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오늘의 종교개혁
본문
종교개혁 주일/ 종교개혁 주일은 기독교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중세기 이후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중심한 세계사는 인류사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는 로마 가톨릭의 누룩에 오염되어 질식할 정도였다. 따라서 이것을 바로 잡으려는 종교개혁은 바른 전통의 보존인 동시에 그릇된 전통의 파괴이기도 했다.
중세에 가톨릭은 얼마나 타락했던지 마침내 면죄부를 팔기까지 했다. 이는 로마의 베드로 성당을 건축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성경상의 근거가 없는 상행위였다. 곧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이 면죄부를 사는 순간 그 죄가 사해지고 이미 죽어 지옥에 있는 사람도 그 자손이 이것을 그의 이름으로 사주기만 하면 천당으로 올라간다는 '천당입장권'과 같은 것이었다. 면죄부 판매를 담당한 요한 텟젤은 "여러분이 면죄부를 살 때 돈이 헌금함 속으로 땡그랑 하고 떨어지는 순간, 그 소리와 함께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나 형제들의 영혼이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가게 됩니다"하며 교인들을 미혹했다. 이는 천당이나 구원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는 말이 되는 큰 죄를 짓는 것이었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던 독일 비텐 베르그 대학의 젊은 성경신학 교수였던 루터는 마침내 1517년 10월 31일 정오에 비텐 베르그 교회 정문에 면죄부(사죄표)의 부당성 등을 말하는 95개조의 항의문을 적어 방을 부치고 항거했다. 이것이 2주만에 전 독일에 파급됐고 불과 4주만에 전 유럽에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이다.
한편 루터는 그의 신앙적 주장에 대해 해명하도록 윔스성으로 소환당했다. 루터는 당시 아무런 지위도, 권세도, 영향력도 없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그를 만류하기를 만일 그가 그곳에 가면 로마 가톨릭의 대학자들을 만나 그들의 세력에 휘말려 들어갈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루터는 대답하기를 "만일 악마의 숫자가 윔스성의 기왓장의 수 만큼 많더라도 나는 그 곳에 가겠다. "라고 했다. 또한 루터는 마지막으로 그의 종교개혁의 선언을 취소하고 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였을 때 그는 기도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 나를 도우소서!"라고 했다.
이렇게 시작된 종교개혁은 스위스의 쯔빙그리와 제네바의 갈빈에 의해서 완전히 조직화 되었고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동력을 주었던 것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로마서1:17의 말씀이었다. / (롬 1:17) 복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전설에 의하면 1511년 루터는 깊은 진리를 탐구하던 중 당시 기독교 중앙본부였던 로마에 가서 은혜를 받으려고 미친 듯이 각 곳 성당을 뛰어다녀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만족과 평안을 얻지 못한 채 '수가라 성당'의 28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는 고행을 하다가 문득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전광석화 같은 음성을 듣고 고행의 무용을 깨닫고 즉시 귀국하여 비텐 베르그 대학에서 로마서를 교수하던 중 이른바 '以信得義'의 진리를 터득하고 설파하던 것이 후에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宗敎改革에는 3가지 표어가 있었다. ①오직 은혜로, ②오직 믿음으로, ③오직 성경만으로이다. 헬라인의 명제는 '너 자신을 알라'이고, 불교의 명제는 '너를 무로 하라'이고, 유교의 명제는 '너를 닦아라'이고, 스토익주의 명제는 '너를 죽여라'이지만,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믿음'을 구원의 도리로 믿는다.
종교개혁의 3대 원칙:
개신교의 대원칙(필립샤프의 기독교회사 제7권16장이하)
1)성경의 권위(The Authority of the Scripture)- 종교개혁은 성경을 되찾으려는 운동이었다. 성경 중심의 믿음을 세우자는 것이다. 즉 성경의 대중화를 부르짖었다. 특수계층만 보던 성경을 일반신도들도 보게 하여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 되고 척도가 되게 했다. 따라서 교황의 교서나 교회의 규칙 같은 것이 성경을 대신하거나 보충할 수는 없었다. 성경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2)성도의 以信稱義(Justification by Faith) -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에 의한 것이지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에 의해 구원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중보자이며 죄를 사하시는 구주이시다. 이런 은총에 대한 재인식은 그리스도를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3)성도는 모두 제사장(만인제사직)(The Priesthood of the Laith) 이는 성도는 무두 여호와 하나님 앞에 직접 가까이 나갈 수 있는 제사장이 된다는 말.
과거 종교개혁을 야기시킨 문제점들:
1)극도의 신앙적, 도덕적 부패
①그리스도의 공로와 고난이란 말은 종교개혁직전에 있어서 무용의 이야기였고,
②믿음으로 영생과 여호와 하나님의 의에 참예한다는 사상도 다 사라지고 말았다.
다만, 별세한 성도들의 代禱와 법왕청의 면죄부를 찬동하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사상만 농후하게 되었다.
③중보자란 성모 마리아요, 별세한 성자들이었다.
④법왕은 실수할 수 없는 자로 간주되었다.
⑤천국은 사라지고, 가증한 것들의 상업장이 열리게 되었다.
⑥촌교회들은 어두움과 부패로 가득찼다.
⑦신부는 蓄妾을 하였고 도박으로 세월을 보냈다. 각처에서 신부들이 자녀를 낳아 데리고 살기 때문에 감독에게 속죄세를 장기적으로 지불했다. 한 독일 감독은 말하기를 1년에 속죄세를 내기 위해 자기에게 찾아오는 수가 1만 1천명이라고 했다. 어떤 감독들은 자기의 지역을 확장하기 위해 육탄전을 계속했고, 敎服 속에 갑옷을 입고, 검을 차고 다녔다. 대 감독 보르자(Borgia Rodrigo)는 한 로마 여자와 같이 살았고, 그 여자의 딸이 되는 바노짜(Vanozza Rosa)와 더불어 부정한 관계를 가져 다섯 자녀를 본 일도 있다. 그는 인노켄티우스 8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되었으니(교황 알렉산데르 6세를 말함) 이는 뇌물로 교황청을 매수하여 된 것이었다.
⑧촌 교회에서는 목동, 약사, 獵夫들과 같은 자들이 설교자들이었고
⑨이름있는 교역자나 주교(템보주교) 가운데는 성경에 대해서 전혀 무식한 사람도 있었다.
오늘의 종교개혁의 과제들:
종교개혁은 과거의 역사로만 남아서는 안 되는 오늘의 문제이다. 우리는 종교개혁 이전의 반종교개혁적인 교회에 대해서 비판하도록 소명받은 것만이 아니고, 자신의 신앙생활과 현재의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비판해야 할 소명을 받았다.
예수님은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 최초의 종교개혁자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은 생명으로 이끌지 못하는 유대종교의 전통과 형식에 대해서 일대 혁명을 일으키셨기 때문이다. 잎만 무성했던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바로 당시의 유대종교에 대한 은유적인 규탄이었다.
과거 종교개혁자들이 부르짖던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외쳐지는 말이다. 결국 이 말의 의미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서 다시금 새 생명을 얻자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재 발현하자는 것이었지 결코 교회 자체를 否定하거나 또다른 교회조직을 시도하자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본문을 중심하여 볼 때,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야 할 종교개혁은 어떤 문제들과 연관되는 것들인가
1)이 세대를 바로 알아야
2)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3)오직 마음을 새롭게 해야
4)자신이 먼저 변화를 받아야
5)이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1)여호와 하나님이 선하게 여기시고
2)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3)여호와 하나님이 온전하게 여기시는 뜻을 분별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오늘의 종교개혁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개혁의 과제는
1. 여호와 하나님 예배에 임하는 태도와 생활의 개혁:
정성스런 예배 참여/
①오늘의 교회에는 정성스런 예배 참여가 매우 결여되어가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예배 참여에 등한한 풍조가 교회를 핍절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리스도인의 예배생활은 일상생활의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 시간이 있거나 한가해야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예배야말로 모든 일상생활의 출발점이요 가치의 중심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②생활로서의 예배: 종교개혁은 종교와 도덕의 이중 표준에 대한 사상을 거부했다. 중세적인 의미에서 직업은 선행의 풍부함에 의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특권을 가지는 '영적인 질서'에로 부름받은 것을 의미한 반면에 종교개혁은 그것을 삶의 모든 상태와 모든 종류의 노동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용어로 만들었다. 모든 노동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봉사로 간주된다. 원리상 모든 종류의 노동은 그것들이 신앙에서 수행되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복종에서 수행되는 한 '거룩하다'. 그러나 세속적 활동에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종교개혁의 시도는 성공적인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개신교사상은 여전히 안정되지 못했고 세속적인 생활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불확실한 채로 남겨졌다. 실제로 성의 지배로부터의 속의 해방은 세속적인 것의 완전한 자율로 인도되었으며, 따라서 인간의 삶의 모든 초월적 의미는 일상생활 속으로 흡수되고 거의 완전히 무시받게 되었다. 모든 세속적 영영들을 신앙의 영역 안에 재통합시키는 것은 기독교 사상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들 중의 하나이다.
정중한 예배 매너/ 정중한 예배 태도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마땅한 도리이다. 그리스도인의 여호와 하나님 예배는 인간적 만남과 교제의 수단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예배를 바탕으로 하여 성도간의 교제와 이웃간의 관계가 신앙적인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헌금에 대한 이해/ 헌금을 초복적 매체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이미 받은 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앙과 주를 위한 헌신을 다짐하는 신앙의 고백이어야 한다. 교회는 선택받은 특권만을 내세워서는 안 되고 선택받은 자의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교회는 선택받은 특권의 공동체이지만 동시에 보냄 받은 공동체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것이 헌금의 의의 가운데 하나이다.
찬송에 대한 태도 개혁/
①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수단/ (1)출애굽시, (2)예수 탄생시,
찬송을 부르는 것이 인간의 기분풀이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자체라면, 그렇다면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믿음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찬송을 드려야 할 것이다.
②은혜 받는 길/
③신앙고백의 길/
④복음 전도의 방책/
1)용기/ 루터의 아내(캐더린 본 보라), 소복 입어
종교재판/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 기와장'처럼...
찬송은 낙심자의 심령치유에 명약이다.
2. 신앙의 근거이해에 대한 개혁:
종교개혁의 교육적 사명은 신앙인의 무지를 일깨워서 건전하고 올바른 성경이해를 근거로한 신앙을 길러주자는 것이었다. - (엡 4:13) 우리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러나 중세의 로마 가톨릭교회는 애초부터 이런 교육적 사명을 다하는데 실패하고 있었다. 그들의 신앙의 가르침은 성경과 외경과 교부들의 전승을 교리화하여, 다시금 교리를 법으로 바꾸어 교회의 체제와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하여 신앙교육을 수단으로만 이용했고, 기독교 진리는 성경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직자들의 구전의 가르침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했다.
여기에 루터의 종교개혁의 의의는 신앙교육적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을 바탕으로 한 교리문답 교육을 통하여 올바른 복음의 이해를 수반한 신앙을 가르쳐 주었다는데 큰 의의를 갖는다.
3. 교권적 개혁:
루터의 종교개혁이 세운 공로는 교권주의에서 교회를 해방하는 동시에 법왕의 권리에서 민족을 해방하여 민족국가를 세운 것이었다. 그것이 교권이 타락한 것일 때 더욱 심각한 결과를 낳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늘의 금권을 이용하여 교권 장악만을 꾀하는 타락한 교권주의로의 전락은 반드시 루터 당시의 개혁자들의 철퇴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종교개혁은 소수의 '남은 자'로서의 평신도와 목사들로 구성된 '복음을 다시 찾아 죽어가는 교회를 살려보자'는 자체적 개혁운동이었기 때문이다.
4. 생활의 개혁
우리의 일상생활은 모든 면에 믿는 자답게, '소금과 빛'으로 세상에 나타나야 한다.
맺는 말:
종교개혁의 샛별: 종교개혁의 샛별이라고 불리우는 영국의 종교개혁자 위클리프(Wiclif)는 순교 역사상 다시 그 類例를 들 수 없는 두 번 순교를 당한 사람이다.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묻힌지 40년이 지난 뒤 그의 무덤은 다시 파헤쳐져 해골과 뼈를 파내어 화형에 처해졌다. 그는 순교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네들이 나를 죽여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이 말씀은 온 세계에 퍼질 것입니다. 나를 불사르심시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불길처럼 타오를 것입니다. 나를 땅에 묻으십시오. 그러면 땅에 뿌리를 박고 싹이 나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나를 물에 던지십시오. 그러면 파도 치는 물결 따라 오대주육대양에 말씀은 퍼질 것입니다. 나를 칼로 치십시오. 그러면 죄우에 날 선 칼과 같이 날카롭게 온 어두운 세계를 비추게 될 것입니다. "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은혜가 있기를... 아멘.
중세에 가톨릭은 얼마나 타락했던지 마침내 면죄부를 팔기까지 했다. 이는 로마의 베드로 성당을 건축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성경상의 근거가 없는 상행위였다. 곧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이 면죄부를 사는 순간 그 죄가 사해지고 이미 죽어 지옥에 있는 사람도 그 자손이 이것을 그의 이름으로 사주기만 하면 천당으로 올라간다는 '천당입장권'과 같은 것이었다. 면죄부 판매를 담당한 요한 텟젤은 "여러분이 면죄부를 살 때 돈이 헌금함 속으로 땡그랑 하고 떨어지는 순간, 그 소리와 함께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나 형제들의 영혼이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가게 됩니다"하며 교인들을 미혹했다. 이는 천당이나 구원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는 말이 되는 큰 죄를 짓는 것이었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던 독일 비텐 베르그 대학의 젊은 성경신학 교수였던 루터는 마침내 1517년 10월 31일 정오에 비텐 베르그 교회 정문에 면죄부(사죄표)의 부당성 등을 말하는 95개조의 항의문을 적어 방을 부치고 항거했다. 이것이 2주만에 전 독일에 파급됐고 불과 4주만에 전 유럽에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이다.
한편 루터는 그의 신앙적 주장에 대해 해명하도록 윔스성으로 소환당했다. 루터는 당시 아무런 지위도, 권세도, 영향력도 없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그를 만류하기를 만일 그가 그곳에 가면 로마 가톨릭의 대학자들을 만나 그들의 세력에 휘말려 들어갈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루터는 대답하기를 "만일 악마의 숫자가 윔스성의 기왓장의 수 만큼 많더라도 나는 그 곳에 가겠다. "라고 했다. 또한 루터는 마지막으로 그의 종교개혁의 선언을 취소하고 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였을 때 그는 기도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 나를 도우소서!"라고 했다.
이렇게 시작된 종교개혁은 스위스의 쯔빙그리와 제네바의 갈빈에 의해서 완전히 조직화 되었고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동력을 주었던 것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로마서1:17의 말씀이었다. / (롬 1:17) 복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전설에 의하면 1511년 루터는 깊은 진리를 탐구하던 중 당시 기독교 중앙본부였던 로마에 가서 은혜를 받으려고 미친 듯이 각 곳 성당을 뛰어다녀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만족과 평안을 얻지 못한 채 '수가라 성당'의 28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는 고행을 하다가 문득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전광석화 같은 음성을 듣고 고행의 무용을 깨닫고 즉시 귀국하여 비텐 베르그 대학에서 로마서를 교수하던 중 이른바 '以信得義'의 진리를 터득하고 설파하던 것이 후에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宗敎改革에는 3가지 표어가 있었다. ①오직 은혜로, ②오직 믿음으로, ③오직 성경만으로이다. 헬라인의 명제는 '너 자신을 알라'이고, 불교의 명제는 '너를 무로 하라'이고, 유교의 명제는 '너를 닦아라'이고, 스토익주의 명제는 '너를 죽여라'이지만,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믿음'을 구원의 도리로 믿는다.
종교개혁의 3대 원칙:
개신교의 대원칙(필립샤프의 기독교회사 제7권16장이하)
1)성경의 권위(The Authority of the Scripture)- 종교개혁은 성경을 되찾으려는 운동이었다. 성경 중심의 믿음을 세우자는 것이다. 즉 성경의 대중화를 부르짖었다. 특수계층만 보던 성경을 일반신도들도 보게 하여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 되고 척도가 되게 했다. 따라서 교황의 교서나 교회의 규칙 같은 것이 성경을 대신하거나 보충할 수는 없었다. 성경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2)성도의 以信稱義(Justification by Faith) -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에 의한 것이지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에 의해 구원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중보자이며 죄를 사하시는 구주이시다. 이런 은총에 대한 재인식은 그리스도를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3)성도는 모두 제사장(만인제사직)(The Priesthood of the Laith) 이는 성도는 무두 여호와 하나님 앞에 직접 가까이 나갈 수 있는 제사장이 된다는 말.
과거 종교개혁을 야기시킨 문제점들:
1)극도의 신앙적, 도덕적 부패
①그리스도의 공로와 고난이란 말은 종교개혁직전에 있어서 무용의 이야기였고,
②믿음으로 영생과 여호와 하나님의 의에 참예한다는 사상도 다 사라지고 말았다.
다만, 별세한 성도들의 代禱와 법왕청의 면죄부를 찬동하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사상만 농후하게 되었다.
③중보자란 성모 마리아요, 별세한 성자들이었다.
④법왕은 실수할 수 없는 자로 간주되었다.
⑤천국은 사라지고, 가증한 것들의 상업장이 열리게 되었다.
⑥촌교회들은 어두움과 부패로 가득찼다.
⑦신부는 蓄妾을 하였고 도박으로 세월을 보냈다. 각처에서 신부들이 자녀를 낳아 데리고 살기 때문에 감독에게 속죄세를 장기적으로 지불했다. 한 독일 감독은 말하기를 1년에 속죄세를 내기 위해 자기에게 찾아오는 수가 1만 1천명이라고 했다. 어떤 감독들은 자기의 지역을 확장하기 위해 육탄전을 계속했고, 敎服 속에 갑옷을 입고, 검을 차고 다녔다. 대 감독 보르자(Borgia Rodrigo)는 한 로마 여자와 같이 살았고, 그 여자의 딸이 되는 바노짜(Vanozza Rosa)와 더불어 부정한 관계를 가져 다섯 자녀를 본 일도 있다. 그는 인노켄티우스 8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되었으니(교황 알렉산데르 6세를 말함) 이는 뇌물로 교황청을 매수하여 된 것이었다.
⑧촌 교회에서는 목동, 약사, 獵夫들과 같은 자들이 설교자들이었고
⑨이름있는 교역자나 주교(템보주교) 가운데는 성경에 대해서 전혀 무식한 사람도 있었다.
오늘의 종교개혁의 과제들:
종교개혁은 과거의 역사로만 남아서는 안 되는 오늘의 문제이다. 우리는 종교개혁 이전의 반종교개혁적인 교회에 대해서 비판하도록 소명받은 것만이 아니고, 자신의 신앙생활과 현재의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비판해야 할 소명을 받았다.
예수님은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 최초의 종교개혁자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은 생명으로 이끌지 못하는 유대종교의 전통과 형식에 대해서 일대 혁명을 일으키셨기 때문이다. 잎만 무성했던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바로 당시의 유대종교에 대한 은유적인 규탄이었다.
과거 종교개혁자들이 부르짖던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외쳐지는 말이다. 결국 이 말의 의미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서 다시금 새 생명을 얻자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재 발현하자는 것이었지 결코 교회 자체를 否定하거나 또다른 교회조직을 시도하자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본문을 중심하여 볼 때,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야 할 종교개혁은 어떤 문제들과 연관되는 것들인가
1)이 세대를 바로 알아야
2)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3)오직 마음을 새롭게 해야
4)자신이 먼저 변화를 받아야
5)이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1)여호와 하나님이 선하게 여기시고
2)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3)여호와 하나님이 온전하게 여기시는 뜻을 분별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오늘의 종교개혁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개혁의 과제는
1. 여호와 하나님 예배에 임하는 태도와 생활의 개혁:
정성스런 예배 참여/
①오늘의 교회에는 정성스런 예배 참여가 매우 결여되어가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예배 참여에 등한한 풍조가 교회를 핍절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리스도인의 예배생활은 일상생활의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 시간이 있거나 한가해야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예배야말로 모든 일상생활의 출발점이요 가치의 중심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②생활로서의 예배: 종교개혁은 종교와 도덕의 이중 표준에 대한 사상을 거부했다. 중세적인 의미에서 직업은 선행의 풍부함에 의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특권을 가지는 '영적인 질서'에로 부름받은 것을 의미한 반면에 종교개혁은 그것을 삶의 모든 상태와 모든 종류의 노동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용어로 만들었다. 모든 노동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봉사로 간주된다. 원리상 모든 종류의 노동은 그것들이 신앙에서 수행되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복종에서 수행되는 한 '거룩하다'. 그러나 세속적 활동에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종교개혁의 시도는 성공적인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개신교사상은 여전히 안정되지 못했고 세속적인 생활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불확실한 채로 남겨졌다. 실제로 성의 지배로부터의 속의 해방은 세속적인 것의 완전한 자율로 인도되었으며, 따라서 인간의 삶의 모든 초월적 의미는 일상생활 속으로 흡수되고 거의 완전히 무시받게 되었다. 모든 세속적 영영들을 신앙의 영역 안에 재통합시키는 것은 기독교 사상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들 중의 하나이다.
정중한 예배 매너/ 정중한 예배 태도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마땅한 도리이다. 그리스도인의 여호와 하나님 예배는 인간적 만남과 교제의 수단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예배를 바탕으로 하여 성도간의 교제와 이웃간의 관계가 신앙적인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헌금에 대한 이해/ 헌금을 초복적 매체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이미 받은 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앙과 주를 위한 헌신을 다짐하는 신앙의 고백이어야 한다. 교회는 선택받은 특권만을 내세워서는 안 되고 선택받은 자의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교회는 선택받은 특권의 공동체이지만 동시에 보냄 받은 공동체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것이 헌금의 의의 가운데 하나이다.
찬송에 대한 태도 개혁/
①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수단/ (1)출애굽시, (2)예수 탄생시,
찬송을 부르는 것이 인간의 기분풀이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자체라면, 그렇다면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믿음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찬송을 드려야 할 것이다.
②은혜 받는 길/
③신앙고백의 길/
④복음 전도의 방책/
1)용기/ 루터의 아내(캐더린 본 보라), 소복 입어
종교재판/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 기와장'처럼...
찬송은 낙심자의 심령치유에 명약이다.
2. 신앙의 근거이해에 대한 개혁:
종교개혁의 교육적 사명은 신앙인의 무지를 일깨워서 건전하고 올바른 성경이해를 근거로한 신앙을 길러주자는 것이었다. - (엡 4:13) 우리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러나 중세의 로마 가톨릭교회는 애초부터 이런 교육적 사명을 다하는데 실패하고 있었다. 그들의 신앙의 가르침은 성경과 외경과 교부들의 전승을 교리화하여, 다시금 교리를 법으로 바꾸어 교회의 체제와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하여 신앙교육을 수단으로만 이용했고, 기독교 진리는 성경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직자들의 구전의 가르침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했다.
여기에 루터의 종교개혁의 의의는 신앙교육적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을 바탕으로 한 교리문답 교육을 통하여 올바른 복음의 이해를 수반한 신앙을 가르쳐 주었다는데 큰 의의를 갖는다.
3. 교권적 개혁:
루터의 종교개혁이 세운 공로는 교권주의에서 교회를 해방하는 동시에 법왕의 권리에서 민족을 해방하여 민족국가를 세운 것이었다. 그것이 교권이 타락한 것일 때 더욱 심각한 결과를 낳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늘의 금권을 이용하여 교권 장악만을 꾀하는 타락한 교권주의로의 전락은 반드시 루터 당시의 개혁자들의 철퇴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종교개혁은 소수의 '남은 자'로서의 평신도와 목사들로 구성된 '복음을 다시 찾아 죽어가는 교회를 살려보자'는 자체적 개혁운동이었기 때문이다.
4. 생활의 개혁
우리의 일상생활은 모든 면에 믿는 자답게, '소금과 빛'으로 세상에 나타나야 한다.
맺는 말:
종교개혁의 샛별: 종교개혁의 샛별이라고 불리우는 영국의 종교개혁자 위클리프(Wiclif)는 순교 역사상 다시 그 類例를 들 수 없는 두 번 순교를 당한 사람이다.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묻힌지 40년이 지난 뒤 그의 무덤은 다시 파헤쳐져 해골과 뼈를 파내어 화형에 처해졌다. 그는 순교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네들이 나를 죽여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이 말씀은 온 세계에 퍼질 것입니다. 나를 불사르심시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불길처럼 타오를 것입니다. 나를 땅에 묻으십시오. 그러면 땅에 뿌리를 박고 싹이 나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나를 물에 던지십시오. 그러면 파도 치는 물결 따라 오대주육대양에 말씀은 퍼질 것입니다. 나를 칼로 치십시오. 그러면 죄우에 날 선 칼과 같이 날카롭게 온 어두운 세계를 비추게 될 것입니다. "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은혜가 있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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