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들
본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세계의 모든 개신교회가 함께 지키는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2001년 교회력에 따라 성서일과(Lectionary, Perikope)로 주어진 오늘의 본문 말씀은 이사야 62장 6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나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 말씀이 어떻게 종교개혁기념일에 주어진 말씀인가를 염두에 두고서 본문을 읽었습니다. 특별히 나의 눈에 들어오는 낱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6절의 '파수꾼'이라는 말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도성을 지키기 위해서 '파수꾼'을 세우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성(城)을 지키는 파수꾼의 이미지가 바로 교회를 지키고 새롭게 하는 개혁자로 떠올랐습니다.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 그가 누구입니까 그는 곧 '교회를 교회되게'하는 개혁의지를 가진 개혁자들이라 하겠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나 요한 칼빈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그 당시 잘못된 교회, 부패한 교회를 새롭게 하고 '교회를 교회되도록 지킨 파수꾼'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의 설교제목을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들'이라고 정하였습니다.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 이같은 제목을 가지고 오늘 우리의 본문을 살펴보면서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들이 어떻게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밝혀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우리가 주목할 말씀은 본문 6절입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위에 파수꾼을 세우고"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예루살렘을 의인화(擬人化)하고 있습니다. 의인화된 예루살렘은 사실 그곳에 거주하는 유다 백성을 가리킵니다. 예언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거민들을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벽 위에 파수꾼들을 세우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파수꾼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파수꾼의 역할은, 깨어있으면서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고 적군의 공격이 있을 경우에 그것을 신속하게 성중(城中)에 보고하여 성읍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언서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 이같은 파수꾼을 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의 경우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유다 백성의 파수꾼으로 불러 세우셔서, 백성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자기들의 죄악을 깨닫게 하고, 그 죄의 결과로써 받게 될 심판을 대비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 백성을 안전하게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겔 3:17-19, 33:7-9).
그런데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예언자 이사야 역시 우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에스겔과는 다소 다르게 파수꾼의 역할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파수꾼들은 에스겔의 경우처럼 적군의 공격에 대비하거나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는 경고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일과는 다소 다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또 다른 파수꾼의 역할은, 본문을 따라 살펴보면 몇 가지가 됩니다.
우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불러 세우신 파수꾼으로 하여금 밤낮으로 잠잠하지 않고 계속 부르짖는 일을 쉬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파수꾼들이 잠잠치 않고 또한 쉬지 않고 계속 부르짖어야 할 일은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약속하신 바를 기억하시도록 하는 일이며,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을 쉬시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 62장 1절에 있습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하니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들 파수꾼들은 바로 이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수 있도록 쉬지 않고 밤낮 부르짖어야 할 책임을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것입니다. 또한 이들 파수꾼들은, 이렇게 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회복(구원)시켜 세상 사람들로부터 찬송을 받게 하실 때까지 그를 쉬지 못하게 해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것입니다(7절). 다시 한마디로 말하면, 파수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하신 바를 잊지 않고 기억하셔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시는 일을 쉬지않고 계속하시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한 약속을 지키실 때,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이 구체적으로 받은 은혜가 있습니다. 즉 파수꾼들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도록, 그 책임을 다했을 때, 예루살렘 거민들이 구체적으로 받을 축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 은혜와 축복이 무엇입니까
그 은혜와 축복의 내용이 본문 8-9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이방 군대의 침략을 받지 않게 되고, 따라서 더 이상 그들이 수확한 곡식이나 포도주를 원수들이나 이방인들에게 빼앗기는 불행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8절 하반절, 사 65:21-23).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거민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은총에 힘입어 자신들이 수확한 것을 기쁨으로 직접 먹고 또 성소의 뜰에서 그것을 즐거이 마시게 될 것이고, 그 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9절).
이같은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한 약속은 절대로 번복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성취되는데, 그 까닭은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오른손과 능력의 팔로 맹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8절 상반절). 우리가 믿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오른손은 그의 확실한 구원을 의미합니다(출15:6-7, 사41:10, 시17:7, 20:6, 60:5, 108:7, 118:15-16, 138:7 등). 그리고 그의 능력의 팔은 원수를 무찌르는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합니다(사51:5,9, 시89:10, 98:1).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파수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구원의 약속을 결코 번복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오른손과 능력의 팔로 맹세하신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 성취하시는 일을 위해 쉬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파수꾼들이 감당해야 할 또 다른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임무입니다.
본문 10절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성 바깥으로 나아가서 여러 지역에 흩어져 나그네 백성으로 살던 남은 자들이 돌아올 길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즉, 큰 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고, 뭇 민족이 볼 수 있도록 깃발을 올리라는 것입니다. 그 큰길이 과거에는 이방민족의 침략군이 쳐들어오는 길목으로 사용되었으나(사 36:2), 이제는 귀향민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큰 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그가 구원하신 백성을 데리고 오시는 길을 삼으신다는 것입니다(11절).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파수꾼들이 예루살렘 도성을 지키고, 그 거민들을 안전하게 구원해야 할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을 보면서, 교회를 지켜,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즉 교회갱신을 해야하는 개혁자들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일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들이 먼저 해야할 일은 깨어있는 일입니다.
개혁자들은 편안하게 잠자며 쉴 수가 없습니다. 잠시도 쉬어서도 안되고, 잠잠해서도 안되며, 한눈팔아서도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파수꾼을 "주야로 잠잠치 않게 하셨다"는 말씀은 파수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줍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걸어온 길이 그러했습니다. 그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파수꾼들이 밤새도록 잠자지 않고 깨어 있으면서 성을 지키는 것과도 같이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이 땅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날마다 교회를 개혁하고 신앙을 새롭게 하며, 교회를 지켜야할 우리들이 가는 길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 길에는 결코 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전진할 뿐입니다.
이렇게 부지런한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신이 약속하신 바를 기억하시도록 하는 자입니다. 말하자면, 개혁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자신의 약속을 기억하시도록 열심히 깨어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전혀 관심이 없고,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열심이 없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실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진실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열정이 없다면, 이 땅의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교회는 연약하게 되고, 더 이상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교회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개혁자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잠시도 쉬지 말아야 합니다. 한눈 팔지 말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밝히기에 온 정열을 쏟아야 합니다. 고난을 다하여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교회를 사랑하고, 복음을 수호해야 합니다.
그 다음,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본문 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파수꾼은 자신이 쉬지 않고 늘 깨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하는 자입니다. 시편 12:3-4을 보면, 여호와는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는 분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44:22-23을 보면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라는 탄식이 있습니다. 이같은 탄식은 고통 당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계시는 것을 주무신다는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고 탄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약속한 바를 계속 기억하도록 하는 뜻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즉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고 탄식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구원을 이루시도록 졸라대며 떼를 쓰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특별히 인식해야 하는 것은, 이같은 일이 바로 개혁자가 해야할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개혁자들은 오늘의 교회로 인하여, 특히 교회의 본질을 상실하고 부패한 교회로 인하여 고뇌하고 탄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기도자들은 '언제까지' 또한 '어찌하여'라는 말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탄식하는 기도를 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교회로 인하여 탄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직도 아님'(not yet, noch nicht)의 상황에 대한 탄식이며 고뇌입니다. 칼 바르트와 에드워드 투루나이젠은 그 당시의 교회 문제로 고뇌하며 탄식하였습니다. 그들의 고뇌와 탄식이 그 당시의 교회와 신학을 새롭게 하는 신앙운동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제자인 보렌 교수는 그들의 새로운 신앙운동을 제 2의 종교개혁이라고 극찬한 것입니다. 진실로 그들이야말로 그 당시의 교회를 위해 고뇌하며 교회를 지킨 파수꾼들이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말합니다.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우리 개혁자들은 지금의 교회현실로 인하여 고뇌하며 탄식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오늘날의 교회가 이렇게 부패하고, 세상 사람들 보기에나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추한 모습으로 부끄러운 교회가 되었습니까 '어느 때까지' 이 땅의 교회가 이런 상태로 부끄러운 모습으로 있어야 합니까"라고 끊임없이 탄식하며 고뇌해야 합니다.
본문 7절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때까지'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의 민족 탄식시에 나오는 '언제까지'라는 말의 변형으로써 '아직도 아님'의 상태를 표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말씀은 이 땅의 교회가 새롭게 되어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을 때까지, 우리 개혁자들이 쉬지 않고 끊임없이 교회갱신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몸된 교회가 교회구실을 하고 교회가 새롭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고 또한 세상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까지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말고 끊임없이 개혁의지를 가지고 전진해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들이 구체적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해야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지 못하는 모든 장애물을 깨끗이 제거하는 일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큰 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어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곧 교회를 교회되게 하지 못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교회를 더럽히고, 교회를 추하게 만드는 것들을 제거하는 일들은 바로 우리 모두가 해야할 일들입니다.
그 일들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 자신부터 깨끗이 하는 일입니다. 나 자신 속에 도사리고 있는 기복신앙, 탐심과 우상숭배, 육체를 따라 사는 온갖 더러운 것들을 제거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교회 속의 물량주의와 세속주의, 도덕주의와 공로주의, 그리고 성공주의와 성장제일주의 등, 인간을 여호와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모든 것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의(義)로 구원함을 받는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저버리고 인간의 의(義)로, 인간의 도덕적인 노력이나 공로로 구원함을 받는다는 비성서적이고 비복음적인 것을 제거하고, 또한 모든 이단사설과 집단이 교회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곧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우리 모두가 해야할 이 시대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의 모든 교회가 새롭게 될 수 있도록, 즉 이 땅의 교회가 새로운 이름을 얻을 수 있도록 개혁에 박차를 가합시다.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일컬음을 받을 그 새로운 이름은 '거룩한 백성',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 '찾은 바 된자', 그리고 '버리지 아니한 성읍'이란 이름입니다(12절). 이같은 새로운 이름은 바로 이 땅의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의 교회가 이같은 새로운 이름을 얻어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 새로운 교회가 될 때까지, 우리 모두가 쉬지 않고, 또한 잠자지 않고 늘 깨어 있는 종교개혁자들의 반열에 서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개혁정신을 우리의 목회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나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 말씀이 어떻게 종교개혁기념일에 주어진 말씀인가를 염두에 두고서 본문을 읽었습니다. 특별히 나의 눈에 들어오는 낱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6절의 '파수꾼'이라는 말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도성을 지키기 위해서 '파수꾼'을 세우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성(城)을 지키는 파수꾼의 이미지가 바로 교회를 지키고 새롭게 하는 개혁자로 떠올랐습니다.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 그가 누구입니까 그는 곧 '교회를 교회되게'하는 개혁의지를 가진 개혁자들이라 하겠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나 요한 칼빈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그 당시 잘못된 교회, 부패한 교회를 새롭게 하고 '교회를 교회되도록 지킨 파수꾼'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의 설교제목을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들'이라고 정하였습니다.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 이같은 제목을 가지고 오늘 우리의 본문을 살펴보면서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들이 어떻게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밝혀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우리가 주목할 말씀은 본문 6절입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위에 파수꾼을 세우고"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예루살렘을 의인화(擬人化)하고 있습니다. 의인화된 예루살렘은 사실 그곳에 거주하는 유다 백성을 가리킵니다. 예언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거민들을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벽 위에 파수꾼들을 세우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파수꾼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파수꾼의 역할은, 깨어있으면서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고 적군의 공격이 있을 경우에 그것을 신속하게 성중(城中)에 보고하여 성읍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언서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 이같은 파수꾼을 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의 경우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유다 백성의 파수꾼으로 불러 세우셔서, 백성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자기들의 죄악을 깨닫게 하고, 그 죄의 결과로써 받게 될 심판을 대비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 백성을 안전하게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겔 3:17-19, 33:7-9).
그런데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예언자 이사야 역시 우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에스겔과는 다소 다르게 파수꾼의 역할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파수꾼들은 에스겔의 경우처럼 적군의 공격에 대비하거나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는 경고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일과는 다소 다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또 다른 파수꾼의 역할은, 본문을 따라 살펴보면 몇 가지가 됩니다.
우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불러 세우신 파수꾼으로 하여금 밤낮으로 잠잠하지 않고 계속 부르짖는 일을 쉬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파수꾼들이 잠잠치 않고 또한 쉬지 않고 계속 부르짖어야 할 일은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약속하신 바를 기억하시도록 하는 일이며,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을 쉬시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 62장 1절에 있습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하니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들 파수꾼들은 바로 이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수 있도록 쉬지 않고 밤낮 부르짖어야 할 책임을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것입니다. 또한 이들 파수꾼들은, 이렇게 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회복(구원)시켜 세상 사람들로부터 찬송을 받게 하실 때까지 그를 쉬지 못하게 해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것입니다(7절). 다시 한마디로 말하면, 파수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하신 바를 잊지 않고 기억하셔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시는 일을 쉬지않고 계속하시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한 약속을 지키실 때,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이 구체적으로 받은 은혜가 있습니다. 즉 파수꾼들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도록, 그 책임을 다했을 때, 예루살렘 거민들이 구체적으로 받을 축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 은혜와 축복이 무엇입니까
그 은혜와 축복의 내용이 본문 8-9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이방 군대의 침략을 받지 않게 되고, 따라서 더 이상 그들이 수확한 곡식이나 포도주를 원수들이나 이방인들에게 빼앗기는 불행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8절 하반절, 사 65:21-23).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거민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은총에 힘입어 자신들이 수확한 것을 기쁨으로 직접 먹고 또 성소의 뜰에서 그것을 즐거이 마시게 될 것이고, 그 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9절).
이같은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한 약속은 절대로 번복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성취되는데, 그 까닭은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오른손과 능력의 팔로 맹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8절 상반절). 우리가 믿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오른손은 그의 확실한 구원을 의미합니다(출15:6-7, 사41:10, 시17:7, 20:6, 60:5, 108:7, 118:15-16, 138:7 등). 그리고 그의 능력의 팔은 원수를 무찌르는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합니다(사51:5,9, 시89:10, 98:1).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파수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구원의 약속을 결코 번복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오른손과 능력의 팔로 맹세하신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 성취하시는 일을 위해 쉬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파수꾼들이 감당해야 할 또 다른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임무입니다.
본문 10절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성 바깥으로 나아가서 여러 지역에 흩어져 나그네 백성으로 살던 남은 자들이 돌아올 길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즉, 큰 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고, 뭇 민족이 볼 수 있도록 깃발을 올리라는 것입니다. 그 큰길이 과거에는 이방민족의 침략군이 쳐들어오는 길목으로 사용되었으나(사 36:2), 이제는 귀향민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큰 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그가 구원하신 백성을 데리고 오시는 길을 삼으신다는 것입니다(11절).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파수꾼들이 예루살렘 도성을 지키고, 그 거민들을 안전하게 구원해야 할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을 보면서, 교회를 지켜,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즉 교회갱신을 해야하는 개혁자들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일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들이 먼저 해야할 일은 깨어있는 일입니다.
개혁자들은 편안하게 잠자며 쉴 수가 없습니다. 잠시도 쉬어서도 안되고, 잠잠해서도 안되며, 한눈팔아서도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파수꾼을 "주야로 잠잠치 않게 하셨다"는 말씀은 파수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줍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걸어온 길이 그러했습니다. 그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파수꾼들이 밤새도록 잠자지 않고 깨어 있으면서 성을 지키는 것과도 같이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이 땅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날마다 교회를 개혁하고 신앙을 새롭게 하며, 교회를 지켜야할 우리들이 가는 길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 길에는 결코 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전진할 뿐입니다.
이렇게 부지런한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신이 약속하신 바를 기억하시도록 하는 자입니다. 말하자면, 개혁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자신의 약속을 기억하시도록 열심히 깨어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전혀 관심이 없고,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열심이 없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실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진실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열정이 없다면, 이 땅의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교회는 연약하게 되고, 더 이상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교회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개혁자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잠시도 쉬지 말아야 합니다. 한눈 팔지 말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밝히기에 온 정열을 쏟아야 합니다. 고난을 다하여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교회를 사랑하고, 복음을 수호해야 합니다.
그 다음,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본문 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파수꾼은 자신이 쉬지 않고 늘 깨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하는 자입니다. 시편 12:3-4을 보면, 여호와는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는 분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44:22-23을 보면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라는 탄식이 있습니다. 이같은 탄식은 고통 당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계시는 것을 주무신다는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고 탄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약속한 바를 계속 기억하도록 하는 뜻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즉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고 탄식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구원을 이루시도록 졸라대며 떼를 쓰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특별히 인식해야 하는 것은, 이같은 일이 바로 개혁자가 해야할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개혁자들은 오늘의 교회로 인하여, 특히 교회의 본질을 상실하고 부패한 교회로 인하여 고뇌하고 탄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기도자들은 '언제까지' 또한 '어찌하여'라는 말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탄식하는 기도를 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교회로 인하여 탄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직도 아님'(not yet, noch nicht)의 상황에 대한 탄식이며 고뇌입니다. 칼 바르트와 에드워드 투루나이젠은 그 당시의 교회 문제로 고뇌하며 탄식하였습니다. 그들의 고뇌와 탄식이 그 당시의 교회와 신학을 새롭게 하는 신앙운동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제자인 보렌 교수는 그들의 새로운 신앙운동을 제 2의 종교개혁이라고 극찬한 것입니다. 진실로 그들이야말로 그 당시의 교회를 위해 고뇌하며 교회를 지킨 파수꾼들이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말합니다.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우리 개혁자들은 지금의 교회현실로 인하여 고뇌하며 탄식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오늘날의 교회가 이렇게 부패하고, 세상 사람들 보기에나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추한 모습으로 부끄러운 교회가 되었습니까 '어느 때까지' 이 땅의 교회가 이런 상태로 부끄러운 모습으로 있어야 합니까"라고 끊임없이 탄식하며 고뇌해야 합니다.
본문 7절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때까지'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의 민족 탄식시에 나오는 '언제까지'라는 말의 변형으로써 '아직도 아님'의 상태를 표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말씀은 이 땅의 교회가 새롭게 되어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을 때까지, 우리 개혁자들이 쉬지 않고 끊임없이 교회갱신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몸된 교회가 교회구실을 하고 교회가 새롭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고 또한 세상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까지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말고 끊임없이 개혁의지를 가지고 전진해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개혁자들이 구체적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해야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지 못하는 모든 장애물을 깨끗이 제거하는 일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큰 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어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곧 교회를 교회되게 하지 못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교회를 더럽히고, 교회를 추하게 만드는 것들을 제거하는 일들은 바로 우리 모두가 해야할 일들입니다.
그 일들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 자신부터 깨끗이 하는 일입니다. 나 자신 속에 도사리고 있는 기복신앙, 탐심과 우상숭배, 육체를 따라 사는 온갖 더러운 것들을 제거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교회 속의 물량주의와 세속주의, 도덕주의와 공로주의, 그리고 성공주의와 성장제일주의 등, 인간을 여호와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모든 것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의(義)로 구원함을 받는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저버리고 인간의 의(義)로, 인간의 도덕적인 노력이나 공로로 구원함을 받는다는 비성서적이고 비복음적인 것을 제거하고, 또한 모든 이단사설과 집단이 교회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곧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우리 모두가 해야할 이 시대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의 모든 교회가 새롭게 될 수 있도록, 즉 이 땅의 교회가 새로운 이름을 얻을 수 있도록 개혁에 박차를 가합시다.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일컬음을 받을 그 새로운 이름은 '거룩한 백성',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 '찾은 바 된자', 그리고 '버리지 아니한 성읍'이란 이름입니다(12절). 이같은 새로운 이름은 바로 이 땅의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의 교회가 이같은 새로운 이름을 얻어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 새로운 교회가 될 때까지, 우리 모두가 쉬지 않고, 또한 잠자지 않고 늘 깨어 있는 종교개혁자들의 반열에 서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개혁정신을 우리의 목회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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