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믿음과 의심
본문
우리는 지금 대강절을 지나고 있다. 대강절은 12월 첫 주일부터 주님 탄생하시는 주일까지를 말씀합니다. 대강절(待降節)은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절기. 우리 삶에 변화를 가져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는 절기. 따라서 대강절은 회개의 때요, 자신을 성결케 하는 기간. 동시에 대강절은 부푼 기대와 설렘을 주는 절기이기도 함. 이 시기는 마치 세례 요한이 불로 세 상을 심판하실 메시아를 기다리며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던 때에 해당. 세례 요한은 남다른 기대를 가지고 메시아 오시기를 기다린 사람.
옛날 궁전에서 왕들은 신하가 바치는 음식을 믿지 못해서 음식을 대할 때마다 은수저로 휘휘 저어 봅니다. 만약 무슨 독이 들었으면 은수저가 시커멓게 변하기 때문. 그래서 은수저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 얼마나 큰 불신입니까 맛있게 먹어야 할 음식을 대할 때마다 믿지 못하는 마음이 앞선다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더욱이 정성껏 준비한 신하들의 수고에 대하여 감사히 받기보다는 일단 의심부터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쇼펜하우어)는 나이가 예순이 넘었는데도 여행할 때는 반드시 강아지를 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어딜 가서나 음식을 먹을때 강아지에게 그 음식을 먹여 보고 이상이 없어야 먹었다고 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남을 의심하고 먹는다면 그 음식이 건강을 지탱해 주겠습니까
대강절 둘째주일을 맞아 세례요한의 모습을 통해 ’믿음과 의심’을 생각해보고, 여러분은 의심은 버리고 믿음으로 한 주간을 살아 가기를 기원함.
1. 메시야를 기다리는 세례 요한
세례 요한은 그의 뒤에 오실 메시아에 대해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요단강으로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외쳤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나는 그의 신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는 손에 키를 들었으니, 자기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여,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
이 외침은 독설에 가까운 심판의 선언. 요한은 당시의 사회상을 보면서 이런 세상은 속히 멸망하고 새 세계가 와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 그는, 그가 속한 사회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자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 사회를 등지고 광야로 나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야인(野人)으로 생활을 하였다. 그의 광야 생활은 바로 이 부패한 사회에 대한 반발이요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요한의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볼 때 그의 메시지가 비판적이요 독설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따라서 그가 예비하는 메시아에게 거는 기대는 각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 메시아가 오시면 이 썩어 빠진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로운 세계를 이루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
본문을 보면 세례 요한이 처음 예수를 알고 나서 얼마나 흥분했는지 요 3:29-30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2 의심하고 실망한 세례 요한
세명의 대학생들이 아파트의 24층에 세를 들어 함께 지냈다. 어느 주일에 외출을 하고 돌아와보니 마침 정전으로 인해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걸어서 올라갈 도리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때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말하기를, 슬슬 이야기나 하면서 올라가면 쉽게 갈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과목인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층계를 올라왔을 때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깔깔거리고 웃는 사이에 어느새 24층에 도달해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현관 앞에 섰을 때 문제가 생겼다. 아무도 경비실에 맡겨놓았던 현관 열쇠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 서로 너무 믿다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
우리는 일평생 천국을 향해 계단을 오르듯이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천국문에 이르렀을 때 믿음의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결단코 천국문이 열리지 않는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믿음으로 천국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기 때문.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대단히 중요
신앙을 말할 때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정말입니까” 정말 천국이 있을 가요
정말 안믿으면 지옥 갑니까 정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입니까 기도하면 정말 들어 주십니까 정말 믿으면 될까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이라 못 믿는 것이 문제. 못 믿으니 아무런 결과도 없다. 결국은 아무 능력도 없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배워 많이 알아도 믿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시고 천국을 준비하셨어도 못 믿으면 그만. 아무리 약속이 확실해도 못 믿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 못 믿는 것이 저주. 믿음은 큰 축복.
남편도 믿고, 아내도 믿고, 자식도 믿어야 합니다. 의심하면 결코 건강할 수가 없고 평안할 수가 없다. 믿음은 참으로 중요한 것. 아주 절대적이요,큰 축복.
세례요한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삶을 살고, 또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알몀서도 2년도 채 못되어 그는 매우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6절을 보면 요한이 실족할 위기에 처해 했음을 알게 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옥에서”(2)가 그 열쇠. 어려움에 처하니 예수님이 메시야일까 의심이 생김.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기대했던 것처럼 한꺼번에 놀라운 변혁을 일으키지는 않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역사가 이 세계를 하루아침에 평화롭게 만들지도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세계는 변화되고 있다. 사랑의 복음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을 가지게 하고, 의(義)를 추구하게 만들고, 선한 일에 힘쓰게 만듭니다.
아직도 이 사회와 세계 속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 많은 문제와 고민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땅을 치료하시고, 고치시고,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너무나 성급한 나머지 어떤 혁명적인 것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더욱 깊은 악을 낳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요한과 똑같이 인간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감옥과 같은 환경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당장 속 시원한 응답이 오지 않아서 답답해하고 실망. 세상에서 헤롯같은 악인들이 형통한 것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정말 계시나 하고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마다 요한처럼 예수님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읍시다(히4:16).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성경을 펴고 의심이 들때마다! 눈앞에 캄캄할 때마다! 지금 예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읽으십시오.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병이 들었습니까 부도가 났습니까 예수님은 지금도 당신을 치료하시며 도우신다
여러분! 믿음이 흔들립니까! 기쁨이 없습니까! 그런 사람을 보고 예수는 지금도 똑같이 대답하십니다. ”보고 들어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라. 들으라. ” 이곳 저곳에서 소경들이 빛을 찾고 할렐루야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실제로 병 고침을 받은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이 하신 위대한 일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 병든 자들이 치유 받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알리는 것. 그렇다고 갑자기 무엇이 달라지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1초가 모여 10초가 되고 한 방울의 물이 모여 큰 저수지와 강물을 이루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통하여 이 교회에서 당신의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우리 편리 한대로 예수를 이해할 때 예수로 인하여 우리가 걸려 넘어지게 될 것. 우리 마음을 비우고 인내로 복음의 사역에 동참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우리 속에 이루어 주시는 것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옥에서 꺼내어 주시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은 아마도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후 기쁨을 맛보았을 것이고, 새로 태어난 감격을 안고 죽음을 맞이하였을 것. 예수님은 그를 감옥에서 자유케 하시지는 않았지만, 그의 영혼을 과거의 망령에서 풀어 자유케 하신 것.
여러분, 대강절은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오시는 예수를 기다리는 계절이 아닙니다. 문제들을 앞세우며 그 문제 해결만을 위하여 기도할 때는 오히려 우리는 절망만을 맛볼 것. 우리에게 문제가 있을수록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기를 힘써야 할 것. 주님께서 들어오시도록 마음을 비우며, 주님께서 오셔서 역사 하셔서 나의 아집과 교만과 고집을 깨뜨려 주시기를 기다리는 겸허한 마음이 필요. 주님은 이런 자의 심령 속에서 역사 하실 것.
대강절을 통해 의심을 버리고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옛날 궁전에서 왕들은 신하가 바치는 음식을 믿지 못해서 음식을 대할 때마다 은수저로 휘휘 저어 봅니다. 만약 무슨 독이 들었으면 은수저가 시커멓게 변하기 때문. 그래서 은수저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 얼마나 큰 불신입니까 맛있게 먹어야 할 음식을 대할 때마다 믿지 못하는 마음이 앞선다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더욱이 정성껏 준비한 신하들의 수고에 대하여 감사히 받기보다는 일단 의심부터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쇼펜하우어)는 나이가 예순이 넘었는데도 여행할 때는 반드시 강아지를 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어딜 가서나 음식을 먹을때 강아지에게 그 음식을 먹여 보고 이상이 없어야 먹었다고 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남을 의심하고 먹는다면 그 음식이 건강을 지탱해 주겠습니까
대강절 둘째주일을 맞아 세례요한의 모습을 통해 ’믿음과 의심’을 생각해보고, 여러분은 의심은 버리고 믿음으로 한 주간을 살아 가기를 기원함.
1. 메시야를 기다리는 세례 요한
세례 요한은 그의 뒤에 오실 메시아에 대해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요단강으로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외쳤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나는 그의 신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는 손에 키를 들었으니, 자기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여,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
이 외침은 독설에 가까운 심판의 선언. 요한은 당시의 사회상을 보면서 이런 세상은 속히 멸망하고 새 세계가 와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 그는, 그가 속한 사회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자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 사회를 등지고 광야로 나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야인(野人)으로 생활을 하였다. 그의 광야 생활은 바로 이 부패한 사회에 대한 반발이요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요한의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볼 때 그의 메시지가 비판적이요 독설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따라서 그가 예비하는 메시아에게 거는 기대는 각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 메시아가 오시면 이 썩어 빠진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로운 세계를 이루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
본문을 보면 세례 요한이 처음 예수를 알고 나서 얼마나 흥분했는지 요 3:29-30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2 의심하고 실망한 세례 요한
세명의 대학생들이 아파트의 24층에 세를 들어 함께 지냈다. 어느 주일에 외출을 하고 돌아와보니 마침 정전으로 인해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걸어서 올라갈 도리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때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말하기를, 슬슬 이야기나 하면서 올라가면 쉽게 갈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과목인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층계를 올라왔을 때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깔깔거리고 웃는 사이에 어느새 24층에 도달해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현관 앞에 섰을 때 문제가 생겼다. 아무도 경비실에 맡겨놓았던 현관 열쇠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 서로 너무 믿다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
우리는 일평생 천국을 향해 계단을 오르듯이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천국문에 이르렀을 때 믿음의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결단코 천국문이 열리지 않는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믿음으로 천국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기 때문.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대단히 중요
신앙을 말할 때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정말입니까” 정말 천국이 있을 가요
정말 안믿으면 지옥 갑니까 정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입니까 기도하면 정말 들어 주십니까 정말 믿으면 될까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이라 못 믿는 것이 문제. 못 믿으니 아무런 결과도 없다. 결국은 아무 능력도 없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배워 많이 알아도 믿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시고 천국을 준비하셨어도 못 믿으면 그만. 아무리 약속이 확실해도 못 믿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 못 믿는 것이 저주. 믿음은 큰 축복.
남편도 믿고, 아내도 믿고, 자식도 믿어야 합니다. 의심하면 결코 건강할 수가 없고 평안할 수가 없다. 믿음은 참으로 중요한 것. 아주 절대적이요,큰 축복.
세례요한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삶을 살고, 또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알몀서도 2년도 채 못되어 그는 매우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6절을 보면 요한이 실족할 위기에 처해 했음을 알게 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옥에서”(2)가 그 열쇠. 어려움에 처하니 예수님이 메시야일까 의심이 생김.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기대했던 것처럼 한꺼번에 놀라운 변혁을 일으키지는 않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역사가 이 세계를 하루아침에 평화롭게 만들지도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세계는 변화되고 있다. 사랑의 복음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을 가지게 하고, 의(義)를 추구하게 만들고, 선한 일에 힘쓰게 만듭니다.
아직도 이 사회와 세계 속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 많은 문제와 고민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땅을 치료하시고, 고치시고,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너무나 성급한 나머지 어떤 혁명적인 것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더욱 깊은 악을 낳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요한과 똑같이 인간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감옥과 같은 환경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당장 속 시원한 응답이 오지 않아서 답답해하고 실망. 세상에서 헤롯같은 악인들이 형통한 것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정말 계시나 하고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마다 요한처럼 예수님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읍시다(히4:16).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성경을 펴고 의심이 들때마다! 눈앞에 캄캄할 때마다! 지금 예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읽으십시오.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병이 들었습니까 부도가 났습니까 예수님은 지금도 당신을 치료하시며 도우신다
여러분! 믿음이 흔들립니까! 기쁨이 없습니까! 그런 사람을 보고 예수는 지금도 똑같이 대답하십니다. ”보고 들어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라. 들으라. ” 이곳 저곳에서 소경들이 빛을 찾고 할렐루야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실제로 병 고침을 받은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이 하신 위대한 일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 병든 자들이 치유 받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알리는 것. 그렇다고 갑자기 무엇이 달라지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1초가 모여 10초가 되고 한 방울의 물이 모여 큰 저수지와 강물을 이루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통하여 이 교회에서 당신의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우리 편리 한대로 예수를 이해할 때 예수로 인하여 우리가 걸려 넘어지게 될 것. 우리 마음을 비우고 인내로 복음의 사역에 동참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우리 속에 이루어 주시는 것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옥에서 꺼내어 주시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은 아마도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후 기쁨을 맛보았을 것이고, 새로 태어난 감격을 안고 죽음을 맞이하였을 것. 예수님은 그를 감옥에서 자유케 하시지는 않았지만, 그의 영혼을 과거의 망령에서 풀어 자유케 하신 것.
여러분, 대강절은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오시는 예수를 기다리는 계절이 아닙니다. 문제들을 앞세우며 그 문제 해결만을 위하여 기도할 때는 오히려 우리는 절망만을 맛볼 것. 우리에게 문제가 있을수록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기를 힘써야 할 것. 주님께서 들어오시도록 마음을 비우며, 주님께서 오셔서 역사 하셔서 나의 아집과 교만과 고집을 깨뜨려 주시기를 기다리는 겸허한 마음이 필요. 주님은 이런 자의 심령 속에서 역사 하실 것.
대강절을 통해 의심을 버리고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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