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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생수의 강인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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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농사를 짓든지 꽃을 가꿀 때 식물을 옮겨 심을 때가 있습니다. 옮겨 심을 때 아무리 주의를 해도 뿌리를 상하기 때문에 물빨아 들임이 좋지 못하여서 햇볕이 내리쬐게 되면 잎이 시들어지게됩니다. 시들어진 식물을 볼 때 모양이 좋지 못하고 보기가 싫습니다. 이때 비가 내리게되면 보기 싫게 축 쳐져있던 잎파리들이 생기가 돌고 싱싱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의 귀중함을 실감하지 못해서 그렇지 물이 없을 때의 고통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제가 학생 때 리빙스턴의 전기를 읽으면서 물의소중함을 절감한 적이 있습 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탐험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는데 아프리카의 동서를 횡단하면서 사막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지도에는 분명히 물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호수가 다 말라버린 뒤였습니다. 며칠을 물을 마시지 못하니까 애타게들 물을 그리워하고 신기루를 보면서 낙심하고 그러다가 물을 찾으러 간 원주민이 물을 부대에 담아왔는데 더러운 물이었지만 정말로 맛있게 먹고서 생기를 되찾은 얘기가 실감있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물이 이렇게도 귀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예수님은 성령을 생수 즉 물에다 비유를 하신 것을 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생명치고 물과 무관한 것은 없습니다. 그만큼 물은 생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 생명도 성령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성령으로 거듭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우리의 신앙 생활이 유지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남북 아메리카의 늪지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장티푸스 병균과 간혹 모든 도시를 잠재우는 가공할 콜레라를 싣고 온답니다. 그러나 폭풍이 한 번 몰아치면 그 병균들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사람들은 질병으로부터 해방됩니다. 그래서 그곳 거주자들은 이 폭풍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활동의 정지로 인해 의심과 불안정의콜레라가 자리를 잡습니다. 이것을 막는 큰 예방책은 영혼을 일깨우는 성령의 호흡입니다. 성령은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와서 생활 전체의 분위기를 정화시킵니다. 이렇게 중요한 성령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승천하시자 마자 지체하지 않으시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게 되면 구약 시대에도 성령은 계셨고 예수님 당시에도 성령은 활동하셨습니다. 특정한 사람에게 성령이 역사 하시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시고 이루신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삼손의 예를 보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충만했을 때 놀라운 힘으로 이스라엘 을 구원했고 이방 적들을 물리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윗 모세 엘리야 엘리사 등 선지자들도 여호와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아 활동했 던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사울 같은 왕도 성령에 감동하여 예언을 한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성령은 일시적이었고 특정한 사람에게만 특정한 때에 감동되었습니다. 하지만 오순절날 성령강림은 이런 성령과는 두드러진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37절에 누구든지 받을 수 있는 성령의 보편성입니다. 특정한 사람이 아닌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믿는 자에게는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성령은 내 자신의 내면 속에 깊숙이 내재하고 계십니다. 38절 중간에 "그 배에서"라고 말씀하시므로 성령의 내주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흘러 내린다" 즉 차고 넘칠 정도로 부어지는 성령의 충만성이 이전의 성령과 다른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합니다. 은혜의 때에 은혜를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이런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37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고하신 것처럼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즉,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내 모든 죄를 담당하여 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우리 속에 내주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령이 우리에 게 임하시면 우리는 성령을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선물로서 감사하고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나 성령이 내게 임하셨다는 이 사실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성령이 임하시지만 우리는 또한 성령 충만을 간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우리는 예수님 믿는 사람이 맺어야되는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육체의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16-26에서 사도바울은 성령충만하지 못함으로 맺게 되는 열매와 성령 충만함으로 맺게 되는 열매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 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 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성령 충만 받고 사는 생활과 육체의 사람으로 사는 삶은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또한 여기서 성령충만이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요구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느 특정한 장소에서만 받게 되는 것도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것을 간구하는 자는 누구든지 어디에서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값없는 은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충만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소 가장 확실한 시간은 교회이고 예배 시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면 성령충만 교회와 멀어지면 육체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샘에서 소리 없이 스며 나오는 물기가 대지를 적시고 개울을 이루고 강 물을 이루는 것처럼 우리에게 성령충만해지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성령은 서서히 그러나 내면 깊숙이 나를 지배해 들어 오시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의 인격을 주장하신다. 그는 나의 인격 중에서 제일 먼저 나의 지성을 어루만지십니다. 성령으로 고무되어진 인격은 계속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고 그의 말씀을 사모하는 갈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갈증이 채워질 때의 기쁨이란 세상의 그 어느 것 과도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성령의 지성을 어루만지시는 은혜를 통하여 말씀의 오묘한 맛으로 깊은 맛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해진 지성은 곧 성령충만한 감정을 낳게 되어집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신비스러운 기쁨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 기쁨은 세상의 기쁨처럼 조건적이거나 일시적이지 않습니다. 항상 동일한 기쁨입니다. 환난 중에서도 근심 속에서도 핍박 속에서도 오히려 기뻐합니다. (벧전1:6)뿐만 아니라 보지 못하는 환경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성령이주는 기쁨의 신비이다. (벧전 1:8) 성령 충만은 내 지성과 감정 뿐만 아니라 나의 의지에도 변화를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그 결과 나의 행동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에 힘쓰고 말씀을 사모하는 것 외에 성도들이 모이는 시간과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드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도와주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 하는 능력 있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하지 목사님의 "근심을 이기는 비결"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하지 목사님이 자기 아들이 목사가 된다고 하니까"예, 하지야 네가 목사가 된다고 하는데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단다. 목사가 빨간 넥타이를 매어보아라. 교인들은 우리 목사 바람 났나봐 그런 단다. 그렇다고 까만 넥타이를 매어보아라, 그러면 우리 목사는 장례식만 다니나 보지 한단다. 목사가 택시를 타보아라, 우리 목사는 사치해,돈을 어떻게 당할라고 그러나,그렇다고 버스를 타고 다녀 보아라,우리 목사는 촌스러워. 목사의 설 교가 길어보아라,우리목사는 태엽이 너무나 길어,짧아보아라, 우리 목사 요즘에 공부 안하나봐. 목사가심방만 해보아라, 우리 목사 할일 대개 없구먼, 그렇다고 심방을 안해 보아라, 요즘엔 심방 안하고 뭐하노. 목사가 다른 교회에 설교하러 자 주 나가보아라,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안나가 봐라 ,우리목사 인 기 되게 없나봐. 교회가 부흥이 안되 봐라,무능하다고 한단다. 그렇다고 부흥이 되 봐라, 물량주의자라고 한단다. 그러나 은혜가 충만한 사람 들은 반대로 말한단다. 목사가 빨간 넥타이를 매면 우리목사님세련되셨어, 까만 넥타이를 매면 경건하신 분이셔. 택시타면 바쁘신가 봐,버스를 타면 검소하신 분이셔. 설교가 길 면 은혜를 주실려고 애쓰셔,짧으면 우리가 피곤한 줄 아시고 빨리 들어가 쉬라고 배려하셔,심방을 많이 하면 부지런하셔, 안하면 공부하시나봐, 다른 교회 설교 하러 다니면 사명이 크셔, 안 나가면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는구먼, 교회가 부흥되면 능력이 있어, 교회가 부흥이 안되면 우리 책임이야 라고 말한단다.
사실은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단다. 너는 교인들을 성령충만하도록 기도 많이 하여야 한다"라고 충고하였답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함으로 육체의 사람으로 얽매여 있는 모든 부자유함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는 이 말씀처럼 이제는 더 이상 육신의 연약함에 얽매이는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유혹과 자신의 정욕과 싸워 승리하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내가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이 깨끗하게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하신 바울 사도와 같은 높은 차원의 자유함을 마음껏 누리는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 입니다. 우리 철원성결교회 모든 성도들이 모두가 성령 충만 받아 힘있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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