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TOP
DOWN

[종교개혁] 죽음의 죽음

본문

오늘 아름다운 찬양과 함께 우리가 종교개혁의 뜻을 기념하는 주일로 모였습니다.
종교개혁은 우리 역사상에 일어났던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책망을 받고, 깨지고, 다시 새로운 교회로 태어나는 그런 날이고, 그걸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종교개혁도 지구상에 사는 우리들의 역사와 또 지구의 역사가 만들어 낸 역사입니다.
그런데 제가 며칠 전에 중요한 경험을 하나 한 게 있습니다. YWCA가 매년 여성 지도자를 뽑아서 수상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나이드신 분 중에 여성지도자를 뽑아서 수상하고 젊은 지도자를 뽑는 일이 있는데 마침 저도 심사위원이 되어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난 4월 8일 러시아에서 소유주호 우주선을 타고 올라간 첫 번 우주인이 된 이소연 씨가 젊은 지도자 상을 탔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는 건, 이분이 수상하고 나와서 수상소감을 하는 짤막한 신앙간증이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광주 과학고를 나오고 카이스트에서 뇌공학 박사도 받고 우주인이 되고 하면서 우주인으로 선발되는 과정, 공부하는 과정, 훈련받는 과정, 지옥훈련, 이런 걸 많이 받았나봅니다. 그런데 일단 우주에 가서 내려서 보고 다시 귀환했지 않습니까
이 때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조금 놀란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주에 가봤더니 가느라고 돈을 엄청 들였는데 세 사람이 함께 탄 로케트 하나 발사하느라 든 돈이 1억불, 그럼 천 억원이죠 자기들 먹으라고 여기서 특별 음식을 제작해서 가져가는데 음식 만드는 비용만 한 끼당 1인당 40만원 정도 들었다고 합니다.
수공비, 제작비 합치면 백만원 정도의 하루 식사, 비싼 음식이지요. 공기가 나쁘니까 산소 호흡기를 특별히 달아서 가져가고, 또 화장실 등등 복잡하니까 그 시설 별도로 마련하고, 그래서 엄청나게 비싼 돈을 들여서 우주까지 갔다 왔는데 가보니까 숨쉬기 어렵고, 먹을 것 없고, 생리현상 해결하기 어렵고, 돈 많이 들고 그랬답니다. 물론 우리의 과학기술의 발전은 엄청난 겁니다. 과거엔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젊은 사람이 이제 서른 되었는데 이 분이 하는 말이, “가서 지구를 내려다보니까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렇게 세상에 휘황찬란하고 아름다운 지구가 있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 그러면서 지구에 살 때 공기 돈 주고 안 사도 마음대로 마실 수 있죠, 깨끗한 물 있죠, 나무가 있죠, 사람들 많이모여 살죠, 그런데 이런것들 아무 것도 없는데 가서 여길 보니 세상에, 우주공간 중에 지구만큼 훌륭한 게 없는데 나는 뭐하고 살았나 하고 생각하니까 기가 막히더라는 거에요. 갈등, 욕심, 전쟁, 싸움, 이리도 아름다운 곳에서 왜 이러고 살아야 합니까라는 자탄이 많아지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는 이렇게 기도했대요.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여호와 하나님, 제가 내려갈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맨 날 불평불만하고 살았고 싸우며 살았는데 이 좋은 걸 모르고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내려가면 재밌고 복되게 살겠습니다. ” 하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세상에 불행한 또는 좌절과 불만 속에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이 땅의 축복을 정말로 감사하려면, 혹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을 많이 주셔서 우주선 타고 전부 한번 갔다 왔으면 좋겠습니다. 가서 지구 한 번 내려다보고 진짜 좋은지 나쁜지, 맨 날 싸워야 하는 건지, 고통 스럽다고 분노하며 살아야 하는 건지, 뭐 이 안에서 자꾸 이렇게 분노를 분출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지구도 온 우주의 한 부분인데 우주적 구원, 우주의 구원을 말하면서 우리 지구 땅의 구원에 관해서는 우리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지구만 사람 사는 공간인지,
뭐 여러 가지 있을 것 같은데요. 모든 사람의 고백 속에 지구라는 이 땅은 수천 년의 역사가 있고, 수만 년의 역사가 있는데 앞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오셔서 완전히 지구를 해체할 때까지는 역사와 삶은 계속 될 것입니다. 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역사의 한 부분으로 역사를 움직여가는 역사의 주인으로 살고 죽고 만들고 부수고 다시 세우고 이렇게 살아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있읍니다. 이소연 씨의 이야기대로 불만할 수 있고 불평할 수 있는데 가장 기본적으로 이 땅을 만들어주신, 제 생명을 주신 창조주께 단 한순간이라도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까 어렵지만, 눈물을 흘리지만, 살며시 웃는 얼굴로 조금이라도, 아무리 어려워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신앙이 뭐냐고 저한테 물으면 신앙이란, 여호와 하나님한테 살짝 웃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미소를 건네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 분이 저한테 주시는 건 축복, 은혜 일 뿐이죠.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자면서, 일하면서 살아가면서 제가 느낄 수 있으면 저는 그것을 은총이라고 부르고, 제는 그 여호와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아주 단순 소박한 이야기입니다.
종교개혁이 있었던 시절은 지금부터 491년 전입니다. 중세기가 막 끋나가는 시절입니다. 종교개혁이 있던 그 시절을 교회 역사가들이 뭐라고 하냐면, ‘중세기의 가을’ 그렇게 말합니다. 중세기가 다 저물어서 이제 낙엽 질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중세기가 가을 녘에 들어섰을 때 중세기도 마감하고 중세기를 지배했던 교회도 다 심판을 받고 새로 태어나는 자기 갱생의 역사를 시작합니다. 중세기의 가을, 물론 역사학자가 붙인 이름입니다. 중세기의 마지막 낙엽이 어떻게 떨어졌는지 제가 그 이야기를 잠깐 드리려고 합니다.
당시 1200년대라고 보시면 되겠는데, 당시에 중세기의 가을로 접어들 때 굉장히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회복해야 한다며, 교황청의 명령으로 젊은이들을 뽑아서 성지 회복에 나서는 전쟁이 있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입니다. 전쟁은 결국 수많은 사람을 죽게하고, 문명을 파괴하고, 아무런 전과물도 못 올린 채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전쟁에 가서 죽으면 여호와 하나님나라 갑니다라고 했죠. 기꺼이 죽었을 것입니다. 이슬람 사람들이 지하드에 동참하여 죽으면 극락 간다고 하는 거랑 똑같습니다. 이 전쟁에서 수많은 피해와 좌절과 고통이 왔습니다. 세상은 온통 뒤숭숭 합니다.
그런가하면 1300년대 중반에 십자군 전쟁이 끝나고 스페인을 중심으로 한 유럽 천지에 괴질병이 퍼졌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페스트’입니다. ‘흑사병’이란 거죠. 흑사병이 유럽 전체를 휘감으면서 삼백만 명이 죽었다고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전 대륙이 흑사병으로 죽었지요. 전쟁의 피해 참상은 말할 수 없었지요. 단순히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요.
교회 가보면 강당에서 울리는 소리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 오늘 우리 성가대는 격정적이고 아주 훌륭한 찬송을 불렀지만, 성가대의 찬양이 맥이 없고 얼이 없고, 혼이 없는 성가를 불러대고, 기도소리가 형식적이고, 강단은 메마르고, 그런데도 하는 말이, “여러분 그래도 구원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 그랬죠.
구원받으려면 여러분이 범한 죄악을 회개해야 하는데, 회개하는 방법은 처음 출발은 이렇했습니다. 회개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는데 그것도 보통 집에서 하기보다, 어느 교회에서 하기보다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의 본산지인 로마교황청이 있는 교회에 가서 하면 훨씬 더 죄 사함을 빨리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지순례입니다. 요즘 메카를 향해서 회교도들이 성지순례 하는 거나, 기독교도가 로마를 향해서 성지순례 하는 거나, 성지순례 전통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다가 세상이 변했읍니다. 성지순례도 좋은데 이제는 각자 교회에서도 회개하고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편리를 위해서 문서 하나 발행해 드리겠다고 했죠. 일명 증권입니다. 증권의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면책부’, ‘면죄부’ 이걸 발행해 드릴 테니까, 이 주식을 드릴 테니까 주식은 결코 부도나는 법이 없습니다. 비싸게 주고 사십시오. 살아 있을 동안에 주식을 사면 여러분의 죄가 용서 받습니다. 값은 얼마입니까 여러분, 죽은 자를 위해서 죄 용서받게 하고 싶습니까 그러면 이미 지옥불에 가서 유황불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형제, 자매, 선조들의 죄를 조금 면해 주려면 값은 더 나갑니다. 그래서 소위 ‘신앙증권’을 팔았습니다. 주식시장이 됐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생명력이 없습니다.
마지막 1517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하면, 교황께서 다른 건 모르겠고 로마 바티칸에 성 베드로 성전이라는 거대한 성전을 짓고 싶은데 건축비가 없으니 특별 주식을 발행한 겁니다. 이거 사라고. 그러면 구원을 보증 받는다고 하면서 말이죠. 1517년 이야기입니다. 이미 그 때까지 모든 교회 회의에서 교회 개혁합시다. 말씀을 살립시다.
강단, 예배, 생활을 얘기했지만 아무 결정을 못 할 때였읍니다. 사람들이 이젠 다 썩었다. 교회도 썩고, 말씀도 썩고, 모든 게 썩었다고 좌절할 때였죠. 그런데 막판 불붙인 것이 베드로 성당 짓겠다고 면죄부 팔기 시작한 교황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 때 루터도 반대편에서 등장합니다.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95개 항으로 된 라틴 말로 기록된 문서, 곧 면죄부가 가짜임으로 나는 항의합니다라는 문서를 비텐베르크라는 작은 도시의 ‘성곽 교회’라고 이름하는 곳의 정문에 붙였습니다. 1917년 10월 31일 루터가 망치를 두들겨 붙였는데 95개조니까 95번의 망치를 붙였다고 상징적으로 설명할 수 있읍니다.
망치 95번의 소리가 종교개혁의 시작을 울렸읍니다. 내용은 은혜로, 믿음으로 회개하여 받는 것이 구원이지 회개와 구원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그 얘기입니다. 신비주의 운동도 있었고, 여러 가지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당시에 하도 세상이 뒤숭숭 하니까요, 여러 학자 또는 선지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세상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예언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까지도 모든 교회 역사에서 상당히 경청할 만한 역사관을 제시했다고 해서 추종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아킴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런 말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시대 경륜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부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구약의 시대,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신약시대가 있는데 신약시대가 이제 바야흐로 끝나가고 성령이 직접 통치하는 영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태복음 1:17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연대기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 왕까지가 14세대, 다윗 왕부터 바빌론 포로시절까지 14세대, 바빌론에서 그리스도까지가 14세대, 총 42세대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의 족보입니다. 이분이 하는 말이, 한 족보를 30년으로 칩시다. 그러면 42개 세대에 30년씩이면 1,260입니다.
상징적인 숫자이기는 하나, 구약시대는 이미 끝났고, 예수가 지배하는 신약시대가 끝나가면서 베드로를 통한 교회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 시대가 시작됐는데 이제 1260년이면 이 시대가 끝날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 일 이후로는 성령이 직접 통치하시는 시대가 오는데 그 시대는 수도원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영성으로 이루어진 시대가 올 것이라는 역사관입니다. 상당히 신비에 가까운 식의 예언자적 시대론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는 우연히도 무슨 시대였냐 하면, 1260년이 되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전후의 좌절, 흑사병이 곧 일어나기 직전의 엄청난 사건들, 교회의 타락, 윤리의 타락, 신앙의 메마름, 이 모든 것이 있어서 1260년 경 부터는 이미 유럽사회는 병들기 시작합니다. 1260년이라는 숫자에 연연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징적 숫자들입니다. 이 때 나온 것이 면책부이고, 그것을 사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이지요. 사실 면책부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침 1517년 교황이 성 베드로 성당 짓겠다고 하니까 그 때 분노하여 본래 신학교수로 있던 마틴 루터가 95개조를 붙인 겁니다. 그런데 이 때 라틴어로 붙였다가 독일어로 번역되어 전세계로 퍼지면서 그 담긴 내용 때문에 풍파가 일기 시작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루터 이야기 잠깐 하려고 합니다.
루터는 왜 그랬을까요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하고, 석사까지 마쳤습니다. 곧 이어 법학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하고 두 주 후에 수도원으로 가버렸습니다. 어머니 하는 말씀, 아버지 하는 말씀이, ‘법학을 공부해서 출세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그러겠습니다" 하고는 법학과에 등록하고 공부하는 중에, 밤에 길을 걷다가 바로 옆에 가던 친구가 벼락 맞아 죽었습니다. 그 때 루터 말이, “왜 친구는 죽고 나는 살았을까
왜 나를 살려주십니까 이 친구는 죽었으니 어떻게 얼마 면죄부를 사서 구원시킬 수 있습니까 내 영혼은 어떻게 됩니까 내가 지금 구원받으려면 어딜 가면 좋겠습니까” 루터가 당시 법학도로써 생각한 말입니다. ‘너는 수도원 가라. 수도원 가야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 찬양이 살아 있고 기도가 있다". 그래서 수도원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가 여호와 하나님과 직접 연류하고 싶다면서요. 그래서 나중에 신부로 서품받고, 신학교수도 되고, 95개조 면책부반박 논문도 쓰게 됩니다.
루터의 걱정은 이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이 모든 축복을, 은혜의 축복을, 생명의 축복을, 구원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얻을 수 있습니까 돈은 아니고요, 그럼 무엇으로 얻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었습니다. 은혜는 제가 무엇으로 살 수 있습니까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삽니다. 내가 은혜를 믿으면 그걸로 은혜가 임하는 것이고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이지 돈이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믿으면 구원도 받고, 또 믿음의 결과가 선행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선행 자체가 믿음과 구원을 살 수가 없습니다. 단순 소박하지만, 아주 깊은 진리를 깨닫습니다. 자기 인생의 체험에서도 깨닫습니다. 아마 루터는 오늘 봉독된 성경말씀을 다시 읽었을 것입니다. 예수께 어느 지도자가 찾아와서 내 딸이 죽어 있는데 여호와 하나님, 예수님, 손만 얹으면 살겠습니다고 갈구하는 아비의 청을 듣고. 예수께서 손을 얹으며 하시는 말씀이 네 믿음이 네 딸을 구했다고 하십니다. 딸의 죽음을 돈을 지불하고 예수께 구걸했던들 예수가 살릴 수 없습을 것입니다. 나는 돈 받고 살리는 게 아니라, 너의 믿음이 죽은 아이를 살렸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에 있는 오늘의 본문말씀도 예수께서 다 아셨을 것입니다. 인간 역사가 만들어질 때 부터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고로 우리는 "죽음과 계약을 맺었고, 죽음이 들어 사는 지옥과 협약을 맺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운명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빠져나갈 방법을 간구해 봅시다. 거짓말도 합시다. 속임수도 써 봅시다. 그래서 살다가 죽읍시다. 오늘의 본문이 꾸짓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살아왔지요
제가 다른 방법 알려드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오셔서 여러분이 죽음과 맺은 계약, 지옥과 맺은 협약, 일거에 파괴시킵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의 계약을 여러분과 맺겠다는 얘기를 예수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루터는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피폐해진 교회, 피폐해진 도덕, 윤리, 모든 것 다 이젠 폐기합시다. 죽음과 맺은 계약은 폐기하고, 생명의 계약을 새로 맺읍시다. 맺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들은 믿음만 출자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를 출자하십니다. 공동 출자합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종교개혁으로 이룬 새로운 교회입니다.
과거에 돈을 주고 사던 주식은 폐기되었읍니다. 새로운 주식은 믿음의 주식입니다. 요즘 경제위기로 난리입니다. 금융절차를 통해서 하던 모든 것이 땅에 떨어지면 남는 것은 부도와 파멸 그 하나입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한테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위기 속에서 구원자는 믿을 수 있습니까 금융시스템은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 서로 거래하는 우리의 상대방을 서로 믿을 수 있습니까 문제가 지금 뭡니까 돈이 없어서 입니까 믿음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중세기 때, 왜 세상이 발전하지 않았겠습니까 믿음이 없었습니다. 사고 팔려고 했습니다. 거래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구원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고요, 믿으면 여호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믿음과 은혜가 만나서 구원을 이룹니다.
저는 오늘 자연과학이 발달한 것을 보면서 앞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고 싶은 모든 꿈을 다 발전시킬 때까지 모든 문명의 발달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누가 감히 달에 가고, 누가 감히 우주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귀중한 것이 뭐냐고 하면 사람이 주인인 이상, 내가 달에 가도 내 생명을 지켜주신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아주 기초적인 믿음, 여호와 하나님이 저를 살려 주신다고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그것은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지워지지 않는 소박한 진실입니다.
금융 시스템이 무너졌고 또 믿음이 없어서 무너진 제도가 회복되려면, 신뢰라 이름하는 믿음을 회복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루터가 491년 전에 종교개혁이 깃발을 들었습니다만, 오늘 우리도 깃발을 듭시다. 최고의 문명을 즐깁시다. 이익도 보십시다. 풍요의 배를 타고 살아가십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이 문명의 주인인 인상, 우리한테 필요한 것은 소박하지만 진실된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믿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고 하는 믿음은 아무리 발전해도 변하지 마십시다.
저는 살아가면서 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우리는 삽니다. 살지만 결국 죽습니다. 아까 여인의 딸도 살렸는데 또 죽었습니다. 교회도 개혁되었는데 또 타락했습니다. 종교개혁의 기치가 뭔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또 타락합니다. 또 구원받아야 합니다. 한 번 개혁되는 게 아니라, 믿었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라 항상 매일 같이 개혁해야 합니다. 매일 회개하고 거듭나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나 저나 죽을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죽음과 계약을 안 맺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지만 죽음을 넘어가면서 살 수는 없습니까 우리는 하루하루 죽어가면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이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죽음을 뛰어넘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그 약속을 믿으면 우리는 하루하루 그 약속을 앞당겨 맛보면서 살아갑니다. 죽음 편에서 보면 우리의 생명이 하루씩 하루씩 단축되어가지만, 약속된 미래의 생명 편에서 보면 우리가 생명의 축복을 하루하루 앞당겨 받아 성숙해 가면서 삽니다.
태도의 문제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약속받은 여러분은 과거에서 시작해서 지금 죽는 것으로 생을 끄장낼 계획을 하지 마시고, 미래를 자꾸 앞당겨서 맛보는 방식으로 오늘을 복스럽게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가 주는축복입니다. 그렇게 살면 우리한테 이렇게 위로의 말씀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동시에 세상을 넘어서 삽니다. 고난의 극치 속에 살지만 고난을 뚫고 나가는 새로운 생명의 축복을 맛보면서 살아갑니다. 금융위기 극복되겠죠 금융위기한테 우리가 굴복할 수 없죠 우리의 금융이 하루하루씩 죽어간다고 생각지 마시고 금융위기는 극복되도 그 위기를 넘어선 새로운 미래가 있음을 믿고 그 주어진 미래를 오늘 극복하는 과정에서 하루하루 앞당겨 맛보는 방식으로 삽시다.
그래야 금융이 극복되는 거 아닙니까 생명이 뭡니까 생명도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도 그렇게 극복하면서 미리 맛보면서 믿고 살아가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 해주십니다. 죽음은 항상 있습니다만 죽음을 넘어서 새로운 생명을 사는 믿음의 결단이 종교개혁의 축복입니다. 우리 오늘 개혁으로 미래를 앞당겨 살아봅시다. 확신 있게 살아 봅시다. 위기에 굴복하지 맙시다. 위기를 뚫고 나갑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도 내일도 살아계십니다. 믿음만 요구하십니다. 아멘.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