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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왜 종교개혁인가?

본문

나아가거라, 성 바깥으로 나아가거라.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큰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어라. 뭇 민족이 보도록 깃발을 올려라. 보아라, 주님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신다. 딸 시온에게 일러주어라. 보아라, 너의 구원자가 오신다. 그가 구원한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 그가 찾은 백성을 앞장 세우고 오신다. 사람들은 그들을 '거룩한 분의 백성'이라 부르며 '주님께서 속량하신 백성'이라 부를 것이다. 사람들은 너 예루살렘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랑한 도성' 이라고 부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은 도성' 이라고 부를 것이다.

오늘은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는지, 그 뒤에 숨은 여호와 하나님의 동력은 무엇이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의 불길을 당긴 주역의 하나였던 루터가 어떻게 자기 신앙을 고백하면서 이 운동을 했으며, 그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를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함께 은혜 받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488년 전인 1517년 10월의 마지막 주일의 일입니다.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라는 작은 동네의 교회 정문에 95개 항목에 달하는 저항의 글을 붙였습니다. 당시 루터는 비텐베르크 교회의 담임목사이자 수도원의 수도사였으며, 비텐베르크 대학의 성서담당 교수였습니다. 그리고 이 운동이 번지면서 루터는 교황의 명령에 따라서 보름스에 있는 의회에 소환을 받았습니다. 그 곳에서 왜 종교개혁을 중단하지 않는지에 관한 심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루터를 통해서 비텐베르크 교회에 조항을 붙였던 작은 사건에서부터, 보름스 의회에 부름 받았던 큰 사건까지를 어떻게 연결시키셨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488년 전, 루터가 목회하던 때에는 면죄부가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데서나 면죄부가 판매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텐베르크의 경우에는 강을 건너서 이틀 걸어가면 나오는 큰 도시에서야 면죄부를 살 수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면죄부를 사겠다고 돈을 모으고 저축해서 비텐베르크에서 뗏목을 타고 조그만 강을 건너서 또 다른 동네에 걸어갑니다. 교인들의 그런 어려움을 보고 목회자 루터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낍니다.
게다가 면죄부는 사실상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의 죄를 면책해준다는 의미의 면죄부입니다. 소위 면죄부라기보다는 면책부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사러 가서 보니 자기의 죄 뿐만이 아니라 지금 연옥에서 천국에 갈까 지옥에 갈까 대기 중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고모, 모든 사람의 죄를 없애주는 면책부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자기 것만 사오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없는 돈을 모아서 가족들의 것도 다 사오기 시작했습니다. 루터의 고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 말도 안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루터의 95개조 항은 별로 대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시 사회에 있던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적어놓았습니다.
당시 독일 비텐부르크의 상황을 보겠습니다. 지금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브란덴부르크라고 합니다. 그리고 브란덴부르크의 교구장은 알브레이트라는 대주교였습니다. 그런데 교황이 이 대주교에게 동독에 있는 막데부르크라는 지역과 서독에 있는 마인쯔라는 지역을 합하여 제 2의 대교구를 형성할 권한을 주면서, 그 대가로 면죄부를 판 값의 일정 비율을 교황에게 바치도록 조건을 걸었습니다. 루터는 기도합니다. 면죄부의 판매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돈으로 계산해서 살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 신앙이 어디 있습니까. 루터는 이것을 대대로 물려받은 율법주의의 극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기도합니다. 주님, 만약 돈으로, 물질로, 인간의 자력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고 하는 율법주의가 폐기되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와야 하겠습니까. 예수님 말씀입니다. 율법이 망가졌을 때 그 대안으로 복음이라는 것이 있다. 돌판에 쓴 율법이 있는가하면, 인간의 양심 깊은 곳에 쓴 신앙의 법인 복음이 있다. 이 복음으로 다시 거듭나야 한다.
여기서 루터가 읽은 이사야서 말씀입니다. 루터야, 성 밖으로 나아가라. 내 백성이 지금 진흙탕에 빠져있으니 그들이 돌아올 길을 마련해라. 큰 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라, 뭇 민족이 볼 수 있도록 깃발도 올려라. 보라 주님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신다. 가라. 가서 깊은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라.
루터는 알브레이트 대주교에게 편지를 씁니다. 제가 손으로 쓴 95개 조항을 당신에게 보냅니다. 면책부를 파는 것도 문제입니다. 게다가 면책부를 팔아서 얻게 된 돈의 일부를 부정한 방법으로 교황에게 보내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말도 안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95개 조항에 써서 교회에 붙이면서, 그 사본을 알브레이크 대주교에게도 보냈습니다. 그러자 이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동네에서 동네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루터가 옳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루터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었던 두 가지의 배경이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먼저 한 가지를 보겠습니다. 루터의 고백입니다. 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 하늘의 은총과 영광이 너무나 커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안에 은총이 넘치는데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하실 수 있습니다.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사실을 수도원에서 배웠습니다.
바로 이것이 첫 번째 중요한 교훈입니다. 수도원은 말씀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과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홀로 대화할 수 있는 대면의 장소입니다. 여러분, 바쁘시지요. 스케줄이 가득하시지요. 그 스케줄 중에 명상할 시간은 있으십니까. 여호와 하나님과 단 둘이서 대화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있으십니까. 그러한 여유가 있으십니까. 여호와 하나님과 만나는 단 1분의 여유가 여러분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루터는 수도원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은총이 너무나 가득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 루터의 고백입니다. 수도원에서만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제 외가집은 신앙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머니께서는 제가 모태에 있을 때부터 신앙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그러한 신앙 교육이 수도원에 갔을 때 엄청난 보고가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제가 종교개혁을 할 수 있었던 신앙의 뿌리는, 바로 제 어머니의 모태신앙 교육이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알아야 할 중요한 교훈입니다. 우리가 자식을 잉태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아기를 가지신 분들은, 그가 알아듣던 듣지 못하던 간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야기를 가르쳐 주십시오. 그것은 성령을 통해서 마음속에 새겨진 복음의 진주가 됩니다.
모태신앙,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과의 대화는 루터를 불길의 주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붙인 불길은 유럽 전체를 타오르게 했습니다. 게다가 488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도 불길이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세계적 사건 뒤에는 이렇게 인간의 진실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이야기를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 당시 교회는 부패했고 교인들의 영적 고갈은 너무 극심했습니다. 그로 인한 분노와 좌절은 종교개혁을 통해 reformed church, 개혁된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는, 분노와 저항에 그치지 말고 그 다음에 나올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그 대안을 로마서에서 찾았습니다. 인간의 죄 사함과 구원은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재물이나 지식이나 결단에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부패했으니 없애버리고 그 대안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십시오. 은혜는 나의 영적 자원이라고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에 루터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사실은 그로부터 백 년 전부터 유럽 전체에 사람도 교회도 체제도 문화도 고쳐야 한다는 개혁의 목소리가 사람들 속에서 있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개혁이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된 상황에서 루터가 작은 사건을 통해 불을 당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불은 유럽 천지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루터가 보름스에서 심문 받게 되자, 그 사건이 공개화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개혁이 폭발된 것입니다.
모든 개혁은 거대한 사건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의 회개, 내 가정의 변화처럼 작은 일에서 사건이 일어나면서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 속에 불이 붙어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활활 타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혁명으로 바뀝니다. 루터도 큰 개혁을 이루겠다는 마음이 아닌 잘못된 것을 고치자는 작은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루터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결합시켜서 거대한 불길을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가 종교개혁의 불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불길은 100년이 지난 후인문학, 자연과학, 음악, 미술 등 모든 학문이 교회의 억압된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학문과 예술의 발전, 자연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계몽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르네상스가 부활했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루터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성공할만한 영적인 자원이 바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잠자던 가능성을 루터가 일깨웠습니다. 개혁은 마음의 공감대가 풍부할 때만 가능합니다. 불을 붙이면 모두가 공감해서 들고 일어설 수 있을 만큼 자원이 풍부해야 합니다. 그런 자원도 없으면서 말만 외친다고 개혁이 되지 않습니다. 루터의 조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패와 타락에 대한 저항, 그 밑바탕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사를 먼저 찾아서 모으십시오. 모아서 우리의 외침을 묶어 보십시다. 그리고 나면 누가 외치던지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엄청난 폭발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시켜주셔야 가능합니다.
미래에 영적인 보고가 분출될 수 있도록 우리의 영적인 은사들을 준비합시다. 언젠가 종교개혁의 불길이 경동교회에서, 서울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미래를 준비합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누군가를 통해서 미래의 개혁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 일을 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영적 공감을 묶어서 훨훨 타오르는 하늘나라의 개혁을 이 땅에 심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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