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한국교회와 개혁
본문
종교개혁주일을 보내고 교회 개혁에 대하여 생각게 하는 일들이 있다. 개혁교회라는 용어는 넓게는 종교개혁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모든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 보다 정확하게 사용하는 경우 이 용어는 루터교회와 대비되는 교단들 즉 칼빈에 의해 주장된 교리체제와 교회 체제 또는 정책을 따르며 여러 가지 개혁된 신앙고백을 하는 교단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특히 유럽 대륙에서 유래된 칼빈주의 교회들은 개혁교회라 부르고 영어 사용권에 속한 칼빈주의 교회들은 장로교회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둘을 합하여 다 개혁교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침례교회도 일부 교회들과 성공회 교회들도 영국국교는 개혁적이라고 주장한다.
1875년 개혁파 동맹이 형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873년 뉴욕에서 모인 '복음주의 연맹회의'에서 발족하고 본격적인 준비를 위해 1875년 6월 런던의 영국장로교회에서 모임이 개최되고 그 결과 '개혁교회 세계연맹'이 탄생했다. 이 단체의 정식 명칭은 '장로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전 세계의 개혁교회 연맹'이다. 장로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교회이면 어느 교회도 이 연맹에 가입할 수 있으며, 신앙상의 기준은 신구약성서로 그 표준으로 하며 그 교리는 개혁교회의 교리와 일치하면 된다.
1946년 화란 개혁교회 남아프리카 개혁교회 그리고 미국의 개혁교회 대표들이 그랜드레피즈(Grand Rapids)에서 준비화합을 가짐으로 '개혁주의 에큐메니칼 대회'(Reformed Ecumenical Synod R. E. S. )가 태동했고 1949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정식으로 조직되었다. 14개국의 대표들이 모인 첫 대회는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 국제기독교연합회(ICCC)와 함께 세계적 기구로서 출범했다. "RES의 기초는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갈디아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도르트신조, 39개 신조 등의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이 해석한 것으로서의 신구약성서에 기초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곧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을 목표로 하는 총체적 삶의 체계이다.
그리하여 RES의 신학을 요약하면 ①현대생활(Modern Life) ②인류(Mankind) ③세상개조(Renewal of the world)이다. RES의 기초는 개혁주의 신앙에 두고 있으며 개혁주의 신앙을 유지하는 교회들의 협동과 협력을 위하여 여러 가지 방면에서 일하고 있다. RES는 WCC의 좌경화와 ICCC의 극단적 분열주의를 모두 지양하고 개혁주의 신앙을 바탕으로 한 교회의 연합에 더욱 노력한다는데 있다.
한국교회와 RES의 관계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제47차 총회(1964년)에서 RES에 가입하기로 결의하고 1968년에 가입정식회원국이 되었다. 그러다가 예장 합동 측이 57회 총회(1972년)에서 탈퇴하고, 주초문제로 다시 고신 측도 탈퇴하기에 이른다. 이제는 개혁의 바람이 사회전반에 온 세계가 열린 시대로 새 천년을 맞고 있다. 개화운동이 20세기 초에 일어났다. 그런데 이 모든 개화운동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는 다양하고도 강력한 방법으로 작용했다. 이미 천주교가 실학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고, 1880년대부터는 개신교가 크게 작용했다.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의 창설과 그 운동의 주동인물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등의 활동이 그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개화운동에 선봉을 섰기 때문에 한국의 개화에 혁혁한 공이 이루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대한민국은 해방이후 비정통적인 정부의 암울한 역사 속에서 문민시대를 열었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서 개혁의 기치를 들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정부의 틀을 재정비한다는 차원에서 '제2건국을 위한 국정의 총체적인 개혁 구상'을 밝혔다. 제2건국은 두 가지로 특징 되는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정부와 정당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야할 제도개혁(구조개혁)이고 하나는 제2건국선언에 국민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
1. 인간존중의 태도 : 오늘의 정보사회에서 자유 없이는 인간의 창의력 개발은 어렵다. 우리는 물질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사람의 창조력을 귀하게 여기는 새로운 민본사상에 눈을 떠야 한다.
2. '참여'에서 발전의 원동력을 찾는 태도 : 참여는 인간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전제한다. 자율성 없는 참여는 없고 참여가 없다면 책임의식도 뿌리내리기가 어렵다. 참여는 사회구성원의 소명감과 동기 부여에도 없어서는 안될 요인이다.
3. 특권이 아닌 '공평'의 강조 : 사회적 차별과 특권이 횡행했던 우리의 현실에서 '공평'에 대한 국민적 갈망은 매우 컸다. 공평은 무엇보다 특권의 철폐를 요구하며 그 속에서 부정부패의 일소를 요구한다. 공정한 법치를 요구하며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게 대하며 고통분담이나 성과 배분 등에서도 공평성을 강조하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4. 대립과 갈등대신 화합과 협력을 강조하는 태도 : 국민운동의 중요한 의미는 낭비적 불신과 대립 대신 상호공존을 지향하는 협력과 화합의 태도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지역 간의 대립과 불신 노사간의 분쟁에 갈등의 평화적 제도화가 요구된다.
5. 효율과 생산성의 강조 : 국민생활의 도처에 스며있는 거품을 걷어내는 작업, 과잉투자나 과잉소비의 폐습을 없애는 국민운동이 필요하다. 빚을 내서라도 규모만 늘리면 번창한다는 잘못된 인식 대신에 내실을 기하고 질 을 우선시 하는 사고방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6. 폐쇄적 사고가 아닌 개방적 태도 : '우물 안의 개구리'같은 Mentality를 극복하는 것이다. 개방적 태도는 항상 타자와의 공존을 지향하며 차이를 관용하고 대화의 가치를 신봉하는 특징을 보인다. 세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세계를 향하여 진출하려는 진취성을 갖는다.
건국55년을 맞는 오늘의 위기는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라 지나온 동안 양적 경제성장에 몰두한 나머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노동 등 사회 전반의 개혁과 시민 덕성 및 공동체 윤리의 소홀한 결과로 국가 체제의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본다. 오늘의 위기는 우리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의 총체적 개혁이 아니고서는 극복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공동체의 윤리와 덕성, 교육과 노동, 남북관계와 국제변화에의 대응 등 국가와 사회의 모든 틀을 다시 짜서 새로운 체제로 세우지 않고서는 오늘의 위기 극복뿐만 아니라 세계 적 격변에서 탈락, 또는 미래의 발전을 포기 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나라의 근본 틀을 다시 세우기 위한 "제2의 건국"은 이러한 정황을 참조해서 "제2건국'을 부르짖게 될 줄로 안다. 위로부터의 총체적 개혁추진과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국민참여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통해 크게 성장한 우리사회의 시민의식과 시민 사회 다양한 시민 운동의 발전을 기반으로 국가주도의 개혁운동만으로는 침투와 범위와 지속의 효과가 약하기 때문에 정부가 선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추진으로부터 출발하여 사회의 모든 부분이 자발적인 개혁으로 유도해 가야 한다. 여기에서 제2의 건국의 두 축인 제도개혁과 국민운동인데 국민운동 은 기본적으로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자발적 의식개혁운동을 가리킨 다. 자유, 정의, 효율의 기본원리에 의해 사회의 도덕적 중심을 세우 는 일이 국민운동이다. 즉 개인적 집단이기주의와 같은 도덕적 해이를 극복하여 연대와 협력의 공간을 넓히고 국가 발전 목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가능케 해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민운동을 위해서는 새로운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설계하는 창의적 능력과 이를 국민대중의 생활 속에 전파하는 능력을 갖춘 운동조직이 필요하다. 자유, 정의, 효율을 기본가치로부터 의식개혁의 가치로 지향하려는 노력을 도출해 내야 한다. 제2의 건국에서 국민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즉,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을 시민사회가 해주어야만 제2의 건국이 이룩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우리가 자유, 정의, 효율의 원리를 신봉하고 그 원리에 입각해 우리 의 일그러진 도덕 공동체를 세우고 개혁지향적 시민들이 국민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시민운동의 도덕적 우위성(도덕적 중심을 사회의 약자를 위해 운동 해온 시민운동단체) 생활개혁(인권운동, 종교단체, 시민단체, 직능단체의 '경제살리기 범국민운동')과 의식개혁운동(제2의 건국추진위원회, 제2의 건국추진 기획단) 등이 그것이다.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국민운동은 두뇌기능만이 아니라 생활현장에 파고드는 조직력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조직의 관리능력과 실용적 사고 및 전략적 자원동원 또한 중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차제에 한국교회는 개혁되어야 하고 개혁에 참여하고 그 참여를 위해서 교회도 새로움의 개혁에 앞장서서 그 자리와 보여줌을 몸소 실천해야 한다.
한국의 교회는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느냐, 또 어떤 이념과 방법을 가지고 사회 구원의 역사에 참여해야 하느냐하는 문제가 교회의 현실로 다가왔다. 과거에는 성례전이나 예배의식, 교회와 신학적인 견해 때문에 교회나 교파가 갈라지고 대립되었으나 오늘에는 사회문제를 보는 입장과 실천적 태도의 차이 때문에 한국 교회가 분열되고 대립되고 있다. 예를 들면 동서의 이념적 분쟁과 갈등, 남북의 빈부격차와 이해관계의 대립, 인종과 계급과 문화와 종교의 차이로 인한 억압과 지배관계의 세계 속에서 자유와 정의와 해방과 평화의 복음을 가지고 사회와 인간을 구원하려는 교회는 불가피하게 우리가 살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를 구조적으로 분석해야 하며 지향해야 할 새로운 사회의 모습과 가치관에 대한 이념을 설정해야 하게 되었다.
한국 교회가 사회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선포하는 선교 행위를 구체화하려고 할 때 어떤 기존의 이데올로기에도 영합할 수 없으며 자유, 정의, 인권, 평화와 같은 복음적인 가치와 기독교의 윤리적인 이념들을 구현하는 사회 구조와 체제가 어떤 것인지를 모색해야 한다. 그 것은 선교 2세기를 들어서면서 교회에 부과된 과제로서 사회적 변화가 던져주는 도전으로서 계속 문제가 될 것이며, 한국 교회의 선교적인 비전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할 것이다. 교회와 사회를 이원적으로 구분하고 거룩한 교회와 타락한 사회로 나누어 교회의 선교를 마치 죄악으로 가득한 사회를 떠남으로 구원을 받게 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과 영과 육의 분리가 불가능한 것처럼 또한 교회와 속세의 구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선교의 원래적인 의미에 있어서 이를 구별해서 영혼만 구원받는다던가, 교회 안에 모이는 사람들만 거룩하다고 보는 그런 것은 결코 선교의 비전이 될 수 없다. 병들고 썩은 육체에 깨끗하고 온전한 영혼이 어떻게 거할 수 있으며, 타락하고 부패한 사회와 세상에 어떻게 교회만이 거룩하고 선한 곳으로 보존될 수 있을지, 그리고 현실의 구체적 역사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지 않는데 어떻게 내세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올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 교회는 사회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변화 시켜야 하느냐 하는 교회의 선교에 대한 물음이 당위로 남게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초기에 사회를 변형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를 통합시키고, 아노미의 상황을 극복하는 사회 통제적 힘으로 크게 작용해 왔으나 오늘날에는 보수화 성향을 띠면서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탈사회적, 몰역사적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을 현실로 보고 있다.
오늘 한국사회가 정치적으로 민주화되지 못했고, 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적 모순으로 불평등이 심화되어 계층갈등이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만족스럽게 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고, 갖가지 부조리들이 만연하고 있으며 문화실종의 상황으로 사회의 도덕성을 제공할 정신적 규범적 토대없이 천박한 가치관이 팽배하고, 또 환경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민족 통일에의 절박한 시대적 요구가 충만해 있다는 점을 오늘의 한국교회는 보아야 한다.
사회의식 역사의식이 결여된 채 개인구원과 개인복음에 안주하며 개교회주의에 집착하여 성장제일주의만을 표방하여 보수성을 고수하면서 사회적 공헌을 하지 못하거나, 혹은 너무 과격하고 급진적인 투쟁성을 보이면서 오히려 사회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새로운 갈등을 유발하는 양극화되는 한국교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다원화 사회 변화과정에서 교회는 교회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서로 격리되고 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사회 조직의 변질 속에 소외되어나간 인간형성 및 그룹들은 멸시 당한 사람들로서, 가난하고 소외되는 것이 개인의 책임이라는 생각은 그 책임을 개인보다는 사회구조자체가 분담하여야 한다는 시점에 와있다.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께 복종하는 책임있는 공동체로서 그 존재양식을 개혁시켜야 한다. 도시중심의 교회들은 도시에 위치한 특권, 이득권을 연구해야 한다. 농촌교회는 공동사회에 바탕을 두고 있고 도시교회는 그 생활이 이익사회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고독한 길거리의 사람들을 위한 교회의 선교는 무엇인가 교회의 커다란 문들이 잠겨져 있는 교회 안과 밖을 이어 놓을 수 있는 교회의 자리는 어디인가 도시교회는 주간을 통하여 직업별, 취미별, 연령별의 교회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길거리의 그들을 초대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안에 있는 온갖 소재를 종합 연구하여 재정, 인적자원, 건물 등이 이를 위해 활동해야 한다.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고 전 교회가 선교적인 자각에 의해서 일치 연합된 힘으로 기독교 정치인, 기독교 법률가, 기독교 경제인 등 각계각층의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사회정책을 세워 올바른 사회정의를 수립하는 일에 사명을 가져야 한다.
오늘의 교회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event)을 증거 하는 사명에서 출발하여 그 목적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임재와 구원을 삶의 구조 속에서 증거 함으로서 삶의 새 차원을 경험할 수 있는 가능한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 계기를 마련하는 동안에 교회의 존재양식은 책임 있는 것이 되고 교회 자체는 사건(event)으로 이해된다. 그리스도와의 대화(예배, 연구, 봉사, 교제)와 인간과 인간간의 대화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근본적으로 '공동적인 선교'로서 그 선교는 목사나 몇 명의 독점물이 아니라 선교는 신앙 소망 사랑의 사건으로서의 공동체로 참여하는 기독인의 사명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제 소외된 계층과 온전함, 완전함에 합당치 않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선포한 새 피조물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제는 교회 안에서만 안주하여 집단이기주의에 빠져있는 교회를 향해 세례요한의 외침을 선언해야 할 때이다. 이제는 집단이기주의 신앙 속에 갇혀 있는 구원의 환상에서 벗어나 예수의 부르심을 선언할 때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상과의 사이에 쳐 놓은 담을 헐어야 한다. 인간이 무덤 속에 설정해 놓고 모든 절대적인 권위로 군림하고 있는 교리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교회가 세상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자세를 낮추고 세상 속으로 진실하게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교회와 국가, 신앙과 정치, 또는 이념의 담을 헐어야 하며, 교파 사이에 쳐놓은 담도 헐어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교회는 역사의 현장에서 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선교에 용기 있게 동참하여 화해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교회 본연의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일치와 화합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 역사적인 6. 13 남북정상회담은 해방 이후 첫 만남으로 냉전극복에 대한 통일염원의 실천이며, 새 천년의 민족사적 의의를 더하여 가면서 우리 앞에는 민족 구원과 여호와 하나님 선교를 이어가야 할 책임과 조국의 통일이라는 커다란 개혁의 과제가 놓여져 있다.
1875년 개혁파 동맹이 형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873년 뉴욕에서 모인 '복음주의 연맹회의'에서 발족하고 본격적인 준비를 위해 1875년 6월 런던의 영국장로교회에서 모임이 개최되고 그 결과 '개혁교회 세계연맹'이 탄생했다. 이 단체의 정식 명칭은 '장로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전 세계의 개혁교회 연맹'이다. 장로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교회이면 어느 교회도 이 연맹에 가입할 수 있으며, 신앙상의 기준은 신구약성서로 그 표준으로 하며 그 교리는 개혁교회의 교리와 일치하면 된다.
1946년 화란 개혁교회 남아프리카 개혁교회 그리고 미국의 개혁교회 대표들이 그랜드레피즈(Grand Rapids)에서 준비화합을 가짐으로 '개혁주의 에큐메니칼 대회'(Reformed Ecumenical Synod R. E. S. )가 태동했고 1949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정식으로 조직되었다. 14개국의 대표들이 모인 첫 대회는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 국제기독교연합회(ICCC)와 함께 세계적 기구로서 출범했다. "RES의 기초는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갈디아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도르트신조, 39개 신조 등의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이 해석한 것으로서의 신구약성서에 기초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곧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을 목표로 하는 총체적 삶의 체계이다.
그리하여 RES의 신학을 요약하면 ①현대생활(Modern Life) ②인류(Mankind) ③세상개조(Renewal of the world)이다. RES의 기초는 개혁주의 신앙에 두고 있으며 개혁주의 신앙을 유지하는 교회들의 협동과 협력을 위하여 여러 가지 방면에서 일하고 있다. RES는 WCC의 좌경화와 ICCC의 극단적 분열주의를 모두 지양하고 개혁주의 신앙을 바탕으로 한 교회의 연합에 더욱 노력한다는데 있다.
한국교회와 RES의 관계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제47차 총회(1964년)에서 RES에 가입하기로 결의하고 1968년에 가입정식회원국이 되었다. 그러다가 예장 합동 측이 57회 총회(1972년)에서 탈퇴하고, 주초문제로 다시 고신 측도 탈퇴하기에 이른다. 이제는 개혁의 바람이 사회전반에 온 세계가 열린 시대로 새 천년을 맞고 있다. 개화운동이 20세기 초에 일어났다. 그런데 이 모든 개화운동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는 다양하고도 강력한 방법으로 작용했다. 이미 천주교가 실학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고, 1880년대부터는 개신교가 크게 작용했다.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의 창설과 그 운동의 주동인물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등의 활동이 그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개화운동에 선봉을 섰기 때문에 한국의 개화에 혁혁한 공이 이루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대한민국은 해방이후 비정통적인 정부의 암울한 역사 속에서 문민시대를 열었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서 개혁의 기치를 들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정부의 틀을 재정비한다는 차원에서 '제2건국을 위한 국정의 총체적인 개혁 구상'을 밝혔다. 제2건국은 두 가지로 특징 되는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정부와 정당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야할 제도개혁(구조개혁)이고 하나는 제2건국선언에 국민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
1. 인간존중의 태도 : 오늘의 정보사회에서 자유 없이는 인간의 창의력 개발은 어렵다. 우리는 물질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사람의 창조력을 귀하게 여기는 새로운 민본사상에 눈을 떠야 한다.
2. '참여'에서 발전의 원동력을 찾는 태도 : 참여는 인간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전제한다. 자율성 없는 참여는 없고 참여가 없다면 책임의식도 뿌리내리기가 어렵다. 참여는 사회구성원의 소명감과 동기 부여에도 없어서는 안될 요인이다.
3. 특권이 아닌 '공평'의 강조 : 사회적 차별과 특권이 횡행했던 우리의 현실에서 '공평'에 대한 국민적 갈망은 매우 컸다. 공평은 무엇보다 특권의 철폐를 요구하며 그 속에서 부정부패의 일소를 요구한다. 공정한 법치를 요구하며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게 대하며 고통분담이나 성과 배분 등에서도 공평성을 강조하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4. 대립과 갈등대신 화합과 협력을 강조하는 태도 : 국민운동의 중요한 의미는 낭비적 불신과 대립 대신 상호공존을 지향하는 협력과 화합의 태도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지역 간의 대립과 불신 노사간의 분쟁에 갈등의 평화적 제도화가 요구된다.
5. 효율과 생산성의 강조 : 국민생활의 도처에 스며있는 거품을 걷어내는 작업, 과잉투자나 과잉소비의 폐습을 없애는 국민운동이 필요하다. 빚을 내서라도 규모만 늘리면 번창한다는 잘못된 인식 대신에 내실을 기하고 질 을 우선시 하는 사고방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6. 폐쇄적 사고가 아닌 개방적 태도 : '우물 안의 개구리'같은 Mentality를 극복하는 것이다. 개방적 태도는 항상 타자와의 공존을 지향하며 차이를 관용하고 대화의 가치를 신봉하는 특징을 보인다. 세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세계를 향하여 진출하려는 진취성을 갖는다.
건국55년을 맞는 오늘의 위기는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라 지나온 동안 양적 경제성장에 몰두한 나머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노동 등 사회 전반의 개혁과 시민 덕성 및 공동체 윤리의 소홀한 결과로 국가 체제의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본다. 오늘의 위기는 우리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의 총체적 개혁이 아니고서는 극복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공동체의 윤리와 덕성, 교육과 노동, 남북관계와 국제변화에의 대응 등 국가와 사회의 모든 틀을 다시 짜서 새로운 체제로 세우지 않고서는 오늘의 위기 극복뿐만 아니라 세계 적 격변에서 탈락, 또는 미래의 발전을 포기 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나라의 근본 틀을 다시 세우기 위한 "제2의 건국"은 이러한 정황을 참조해서 "제2건국'을 부르짖게 될 줄로 안다. 위로부터의 총체적 개혁추진과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국민참여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통해 크게 성장한 우리사회의 시민의식과 시민 사회 다양한 시민 운동의 발전을 기반으로 국가주도의 개혁운동만으로는 침투와 범위와 지속의 효과가 약하기 때문에 정부가 선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추진으로부터 출발하여 사회의 모든 부분이 자발적인 개혁으로 유도해 가야 한다. 여기에서 제2의 건국의 두 축인 제도개혁과 국민운동인데 국민운동 은 기본적으로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자발적 의식개혁운동을 가리킨 다. 자유, 정의, 효율의 기본원리에 의해 사회의 도덕적 중심을 세우 는 일이 국민운동이다. 즉 개인적 집단이기주의와 같은 도덕적 해이를 극복하여 연대와 협력의 공간을 넓히고 국가 발전 목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가능케 해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민운동을 위해서는 새로운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설계하는 창의적 능력과 이를 국민대중의 생활 속에 전파하는 능력을 갖춘 운동조직이 필요하다. 자유, 정의, 효율을 기본가치로부터 의식개혁의 가치로 지향하려는 노력을 도출해 내야 한다. 제2의 건국에서 국민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즉,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을 시민사회가 해주어야만 제2의 건국이 이룩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우리가 자유, 정의, 효율의 원리를 신봉하고 그 원리에 입각해 우리 의 일그러진 도덕 공동체를 세우고 개혁지향적 시민들이 국민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시민운동의 도덕적 우위성(도덕적 중심을 사회의 약자를 위해 운동 해온 시민운동단체) 생활개혁(인권운동, 종교단체, 시민단체, 직능단체의 '경제살리기 범국민운동')과 의식개혁운동(제2의 건국추진위원회, 제2의 건국추진 기획단) 등이 그것이다.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국민운동은 두뇌기능만이 아니라 생활현장에 파고드는 조직력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조직의 관리능력과 실용적 사고 및 전략적 자원동원 또한 중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차제에 한국교회는 개혁되어야 하고 개혁에 참여하고 그 참여를 위해서 교회도 새로움의 개혁에 앞장서서 그 자리와 보여줌을 몸소 실천해야 한다.
한국의 교회는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느냐, 또 어떤 이념과 방법을 가지고 사회 구원의 역사에 참여해야 하느냐하는 문제가 교회의 현실로 다가왔다. 과거에는 성례전이나 예배의식, 교회와 신학적인 견해 때문에 교회나 교파가 갈라지고 대립되었으나 오늘에는 사회문제를 보는 입장과 실천적 태도의 차이 때문에 한국 교회가 분열되고 대립되고 있다. 예를 들면 동서의 이념적 분쟁과 갈등, 남북의 빈부격차와 이해관계의 대립, 인종과 계급과 문화와 종교의 차이로 인한 억압과 지배관계의 세계 속에서 자유와 정의와 해방과 평화의 복음을 가지고 사회와 인간을 구원하려는 교회는 불가피하게 우리가 살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를 구조적으로 분석해야 하며 지향해야 할 새로운 사회의 모습과 가치관에 대한 이념을 설정해야 하게 되었다.
한국 교회가 사회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선포하는 선교 행위를 구체화하려고 할 때 어떤 기존의 이데올로기에도 영합할 수 없으며 자유, 정의, 인권, 평화와 같은 복음적인 가치와 기독교의 윤리적인 이념들을 구현하는 사회 구조와 체제가 어떤 것인지를 모색해야 한다. 그 것은 선교 2세기를 들어서면서 교회에 부과된 과제로서 사회적 변화가 던져주는 도전으로서 계속 문제가 될 것이며, 한국 교회의 선교적인 비전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할 것이다. 교회와 사회를 이원적으로 구분하고 거룩한 교회와 타락한 사회로 나누어 교회의 선교를 마치 죄악으로 가득한 사회를 떠남으로 구원을 받게 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과 영과 육의 분리가 불가능한 것처럼 또한 교회와 속세의 구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선교의 원래적인 의미에 있어서 이를 구별해서 영혼만 구원받는다던가, 교회 안에 모이는 사람들만 거룩하다고 보는 그런 것은 결코 선교의 비전이 될 수 없다. 병들고 썩은 육체에 깨끗하고 온전한 영혼이 어떻게 거할 수 있으며, 타락하고 부패한 사회와 세상에 어떻게 교회만이 거룩하고 선한 곳으로 보존될 수 있을지, 그리고 현실의 구체적 역사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지 않는데 어떻게 내세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올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 교회는 사회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변화 시켜야 하느냐 하는 교회의 선교에 대한 물음이 당위로 남게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초기에 사회를 변형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를 통합시키고, 아노미의 상황을 극복하는 사회 통제적 힘으로 크게 작용해 왔으나 오늘날에는 보수화 성향을 띠면서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탈사회적, 몰역사적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을 현실로 보고 있다.
오늘 한국사회가 정치적으로 민주화되지 못했고, 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적 모순으로 불평등이 심화되어 계층갈등이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만족스럽게 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고, 갖가지 부조리들이 만연하고 있으며 문화실종의 상황으로 사회의 도덕성을 제공할 정신적 규범적 토대없이 천박한 가치관이 팽배하고, 또 환경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민족 통일에의 절박한 시대적 요구가 충만해 있다는 점을 오늘의 한국교회는 보아야 한다.
사회의식 역사의식이 결여된 채 개인구원과 개인복음에 안주하며 개교회주의에 집착하여 성장제일주의만을 표방하여 보수성을 고수하면서 사회적 공헌을 하지 못하거나, 혹은 너무 과격하고 급진적인 투쟁성을 보이면서 오히려 사회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새로운 갈등을 유발하는 양극화되는 한국교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다원화 사회 변화과정에서 교회는 교회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서로 격리되고 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사회 조직의 변질 속에 소외되어나간 인간형성 및 그룹들은 멸시 당한 사람들로서, 가난하고 소외되는 것이 개인의 책임이라는 생각은 그 책임을 개인보다는 사회구조자체가 분담하여야 한다는 시점에 와있다.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께 복종하는 책임있는 공동체로서 그 존재양식을 개혁시켜야 한다. 도시중심의 교회들은 도시에 위치한 특권, 이득권을 연구해야 한다. 농촌교회는 공동사회에 바탕을 두고 있고 도시교회는 그 생활이 이익사회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고독한 길거리의 사람들을 위한 교회의 선교는 무엇인가 교회의 커다란 문들이 잠겨져 있는 교회 안과 밖을 이어 놓을 수 있는 교회의 자리는 어디인가 도시교회는 주간을 통하여 직업별, 취미별, 연령별의 교회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길거리의 그들을 초대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안에 있는 온갖 소재를 종합 연구하여 재정, 인적자원, 건물 등이 이를 위해 활동해야 한다.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고 전 교회가 선교적인 자각에 의해서 일치 연합된 힘으로 기독교 정치인, 기독교 법률가, 기독교 경제인 등 각계각층의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사회정책을 세워 올바른 사회정의를 수립하는 일에 사명을 가져야 한다.
오늘의 교회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event)을 증거 하는 사명에서 출발하여 그 목적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임재와 구원을 삶의 구조 속에서 증거 함으로서 삶의 새 차원을 경험할 수 있는 가능한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 계기를 마련하는 동안에 교회의 존재양식은 책임 있는 것이 되고 교회 자체는 사건(event)으로 이해된다. 그리스도와의 대화(예배, 연구, 봉사, 교제)와 인간과 인간간의 대화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근본적으로 '공동적인 선교'로서 그 선교는 목사나 몇 명의 독점물이 아니라 선교는 신앙 소망 사랑의 사건으로서의 공동체로 참여하는 기독인의 사명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제 소외된 계층과 온전함, 완전함에 합당치 않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선포한 새 피조물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제는 교회 안에서만 안주하여 집단이기주의에 빠져있는 교회를 향해 세례요한의 외침을 선언해야 할 때이다. 이제는 집단이기주의 신앙 속에 갇혀 있는 구원의 환상에서 벗어나 예수의 부르심을 선언할 때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상과의 사이에 쳐 놓은 담을 헐어야 한다. 인간이 무덤 속에 설정해 놓고 모든 절대적인 권위로 군림하고 있는 교리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교회가 세상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자세를 낮추고 세상 속으로 진실하게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교회와 국가, 신앙과 정치, 또는 이념의 담을 헐어야 하며, 교파 사이에 쳐놓은 담도 헐어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교회는 역사의 현장에서 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선교에 용기 있게 동참하여 화해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교회 본연의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일치와 화합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 역사적인 6. 13 남북정상회담은 해방 이후 첫 만남으로 냉전극복에 대한 통일염원의 실천이며, 새 천년의 민족사적 의의를 더하여 가면서 우리 앞에는 민족 구원과 여호와 하나님 선교를 이어가야 할 책임과 조국의 통일이라는 커다란 개혁의 과제가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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