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먼저 인간 개혁
본문
오늘은 483주년을 맞는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우리의 총회를 개혁 총회라고 부릅니다. 종교개혁주일을 맞아 생각해 보니까 우리의 총회도 개혁되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시 간 총회에 관한 언급을 하려고 합니다. 교회는 성스러운 질서입니다. 이목구비(耳目口鼻) 와도 같고 손, 발과 같은 여러 기관이 합하여서 교회라는 모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직 회, 당회, 공동의회도 있는데, 하회는 상회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가령 머리가 손을 향 해서 '손아 그것을 잡아라'하면 그것을 잡아야 합니다. 발을 향해서 '발아 동으로 가라'하 면 발은 동으로 가야 합니다. 또 각각 교회를 지교회라고 하는데 교회 위에도 상회가 있다 는 말입니다. 노회, 대회, 총회가 있습니다. 따라서 지교회인 우리 교회도 상회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책망을 듣기 일수입니다. 따라서 헌법, 규칙, 회칙이 있습 니다. 물론 그 근원은 성경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모든 일을 할 때 성경대로 해야 합니 다. 때문에 교회는 그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민주주의 방식도 참고할 뿐이고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성경주의 방식으로 해야만 합니다. 마틴루터의 종교개혁 원리 속에는 세 기둥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기둥은 오직 은혜, 둘째 기둥은 오직 믿음, 셋째기둥은 오직 성경입니 다. 그런데 우리 개혁 총회에도 세 기둥과 같은 개혁이념이 있습니다. 어떤 것입니까
첫째 바른 신학입니다.
건전한 기독교라면 바른 신학위에 서 있는 기독교입니다. 여기 바른 신학은 매우 중요합니 다. 왜냐하면 세속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 많은 이단 사설들이 판을 치기 때문입니다. 바른 신학이 무엇입니까 다른 말로 바꾸면 보수주의 신학, 칼빈주의 신학, 정통주의 신학, 또 다른 말로 바꾸면 성경주의 신학입니다. 여기에는 매우 소중한 5대교리가 있습니다.
① 예수님의 처녀탄생입니다. 19세기 후반부터 과학주의와 실증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 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교리를 비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처녀탄생을 바벨 론 신학의 영향을 받은 여러 모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사야7:14에 나오는 히브리어 단 어 (알마)라고 하는 것을 처녀라고 번역하지 않고 젊은 여자(Young woman)이라고 번역을 해 서 기독교의 예수님의 처녀탄생을 부인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교리를 믿지 못하면 기 독교는 아래로 무너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② 예수님의 육체의 부활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육체부활이 부딪치는 걸림돌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알에이톨리박사는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 운데서 육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기독교 교리의 모퉁이 돌이 된다'고 했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니 너희도 살리라"
③ 성경무오설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이론적으로는 성경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성경 무오설에 고등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신부가 성경 위에 서 있습니다. 또 성경 아닌 것을 믿기도 하고 성경에 없는 것들을 믿기도 하는데 마리아를 믿고, 연혹설을 믿고, 면죄부를 판매하고, 교황 무오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④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입니다. 세속주의 신학자들 태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 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들 합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 어 주시지 아니했더라면 내 죄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찬송이 무엇입니까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라고 하지 않습니까.
⑤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 모두의 소망입니다. 나의 소망도 됩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재림 이 없다면 천국이 어디서 오며, 먼저 간 성도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둘째 바른 교회입니다.
오늘 많은 교회들이 인본주의, 물량주의로 떨어져 가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 장하시기 전에 사람들이 주장하려고 판을 칩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하지 않고 오직 물질, 오직 교권, 오직 자기 이렇게 하면서 예수님께서 교회를 주장하기 전에 사람이 교회 를 주장하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바른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오직 예수 교회입니다.
누가 교회를 세우셨습니까 마16:18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교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결코 사람이 아닙니다. 권사도 아니고, 안수 집사도 아니고, 목사도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어떤 교회가 바른 교회냐면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 되게 하는 교회가 바른 교회라는 말입니 다. 그런데 바른 교회 주변에도 음부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 권세가 교회를 소란하게 하고, 교회에 잡음을 만들고, 교회의 부흥을 막습니다. 이것이 음부의 권세가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바 른 교회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나타내는 교회입니다. 바른 교회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언어로 예수님을 나타내고 행실로 예수님을 나타내는 바로 그 것 입니다. 성도의 삶 속에서 항상 예수님이 나타나야 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나의 입술에서 예수님이 나타나고 나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이 나타나 야 합니다. 나의 가정생활, 직장생활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이 나타나고, 소개되어 질 수 있습니까 전도할 때입니다. 찬송할 때입니다. 봉사할 때입니다. 내가 형제를 지극히 사랑할 때 예수님이 나타나고, 소 개되어 진다는 말입니다. 또 예수님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합니다. 땅에 떨어지는 밀알처럼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또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내 몸을 태워야 합니다. 바른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밭이요, 바른 성도는 좋은 씨뿌리는 농부입니 다. 그렇다고 저절로 부흥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새벽부터 우리 사랑하므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봅시다♬찬송가 가사와 같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농부가 되어 새벽부터 저녁 까지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걸음을 주고, 벌레를 잡아 주고, 잡초를 뽑아 주어야 30배, 60배, 100배의 수확을 거둡니다. 부흥하는 교회 되도록 힘쓰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바른 생활입니다.
바르다는 말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모든 일이 바른 일이어야 합니다. 총회에 총대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됩니다. 목사와 장로는 교회의 거울도 되고, 양심도 됩니다. 그 책임 이 매우 중합니다. 그런데 총회할 때 어떻습니까 난장판 그리고 수라장을 이루었습니다. 왜 이 모양일까 많은 평신도들이 묻곤 합니다. 참 가슴이 아픕니다. 왜 그럴까요 평소 에 바른 생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옛 말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먼저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깨끗한 총회가 되려면 나 자신이 깨끗해져야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석가 바클레이가 그의 로마서 주석에서 말하였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께 정교한 기도를 드리는 것도 아니고 장엄한 의식을 드리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께 날마다 경건된 삶을 드리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바른 생활 이것이 진정한 예배란 뜻이기도 합니다. 참 성도 는 누구입니까 예배를 드리고 생활하는 성도가 아닙니다. 참 성도에게는 예배드리는 생 활이 있을 뿐입니다. 잘못하면 시간적으로 주일성도 되기 쉽고, 공간적으로 예배당 성도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신령한 의미에서 봉사입니다. 봉사는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요, 사람에게도 하는 것이 봉사입니다. 그러니까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요, 또 하나는 윤리입니다. 이것을 십자가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수직으로 '주여! 주여!' 해야 됩니다. 그러나 이것에만 치중하면 신비주의자가 됩니다. 수평적으로 '서로, 서로' 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만 치중하면 세속주의자가 됩니다. 그래서 이 수직과 수 평이 믹서가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봉사하는 자는 반드시 이웃에게 봉사하는 자 이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거듭난 사람은 사람 앞에서도 거듭난 사람이어야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신자인 사람은 사람 앞에서는 선(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받드는 총 회의 개혁이념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 얼마나 훌륭합니 까 그런데 금년에 우리 교회에서 총회를 하면서 추태를 부렸습니다. 냄새가 날 만큼입니 다. 저는 부족합니다. 앞장서 나갈 수 없는 쇠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묻지 않을 수 가 없었습니다. 개혁총회 이대로 좋은가 백 번을 묻고 싶었습니다. 아침에도 묻고, 낮에 도 묻고, 새벽에도 묻고, 잠자다가도 묻고, 꿈속에서도 묻고, 때문인지 성도님들 보시기에 살이 쪽 빠질 형편입니다. 그런데 결론 이 무엇인가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년 총회 때도 그럴 것이 아니냐는 것이고, 그러니까 반드시 개혁총회가 개혁되어져야 한 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총회가 둘로 갈라졌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한 쪽은 남으로, 한 쪽은 북으로 갔습니다. 지금 두 총회에 합동은 남북 통일 만큼이나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 러나 중매쟁이가 있어야 총각, 처녀가 합하여 한 가정이 이루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가 중 립을 해 보려고 잠깐 중립상태에 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를 본 받아 '나도 중립편이 되겠 소'하는 교회들이 많아졌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내 가정, 우리 교회만을 위해서 기도하 지 말고 상회인 총회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기를 정말 소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누 어진 총회가 하나되게 하옵소서'가슴을 치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매우 소중 한 개혁이념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총회가 이 모양이고, 독불장군(獨不將軍)이고, 유아독 존(唯我獨尊)이고, 바리새적입니까 답은 꼭 하나입니다. 먼저 인간 개혁, 이것이 이루어 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 개혁이 가능합니까 본문 말씀이 답해 줍 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사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요3장에는 제삼의 모태인 예수님을 소개하고 중생 인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개혁에 대한 진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나타난 인물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입니까 착한 사람이 고, 도덕적으로 별 흠이 없는 사람이고, 경제적으로 이스라엘 선생님이며, 바리새인입니다. 유대인의 관원도 됩니다. 별로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야 합니다. "죄 많은 삭개오가 거듭나야 된다. 물 길러 온 죄 많은 수가성 여인이 거듭나 야 한다"이렇게 말하지 않고 니고데모를 향해서 "네가 거듭나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 우리에게도 줍니다. 저를 향해서 "말하지 말아라. 네가 거듭나야 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 십니다. 저는 그대로 받습니다. 제가 거듭나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 랑하는 성도 님들을 향해서 "네가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요3:3을 보면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 람이 문제인가 봅니다. 물론 개혁되어져야 할 것 주변에 많습니다. 병들고, 곪고, 터진 것 많습니다. 신문사 기자들의 구부러진 펜촉이 거듭나야 합니다. 레디오나 T. V에서 이웃을 보도하는 입술도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사법부에 무디어진 본분이 개혁되어 져야 하고, 국 민의 소리를 들을 줄 모르는 정부의 귀가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인간 개혁 이것 이 중요합니다. 정치, 교육, 경제가 나쁜 것 아닙니다. 그것을 요리하는 사람이 문제입니 다. 정치를 움직이고, 교육을 매만지고, 경제를 주물럭거리는 인간이 문제입니다. 개혁총 회가 나쁜 것 아닙니다. 먼저 사람이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좋은 나무라야 좋은 열매를 맺 습니다. 그런데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로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가시 나무는 가시를 맺고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뿔난 재간이 있어도 육 입니다. 성령으로 나야 영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산파라도 돼지 한 마리를 꺼낼 수 없습 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됩니다. 새 시대일수록 새 사람이 요청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 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참 새 것이 그립습니다. 새 사람이 필요합니다. 새 사람이 나 와야 됩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새 사람 만드는 제 삼의 모태입니다. 아기가 태어나 려면 모태가 필요하듯이 인간이 개혁되려고 하면 제 삼의 모태인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번데기가 고추 안에 있으면 벌레가 되어 나오는 것 과 마찬가지입니다. 해바라기가 태양아래 있으면 열매를 맺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계란 이 어미 닭 안에 있기만 있으면 병아리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새 사람 이 되게 하는, 새 출발하게 하는 바탕도 되고, 다리도 되고, 모태도 됩니다. 수술한 여인 도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 새 옷을 걸치면 멋진 숙녀가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는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교양으로나 수양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물론 의지인생이 있 습니다. 지식인생이 있습니다. 청춘인생도 있습니다. 그래서 용단을 내릴 수도 있고, 결 단을 내릴 수도 있고, 새로운 방법으로 새 출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의지는 작 심삼일(作心日)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식이 많고, 재간이 많고, 의지가 강철같아 도 죄인은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만든 모든 것에는 냄새가 나기 마 련입니다. 죄인이 앉은자리에서는 구린내가 나기를 마찬가지입니다. 엉겅퀴에서 포도를 딸 수 있습니까 아무리 씻어도 까만 까마귀가 비둘기 되지 못합니다. 하이타이로 씻고 슈퍼타이로 씻어도 주홍같이 붉은 죄, 먹장같이 검은 죄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으면 다소곳이 겸손하게 나를 죽이고 마음을 비우고 그냥 예수님 안에 있으 면 누구든지 개혁될 수 있습니다. 여기 누구든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든지입니다.
과거에 무슨 죄를 지었느냐 과거에 무슨 언행의 실수를 했느냐 묻지를 않습니다. 누구 든지 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니까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가 개혁되었습니다. 현모양처 로 달라진 것입니다. 재물만 탐하던 삭개오가 개혁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주님을 영접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만 개혁되지 않습니다. 본문 영어성경을 보면 (Old things)라고 했 습니다. 다시 말하면 낡은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낡은 제도가 개혁될 수 있습니다. 냄새를 풍기는 총회도 개혁될 수 있습니다. 오늘 종교개혁주 일을 지키면서 무엇이 새로워져야 하겠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새 로워졌으면 좋겠습니까 나의 옹졸한 사고방식이 개혁되어야 할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나의 믿음이 개혁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주여, 주여'하는 것만 가지고는 천국에 못 갑니 다. 독선적인 나의 아집이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 마음속에 개혁되어져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개혁되기 전에 먼저 인간개 혁 이것이 중요합니다. 군데군데서 잡음이 있는 것은 제도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 람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예배드리는 내가 문제라는 말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천사를 닮았습니다.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말썽을 부렸던 총회 처럼 말썽을 부리는 인생입니까 사람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개혁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누가 먼저 개혁되어야합니까 '너, 너'아닙니다. '나, 나'먼저 내가 개혁되어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해야 될 것입니다. '주여 내가 개혁 되게 해주시옵 소서' 개혁주일을 맞아 예배드리는 모두에게 바로 여기에 초점이 있어야 되고, 개혁주일을 지키는 의의가 여기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개혁되어야 합니다. 내가 개혁되어져 야 합니다. 새로운 길 걷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바른 신학입니다.
건전한 기독교라면 바른 신학위에 서 있는 기독교입니다. 여기 바른 신학은 매우 중요합니 다. 왜냐하면 세속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 많은 이단 사설들이 판을 치기 때문입니다. 바른 신학이 무엇입니까 다른 말로 바꾸면 보수주의 신학, 칼빈주의 신학, 정통주의 신학, 또 다른 말로 바꾸면 성경주의 신학입니다. 여기에는 매우 소중한 5대교리가 있습니다.
① 예수님의 처녀탄생입니다. 19세기 후반부터 과학주의와 실증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 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교리를 비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처녀탄생을 바벨 론 신학의 영향을 받은 여러 모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사야7:14에 나오는 히브리어 단 어 (알마)라고 하는 것을 처녀라고 번역하지 않고 젊은 여자(Young woman)이라고 번역을 해 서 기독교의 예수님의 처녀탄생을 부인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교리를 믿지 못하면 기 독교는 아래로 무너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② 예수님의 육체의 부활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육체부활이 부딪치는 걸림돌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알에이톨리박사는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 운데서 육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기독교 교리의 모퉁이 돌이 된다'고 했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니 너희도 살리라"
③ 성경무오설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이론적으로는 성경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성경 무오설에 고등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신부가 성경 위에 서 있습니다. 또 성경 아닌 것을 믿기도 하고 성경에 없는 것들을 믿기도 하는데 마리아를 믿고, 연혹설을 믿고, 면죄부를 판매하고, 교황 무오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④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입니다. 세속주의 신학자들 태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 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들 합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 어 주시지 아니했더라면 내 죄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찬송이 무엇입니까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라고 하지 않습니까.
⑤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 모두의 소망입니다. 나의 소망도 됩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재림 이 없다면 천국이 어디서 오며, 먼저 간 성도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둘째 바른 교회입니다.
오늘 많은 교회들이 인본주의, 물량주의로 떨어져 가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 장하시기 전에 사람들이 주장하려고 판을 칩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하지 않고 오직 물질, 오직 교권, 오직 자기 이렇게 하면서 예수님께서 교회를 주장하기 전에 사람이 교회 를 주장하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바른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오직 예수 교회입니다.
누가 교회를 세우셨습니까 마16:18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교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결코 사람이 아닙니다. 권사도 아니고, 안수 집사도 아니고, 목사도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어떤 교회가 바른 교회냐면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 되게 하는 교회가 바른 교회라는 말입니 다. 그런데 바른 교회 주변에도 음부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 권세가 교회를 소란하게 하고, 교회에 잡음을 만들고, 교회의 부흥을 막습니다. 이것이 음부의 권세가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바 른 교회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나타내는 교회입니다. 바른 교회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언어로 예수님을 나타내고 행실로 예수님을 나타내는 바로 그 것 입니다. 성도의 삶 속에서 항상 예수님이 나타나야 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나의 입술에서 예수님이 나타나고 나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이 나타나 야 합니다. 나의 가정생활, 직장생활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이 나타나고, 소개되어 질 수 있습니까 전도할 때입니다. 찬송할 때입니다. 봉사할 때입니다. 내가 형제를 지극히 사랑할 때 예수님이 나타나고, 소 개되어 진다는 말입니다. 또 예수님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합니다. 땅에 떨어지는 밀알처럼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또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내 몸을 태워야 합니다. 바른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밭이요, 바른 성도는 좋은 씨뿌리는 농부입니 다. 그렇다고 저절로 부흥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새벽부터 우리 사랑하므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봅시다♬찬송가 가사와 같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농부가 되어 새벽부터 저녁 까지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걸음을 주고, 벌레를 잡아 주고, 잡초를 뽑아 주어야 30배, 60배, 100배의 수확을 거둡니다. 부흥하는 교회 되도록 힘쓰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바른 생활입니다.
바르다는 말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모든 일이 바른 일이어야 합니다. 총회에 총대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됩니다. 목사와 장로는 교회의 거울도 되고, 양심도 됩니다. 그 책임 이 매우 중합니다. 그런데 총회할 때 어떻습니까 난장판 그리고 수라장을 이루었습니다. 왜 이 모양일까 많은 평신도들이 묻곤 합니다. 참 가슴이 아픕니다. 왜 그럴까요 평소 에 바른 생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옛 말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먼저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깨끗한 총회가 되려면 나 자신이 깨끗해져야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석가 바클레이가 그의 로마서 주석에서 말하였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께 정교한 기도를 드리는 것도 아니고 장엄한 의식을 드리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께 날마다 경건된 삶을 드리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바른 생활 이것이 진정한 예배란 뜻이기도 합니다. 참 성도 는 누구입니까 예배를 드리고 생활하는 성도가 아닙니다. 참 성도에게는 예배드리는 생 활이 있을 뿐입니다. 잘못하면 시간적으로 주일성도 되기 쉽고, 공간적으로 예배당 성도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신령한 의미에서 봉사입니다. 봉사는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요, 사람에게도 하는 것이 봉사입니다. 그러니까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요, 또 하나는 윤리입니다. 이것을 십자가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수직으로 '주여! 주여!' 해야 됩니다. 그러나 이것에만 치중하면 신비주의자가 됩니다. 수평적으로 '서로, 서로' 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만 치중하면 세속주의자가 됩니다. 그래서 이 수직과 수 평이 믹서가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봉사하는 자는 반드시 이웃에게 봉사하는 자 이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거듭난 사람은 사람 앞에서도 거듭난 사람이어야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신자인 사람은 사람 앞에서는 선(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받드는 총 회의 개혁이념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 얼마나 훌륭합니 까 그런데 금년에 우리 교회에서 총회를 하면서 추태를 부렸습니다. 냄새가 날 만큼입니 다. 저는 부족합니다. 앞장서 나갈 수 없는 쇠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묻지 않을 수 가 없었습니다. 개혁총회 이대로 좋은가 백 번을 묻고 싶었습니다. 아침에도 묻고, 낮에 도 묻고, 새벽에도 묻고, 잠자다가도 묻고, 꿈속에서도 묻고, 때문인지 성도님들 보시기에 살이 쪽 빠질 형편입니다. 그런데 결론 이 무엇인가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년 총회 때도 그럴 것이 아니냐는 것이고, 그러니까 반드시 개혁총회가 개혁되어져야 한 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총회가 둘로 갈라졌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한 쪽은 남으로, 한 쪽은 북으로 갔습니다. 지금 두 총회에 합동은 남북 통일 만큼이나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 러나 중매쟁이가 있어야 총각, 처녀가 합하여 한 가정이 이루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가 중 립을 해 보려고 잠깐 중립상태에 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를 본 받아 '나도 중립편이 되겠 소'하는 교회들이 많아졌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내 가정, 우리 교회만을 위해서 기도하 지 말고 상회인 총회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기를 정말 소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누 어진 총회가 하나되게 하옵소서'가슴을 치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매우 소중 한 개혁이념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총회가 이 모양이고, 독불장군(獨不將軍)이고, 유아독 존(唯我獨尊)이고, 바리새적입니까 답은 꼭 하나입니다. 먼저 인간 개혁, 이것이 이루어 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 개혁이 가능합니까 본문 말씀이 답해 줍 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사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요3장에는 제삼의 모태인 예수님을 소개하고 중생 인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개혁에 대한 진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나타난 인물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입니까 착한 사람이 고, 도덕적으로 별 흠이 없는 사람이고, 경제적으로 이스라엘 선생님이며, 바리새인입니다. 유대인의 관원도 됩니다. 별로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야 합니다. "죄 많은 삭개오가 거듭나야 된다. 물 길러 온 죄 많은 수가성 여인이 거듭나 야 한다"이렇게 말하지 않고 니고데모를 향해서 "네가 거듭나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 우리에게도 줍니다. 저를 향해서 "말하지 말아라. 네가 거듭나야 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 십니다. 저는 그대로 받습니다. 제가 거듭나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 랑하는 성도 님들을 향해서 "네가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요3:3을 보면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 람이 문제인가 봅니다. 물론 개혁되어져야 할 것 주변에 많습니다. 병들고, 곪고, 터진 것 많습니다. 신문사 기자들의 구부러진 펜촉이 거듭나야 합니다. 레디오나 T. V에서 이웃을 보도하는 입술도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사법부에 무디어진 본분이 개혁되어 져야 하고, 국 민의 소리를 들을 줄 모르는 정부의 귀가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인간 개혁 이것 이 중요합니다. 정치, 교육, 경제가 나쁜 것 아닙니다. 그것을 요리하는 사람이 문제입니 다. 정치를 움직이고, 교육을 매만지고, 경제를 주물럭거리는 인간이 문제입니다. 개혁총 회가 나쁜 것 아닙니다. 먼저 사람이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좋은 나무라야 좋은 열매를 맺 습니다. 그런데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로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가시 나무는 가시를 맺고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뿔난 재간이 있어도 육 입니다. 성령으로 나야 영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산파라도 돼지 한 마리를 꺼낼 수 없습 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됩니다. 새 시대일수록 새 사람이 요청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 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참 새 것이 그립습니다. 새 사람이 필요합니다. 새 사람이 나 와야 됩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새 사람 만드는 제 삼의 모태입니다. 아기가 태어나 려면 모태가 필요하듯이 인간이 개혁되려고 하면 제 삼의 모태인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번데기가 고추 안에 있으면 벌레가 되어 나오는 것 과 마찬가지입니다. 해바라기가 태양아래 있으면 열매를 맺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계란 이 어미 닭 안에 있기만 있으면 병아리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새 사람 이 되게 하는, 새 출발하게 하는 바탕도 되고, 다리도 되고, 모태도 됩니다. 수술한 여인 도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 새 옷을 걸치면 멋진 숙녀가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는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교양으로나 수양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물론 의지인생이 있 습니다. 지식인생이 있습니다. 청춘인생도 있습니다. 그래서 용단을 내릴 수도 있고, 결 단을 내릴 수도 있고, 새로운 방법으로 새 출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의지는 작 심삼일(作心日)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식이 많고, 재간이 많고, 의지가 강철같아 도 죄인은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만든 모든 것에는 냄새가 나기 마 련입니다. 죄인이 앉은자리에서는 구린내가 나기를 마찬가지입니다. 엉겅퀴에서 포도를 딸 수 있습니까 아무리 씻어도 까만 까마귀가 비둘기 되지 못합니다. 하이타이로 씻고 슈퍼타이로 씻어도 주홍같이 붉은 죄, 먹장같이 검은 죄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으면 다소곳이 겸손하게 나를 죽이고 마음을 비우고 그냥 예수님 안에 있으 면 누구든지 개혁될 수 있습니다. 여기 누구든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든지입니다.
과거에 무슨 죄를 지었느냐 과거에 무슨 언행의 실수를 했느냐 묻지를 않습니다. 누구 든지 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니까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가 개혁되었습니다. 현모양처 로 달라진 것입니다. 재물만 탐하던 삭개오가 개혁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주님을 영접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만 개혁되지 않습니다. 본문 영어성경을 보면 (Old things)라고 했 습니다. 다시 말하면 낡은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낡은 제도가 개혁될 수 있습니다. 냄새를 풍기는 총회도 개혁될 수 있습니다. 오늘 종교개혁주 일을 지키면서 무엇이 새로워져야 하겠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새 로워졌으면 좋겠습니까 나의 옹졸한 사고방식이 개혁되어야 할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나의 믿음이 개혁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주여, 주여'하는 것만 가지고는 천국에 못 갑니 다. 독선적인 나의 아집이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 마음속에 개혁되어져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개혁되기 전에 먼저 인간개 혁 이것이 중요합니다. 군데군데서 잡음이 있는 것은 제도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 람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예배드리는 내가 문제라는 말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천사를 닮았습니다.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말썽을 부렸던 총회 처럼 말썽을 부리는 인생입니까 사람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개혁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누가 먼저 개혁되어야합니까 '너, 너'아닙니다. '나, 나'먼저 내가 개혁되어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해야 될 것입니다. '주여 내가 개혁 되게 해주시옵 소서' 개혁주일을 맞아 예배드리는 모두에게 바로 여기에 초점이 있어야 되고, 개혁주일을 지키는 의의가 여기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개혁되어야 합니다. 내가 개혁되어져 야 합니다. 새로운 길 걷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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