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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대강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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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거인과 키가 작은 한 재봉사가 누가 더 힘이 센가 경쟁이 붙었습니다. 거인은 돌을 손에 들어 하늘 높이 던졌습니다. 돌은 하늘 높이 올라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참만에 돌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재봉사는 집에 들어가서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가 손을 펴자 작은 새가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그 새는 결코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삶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거인과 같이 스스로 힘을 기릅니다. 그리고 힘껏 돌을 하늘로 던집니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그 돌은 땅으로 떨어집니다. 또 다른 하나는 재봉사와 같이 힘은 없지만 새를 날리는 삶입니다. 새가 훨훨 날아서 하늘에 닿게 하는 삶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여러분은 이 두 가지 삶 중에 어떤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학자이자 유명한 19세기말 화가인 반 고호(Van Gogh)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이 땅 위에 단순히 행복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정직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인간은 인류를 위하여 마련된 위대함(great things for humanity)을 맛보기 위하여 존재한다. ”
그러면 인류안에 마련된 위대함이란 무엇일까요 거인이 힘껏 돌을 던져 하늘 높이 올리게 하는 것이 인간을 위하여 마련된 위대한 그 무엇일까요 물론 아닐 줄 압니다.
거인과 재봉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손안에 작은 새가 하늘로 올라가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또 오랜 후 하늘의 빛을 담아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이 바로 인류를 위하여 예비된 위대한 삶이 아닐까요
오늘은 대강절 둘째 주일예배로 드립니다. 지난주에 한 개의 촛불이 켜진데 이어 오늘은 두 개의 촛불이 켜졌습니다. 이 작은 촛불이 켜짐과 함께 우리들의 마음은 작은 새가 되어 하늘로 날라 간 듯 합니다. 우리는 아기 예수를 환영하는 마음으로 다시 오실 영광의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작은 촛불을 켰습니다. 우리들의 작은 마음이 하늘에 닿으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다리는 것을 허락하시지 아니하실까요 우리를 위하여 마련된 그 위대한 선물을 다 보내신 후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지 않으실까요
오늘 본문말씀에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다가 인류를 위하여 마련된 위대함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소개되어지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민족이었습니다. 구약에 보면 메시야의 오심에 대하여 3백번 이상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이 민족을 바벨론 포로로 보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중에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모습은 처절할 정도입니다. 이사야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을 잉태치 못한 여인, 홀로된 여인의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포로 생활 가운데 메시야를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잉태하기를 원하는 여인, 홀로 된 자가 자녀를 낳기 원하는 절망의 모습을 안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메시야를 기다리다 지쳐 절망에 빠진 자에게 이사야는 엄청난 것을 요구합니다. 말도 안되는 것을 요구합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너를 노래할지어다.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
메시야를 기다리다가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 노래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한가지 명령을 더합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 노래하면서 집을 넓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절에 장막을 넓혀야하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
이사야는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노래할 것을 명령하면서 앞으로 생겨날 자녀들, 믿음의 식구들을 위하여 장막터를 넓힐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오늘 본문말씀을 통하여 인류를 위하여 마련된 위대함에 동참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위대한 삶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아니 그 모습이 너무도 처절하여 마치 잉태치 못한 자의 모습, 홀로 사는 여인이 갖고 있는 고통과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 모습 자체가 위대함은 전혀 아닙니다. 이사야는 지금 기다림 속에 지쳐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
자기가 기다리던 것들이 하나도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기다리던 메시야는 아직 오시지 않았지만 그 아픔 가운데서 노래하는 자, 이것이 이사야가 보여 주고 있는 위대한 삶, 인간을 위하여 마련된 위대함에 동참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기다림의 고통 가운데서 노래하는 자들은 위대한 세계를 체험합니다. 그 체험을 안고 미래를 내다보게 됩니다. 곧이어 꿈을 안고 장막터를 넓히는 자들이 됩니다.
수단(Sudan)에 에콜디(Acholdey)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도 잃고 소와 밭도 다 잃었습니다. 그에게는 리알(Rial)이라는 아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굶어 죽어가는 아들을 안고 걸어서 구호센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구호센타에 가면 그냥 돌려보내기 일쑤입니다. 드디어 3일이 걸려 Oxfam구호센타에 도착했습니다. 리알은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모자가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 도착한 것입니다. 너무 지쳐 모자는 방바닥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아들은 곧 목숨이 끊어질 듯 합니다. 엄마는 겨우 일어나 음식을 조금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아기들은 죽어가는데 엄마들은 이 아이들을 매트에 눕혀둔 채 한사람, 두사람 일어나 원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다, 번영과 희망의 노래를 부릅니다. 잃어버린 소들을 생각하며 소를 노래합니다. 지나간 힘들었던 반생을 노래합니다. 그들은 박수를 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발을 구르고, 휘바람을 불며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들은 인류의 위대함을 체험합니다. 어둠 속에 빛이 비추이기 시작합니다.
수단의 여인들은 함께 노래하며 춤추는 가운데 인간에게 주어진 위대한 축복을 누립니다. 말할 수 없는 승리를 체험합니다. 놀라운 미래를 바라봅니다. 수단의 여인들은 자기들로부터 땅과 남편과 곡식을 빼앗아 간 자들이 누리지 못하는 그 무엇을 누립니다. 인간 안에 주어진 위대함을 누립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대강절의 노래는 절망 중에 부르는 노래가 아닐까요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절망이 엄습해 올 때 부르는 노래, 이것이 대강절의 노래가 아닐까요 이 대강절의 노래가 작은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갈 때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위대함을 선물로 주시지 않을까요 진실로 인류를 위하여 마련된 위대함은 이루어지지 않은 꿈을 안고 주님을 애타게 기다리며 노래를 부르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미국의 소수 인종계 신학자들이 모여 이민신학에 관한 책을 편찬했습니다. 한국인 신학자로서는 박 앤드류 성(Andrew Sung Park) 교수의 글이 실렸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심금을 울립니다.
이루지 못한 꿈(A Dream Unfinished)입니다. 이민자들의 특징은 모두 이루지 못한 꿈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에게 그러한 제목을 붙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제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도 가만히 그분과 그분의 가정을 살펴보면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 것을 봅니다. 사업에 성공하면 가정적으로 어려워진 사람이 있는가하면 가정은 화목한데 세상일이 잘 되질 않습니다. 어떤 경우는 모든 것이 다 잘 되는데 자녀교육에 골치를 썩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건강 때문에 늘 고통 가운데 계신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루지 못한 꿈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이루지 못한 꿈이 있기에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게 되지 않습니까 주님을 기다리는 가운데 노래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루지 못한 꿈을 함께 지닌 자들과 노래하며 춤을 추게 되지 않습니까 그때 우리는 인류 안에 주어진 위대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올해 타이거 우즈(Tiger Woods)가 Masters Golf Champion이 된 후 뉴스위크지는 ’Tiger Rules’라는 글로 커버 스토리를 장식했습니다. 뉴스위크지는 타이거 우즈의 사생활의 일면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처음 프로로 등단한 후 Masters Golf 대회에서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챔피언이 되자마자 첫 번째 한 일은 농구의 황제인 마이클 조단(Michael Jordan)을 찾아 간 것입니다. 지나간 거성과 새로운 스타가 만났습니다. 그후로 그들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마이클 조단은 타이거에게 어떻게 돈과 명예를 잘 관리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타이거는 마이클 조단이 은퇴 후 게을러지지 않게 늘 자극을 줍니다. 자주 아침에 전화를 걸어 깨웁니다. 이 외에도 Charles Barkly라는 또 다른 은퇴한 농구계 거성이 합류하여 한 그룹을 이루게 됩니다.
이 세 명은 절친한 친구 관계가 되어서 서로 은퇴 후의 삶을 도와주고 막 스타가 된 타이거 우즈를 돌보게 됩니다. ’Unfinished dream’이 아니라 ’finished dream’을 갖고 있는 자들의 모임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시간만 있으면 같이 지내고 파티를 합니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통해서 이들은 분명 인류에게 주어진 위대함을 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Finished dream을 소유했던 마이클 조단은 그 무엇인가가 그리워 다시금 농구계에 복귀합니다. 다시금 unfinished dream을 소유한 자로 돌아갑니다.
Finished dream을 소유한 자들의 노래 안에서 마이클 조단은 아마 인류의 위대함을 맛보지 못했나 봅니다. 마이클 조단이 농구계에 복귀한 깊은 이유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상상하는 것은 언젠가 마이클 조단은 unfinished dream을 가진 자들과 함께 노래할 때 비로소 인간에게 주어진 위대함을 발견케 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대강절은 이루지 못한 꿈을 가진 자들의 절기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면서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각자의 꿈을 안고 노래하는 자들의 절기입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꿈을 안고 노래하는 자마다 인류 안에 주어진 위대함을 체험할 것입니다.
한편 보스톤에도 꿈을 이루기 위하여 많은 학생들이 모여듭니다. 특히 많은 과학자들이 노벨상의 꿈을 안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도 과학자들이 많이 계신데 이들 과학자들에게는 great things for humanity가 무엇일까요 연구하여 업적을 내어 노벨상을 받을 때 인류 안에 주어진 위대함을 체험할까요 과연 그럴까요
시몬느 바일(Simmone Weil)이라는 유대인 철학자이며 신학자가 있습니다. 요즘 그의 문헌들이 차츰 빛을 보고 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일찍 떠난 여자 신학자였습니다. 그의 과학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대에는 자연은 인간의 목적과 가치를 돕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이 중세기에 더욱 체계화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러 자연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목적에 의해 움직여지지만 인간이 사는 우주는 아무 목적이 없습니다. 자연세계는 인간이 추구하는 것에 무관심합니다. ”
과학자들은 많은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자연세계는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것에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자연은 과학자의 뜻대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 잘 다니고 말씀대로 살면 자연세계가 그 과학자의 뜻대로 따라오게 될까요
월터 헌(Walter Hearn)이란 분이 크리스챤 과학자들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그는 마지막 챕터에서 주님을 잘 섬기는 성공한 크리스챤 과학자들을 소개합니다. 특이할 만한 사실은 미국에서 주님을 잘 섬기는 과학자들 중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단 한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사실을 말씀드릴까 말까 몹시 망설였습니다. 과학의 길을 쉽게 포기하실까봐… 한명 밖에 받지 못한 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이유가 있을 줄 압니다. 저는 이번 설교 준비를 하면서 과학에 대해서 새롭게 많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자연 세계는 인간의 추구하는 것에 무관심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연세계도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을 새삼 느껴 보았습니다. 로마서 8장의 사도 바울의 말씀이 더욱 저에게 확신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
사도바울은 세상 피조물도 대강절의 노래를 부르며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연 세계는 믿는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데로 따라가서 노벨상을 받게 하기 위하여 있지 않습니다. 자연 세계는 믿는 과학자들이건 믿지 않는 과학자이건 그들의 추구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탄식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과학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연구를 중단해야 할까요 과학자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지라도 그 자연세계를 연구하고 연구해야 할 줄 압니다. 실패의 경험도 할 것입니다.
성공하는 때는 감사의 노래를, 실패하였을 때는 낙심 중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이 노래가 작은 새가 되어 하늘로 울려 퍼지지 않을까요
진실한 과학자는 자연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자연을 사랑한다면 자연과 함께 대강절의 노래를 부르며 메시야를 그 누구보다도 기다리는 자들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온 우주에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의 노래로 가득차 있습니다. 온 우주가 주님을 기다립니다. 우리도 기다림 가운데 이 노래를 부릅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미트리 라헵(Mitri Raheb)이라는 팔레스타인 크리스챤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그의 책, I am a Palestinian Christian에서 팔레스타인 크리스챤으로서의 아픔을 노래합니다. 마지막 결론으로 그는 ’I have a dream’이란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유대인, 팔레스타인 두 민족이 모여 사이좋게 지내며 각자 고유한 신앙을 유지하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두 민족이 평화를 이루어 더 이상 귀한 자원을 파헤쳐 녹슬어 없어질 무기를 만들지 않게 되는 아름다운 날이 임하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두 민족이 사이좋게 일하며 서로의 깊은 상처를 싸매주는 아름다운 관계를 맺게 되는 꿈이 있습니다. ”
라헵(Raheb)은 대강절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류에게 주어진 위대함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에게는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 없다고 말씀하실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라헵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우리에게 unfinished dream이 없다면 그 이유는 꿈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도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대강절의 노래를 부르십시다. 이루어지지 않은 꿈을 안고 노래를 부릅시다. 인류의 위대함에 동참할 것입니다. 이사야는 말씀합니다.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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