사, 성가대원,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교회 모든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기의 직분을 재확인하고 그 직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밭교회 모든 직분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직분이 성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두렵고 떨림으로 이 직분을 감당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내가 집사로서의 직분을 감당하지 않고, 내가 장로가 되었으면서도 장로로서의 직분을 감당하지 않고, 권사가 되었으면서도 권사의 직분을 감당하지 않을 때 바로 교회를 훼파하고 허무는, 교회를 타락시키고 부패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를 누가 타락시켰습니까 목사가 타락시켰습니까 아니면 장로가 타락시켰습니까 아니면 평신도가 타락시켰습니까 목사들이 모이는 곳에 가면 한국 교회의 문제는 장로님들에게 다 있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장로들이 골치 아파 장로가 없는 침례교회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목사들이 있습니다. 또 장로들이 모이는 장로연합회같은 곳에 가보면 한국 교회가 타락한 것은 목사들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말도 일리는 있는 말이고 목사들이 들을 때는 아멘으로 받아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진정 한국 교회를 타락시킨 것은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모든 교인들이 다 공범자가 되어서 함께 타락시켰다는 것입니다.
범인은 너가 아니고 바로 나라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않을 때 타락한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목사는 목사로서 자기 자신의 직분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생각하고 그 직분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장로는 장로대로, 권사는 권사대로, 집사는 집사대로, 자기에게 맡겨진 직분을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맡아서 감당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을 통해서 그 직분자들이 그에게 합당한 직분을 맡아서 수행했을 때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다시 온전하게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서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종교 개혁 483주년을 오늘 맞이하면서 이 10월이 다 가는 마지막 주간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다시 세우는, 우리의 흐트러진 영적인 자세를 다시 가다듬는 그런 시간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한밭교회가 정말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교회, 성령이 충만한 교회, 은혜가 충만한 교회, 말씀이 충만한 교회가 되어서 이 지역 사회를 오늘 이 시대를 변혁시켜나가는 그런 변혁과 개혁의 주체세력이 다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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