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고난] 십자가의 처형(I)
본문
지난 시간에는 로마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취하여 겉옷은 네깃으로 나누고 속옷은 제비뽑은 사건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하여 그 민족이 동서남북 전세계로 흩어질 것과 그러한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민족은 살아남을 것을 예언한 사건임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이로 인한 마지 막 때의 역사와 십자가에 달려 처형받으신 사건에 대하여 증하겠습니다.
1. 성경에 예언된 이스라엘의 역사와 마지막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로마 군병들이 취한 예수님의 옷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언하셨는데 이는 마지막 때에 대한 암시이기도 합니다. 에스겔 38:8을 보 면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 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세란 예수님 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재림하기까지의 기간을 말하며 말년이란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끝날을 의미하는 것이니 말년에 이스라엘이 재건설될 것을 예언한 말 씀입니다. 서기 70년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성이 훼파되기 시작하여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할 당시까지 예루살렘은 황무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말 년에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른다고 하는것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 운 말년이 되면 전세계에 흩어져 있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발 약 790 미터에 위치한 예루살렘에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구약성경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1948년에 독립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립은 신약 성경 마태복음 24:32-34에도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무화과나무는 겨울이 되면 나 무가지가 죽은 것처럼 앙상해졌다가 봄이 되면 파릇파릇 새순이 돋아나는데 이처럼 이스라엘이 죽어 없어진 것같다가 다시 소생하여 독립하는 것을 보 거든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줄로 알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4:12-14 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서 묻는 제자들에게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 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불법이 성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신성한 학교에까지 불법이 성행하고 있고 이웃은 물론 심지어는 형제, 부모자식간에도 참된 사랑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을 봅니다. 또한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어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사도행전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한 대로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전파되기 시작한 복음은 이방인의 전도 자로 뽑힌 사도 바울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유럽에서 미국으로 다시 아시아로 들어와 우리나라도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전세계 분야분야에 조 금씩 아직 이르지 못한 곳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이미 온 세상에 전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로마군병들이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옷을 취한 사건 을 기록케 하시므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마지막 때에(단 12:4) 관한 역사들을 성경 속에 미리 예언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2.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 사람을 죽이는 방법 중에서 가장 고통을 당하는 것이 십자가의 처형입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어떤 것입니까? 커다란 나무 십자가 위에 양 손과 양 발에 못을 박아 죽을 때까지 매달아 놓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양손과 양발을 못 박히는 고통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인데 못박힌 채 오랜 시간동안 매달려 있 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금방 숨이 끊어지면 차라리 고통이 크 지 않을 것인데 십자가의 처형법은 급소를 찌르는 것이 아니므로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채찍에 맞아 상처투성이가 된 몸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사막지대의 햇빛을 받으며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아홉시간이나 고통을 받았습니다. 더군다나 피냄새를 맡은 독한 벌레떼까지 몰려와서 몸을 핥고 있고 십자가 밑에서는 많은 사람 들이 구경하며 온갖 조롱을 하고있으니 참으로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고통 까닭에 사람의 본분을 잃었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 의 자녀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온갖 저주와 죄를 지고 가시기 때문에 멸망받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죄에서 해방되어 의인이 될 수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을 얻게 될 것을 아시니 기쁨과 감사함 으로 고통의 길을 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 고통스럽게 여기시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렇게 고통을 받고 모든 저주를 한 몸에 지고 나무에 달려서 인간이 받아야 할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다 짊어져도 이것을 알지 못하고 주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3. 십자가 처형 당시의 상황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에 두 행악자도 십자가에 못박혀 있었는데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었습니다(마 27:38). 마태복음 27:39-44, 마가복음 15:29-32을 보면 지나가는 자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 들이 예수님을 모욕하며 희롱하였는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3:39-43을 보면 두 강도중 한쪽 강도는 예수님을 욕하였지만 다른 쪽 강도는 오히려 반대편 강도를 꾸짖으면서 회개하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낙원에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 왜 성경에 이런 엇갈린 기록이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성경이 틀린 것 도 아니요, 성경의 기자들이 잘못 기록한 것도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인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록들을 통하여 서 그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그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을까요? 골고다 언덕에 예수님께서 달리신 큰 십자가가 높이 세워져 있고 그 좌우 편에 두 행악자도 함께 달려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 주변에 많은 군중들이 둘러서서 조롱하니 로마 군병들은 군중이 십자가 가까이 밀리 않도록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였고, 그 중에는 예수를 미워하는 자도 사랑하는 자도 많았 으니 그 무리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 있겠습니까. 이렇게 수많은 군중들이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을 중심으로 반원형을 둘러 서 있는데 떠들썩할 때 군중들 틈에 낀 예수님의 제자가 보니다른편 강도가 무 엇이라 욕을 하는 것이 보였던 것입니다. 실상 그 욕은 예수님을 향해 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편 강도를 꾸짖는 것인데 멀리 떨어져 있으니 말한 내용은 알 수 없고 모습을 보니 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 서 얼굴만 돌려서 말을 하니 그 말이 예수님을 향한 것인지 다른 편 강도를 향 한 것인지 분별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십자가 아래에 있는 군중들 큼에 낀 제 자는 예수님을 욕한 것으로 착각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즉 회개한 강도편에 있 는사람들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다른 강도편에 있는 사람들은 자세 히들리지 않으니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러한 기록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당시의 상황을 잘 알수 있습니다. 즉 성경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은 '아, 어떻 게상황이 전개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영감으로 받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1. 성경에 예언된 이스라엘의 역사와 마지막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로마 군병들이 취한 예수님의 옷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언하셨는데 이는 마지막 때에 대한 암시이기도 합니다. 에스겔 38:8을 보 면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 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세란 예수님 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재림하기까지의 기간을 말하며 말년이란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끝날을 의미하는 것이니 말년에 이스라엘이 재건설될 것을 예언한 말 씀입니다. 서기 70년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성이 훼파되기 시작하여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할 당시까지 예루살렘은 황무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말 년에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른다고 하는것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 운 말년이 되면 전세계에 흩어져 있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발 약 790 미터에 위치한 예루살렘에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구약성경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1948년에 독립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립은 신약 성경 마태복음 24:32-34에도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무화과나무는 겨울이 되면 나 무가지가 죽은 것처럼 앙상해졌다가 봄이 되면 파릇파릇 새순이 돋아나는데 이처럼 이스라엘이 죽어 없어진 것같다가 다시 소생하여 독립하는 것을 보 거든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줄로 알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4:12-14 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서 묻는 제자들에게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 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불법이 성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신성한 학교에까지 불법이 성행하고 있고 이웃은 물론 심지어는 형제, 부모자식간에도 참된 사랑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을 봅니다. 또한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어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사도행전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한 대로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전파되기 시작한 복음은 이방인의 전도 자로 뽑힌 사도 바울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유럽에서 미국으로 다시 아시아로 들어와 우리나라도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전세계 분야분야에 조 금씩 아직 이르지 못한 곳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이미 온 세상에 전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로마군병들이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옷을 취한 사건 을 기록케 하시므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마지막 때에(단 12:4) 관한 역사들을 성경 속에 미리 예언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2.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 사람을 죽이는 방법 중에서 가장 고통을 당하는 것이 십자가의 처형입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어떤 것입니까? 커다란 나무 십자가 위에 양 손과 양 발에 못을 박아 죽을 때까지 매달아 놓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양손과 양발을 못 박히는 고통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인데 못박힌 채 오랜 시간동안 매달려 있 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금방 숨이 끊어지면 차라리 고통이 크 지 않을 것인데 십자가의 처형법은 급소를 찌르는 것이 아니므로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채찍에 맞아 상처투성이가 된 몸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사막지대의 햇빛을 받으며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아홉시간이나 고통을 받았습니다. 더군다나 피냄새를 맡은 독한 벌레떼까지 몰려와서 몸을 핥고 있고 십자가 밑에서는 많은 사람 들이 구경하며 온갖 조롱을 하고있으니 참으로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고통 까닭에 사람의 본분을 잃었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 의 자녀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온갖 저주와 죄를 지고 가시기 때문에 멸망받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죄에서 해방되어 의인이 될 수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을 얻게 될 것을 아시니 기쁨과 감사함 으로 고통의 길을 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 고통스럽게 여기시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렇게 고통을 받고 모든 저주를 한 몸에 지고 나무에 달려서 인간이 받아야 할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다 짊어져도 이것을 알지 못하고 주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3. 십자가 처형 당시의 상황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에 두 행악자도 십자가에 못박혀 있었는데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었습니다(마 27:38). 마태복음 27:39-44, 마가복음 15:29-32을 보면 지나가는 자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 들이 예수님을 모욕하며 희롱하였는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3:39-43을 보면 두 강도중 한쪽 강도는 예수님을 욕하였지만 다른 쪽 강도는 오히려 반대편 강도를 꾸짖으면서 회개하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낙원에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 왜 성경에 이런 엇갈린 기록이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성경이 틀린 것 도 아니요, 성경의 기자들이 잘못 기록한 것도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인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록들을 통하여 서 그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그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을까요? 골고다 언덕에 예수님께서 달리신 큰 십자가가 높이 세워져 있고 그 좌우 편에 두 행악자도 함께 달려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 주변에 많은 군중들이 둘러서서 조롱하니 로마 군병들은 군중이 십자가 가까이 밀리 않도록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였고, 그 중에는 예수를 미워하는 자도 사랑하는 자도 많았 으니 그 무리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 있겠습니까. 이렇게 수많은 군중들이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을 중심으로 반원형을 둘러 서 있는데 떠들썩할 때 군중들 틈에 낀 예수님의 제자가 보니다른편 강도가 무 엇이라 욕을 하는 것이 보였던 것입니다. 실상 그 욕은 예수님을 향해 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편 강도를 꾸짖는 것인데 멀리 떨어져 있으니 말한 내용은 알 수 없고 모습을 보니 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 서 얼굴만 돌려서 말을 하니 그 말이 예수님을 향한 것인지 다른 편 강도를 향 한 것인지 분별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십자가 아래에 있는 군중들 큼에 낀 제 자는 예수님을 욕한 것으로 착각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즉 회개한 강도편에 있 는사람들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다른 강도편에 있는 사람들은 자세 히들리지 않으니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러한 기록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당시의 상황을 잘 알수 있습니다. 즉 성경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은 '아, 어떻 게상황이 전개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영감으로 받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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