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사랑이란 이름으로 오신 그 분 (요일 4:9-11)
본문
사랑이란 이름으로 오신 그 분 (요일 4:9-11)
우리 주님 아기 예수의 탄생을 감사하며 그 은혜가 우리 가족들 모두에게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아본 사랑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누구에게 언제 받은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가장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세 때에 스웨덴에 존이라는 왕자가 있었습니다. 그 존과 결혼한 여인은 폴란드 귀족 출신의 캐서린이었습니다. 캐서린은 존 왕자와 결혼했지만 권력다툼에 휘말려 남편인 존은 형 에릭에 의해서 평생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고국에 머물고 있던 캐서린은 그 소식을 듣고는 곧장 스톡홀름으로 달려가서는 왕 에릭 4세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폐하, 저를 제 남편과 함께 감옥으로 보내 주십시오.” 캐서린의 간청에 에릭 4세는 그녀를 만류했습니다. “캐서린, 그대의 남편은 평생 동안 다시는 햇빛을 못 보게 될 것인데 그대는 그것을 알고 그런 간청을 하는 것인가?” 그녀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폐하,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무죄이건 유죄이건 간에 존 왕자는 저의 변함없는 남편입니다.” 왕은 측은한 눈빛으로 캐서린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짐의 생각으로는 그대의 남편이 감옥에 보내진 순간부터 그대는 그와의 서약에서 풀려 자유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자 캐서린은 자기가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들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폐하, 부디 이 반지에 새겨진 문구를 읽어 봐 주십시오.” 반지를 받아든 왕은 ‘오직 죽음으로써만’이라는 문구를 읽은 후 캐서린을 단념시킬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는 캐서린을 그녀의 남편이 갇혀 있는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17년 동안 그녀는 남편과 함께 어두운 감옥에서 보내야 했고, 그러다가 국왕 에릭 4세가 사망하자 두 사람은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두운 감옥에서 17년을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것을 견디게 한 힘은 사랑이었습니다. 존과 캐서린의 결혼반지에 쓰여 있는 것처럼, 죽음 외에 그 어떤 것도 그들을 결코 분리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게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늘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내가 겪은 사랑의 이야기도 그렇거니와 누군가의 사랑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그런 사랑을 갈구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그래서 늘 사랑에 목말라하고, 사랑받기를 소망하며 삽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 중에서 최고의 사랑은 단연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크고 확실하게 나타난 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서 죽어가는 우리네 인생을 살리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에 나타난 역사적으로 최고의 날입니다.
우리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죄로 인하여 죽었던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창세기 2: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그 명령을 거역하고 먹지 말라고 하신 열매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아담과 하와는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범죄한 인간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그 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렇게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이 바로 아기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죄 가운데 내버려두실 수가 없어서 당신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아기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의 표현이 바로 당신이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기 예수님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하셨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아담과 하와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표현 가운데 또 하나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혀주신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 한 이후 부끄러움에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것은 곧 시들어버릴 옷입니다. 아무리 멋지고 잘 만든 옷이라 하더라도 해가 나면 곧 말라비틀어질 옷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습니다.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어떤 짐승인가가 희생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어떤 짐승인가를 죽여야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기 예수님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또 하나의 사랑의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한 화목제물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으셨습니다. 화목제물이 무엇입니까?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음의 길을 가는 우리를 다시금 하나님과 화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려는 목적으로 드려지는 제사가 화목제사입니다. 그리고 그 때 드려진 제물이 화목제물입니다. 구약시대에 화목제물로 드려진 양이나 염소는 반드시 피를 흘려 죽어야 합니다. 피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화목제물로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주실 때 짐승이 죽어야 했던 것처럼,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성탄절이 기쁘고 행복한 날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씻기시고 우리와 화목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기꺼이 죽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이기에 우리에게는 성탄절이 기쁨의 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성탄절은 고난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야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내심을 받으셨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서 존귀히 여김 받지 못하셨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귀신에 사주를 받은 사람’이라거나 ‘정신 나간 미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시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랑하던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백성들에게 외면 당하셨습니다. 이방인인 로마 군인들에게 희롱을 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셔야 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데 세상은 그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를 버리고 죽였습니다.
그걸 아시면서도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기쁜 성탄절이지만 예수님에게는 고난의 시작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 아기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습니다. 당신의 독생자가 세상에서 버림받을 줄 아시면서도, 사람들에게 버림받아 처참한 십자가 죽음의 길을 가신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시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이름으로가 아니고는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 대신 죽음에 내놓는 그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그 가슴이 가득 담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랑이 보여진 날입니다. 가장 위대한 사랑이 나타난 날입니다. 가장 위대한 사랑이 실천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사랑, 가장 위대한 사랑 때문에 우리가 죄에서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랑을 잊어버릴 때 우리에게는 인생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 넓은 마음 때문에 내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내가 이해심이 많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남들보다 희생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은 나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는 데서 시작됩니다. 나를 위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어주신 그 사랑 때문에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마라스머스(marasmus)라는 병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는 ‘소모증’(消耗症)인데, 이 병은 주로 전쟁 고아나 고아원에서 외롭게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많이 나타납니다. 뭔가가 부족하여 심각한 영양부족 상태가 되어서 발생하는데, 그 증상으로 신체발육이 부진하고 온몸에 힘이 빠져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맙니다. 이 병은 영양부족이나 병균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사랑의 결핍입니다. 부모의 품에 안겨 재롱을 부리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아이들이 그런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할 때 이 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병의 치료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사랑을 받으면 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듣고, 사랑하는 사람의 스킨십을 통해서 사랑을 경험하게 하면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 우리 가운데 마라스머스 병에 걸린 사람처럼, 마음이 지쳐 회복이 되지 않고 온 몸에 힘이 빠져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는 분 계십니까?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기운이 빠지고 무기력해진 경험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왜 그런 마음의 상태가 된 줄 아십니까?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살기 때문입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신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도 그 사랑이 내게 임하여 내 마음속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살기 때문에 우리가 때로 마라스머스 병에 걸린 사람처럼 무기력해지고 의욕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2019년 성탄절을 맞아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다시금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기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이 독생자를 주신 그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그 사랑을 다시금 우리 가슴에 가득함을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그 사랑에 끌려 사십시다. 성탄절은 가장 큰 사랑이 보여진 날입니다. 성탄절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나타난 날입니다. 가장 위대한 사랑, 가장 큰 사랑,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이 바로 아기 예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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