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의 아침에 살자
본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지 3일째되는 새벽 미명이였읍니다. 주님생전에 주님을 따르던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몇몇 여인들이 예수님 무덤을 보살피려고 정성껏 예비한 향유를 가지고 찾아 올라갔읍니다. 무덤에 당도하니 무덤에 이상이 생겼읍니다. 육중한 돌문이 열려있었고 조심스럽게 무덤을 들어가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예수님의 시체는 간곳이없고 수의만 남겨져있었읍니다. 여인들은 무섭고 두려워졌읍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그토록 굳게 잠기고 삼엄하게 지키던 무덤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바로 이때 홀연히 두 천사가 나타났읍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자 가은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않고 살아나셧느니라” 여자들이 무섭기도하고 기쁘기도하고 무덤을 빨리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하는데 이번에는 그들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읍니다. “평안하뇨” “무서워말라 가서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게되리라” 하셨읍니다. 마리아는 뜻하지앟게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을 만나뵙고 견딜수없는 감격에 벅차올랐읍니다. 제자들에게 단숨에 달려가 이 사실을 전했읍니다. 아니 예루살렘 시내를 누비며 이 기쁜 소식을 전파했읍니다. 예루살렘 거리는 온통 예수님 부활 소식으로 술렁이기 시작했읍니다. 세상에 기적 기적하지만 이런 기적이 일어날수가 있읍니까? 죽음과 칠흙같던 흑암이 물러가고 광명의 새 아침이 지구촌에 밝아온것이였읍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그토록 굳게 잠그고 삼엄한 경비를 섰던 파수군과 큰돌이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군인들은 기절하였고 큰돌은 산산조각이 나버렸읍니다. 하늘의 천군천사들의 합창이 온누리를 감쌌읍니다. 하늘의 찬란한 빛이 고요한 아침의 햇살과 더불어 온 천지를 비추었읍니다. 이 신비한 사건은 이른 새벽 아침에 일어났읍니다. 그런의미에서 부활의 아침은 인류에게 뜻깊은 새 아침입니다. 오늘 이 시간 부활의 아침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져합니다.
1. 부활의 아침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시간이 되게 합니다. 부활의 아침은 예수님을 찾는 마음을 활짝트이게 했읍니다. 사실상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사흘만에 다시 사신다는 말씀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다만 시체에 향유를 부으러 갔다가 예수님을 만난것이였읍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생전의 말씀이 진짜였구나 하며 마음이 부풀어 올랐읍니다. 부활의 아침에서야 진정 구주를 만난것입니다. 제자들의 상황은 더 복잡했읍니다. 예수님이 십자자에 달려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다시 사신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그들의 영적인 상태는 말이아니였읍니다. 어떤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엣직업으로 돌아갔읍니다. 인간적인 실의와 절망에 휩쌓여 있었읍니다. 이제 모든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캄캄한 밤중이였읍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신비한 소식이 제자들의 마음에 예수님이 생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나기 시작했읍니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져 십자가에 못박히고 제3일에 다시 살아나리라” 는 말씀이 가슴에 메아리쳐 왔읍니다. 절망의 포구에서 헤어나올줄 모르던 자들이 예수부활 새 아침에 부활소식을 접하자 재기의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읍니다.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짜 제자다운 제자들이 되였읍니다. 이것이 부활아침에 동트기 시작한 마음의 역사입니다. 부활아침에 예수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수 만나는 시간되게 해야 합니다. 부활의 아침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만하면 새 역사가 창조됩니다.
2. 부활의 아침에 문제의 돌문이 열리는 역사가 있읍니다. 부활의 아침에 전해진 복음은 “그가 살아 나셨다”는 복된 음성이요 그를 가두고 있었던 “사망권세의 돌문이 열렸다”는 소식입니다. 마리아가 돌문을 어찌할고 걱정하며 갔었는데 걱정의 문제가 이미 해결돼 있었읍니다. 경계 군인들은 어떻게 설득시키나 염려하며 갔었는데 염려의 문제가 이미 --. 인간은 문제속에 살아가고 있읍니다. 문제중에도 죽음의 문제가 제일 큰 문제입니다. 부활의 아침에 이 죽음의 문제가 해결된것입니다. 예수님은 돌 무덤속에서 3일동안 갇혀 계셨읍니다.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운명이셨읍니다. 그러나 그분의 강한 능력으로 죽음의 돌문을 허무시고 감금시켰던 돌문을 옮겨버렸읍니다. 사망권세는 예수부활과 동시에 아무런 힘을 낼수없게 돼 버렸읍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의 문제만 해결하면 세상에 문제될것이가 없읍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사생관만 확립되면 다른건 문제가 되질않습니다. 지금 우리를 감금시키고 있는 돌문이 무엇입니까? 돈 문제입니까? 자녀 문제입니까? 사업 문제입니까? 예수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장애물들을 우리 주님께서 짊어지시고 사망권세아래 3일간 갇혀계시다가 3일만에 모두 깨쳐버리셨읍니다. 주님께 모든걸 맡기십시요. 생사문제를 먼저 해결하십시요 그러면 돌이 굴러져 나갑니다. 돌이 옮겨 집니다. 부활의 아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축복의 아침이 되시기바랍니다.
3. 부활의 아침은 주님의 얼굴의 광채를 보게 해 줍니다. 본문에서 천사와 부활주님의 형상을 “번개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다”고 하였읍니다. “번개”란 헬라어로 광채,광휘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요한,야고보을 데리시고 변화산상에 올라 가셨을때 갑자기 예수님이 변화되셨읍니다. 휘황찬란한 광채가 비취며 세상에서 볼수없었던 광휘였읍니다. 예수님은 그 광휘속에서 일찌기 세상을 떠났던 모세,엘리야와 대화를 하시는 것이였읍니다. 예수님 얼굴의 광채를 본후부터 제자들이 실질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읍니다. 사도 바울이 변화된것도 다메섹 도상에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예수님의 광채를 보고 부터였읍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얼굴의 광채는 이렇듯 영적인 변화의 빛을 발하십니다. 어떤 변화의 빛을 비추입니까? 번개 혹은 빛을 생각해 보세요 1? 빛은 속도가 있읍니다. 속도는 힘을 말합니다. 힘이있어야 속도를 내기 때문입니다. 캄캄한 밤에 번개가 치면 사방이 순식간에 환해집니다. 아침에 해빛이 솟아오르면 온 천지를 환하게 만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의 광채가 바로 이런 작용을 하고 있읍니다. 주님의 얼굴의 광채를 받아 본 사람은 변화하지 않고는 못견디게 돼 있읍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사도 바울입니다. 성 프란시스가 그런 사람이였읍니다. 프란시스는 주님의 얼굴의 광채를 받고 변화되여 주님의 광채를 내면서 거룩한 생애를 살았다고 합니다. 성 프란시스가 길거리를 지날때는 그의 몸에서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충만하여 사람들이 감히 쳐다 보지를 못했답니다. 당시 공산주의자 레닌이 1924년 그가 운명하기 전에 “나는 실수를 했다. 나의 이름은 러시아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더구나 세계는 변화시킬수가 없었다 아씨스의 성자 프란시스의 광채난 그 모습을 지닌 사람이 10명만 있었다면 러시아는 물론 전세계는 변화 될수가 있었을 것이다“ 라고 말했읍니다. 레닌의 말은 옳았읍니다. 공산주의 가지고는 세상을 더 어둡게 만들어 놓았구요. 주님의 영광의 광채를 받은 사람들이 세계곳곳에서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 왔읍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광채는 인류에게 생명의 빛,소망의 빛이 되셨읍니다.
빛은 사람이 표현하기는 어려우나 특별한 작용 색갈이 있읍니다. 빛은 색갈이 있읍니다. 표현할길이 없어서 다만 희다고만 할뿐이지 색갈이 있읍니다. 그리고 특별한 작용을 합니다. 빛이있는 곳에 생명의 리듬이있고 숨결의 약동이있으며 모든 동식물의 호흡이있읍니다. 동녘에 떠오르는 태양의 아름다움은 그곳에 빛의 특별한 작용이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을 몰아내는 작용을 합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를 따뜻하게 풀어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의 광채는 죄악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부정부패로 썩어가는 세상을,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위대한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는 기도 내용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구하고 있읍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은혜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하였읍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시고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한 사랑은 부활의 아침에 찾아온 모든 사람에게 은혜의 광채를,평강의 광채를 비추십니다. 오늘 주님의 얼굴의 광채속에 들어온 성도여러분에게 고난과 슬픔과 불가능이 변하여 기쁨과 평안의 광채가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부활의 아침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시간이 되게 합니다. 부활의 아침은 예수님을 찾는 마음을 활짝트이게 했읍니다. 사실상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사흘만에 다시 사신다는 말씀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다만 시체에 향유를 부으러 갔다가 예수님을 만난것이였읍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생전의 말씀이 진짜였구나 하며 마음이 부풀어 올랐읍니다. 부활의 아침에서야 진정 구주를 만난것입니다. 제자들의 상황은 더 복잡했읍니다. 예수님이 십자자에 달려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다시 사신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그들의 영적인 상태는 말이아니였읍니다. 어떤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엣직업으로 돌아갔읍니다. 인간적인 실의와 절망에 휩쌓여 있었읍니다. 이제 모든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캄캄한 밤중이였읍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신비한 소식이 제자들의 마음에 예수님이 생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나기 시작했읍니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져 십자가에 못박히고 제3일에 다시 살아나리라” 는 말씀이 가슴에 메아리쳐 왔읍니다. 절망의 포구에서 헤어나올줄 모르던 자들이 예수부활 새 아침에 부활소식을 접하자 재기의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읍니다.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짜 제자다운 제자들이 되였읍니다. 이것이 부활아침에 동트기 시작한 마음의 역사입니다. 부활아침에 예수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수 만나는 시간되게 해야 합니다. 부활의 아침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만하면 새 역사가 창조됩니다.
2. 부활의 아침에 문제의 돌문이 열리는 역사가 있읍니다. 부활의 아침에 전해진 복음은 “그가 살아 나셨다”는 복된 음성이요 그를 가두고 있었던 “사망권세의 돌문이 열렸다”는 소식입니다. 마리아가 돌문을 어찌할고 걱정하며 갔었는데 걱정의 문제가 이미 해결돼 있었읍니다. 경계 군인들은 어떻게 설득시키나 염려하며 갔었는데 염려의 문제가 이미 --. 인간은 문제속에 살아가고 있읍니다. 문제중에도 죽음의 문제가 제일 큰 문제입니다. 부활의 아침에 이 죽음의 문제가 해결된것입니다. 예수님은 돌 무덤속에서 3일동안 갇혀 계셨읍니다.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운명이셨읍니다. 그러나 그분의 강한 능력으로 죽음의 돌문을 허무시고 감금시켰던 돌문을 옮겨버렸읍니다. 사망권세는 예수부활과 동시에 아무런 힘을 낼수없게 돼 버렸읍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의 문제만 해결하면 세상에 문제될것이가 없읍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사생관만 확립되면 다른건 문제가 되질않습니다. 지금 우리를 감금시키고 있는 돌문이 무엇입니까? 돈 문제입니까? 자녀 문제입니까? 사업 문제입니까? 예수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장애물들을 우리 주님께서 짊어지시고 사망권세아래 3일간 갇혀계시다가 3일만에 모두 깨쳐버리셨읍니다. 주님께 모든걸 맡기십시요. 생사문제를 먼저 해결하십시요 그러면 돌이 굴러져 나갑니다. 돌이 옮겨 집니다. 부활의 아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축복의 아침이 되시기바랍니다.
3. 부활의 아침은 주님의 얼굴의 광채를 보게 해 줍니다. 본문에서 천사와 부활주님의 형상을 “번개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다”고 하였읍니다. “번개”란 헬라어로 광채,광휘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요한,야고보을 데리시고 변화산상에 올라 가셨을때 갑자기 예수님이 변화되셨읍니다. 휘황찬란한 광채가 비취며 세상에서 볼수없었던 광휘였읍니다. 예수님은 그 광휘속에서 일찌기 세상을 떠났던 모세,엘리야와 대화를 하시는 것이였읍니다. 예수님 얼굴의 광채를 본후부터 제자들이 실질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읍니다. 사도 바울이 변화된것도 다메섹 도상에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예수님의 광채를 보고 부터였읍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얼굴의 광채는 이렇듯 영적인 변화의 빛을 발하십니다. 어떤 변화의 빛을 비추입니까? 번개 혹은 빛을 생각해 보세요 1? 빛은 속도가 있읍니다. 속도는 힘을 말합니다. 힘이있어야 속도를 내기 때문입니다. 캄캄한 밤에 번개가 치면 사방이 순식간에 환해집니다. 아침에 해빛이 솟아오르면 온 천지를 환하게 만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의 광채가 바로 이런 작용을 하고 있읍니다. 주님의 얼굴의 광채를 받아 본 사람은 변화하지 않고는 못견디게 돼 있읍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사도 바울입니다. 성 프란시스가 그런 사람이였읍니다. 프란시스는 주님의 얼굴의 광채를 받고 변화되여 주님의 광채를 내면서 거룩한 생애를 살았다고 합니다. 성 프란시스가 길거리를 지날때는 그의 몸에서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충만하여 사람들이 감히 쳐다 보지를 못했답니다. 당시 공산주의자 레닌이 1924년 그가 운명하기 전에 “나는 실수를 했다. 나의 이름은 러시아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더구나 세계는 변화시킬수가 없었다 아씨스의 성자 프란시스의 광채난 그 모습을 지닌 사람이 10명만 있었다면 러시아는 물론 전세계는 변화 될수가 있었을 것이다“ 라고 말했읍니다. 레닌의 말은 옳았읍니다. 공산주의 가지고는 세상을 더 어둡게 만들어 놓았구요. 주님의 영광의 광채를 받은 사람들이 세계곳곳에서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 왔읍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광채는 인류에게 생명의 빛,소망의 빛이 되셨읍니다.
빛은 사람이 표현하기는 어려우나 특별한 작용 색갈이 있읍니다. 빛은 색갈이 있읍니다. 표현할길이 없어서 다만 희다고만 할뿐이지 색갈이 있읍니다. 그리고 특별한 작용을 합니다. 빛이있는 곳에 생명의 리듬이있고 숨결의 약동이있으며 모든 동식물의 호흡이있읍니다. 동녘에 떠오르는 태양의 아름다움은 그곳에 빛의 특별한 작용이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을 몰아내는 작용을 합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를 따뜻하게 풀어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의 광채는 죄악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부정부패로 썩어가는 세상을,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위대한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는 기도 내용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구하고 있읍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은혜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하였읍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시고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한 사랑은 부활의 아침에 찾아온 모든 사람에게 은혜의 광채를,평강의 광채를 비추십니다. 오늘 주님의 얼굴의 광채속에 들어온 성도여러분에게 고난과 슬픔과 불가능이 변하여 기쁨과 평안의 광채가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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