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고난] 친구의 죽음을 기뻐하는이
본문
초상집에 가서 어떤 목사님의 감사기도에 그집 부모가 교회를 떠났다. 애가 죽었는데 감사라니-? 오늘 본문의 예수님이 지금 초상집에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친구가 죽었도다. 내가 거기 있었으면 안그럴 수도 있었지만 거기 없어 죽었으니 참 기쁘다" 친구필로스사랑하는 자 -요삼 1:15 모든 크리스찬을 필로이친구들 나사로는 모든 성도들을 대표하고 있다. 예수님은 성도들이 죽을 때,고난을 당할 때 아주 다행스럽게 여기시고 기뻐하실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본문이 그 이유를 다음 두가지로 말하고 있다. 알고 나면 내가 고난 당해 죽게 되었을 때,내 사랑하는 자가 죽어 가슴이 무너질 때 예수님이 기뻐하신다는 말을 들어도 섭섭하게 생각되지 않을 것,목사들이 그 자리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려도 실족하지 않을 것이다.
1. 죽음을 잠으로 바꾸셨기 때문이다. 잠코이마오마이신약에서 잠으로 4회, 죽음으로 14회 쓰임 두말할 것도 없이 세상에서 죽음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죽음만큼 인간을 절망 시키고,두렵게 하는 것 없다. 제일 싫은 것이 죽음. "죽음"이란 말을 입 밖에도 잘 내지 못한다. 말이 씨가 될까봐. 빌딩을 지면 4층을 빼고 짓는다. 그렇다고 4층이 5층 되는 것 아닌데도 죽을 4자라고 영어로 에프 훠쓰 장난 놀고 있다.. 자기 이름을 빨간 글씨로 쓰면 대단히 불쾌해 한다-동사무소에서 빨간색 이름은 죽은 사람에만 쓴다. 죽음은 인류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가장 오랬동안 지배했던 왕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게서 그 죽음을 잠으로 바꾸셨다. 잠과 죽음은 얼마나 다른가. 조상구 목사의 장례 설교 기억. 39세 남편 주검 앞에서 통곡하는 어머니,아내,국교 남매,동생들 앞에서 -어려운 설교였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통곡하고 슬퍼하는 사람 없습니다. 다음날 깨어날 것을 조금도 염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종노릇하던 인간들에게 주신 선물이 바로 그것이다. 죽음을 잠으로 바꾸신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아무도 결단코 죽음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믿는가?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죽음을 잠으로 바꾸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바꾸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슬픔과 아픔을 기쁨과 감사로 바꾸실 것입니다.
2. 고난이 믿음을 강화 시키기 때문이다. 죽음이 인간에게 가장 두렵고 싫은 것이라면,인간에게 가장 소중하고 좋은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다. "믿음"을 빼낸 여러분을 상상해보라. 믿음 없는 인생을 상상해보라. 톨스토이의 인생론/독사굴에 밧줄에 매달린 사람-하얀쥐,까만 쥐가 번갈아 가면서 갉아 먹어-죽는 것은 시간 문제. 불안,두려움,초조. 안타까움만 더해간다. 인생이 이 비참한 상황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믿음은 거기에다 밧줄을 튼튼한 것으로 갈거나,쥐를 없애거나 독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굴 밖으로 끄집어 올라서는 것. 새로운 세계에서 죽음의 염려 없이 새로운 세계를 사는 것.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 믿음으로 약속을 받는다.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며,믿음으로 사자의 입을 막기도 하고,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믿음으로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믿음으로 연약한데서 강하게도 되며,믿음으로 모든 시험과 환난과 핍박을 이기었도다-내가 이 모든 것을 다 말할려면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히브리서 기자가 11:32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인생은 줄이 끈긴 연과 같다. 바람따라 이리저리 좀 나는 것 같다가 곤두박질 쳐버리는 연과 같다. "내가 다시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제일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풍랑 속의 제자들/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물론 이미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인줄 믿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어제의 믿음이 오늘의 나를 붙들어 주지 못한다. 믿음은 날마다 새롭게 강화되어야 한다. 주여 오늘도 저에게 믿음을 주소서! 믿음으로 보고,믿음으로 생각하고,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이기게 하소서!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그러면 여기서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인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 죽음을 잠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능력을 믿는 것 그런데 그 능력을 우리가 어디서 언제 볼 수있는가? 실패와,고난과,환난 속에서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주님의 그 능력을 체험 할 수있다!! 그래서 우리의 고난을 보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연약하고 무기력한 우리의 믿음에 보약이 되기 때문이다. 때로 출에굽 당시 왜 여호와 하나님은 단번에 에굽 왕의 기를 꺽지 않으시고 열번이나 수고 하셨는가 생각해본다. 몇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 도 분명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보여 주고 그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더욱 더 강력해 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당시 이스라엘에게 10번의 승리는 반대로 9번의 실패와 좌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좌절과 실패가 이스라엘의 믿음을 더욱 더 강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번의 재앙으로 끝장 내셨다면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체험하는 것도 단 한번으로 끝났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난,실패들이 왜 이렇게 끊이지 않는지 아시겠는가? 기뻐할 일이다. 끊이지 않는 그 고난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끊임 없이 당신의 살아게신 능력을 보여 주겠다는 약속이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강력하게 자꾸만 새롭게 해주시겠다는 살아있는 메세지들이다. 우리에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날마다 아침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어제보다 오늘 더 강력해져야 한다. 그런데 이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크고 작은 우리의 많은 고난들을 오히려 기쁘게 여기는 것이다. 고난들은 예외 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잉태하고 우리에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 고난의 껍질을 깨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날에 ,죽음이 변하여 잠이 되고,눈물이 변하여 웃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의 고난과 아픔 중에서 이러한 우리 주님의 기쁨을 생각하십시오. 작은 것부터 엄청나게 큰 모든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발견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 죽음도 바꾸어 잠이 되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은헤가 여러분의 믿음과 더불어 늘 더욱 충만해져가기를 축원한다.
1. 죽음을 잠으로 바꾸셨기 때문이다. 잠코이마오마이신약에서 잠으로 4회, 죽음으로 14회 쓰임 두말할 것도 없이 세상에서 죽음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죽음만큼 인간을 절망 시키고,두렵게 하는 것 없다. 제일 싫은 것이 죽음. "죽음"이란 말을 입 밖에도 잘 내지 못한다. 말이 씨가 될까봐. 빌딩을 지면 4층을 빼고 짓는다. 그렇다고 4층이 5층 되는 것 아닌데도 죽을 4자라고 영어로 에프 훠쓰 장난 놀고 있다.. 자기 이름을 빨간 글씨로 쓰면 대단히 불쾌해 한다-동사무소에서 빨간색 이름은 죽은 사람에만 쓴다. 죽음은 인류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가장 오랬동안 지배했던 왕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게서 그 죽음을 잠으로 바꾸셨다. 잠과 죽음은 얼마나 다른가. 조상구 목사의 장례 설교 기억. 39세 남편 주검 앞에서 통곡하는 어머니,아내,국교 남매,동생들 앞에서 -어려운 설교였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통곡하고 슬퍼하는 사람 없습니다. 다음날 깨어날 것을 조금도 염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종노릇하던 인간들에게 주신 선물이 바로 그것이다. 죽음을 잠으로 바꾸신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아무도 결단코 죽음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믿는가?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죽음을 잠으로 바꾸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바꾸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슬픔과 아픔을 기쁨과 감사로 바꾸실 것입니다.
2. 고난이 믿음을 강화 시키기 때문이다. 죽음이 인간에게 가장 두렵고 싫은 것이라면,인간에게 가장 소중하고 좋은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다. "믿음"을 빼낸 여러분을 상상해보라. 믿음 없는 인생을 상상해보라. 톨스토이의 인생론/독사굴에 밧줄에 매달린 사람-하얀쥐,까만 쥐가 번갈아 가면서 갉아 먹어-죽는 것은 시간 문제. 불안,두려움,초조. 안타까움만 더해간다. 인생이 이 비참한 상황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믿음은 거기에다 밧줄을 튼튼한 것으로 갈거나,쥐를 없애거나 독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굴 밖으로 끄집어 올라서는 것. 새로운 세계에서 죽음의 염려 없이 새로운 세계를 사는 것.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 믿음으로 약속을 받는다.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며,믿음으로 사자의 입을 막기도 하고,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믿음으로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믿음으로 연약한데서 강하게도 되며,믿음으로 모든 시험과 환난과 핍박을 이기었도다-내가 이 모든 것을 다 말할려면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히브리서 기자가 11:32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인생은 줄이 끈긴 연과 같다. 바람따라 이리저리 좀 나는 것 같다가 곤두박질 쳐버리는 연과 같다. "내가 다시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제일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풍랑 속의 제자들/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물론 이미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인줄 믿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어제의 믿음이 오늘의 나를 붙들어 주지 못한다. 믿음은 날마다 새롭게 강화되어야 한다. 주여 오늘도 저에게 믿음을 주소서! 믿음으로 보고,믿음으로 생각하고,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이기게 하소서!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그러면 여기서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인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 죽음을 잠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능력을 믿는 것 그런데 그 능력을 우리가 어디서 언제 볼 수있는가? 실패와,고난과,환난 속에서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주님의 그 능력을 체험 할 수있다!! 그래서 우리의 고난을 보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연약하고 무기력한 우리의 믿음에 보약이 되기 때문이다. 때로 출에굽 당시 왜 여호와 하나님은 단번에 에굽 왕의 기를 꺽지 않으시고 열번이나 수고 하셨는가 생각해본다. 몇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 도 분명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보여 주고 그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더욱 더 강력해 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당시 이스라엘에게 10번의 승리는 반대로 9번의 실패와 좌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좌절과 실패가 이스라엘의 믿음을 더욱 더 강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번의 재앙으로 끝장 내셨다면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체험하는 것도 단 한번으로 끝났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난,실패들이 왜 이렇게 끊이지 않는지 아시겠는가? 기뻐할 일이다. 끊이지 않는 그 고난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끊임 없이 당신의 살아게신 능력을 보여 주겠다는 약속이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강력하게 자꾸만 새롭게 해주시겠다는 살아있는 메세지들이다. 우리에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날마다 아침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어제보다 오늘 더 강력해져야 한다. 그런데 이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크고 작은 우리의 많은 고난들을 오히려 기쁘게 여기는 것이다. 고난들은 예외 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잉태하고 우리에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 고난의 껍질을 깨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날에 ,죽음이 변하여 잠이 되고,눈물이 변하여 웃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의 고난과 아픔 중에서 이러한 우리 주님의 기쁨을 생각하십시오. 작은 것부터 엄청나게 큰 모든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발견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 죽음도 바꾸어 잠이 되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은헤가 여러분의 믿음과 더불어 늘 더욱 충만해져가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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