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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두 번째 종교개혁과 의식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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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간에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가 위기라는 진단을 하면서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과 개혁에 대한 요구들의 강도가 높아가고 있다. 보수교단이나 진보교단이든 간에 각 교단마다 교회와 그 교단 갱신을 외치며 조직된 단체들이 많아짐을 보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진행되는 병리현상들을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책임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앙의 얄팍함과 천박함을 걷어내고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며 좁은 공간에서 선민의식으로 신앙의 협소함을 넘어서서 신앙의 우주론적 넓이를 바라보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변화와 개혁에 눈을 떠야 한다. 변화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요한복음 1장에서 말하는 로고스(말씀)는 이성적인 지식에 갇힌 존재가 아니다. 신비적인 차원에서 초연하게 관조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 로고스는 그 안에 삶의 현장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정열 즉 파토스를 갖고 있다. 그래서 로고스는 파토스의 처소인 육신에 내려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는 로고스와 파토스가 어우러져 있다. 여기에 힘이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질 수 있게 된다. 바로 여기가 구원의 자리이다. 부활하신 그분이 하늘로 오르시면서 성령을 약속하신 말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변화의 영향력을 자신이 체험하고 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역사(役事)를 보게 된다. 한국교회가 성서의 원천으로 돌아가 갱신되어야 한다는 말은 근자에만 해당된 말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지 못하면 내면의 혁명이 없는 전도자의 외침은 공허일 수밖에 없다.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신앙의 본질적인 힘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없다.
마틴 루터는 "교회는 개혁되어야 하며,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하여 날마다 교회가 자정 되고 새롭게 되지 않으면 타락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였다. 더욱이 기독교는 개인 구원뿐만 아니라 인간 전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종교이다. 한국교회는 교회내의 선포를 새롭게 개혁해야 하며 이것을 사회 개혁으로 연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 개혁 즉 신앙개혁이 교리나 제도개선에 머문다면 무의미하며 진정한 개혁은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16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청교도 운동은 우리의 현실에서 매우 중요하다. 경건주의로 본다면 개혁파 경건주의는 물론이고 루터파 경건주의도 청교도 운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청교도 운동은 두 번째 종교개혁운동이라 볼 수 있다. 영국 왕과 교황사이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로마 카톨릭에서 떨어져 나온 영국교회는 개혁문제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개혁의 적극적이고 철저한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이 청교도의 관심사였다. 16세기의 종교개혁에 이어지는 17세기의 종교개혁 그러니까 두 번째 종교개혁의 중심에 청교도 운동과 경건주의가 있다.
경건주의(Pietism)는 스콜라적 루터교에 대해서 즉 엄격한 교리적 해석을 전제로 하여 누구나 다 여기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성례에 참가 할 것을 요청하면서 그것이 마치 기독교 생활 전체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고 있을 때 일반적인 경향은 종교 생활의 형식화, 교회화에만 국한되어 '사멸된 정통'의 종교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경건주의는 스콜라적인 경향에서 나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험과 감정을 고조하고 성직자들도 논쟁을 하는 설교가 아니라 참 삶의 경건성과 신조중심의 교회에서 성서 연구의 강조점을 두었다. 도대체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 하는 자기 정체성의 고민이 생겨났다. 공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를 듣고 공교회가 베푸는 성례전에 참여하면서 그 안에 그저 있으면 구원이 보장된다는 식의 중세적 틀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설득되지 아니하였다.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깊이 와 닿는' 확신이 필요했다. 명제적인 교리보다 실제적인 삶의 변화가 요청되었다. 청교도운동과 경건주의 운동은 이런 위기 의식에 대한 대답이었다.
우리나라 광복 이후로 줄곧 왜곡되어 온 정치권력의 부도덕성은 부정부패의 온상이었고 법과 도덕을 지키면서 살기보다는 이를 어기거나 무시하면서 사는 것이 더 쉽고 적응적인 행태였다.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리와 부정 부패의 연결고리 속에 갇혀서 할 수 없이 또는 살기 위해서 다소간의 비리와 비행을 저질러 온 것이 사실이다. 권력과 부를 소유한 만큼 거기에 비례하는 크기의 부정과 부패, 비리를 갖게 되어,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일수록 비리의 규모도 큰 현실을 보면서 이런 삶이 우리 국민들 사이에 수십 년 간 지속되어 왔음을 경험했다. 이러므로 왜곡된 사회의식이 국민들 생각에 잘못된 신념들로 화하였다. 예컨대 법과 도덕을 지키고 어떻게 출세하고 성공하며 돈을 벌 수 있을까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 치고 부정 안하고, 부패 안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열심히 일해 봤자 소용없다. 부동산 한번 잘하면 억대를 가만히 앉아서 번다. 증권 한번 하여 승산이 있으면 돈방석에 앉는다. 누구나 다 요령껏 법을 어기며 사는데 나라라고 별수 있는가 돈줘서 싫어하는 사람 못봤다. 돈을 쓰면 안될 것도 된다. 정직하고 순박하며 법대로 살라고 자식에게 가르치기가 겁난다. 그러다가 내 자식은 언제나 실패자로 낙오자로 남을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이 구조를 이루며 공정한 경쟁의 규칙이 안지켜지고 있다는 데에 대한 사회적 불신의식이 충만해 있다. 그 결과로 사회 지도층 인사에 대한 불신이 크며 돈이면 안된는게 없다는 배금주의와 불신주의가 팽배하며 정직하고 법 지키면 손해라는 도덕적 무감각이 크게 되어 버렸다. 이와 같이 혼란스럽고 왜곡된 의식이 국민들 사이에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상호불신과 부도덕한 생활이 관행화 되고 부조리가 직간접으로 생활전반에 묵인되고 일상화되어 버렸다. 예컨대 다른 이들의 과소비를 보면서 주부들은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절약과 근검의 미덕을 스스로 약화시키며 자녀교육에 대한 왜곡된 행동에 몰두하게 된 사회현상을 본다.
자유당 군사정권이 지나 문민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대대적인 개혁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삶의 질을 높이려 하고 역사바로세우기를 감행하면서 국민의 정부를 맞게 되었다. 계속 개혁의 소리가 높으면서 개혁 실천의지를 모아 구조악 속의 부조리와 사회전반에 대한 개혁의 기치는 높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국민들의 올바른 가치관과 제2건국 세움에 따른 제반 사항을 준수코자 하는 정부의 노력을 엿본다.
의식개혁이란 말이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 많이 쓰이고 사실상 현실로 절감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의식 개혁이란 현재 우리사회에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잘못된 행동들의 근거를 이루고 있다고 믿어지는 왜곡된 심리적 특성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다. 의식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 본다면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이기적 의식을 반성하고 이제부터는 새로운 각오로 생활하겠다는 도덕적 자각을 불러일으킴으로 왜곡된 가치관과 그릇된 행동을 바로잡아 정상화와 합리화의 새로운 생활의 관행을 정착시키는 일이며 이 점에서 의식개혁의 방향에 기독교의 생활신앙 실천이 요구된다.
왜곡된 생활의식에서 새로운 의식변화로 전환되려면 이득과 손해의 경험이 의식을 변화시키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교육학이나 심리학에서는 의식이란 쾌, 불쾌 또는 이득과 손해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될 때 생겨나는 신념이라고 규정한다. 예컨대 줄서기를 해서 언제나 손해를 보기만 하는 사람은 줄서면 바보가 될 뿐이란 신념을 가지게 되고 그런 신념이 생긴 이후부터는 결코 줄을 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 투기를 할 때마다 매번 이득을 본 사람은 '돈버는 데에는 부동산이 최고'라는 신념을 가지게 되며 기회가 올 때마다 계속 투기를 하게 마련이다. 이 사람이 갖는 부동산 투기의식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결국 이득보다는 손해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되면 머지 않아서 그는 부동산으로는 돈벌기 어렵다는 신념을 새롭게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의 의식은 네 가지 경험의 경로를 통해 형성되거나 변화된다. 첫 번째의 경로는 지식을 얻음으로서 의식이 바뀌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알려줌으로서 또는 알고 있는 내용을 변화시킴으로서 의식을 바꿀 수 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듣거나 함으로 기존의 지식을 강화 할 수도 있고 폐기 할 수도 있고 아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두 번째 경로는 행동의 관습화를 통해서 의식이 바뀌고 형성되는 것이다. 행동의 반복은 그 행동에 대한 의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의식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행동하게 하라 그리면 결국 의식도 변화하게 된다. 행동의 연습 훈련 반복적 시행이 결국의식의 변화와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이 입장의 기본전제이다. 세 번째 경로는 정서(Emotion)를 변화시킴으로서 의식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정서란 어떤 대상에 대한 쾌, 불쾌의 감정(Feeding) 상태를 의미한다. 또는 정서란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대한 행동을 유발시키는 내적인 감정 상태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쾌, 불쾌의 감정을 갖도록 유도하게 되면 그 사물이나 그 사람에 대한 행동 경향이 변화하게 된다. 즉 쾌, 불쾌의 정서가 바뀌게 되면 행동이 달라지며 이런 행동은 결국 의식의 변화까지도 수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네 번째 경로는 집단 압력을 가함으로서 의식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개인은 누구나 집단 성향에 저항하기보다는 동조하고 일치하려는 경향이 있다. 바람직하지 못한 의식 성향을 가진 개인을 바람직한 행동 성향을 가진 집단 속에 투입시킴으로서 그 개인의 행동과 의식 성향은 변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집단 분위기(Groupclimate)를 도덕화 시키고 건전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예컨대 개인 수준에서의 의식 변화 노력도 중요하지만 교회나 학교, 가정 등의 분위기나 풍조를 변화시킴으로서 개인들의 행동과 의식 변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이 의식 변화를 효과적으로 도모하기 위해서는 ① 지식의 제공 ② 행동의 반복 ③ 정서 경험 ④ 집단압력의 네 가지 경험을 복합적으로 중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 의식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도모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경험의 복합적 제공도 중요하지만 경험의 제공을 둘러 싼 상황 요인도 소홀히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 상황요인은 첫째로 개인들이 자발적 의사를 가지고 의식 개혁 운동에 동참에 주는가 아닌가 하는 자발성의 여부가 그것이다. 의식에 개혁하려는 당사자 자신이 의식을 바꾸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의식 변화는 더 잘 이루어진다. 둘째로 의식 개혁 추진자가 갖고 있는 신뢰성의 여부이다. 이들이 불신 받거나 믿음직하지 못하면 의식 변화는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의식 개혁의 추진은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에 의해서 전개되어야 한다. 교회의 신뢰척도는 바로 의식 개혁척도가 된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세 번째 의식개혁이 얼마나 다른 영역의 삶과 관련 지워져서 추구되는가 하는 연계성의 확보 여부이다. 의식의 변화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함께 연계되어 추진될 때 효과적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의식 변화의 효율성을 갖기 위해서 교회, 가정, 지역사회가 연계되지 못하고 따로 놀게 되면 의식 변화는 그 만큼 더 어려워진다. 이런 점에서 자발성, 신뢰성, 그리고 연계성의 여부는 의식 개혁운동의 추진을 오늘의 교회가 당당하여야 한다고 절감한다.
오늘의 개혁은 다양한 차원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구체적으로 수많은 덕목과 행동 특성을 나열하고 이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고 '정직한 국민'으로 어느 한 덕목만을 집중적으로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감안하면서 한국의 현실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들의 공통된 관심이며 현실의 바람직한 변화가 생겨나기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치관이 바로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치관의 여하에 따라 오늘의 국가가 좌우된다고 본다. 우리는 8. 15광복 이후 한국이 지금까지 걸어온 과정에 대하여 두 가지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첫째 우리는 국가의 균형된 발전과 번영 그리고 개인의 자아실현과 행복을 위해서 유익한 여러 기회와 조건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고, 둘째, 현재로 경제, 정치, 문화, 사회 등 여러 분야에 걸쳐서 온갖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고 있으나 낡고 폐습된 혼란한 가치관에 사로잡혀 이 심각한 난국을 극복하기에 정신적 자세를 갖지 못함을 깨닫는다. 가치관이라는 말의 본래의 뜻은 가치에 관한 사상 내지는 생각에 가까운 것이다. 인생관, 또는 세계관 등의 말이 그렇듯이 가치관도 본래는 일종의 관념 즉 머릿속에 있는 어떤 생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가치관이 잘못되었다' 또는 '가치관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단순한 내면적 심리현상으로서의 관념의 세계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동실천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경우를 말함이다. 예컨대 가치관이라는 말이 행동의 경향 또는 행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으로서의 심리적 요인 즉 의식적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일 수도 있는 행동의 동기를 가리킬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처해있는 과도기적 시점에 근대화라는 과제를 앞에 두고 숨가쁘게 움직여 오는 동안 우리 고유 전통적 윤리는 이미 무너지고 서양의 근대적 가치관이 아직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까닭에 사회 생활이 확고한 규범을 잃고 혼란에 빠져 있다는 점을 유안 해야 한다.
청교도 운동과 경건주의 운동이 신앙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제시한 내용들은 17세기 유럽이나 오늘의 한국의 갱신에 필요한 '근본적인 시각'에 맞추어진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신앙은 참으로 진지하고 영향력이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 병리현상과 교회의 문제점은 공통성이 있다. 살펴보면 신앙은 너무나 진지하고 영향력이 있는 것이어서 귀로만 듣고 지식으로만 정리하고 그칠 수가 없다. 올바른 신앙은 더깊은 데로 들어간다. 실천을 통한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청교도들과 경건주의자들의 생각이었다.
17세기는 역사상 지식욕이 가장 왕성한 때였고 수학과 과학을 비롯한 모든 분야의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고 여기에 근거를 두고 계몽주의가 서구 정신을 지배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실천적이며 실존적인 지식관이 무너졌다. 참된 로고스(말씀)는 거기에 파토스(고통까지 포함하는 생의 현장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정열)가 같이 있어야 하는데 파토스 없는 절름발이 로고스가 행세를 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신앙의 본질이 올바른 지식과 그것을 실천하여 삶이 변화되는데 있다는 통합적 지식론도 지성 편향적인 계몽주의적 우상을 넘어서는 것임을 깨닫는다.
신약의 오늘 본문은 로고스(말씀)의 신성(神性)과 창조자로서의 활동 및 수육(受肉) 등을 밝힌다. 요한은 헬라 사고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로고스'라는 말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 말이 헬라 철학에서는 주로 이성(理性) 혹은 만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세상에 의의를 부여하는 능력 등 다분히 철학적이고 사변적 개념어로 사용되었으나 본문에서는 생명의 근원이며 모든 사람의 빛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인격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말씀이란 성육신 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간의 상호의사 소통의 길을 터놓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셨던 그리스도의 은총을 여실히 드러내는 점에 유의하면서 실천에 연결되지 않는 지식은 거짓이며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 가는 인격적 변화가 기독교 사역의 핵심임을 강조해야 한다. 종교개혁의 당시 관점도 사회의 여러 분야 중에서 종교분야만의 개혁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한 점이다. 청교도들과 경건주의자들은 신앙이 삶 전체와 연관이 있음을 알게 한다.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정치, 경제, 법조, 교육 등 사회의 총체적 기능이 신앙적으로 구조된 '언덕 위의 도시'를 세우려 했던 것이 이 때문이었다.
두 번째 종교개혁인 경건주의 운동은 교회만이 아니라 교회와 사회 전체를 갱신한 운동이었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신앙적인 가치관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자연스럽게 모든 신앙인에게 책임을 요청한다. 목회자만이 아니라 모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이 특권과 책임으로 부르심에 응해야 한다. 종교 개혁적인 "만인사제직", 삶의 모든 영역에 신앙적 가치관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은 사역에서 내부와 외부를 분리하지 못하게 한다. 교회는 사회의 여러 이익집단 가운데 또 하나의 이익 집단이 아니라고 믿는다. 오히려 교회는 서로 갈등하는 사회 집단들 모두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고 믿기에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여 '두 번째 종교개혁'의 교훈으로 오늘의 의식개혁을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의 의식구조 속에 삶의 자리를 마련해야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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