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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고난] 주님의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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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대로 오늘부터 다음 주일까지는 예수님께서 33년간의 지상 생활을 정리하신 주간 입ㄴ지다, 만약 이 한주간에 이루어진 사실들을 빼어 놓는다고 하면 그의 생애는 무의미 할것이며 우리들의 영원한 생명도 이 한주간에 이루어진 사건이 없었다면 비참하게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흘리신 기도와 성만찬이며 로마 병정들에게 체포당하신 일이며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받으시던일 또는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같은 사건들이 다 이한주간에 이루어 졌던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구주 예수님의 아픔에 대하여 말씀을 상고 해 봄으로서 이 한주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자 합니다, 과연 주님의 아픔은 어느 정도 였을까요 ? 우리 주님의 아픔에 대한 초절정의 내용들은 성경에서는 두곳에서 찿아 볼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사야 53장 7절 말씀에 보면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 같다” 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했다” 는 한 말씀으로서도 주님의 아픔이 어느 정도 였는지를 만분의 일이라도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웬래 웬만치 아파야 엄살도 나오고, 웬만치 슬펴야 눈물도 나오지 너무나 괴롭거나 아프면 오히려 말이 나오지 않는 법입니다.
둘째는 마태복음 27장 46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하시는 “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 하시는 비명과 절규하시는 말씀에서 볼수 있습니다, 그 얼마나 아팟으면 “ 버리신다 ” 는 말씀을 하셨을 까요 ? 예수님의 이 아픔은 최고의 형벌이므로 가장 컷을 것입니다, 더구나 모든 인류를 대신하여 한꺼번에 당해 버리시는 형벌이요 , 수억 , 수천만이나누어 져야할 그 고통을 홀로 담당해 주신 형벌이므로 더욱 그 고통이 가중되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 이래로 참고 참으셨던 축적된 진로를 예수님께 쏟으시므로 주님의 고난은 최절정에 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도 심정을 건드리면 참고 참다가 계속 쌓이고 쌓인 원한을 한꺼번에 폭발되는 날은 가장 무서운 것 입니다, 노아 홍수 후에 세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날마다 범죄 하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진로를 격발 시키고 만것 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부분적으로 심판 하시는것 외에는 참고 또 참으시면서 회개하기만 기다리셨으나 인생들은 종시 듣지를 않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다윗왕이 잘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시 7편 11절-12절 말씀을 보면 “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 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자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 하셨도다 ” 했습니다 여기서 “ 날마다 분노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갈아 놓으신 그 여리한 심판의 칼이 예수님께 임했고 이미 당기신 화살이 예수님께 박혓으니 예수님께서 얼마나 아팟겠 습니까 ? 이렇게 아프기 대문에 예수님께서는 “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 “ 하는 절규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받으신 아픔은 어떤 것입니까 ?
1 계절적인 아픔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입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죽엇던 수목들도 싹이 돋는것과 같고 죽었던 사람도 다시 살아 올것만 같은 이 봄입니다, 이러한 소생의 계절과는 상관 없이 예수님 께서는 33세의 젊은 봄철에 시들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약 인간적인 생각을 하셨드라면 십자가를 등에지고 예루살렘 거리를 벗어나서 갈보리의 언덕까지 가시는 길에 모든 새싹이 돋아나는 춘3월 푸른 들판을 바라보시면서 만물은 소생하는데 나는 죽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그는 주 앞에서 연한 순 같이 자라고, 마른땅에서 자라나는 줄기와 같다고 하였고, 또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털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고했습니다,
2 대속적인 아픔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우리들도 죄가있어서 맞는 매는 견디기가 쉬우나 죄가 없이 맞는매는 더욱 아프기 마련 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소는 만 인류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시는 줄을 아시는 까닭에 그 쓰리고 아픔을 다 참으셨습니다, 나 하나가 죽어 버리면 내 백성이 지옥의 형별을 면하고 영원히 살것 이라는 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실수가 있었습니다, 그거므로 베드로전서 2장 19절-21절 말씀에보면 “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 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3 강한자로서 약한자에게 당하는 아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매를 맞아 죽은것이나 그의 반법은 악한 무리들을 동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의인으로서 악한 자에게 당하신 고난이였고 , 강자로서 약자에게 당하신 고난이였습니다, 여기에 최대의 순종의 표본이 되셨고 인내의 본이 되셨습니다, 힘이 있으면서도 약한자에게 맞으면서 끝까지 견딘다고 하는것은 갑절의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순복하는 마음이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 ; 한번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사마리아땅을 지나시다가 해가 저물었을때에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하룻밤을 유하기를 청했으나 거절 당한 다음에 사돟 요한은 울분이 터져서 하늘에서 불이라도 쏟아져서 사마리아 사람들의 비정함과 강팍한 저들을 함께 진멸해 버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책망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아픔에 대해서는 감히 상상할수도 없습니다, 왜냐 ? 하면 우리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인색한 혈육을 가진 인간으로서는지극히 거룩하신 주님의 뜻을 이해할수 없습니다, 손톱 믿에 조그만 가시만 박혀도 쑤시고 아프고, 손가락에서 피한방울만 흘러도 아깝고 두려운데,예수님께서는 양손바닥과 양발목에 생살을 꿇고 들어가서 동맥을 끊어서 피를쏱고, 창으로 가슴팍을 뚫고 심장을 파열시켜 물과 피를 다 쏟아 버리셨으니 누가 이 아픔을 체험해보지 못하고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 우리는 죄를 짖지않고 안들을말을 한마디만 들어도 억울하다고 펄쩍 뛰는데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 면서도 최고의 형벌을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의하여 일보도 양보할줄 모르고 현제를 위하여 한발자국도 옮기기를 아까워 하나 예수님 께서는 죄많은 우리들을 대신하여 지옥의 형벌까지 받아주셨으니 그 고통과 그 아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 약육 강식,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내 힘만 못한 사람을 억누르고 나보다 강한사람에게는 아부하는 세대에 예수님께서는 강자로서 약자에게 굴욕을 참아 주셨으며, 창조주로서 피조물에게 고난을 참아주셨으니 이 고난의 위력이 우리를 죄에서 구속 곧 죄사함을 줄수가있습니다, 개구리도 잠에서 깨어나 머리를 들고 움추렸던 우리들의 몸도 활기를 되찿는 이 아름다운 새봄에 예수 그리스도 께서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곤욕을 당하면서 침묵하셨으니 그 아픔이 얼마나 심하셨겠습니까 ?
이제 오늘의 말씀을 정리 합니다, 주님의 고난은 계절적인 고난과, 대속적인 고난과, 강자로서 약자에게 당하는 아픔 이였습니다, 이 고난이 저와 여러분들을 위한 곰난이였습니다, 이 주님의 은총을 깊이 되새기면서 이 고난주간에 주님을 깊이 묵상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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