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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종교개혁의 원리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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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10월 31일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宗敎改革)을 일으킨 지 48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종교개혁(Reformation)이란 말은 마틴 루터로 말미암아 교회사에 기록되게 된 것입니다. 본래 개혁(改革)이란 말은 기존 질서의 타당성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고 다만 그 본래로 되돌아가는 갱신(更新)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개혁이란 말은 혁명이란 말과 구별됩니다. 형(型: form)을 다시(re) 새롭게(reform) 한다는 뜻이 됩니다. 지금의 형(型)을 본래의 형(型)으로 되돌려 놓음을 의미합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경으로의 환원운동이었습니다. 초대교회로의 환원운동이었습니다. 사도적(使徒的) 신앙으로의 환원운동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되돌아가자는 환원운동이었습니다. 우리 함께 중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몇 가지 개혁의 원리를 생각함으로 오늘의 교회운동을 조명해 보기를 원합니다.
1 오직 성경(Sola Scriptura)입니다.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이 주창한 첫 번째 원리와 모토(Motto)는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이것은 중세기 로마 천주교의 잘못된 성경관을 개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 천주교는 성경의 신적 권위를 부인하였습니다.
저들은 말하기를 천주교회가 성경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저들은 주장하기를 성경보다 천주교회가 앞서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천주교회가 없이는 성경이 존재하지 않지만 성경이 없어도 천주교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이라도 천주교가 성경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고 결정하면, 성경은 그 시간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천주교가 성경의 신적 권위를 부인하는 이단사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그렇게 가르치지 아니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 자체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영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이요, 성경의 원저작자가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란 말입니다. 천주교처럼 교회가 성경을 인정함으로 성경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성경 그 자체가 독자적 신임성을 갖고 있습니다. 결코 교회나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인정한다고 결의하므로 성경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존재 문제를 말할 때 사람의 인정여부와 상관없이 여호와 하나님이 스스로 여호와 하나님이 되신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스스로 신적 권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2. 천주교는 신구약 66권 정경(政經) 외에 다른 성경 즉 가경을 갖고 있습니다.
천주교는 도비아서, 유딧서, 마카비상·하,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등 7권의 가경(ajpokrivYa)을 성경 66권에다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는 성경이 73권입니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천사들의 중보, 연옥설, 공덕축적설 등은 모두 이 가경 안에 있습니다. 저들이 이런 가경 혹은 외경을 성경목록에 집어넣은 것은 1546년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30여 명의 주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날 천주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라틴어는 제롬이란 교부가 헬라성경 70인경(LXX)에서 번역한 것인데 그것을 번역한 제롬도 가경을 정경(kanwn)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3. 천주교는 유전을 성경과 동일시합니다.
이 유전은 기록되지 않고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말들인데 이것을 유전 혹은 전승,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이 유전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도적 유전이 있고 또 하나는 교회적 유전으로 천주교회의 결정과 교황의 칙어(선언)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웃기고 재미있는 것은 성경(정경)과 가경, 유전이 서로 모순되고 반대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천주교회는 성경(정경)보다 유전이나 가경에 더 권위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4. 천주교는 성경의 절대 필요성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말하기를 성경의 모든 책과 그 사본이 몽땅 없어진다 할지라도 교회(천주교)는 그리스도의 모든 진리를 그대로 지닐 것이며, 신약성경이 한 글자도 쓰여지기 전처럼 여전히 설교할 것이다. 무릇 이 모든 진리는 교회의 마음과 정신과 기억과 예전 생활과 성사 생활과 또 쓰여졌든 안 쓰여졌든 직접 그리스도께 돌아가는 성전(구전, 전승, 유전)속 깊이 새겨져 있는 까닭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성경이 없어도 된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말인가 천지는 없어져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않으리라하신 주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말이 아닌가 저들은 성경은 폐할 수 없다고 하시던 주님의 말씀을 반역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고 하시던 주님의 말씀에 얼마나 반역하는 사상인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예수님은 성경기록의 목적과 절대 필요성을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저들은 이러한 주님의 뜻에 완전히 반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이심과 또 그를 믿어야 영생을 얻는다고 하는 진리를 가르침에 절대 필요한 생명의 책입니다.
5. 천주교는 성경구독을 금지했습니다.
천주교는 1299년 톨로사회의에서 평신도가 성경을 갖는 것, 읽는 것, 해석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저들은 미사 시간에 신부가 라틴어로 성경을 읽고 강론함으로 회중은 전혀 성경 앞에 암매했습니다. 또한 1897년 1월 25일 교황 레오 13세는 천주교 이외에서 만든 성경을 금하고 특히 성서공회에서 발행하는 성경을 금했습니다. 통일교는 성경 이외에 원리강론을 갖고 있습니다. 몰몬교도 몰몬경을 갖고 있고, 여호와의 증인은 럿셀이 쓴 7권의 성서연구를 갖고 있습니다. 성경을 가감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그렇다면 천주교야말로 이단의 괴수입니다. 성경의 신적 권위를 부인하고 정경인 성경 외에 가경과 구전을 성경보다 앞세우고, 모든 성경은 없어져도 좋다고 하는 성경 무용론 내지 성경 불필요성을 주장하는 천주교가 어찌 이단의 괴수가 아니겠는가 저들은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해당되는 자들입니다. 성경 외의 것을 더하고, 성경에 있는 것을 제해 버린 자들로서 저주를 받고 말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진리의 근원과 기준을 가져다주는 것은 오직 성경(66권)밖에 없음을 주장했습니다. 죄인들에게 은혜와 구원을 전달해 주고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바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오직 성경밖에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개혁의 봉화를 들기 1년 전인 1516년에 이미 이런 고백을 한 바 있습니다. 나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사로잡힌 포로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도 바울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잡혀 돌아다니던 모습을 연상시켜 주고 있습니다(행 15: ). 루터는 또 말하기를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대해 가져야할 태도는 합리주의적인 비판과 연구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듣고, 그대로 믿고,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만 여호와 하나님과 종교적 문제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의 이러한 고백은 이른바 그의 탑 속의 체험이 있은 이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1513년이나 1514년 가을에 탑속의 체험이라는 은혜체험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그는 자신의 영혼문제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덴베르그 어거스틴 수도원 탑 속에 앉아서 시편 22편을 읽고 있었습니다. 내 여호와 하나님이여 내 여호와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는 성경이었습니다. 루터는 이 성경을 읽는 중에 이 내용이 자기 자신의 비참한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후에 이 시편 성경의 내용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버림당하고 있는 대신 수난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 무죄하신 예수께서 자기의 죄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대신 수난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지옥과 심판과 저주와 고통을 당하셨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 루터 앞에 나타난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축복의 구세주였습니다. 바로 그 탑 속에서 읽은 성경 시편 22편 말씀이 루터의 삶을 뒤집어 놓고 만 것입니다. 그 후 그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와 칭의의 진리도 깨달았습니다(1515-1516).
칼빈도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 서두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참된 지혜는 타락한 인간의 이성적 본능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길이 없다. 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성경)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분명히 자기를 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씀(성경)을 제쳐놓고 다른 길로 갈 때 아무리 애써 진리를 추구한다 할지라도 이미 처음 길을 잘못 들었으므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칼빈은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진리를 추구할 때 여호와 하나님 말씀 외에 다른 길에서 추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생각할 때 그 말씀이 우리를 조명하는 방법 이외의 다른 방법을 생각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말할 때 그의 말씀이 말하는 그 모양 이외의 모양을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기독교 강요 1권 6장 3절, 13장 20절).
사도 바울은 영감 속에서 말하기를 너희는 기록한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고전 4:6)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이 말할 때 말하고, 성경이 진행할 때 진행하고, 성경이 멈출 때 멈추는 삶을 견지하였습니다. 오늘 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냐 하는 것을 알려면 성경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길가의 노동자에게서, 정치가에게서, 사업가에게 가서 그리고 문화예술가들에게 가서 물어보고, 저들의 답을 종합해 보면 바른 예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기타 여러 인간의 관점에서 예수를 조명하려고 합니다. 대단히 위태로운 사탄의 작동입니다. 오직 성경에서만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만 살아있는 예수, 항상 있는 예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어 주는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예수를 만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유는 성경은 성령 곧 예수의 영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운동은 1,000년이 넘도록 참된 진리의 성경을 떠나 온갖 유전과 이방풍속으로 참된 기독교를 변질시켜 놓은 로마 카톨릭을 떠나,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진리의 운동입니다. 진리냐, 비진리냐 정통이냐, 이단이냐 보수주의냐, 자유주의냐 하는 질문의 근본적인 대답은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성경관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는 바른 신앙을 결정하는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에 산재하는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신구약 66권의 성경은 정확무오한 여호와 하나님의 영감의 말씀으로, 신앙과(구원) 행위(상급)의 유일무이한 법칙이다. 라고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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