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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날마다의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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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은 490년전 즉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수도사 였던 마틴 루터가 비덴베르그 성당 대문에 카톨릭의 부패에 관해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부착한 것을 기화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 중에도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은 면죄부 판매 때문입니다.
당시 도미니크 종단의 사제 테첼이 간교한 방법으로 백성들을 선동하여 이 면죄부를 사면 연옥의 고통에서 면제된다고 유혹했습니다. 면죄부를 판돈은 교황 레오 10세가 성베드로 성당 증축에 사용된다고 하였으나 사실 그 수익의 절반은 호헨쫄레른 가문의 브란텐 부르그의 알베르트가 모인츠의 대주교직을 사는데 소용된 빛을 갚는데 쓰여졌던 것입니다.
여기에 분노한 마틴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고 (Sola Fidei) 외치면서 95개조항의 항의문을 내걸었던 것입니다. 그때 루터가 황제의 소환을 받아 보름스 의회에 서면서
"교황에게 건, 의회에게 건, 난 내 신앙을 버릴 수 없다.
그들의 오류가 빈번하며 서로 모순된다는 것은 대낮처럼 분명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증거를 받아 확신 하는 나는 결코 철회할 수 없다. 내가 여기 섰으니 딴 길은 있을 수 없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외쳤고 또 보름스에 가는 것은 생명에도 위험이 있으니 가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름스에 있는 모든 기왓장이 다 마귀가 되어 나를 공격 한다 해도 나는 가겠노라"고 당당히 말했던 것입니다.
그 여파가 쯔빙글리나 장 칼뱅 들의 믿음과 지력과 함께 유럽을 휩 쓸었고 존 녹스로 하여금 스코틀랜 드의 종교 개혁을 하게 했고, 요한웨슬리로 하여금 영국 감리교회를 창시하게 했고,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당시 수도사들이 복음을 몰랐기 때문에 고행으로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려 했고 기도문을 읽어도 그 내용이 어느 성경에 기초한 것인지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고급 사제들이 대낮에 창녀들과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황 무오설을 믿었습니다. 교황은 절대 오류가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성경의 권위보다 교황의 권위가 더 앞선 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럼으로 한마디로 교황을 신격화 시켰습니다. 여기에 반기를 걸고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는 오직 그리스도,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은혜라는 4가지의 슬로건을 걸고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종교 개혁주일을 맞아 이 4가지의 슬러건이었던 내용을 생각함으로 함께 은헤를 받고자 합니다.
1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구원은 오직 유일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지, 교황이나 신부가 주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고행으로 죄사함 받는 것도 아니며, 면죄부를 산다고 구원 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의 교회지도자들은 교인들을 어두운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교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말씀을 곡해 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구원받기 위해서는 몇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이 무어냐
구원을 얻을려면 면죄부를 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기 위해서 많은 돈을 투자했습니다.
마치 이단들이 상습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 천국갈려면 천국행 티켓을 사야 한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천국가기 위해서 10만원짜리 50만원 짜리 100만원 짜리, 천만원 짜리를 만들어 놓고 천국행 테켓을 사면 거기에 이름을 적어 주고 마치 그것을 사야만 천국에 들어가는 것처럼 이단들이 쓰는 수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베드로 성전을 건축하다가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부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베드로 성전을 빨리 지을수 있겠느냐고 회의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에게 돈을 거출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면제부 판매가 아닙니까
그리고 많은 고행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처럼 신자들에게 고행을 강조하였습니다.
마치 구원을 교황이 주는 것처럼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은 누가 주는 것입니까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무슨 종교적인 행위를 열심히 함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내 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 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 하셨고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 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3장 16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 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 4장 12절) 고 했습니다.
우리의 대속자가 되시고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고 부활하신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오직 그 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정신과 신앙은 세상 끝날 까지 교회가 보존해야 될 중심 사상이라고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증거입니다.
물에 빠진 사림이 있습니다. 헤엄을 못하기 때문에 물속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사람살리라고 아우성을 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죽기 직전에 고무보트가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이 고무보트는 긴 줄이 달려져 있었습니다. 이 줄은 예수에게로 연결되어 잇는 줄이었습니다. 고무보트를 잡으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께 연결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절대로 누가. 사람이 구원을 주는 것처럼 따라가면 안됩니다. 목사가 교황이 어떤 교주가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할렐루야!
2. 오직 성경
마틴 루터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Back to the Bible)고 역설했습니다. 교황의 권위도 성경의 권위보다 앞설 수 없고 성경 외에 그 어떤 사람의 사상이나 문헌도 우리 신앙의 표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 신앙의 표준이며 신앙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시에는 교황의 말이 성경보다 우선이 되었습니다. 교황은 무오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모든 말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공식석상에서 회를 할때 하는 모든 말이 무오하다고 하지만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 성경위에 있다는 발상이 얼마나 비성경적이고 비 신앙적입니까 루터는 여기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우리에게 신앙의 표준으로, 삶의 잣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경전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이보다 월등한 권위는 없습니다. 국가의 헌법보다도, 어떤 공동체의 규칙보다도, 어떤 선언문 보다도 성경의 권위를 능가 할 수 없습니다. -그럼으로 어떤 사람의 신학이나 사상이나 가르침이나 교훈이 성경 이상을 능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없이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과 신앙과 생활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에 관한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권고는 성경에 명확히 적혀있거나 아니면 선하고 필요한 결과에 의해서 성경으로부터 추론될 수 있거나 둘중의 하나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새로운 계시에 의해서든 인간들의 전승에 의해서든 아무 것도 추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모든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표준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야 합니다.
성경에 없는 것이 없습니다. 문학이 있고 철학이 있고, 윤리가 있고, 법이 있고, 가정이 있고 국가가 있고 사회가 있습니다. 성경에 모든 것이 다 있음으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항상 성경을 가까이 두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대로 행동 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시인이며 소설가인 스코트(Scott)는 평생을 책과 함께 지냈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있었다. 스코트는 나중에 지병을 얻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에도 병실에는 책이 가득 놓여 있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시간 전에 아들을 불렀다. “아들아. 나를 서재로 인도해다오. 책을 보고 싶구나” 아들은 그를 서재로 안내했다. “어떤 책을 보고 싶으신가요” 그러자 스코트는 아들에게 말했다. “나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 내 기억속에 오래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책중의 책은 성경뿐이다. 나를 위해 요한복음을 읽어다오” 스코트는 아들에게 요한복음 14장을 읽게한 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이처럼 많이 읽힌 책은 없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성경이 멀어지고 잇습니다. 손으로 부터 마음으로 부터 우리의 의식과 생각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불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덮어두고 나의 생각으로 판단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지 아니하고 문학잡지나 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의 삶의 기초가 되고 삶의 양식이 되어야 하는데 텔레비전이나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을 더욱 권위있게 믿고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이 영원한 진리입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주님을 가장 잘 본받는 사람이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소유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종교 개혁이 필요합니다. 먼저 말씀으로 돌아오는 운동입니다. 말씀 읽기와 쓰기와 공부 우리를 죄악 가운데 해방시켜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행하고 성경에 버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버리고 멀리하는 성경의 권위를 회복시키는 운동이 오늘 제2의 종교개혁으로 일어 나야 하겠습니다.
3. 오직 믿음입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 하는데 가장 크게 강조했던 것은
"오직 믿 음"(Sola Fidei)입니다. 우리도 구원 받는 것은 면죄부를 사는데 있는 것도 아니고 고행을 하는데 있는 것도 아니고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는데 있는 것도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당시 교인들은 죄를 지으면 고행을 해야 죄가 없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성계단"()을 맨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모래알이나 유리조각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입을 계단에 맞추었습니다. 지금도 이태리에 가보면 그렇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여기에 강력히 반발해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 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강조했습니다.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고행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말 미암아 살리라"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인들 가운데 가장 문제 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원의 확신이 없이 예수를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를 10년 다니고 20년 다녔는데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모르고 믿습니다. 당신이 오늘 당장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물어 보면... 글쎄요! 그럽니다.
죽어 봐야 알지 지금 어떻게 알수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실리적인 이야기인것 같지만 믿음 없는 표현입니다.
왜 확신이 없냐고 물어 보면 내가 주님을 위해서 별로한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구제와 선행을 많이 못했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자주 빠지고 헌금도 많이 못했는데 어떻게 자신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는 이야깁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공로나 선행으로 자신의 힘과 능력을 구원을 이룰려는 무지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이 구원에 대해서 뭐하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 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 이라"했고 2장 9절에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 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은혜"도 값없이 거져 받는다는 뜻 이요
"믿음"도 행위로 받지 않는다는 뜻이요
"선물"도 값을 내지 않고 거져 받는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행 위로 받는 것이 아니고 고행의 대가로 받는 것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께서 피 흘려 이룩하신 십자가 공로 를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사람 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 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11절 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전적타락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가 조금이나 남아 있고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선행을 베풀만한 행위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엡2:1에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죄와 허물로 우리는 완전히 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의식이 없습니다. 말도 못합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불속에 들어가도 칼로 베임을 당해도 고통을 모르는 것이 죽은 사람의 시체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영적으로 이렇게 죽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앞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다.
마치 우리의 공로와 선행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수 있다고 가르치는 자는 성경을 곡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점에 있어서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을 일으켜야 합니다.
많은 교회에서 선도들을 무지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신앙생활이 축복받는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기도하는 것도 자신이 잘되고, 선행을 베푸는 것도 자신에게 그 축복이 돌아오기를 위해서, 헌금을 드리는 것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잘되어 축복받는 수단으로 헌금을 드리는 사람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천주교적인 신학을 가진 목사님들의 책임입니다. 지금도 천주교는 믿음과 행위를 통해서 구원받는 것을 강조합니다. 믿고 잘 살아야 구원을 받는 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주교에서 하는 구제 사역은 참으로 잘 되어 있습니다. 좋은일입니다. 구제하고 봉사하는 그것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슨비다. 그러나 기독교는 구원받기 위해서 선행을 베풀지 않습니다. 구원받았으니까! 그 은혜가 너무도 감사하고 고마워서 하는 것입니다. 출발이 다르습니다. 우리는 구원얻는데 믿음외에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선행을 베풀었는가 이런것이 구원얻는 조건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천국가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공로 없지만 예수 공로 의지하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더럽고 때묻은 모든 죄악된 옷들은 다 벗어 버리고 믿을때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 것인데 그분의 의의 옷을 입고 의롭다 인침을 받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철저하게 믿음이 아니면 구원의 발걸음을 한걸음도 걸을수 없다고 믿는 것이 우리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기독자들의 자세입니다.
그러면 내가 믿어서 구원받았으니 이제 더이상 아무것도 안하고 전혀 삶이 필요없으니까! 마음대로 살아도 도니다는 말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기독교의 구원관은 더욱 높은 삶의 질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구원받은 것이 사실이면 이제 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정말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 다음부터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물속에 빠져서 죽어 있을때 누군가가 건져 살려 주셨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살려준 사람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사랑하며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서 그분이 좋다고 하는 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제 선행을 베풀면서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은 구원받기 위해서 아직 구원이 안 이루어 졌으니까! 구원얻는 업적을 쌓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구원받았으니까 그 은혜에 너무도 감사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이미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까! 그분에게 더욱 효도하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이요 행위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가장 중요한 구원관을 무관심하고 그져 축복만을 부르짖고 있기 때문에 적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있으면서도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 종교개혁이전으로 다시 돌아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이 진리를 놓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아멘!!
4. 오직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의 나된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다" 한 말씀처 럼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도 하나 님의 은혜요 구원받게 된 것도 하나 님의 은혜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 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 노라"-한 말씀대로 우리가 죄사함 받은 것도 영생을 얻은 것도 천국에 가게 된 것도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의 선행이나 우리의 고행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럼으로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빠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은혜가 아니면 시체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값없이 받는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은혜"란 "받을수 없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호의"란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인간의 모습은 은혜를 받을만한 사람들이 못됩니다.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받는 것이라면 은혜가 아닙니다. 보상이요! 댓가이죠! 이미 강조해 드렸지만 우리는 다 치우쳐 죄가운데 빠졌기 때문입니다.
신약에는 사도바울이 누구보다도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고 나는 죄인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우리는 원하는 것, 늘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아니하는 것 행하고, 늘 작정하고 기도하는 것도 잘못하면서, 늘 고민하는 것에 빠지고 넘어지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모습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죄라는 것입니다. 내게 미움이 있습니까 미움이 아니라 내 안의 죄라는 거예요. 내가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입니까 시기, 질투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깊이 죄의 뿌리를 갖고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죄입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우리 인간을 전적 타락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완전히 타락한, 버림받은 것이 오늘 우리 인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쓸모없게 된 것입니다. 못쓰게 된 것이에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었다.
예레미야 17장 9절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죄에 대해서 죄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가장 크게 스케치해서 가장 크게 그리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리고 죄의 산은 에베레스트 산보다도 더 높지만 이 죄를 위해서 해결하기 위해 오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의 능력이 에베레스트 산보다도 몇 배 더 큰 보혈의 능력이며 보혈의 은혜가 더 크고 그 아들을 통하여 구속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죄보다도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죄가 주먹만하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태양만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죄가 촛불 같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빛은 태양빛 같다는 거예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측량할 수 없이 크다는 거예요.
♪그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말로 할수 없는 사랑.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우리 기독교를 정확하게 땅에 있는 것으로 비교하기가 참 어렵지마는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못쓰게 된 땅, 못쓰는 우리 인간, 버림받은 우리 인간, 죄로 말미암아 썩고 냄새나고 영영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자기 보혈로 더러움을 덮고 썩은 것을 회복하고 냄새나는 것을 다 제거하고 그 위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새로운 은혜의 집을 짓고 축복의 빌딩을 올려서 천하만민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그러기 때문에 난지도같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그리스도 안에 새것이 된다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누구로 말미암아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만들어 주신 이 은혜는 난지도를 뭐 새로운 도시로 만드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기적이요 능력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수 없으면 이미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건강주신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구원받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아니, 우리가 주님을 믿은 것도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날 은혜의 신앙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때에 다시금 은혜를 회복하는 종교개혁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개혁은 다른게 아닙니다. 다시금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자. 성경으로 돌아가자. 믿음으로 돌아가자,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옛것이 좋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만,그러나 신앙만큼은 옛것이 좋습니다.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신앙으로 돌아가 오늘 우리에게 문제 되는 것들! 교회안에서 버려야 할 일들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는 새로운 갱신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소망이 있고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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