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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하나님의 일곱영이 임하소서 /계4:5, 5:6(12월 6일 대강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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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곱영이 임하소서 /계4:5, 5:6(12월 6일 대강주일)





주신 말씀 계시록 4장5절 5장6절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일곱영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겠습니다.


성령(πνευμα)은 인격과 사역으로 구분되지만 한분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인격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중 세 번째 의 인격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사역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로 은사 방언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성령은 분명히 한 분이신데 어찌해서 일곱 영이라 할까요?


우리는 계시록이 종말론을 말하는 성경으로 생각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심판의 책이라고 판단하기 쉬운데, 실상은 계시록도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 생명의 복음을 믿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즉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어 영생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책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일곱을 완전수라 합니다. 일곱은 3+4 즉 3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숫자요 4는 동서남북 땅의 숫자이기에 하나님의 숫자와 땅의 숫자가 합한 완전수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한분이신데 왜 일곱 영이라 했을까요?


성령은 인격이지 에너지나 능력이 아닙니다.


이는 성령의 일곱가지 역할을 말합니다. 하나의 성령이 하나님의 일곱영이라는 촛불이 은혜 생명 양자 성결 간구 진리 영광의 영으로 타 올라야합니다.


엡5:18“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충만함을 받으라”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 성령 충만에 대해 배웠습니다.


성령충만은 성령에 의하여 지배되어지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함을 받으려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므로 우리는 다만 비우고 내려놓으면 하나님께서 예수의 몸인 교회를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성령의 충만과 성령으로 충만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령의(of)충만은 단회적 사건으로 세례 받을 때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단회적 사건을 통해 칭의사건입니다. 이제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with) 충만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에 의해 지배되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에 지배되어지기 위해서는 찬송하라, 감사하라, 복종하라합니다.


성령으로 충만은 단회적이 아니라 계속적 사건이며, 하나님의 영광스런 나라를 위해 값없이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성령의 충만과 성령으로 충만이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고 각각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는 법은 먼저 자신이 지은죄를 살펴야 합니다.


즉 나는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는가 복음을 전한 능력이 있는가 기쁨과 순종하는마음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죄를 고백해야합니다. 자신의 무정함과 무절제 오만함과 분노 양심의 불신을 죄로 고백하면 성령께서 깨끗한 그릇에 채워주시기에 성령충만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성령의 지시에 온전히 순종하기로 결단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살피고 아는 죄를 모두 자백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 드렸으면 성령을 받을 준비가 되었으므로 성령충만하기를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성령 충만을 받을 줄로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성도에게 은사를 주실까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성도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성도를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하여, 예수를 확증하고 증거하기 위하여 은사를 주십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아직 내가 살아있으면 활동을 하시지 않지만 내가 비우고 내려놓고 더러운 욕심이 죽어지고 오래 참으면 성령으로 충만하여 지고 성령으로 충만해 질 때 은사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되 삼위하나님으로 계시고 성령님은 삼위로 계신 하나님이신데 , 일곱가지 역할 즉 일곱가지 형태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일곱영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은혜의 성령을 말합니다.


히10:29 “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합니다.


배교자들은 첫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짓밟는 자들입니다.


성도가 예수에게서 떠나는 배교 행위는 예수님을 짓밟고 멸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곧 마땅히 심판 받을 자들의 죄가를 치르기 위해 그 생명까지 내너 놓으신 희생제물을 발 아래 놓고 짓밟음으로써 은혜를 저버리는 악한 일이므로 결코 용서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둘째는 새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자들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된 것을 스스로 경멸하는 자들은 다시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배교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거룩하게 여기지 않고 깨끗하지 못하고 속된 것으로 생각하기에, 피로 산 언약을 무가치하고 부정한 것으로 여겼기에 그리스도에게 등을 돌리고 떠났기에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비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합니다.


욕되게 하다는 것은 오만불손하게 대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고를 듣고도 무시하고 그분을 자기들의 일에 거추장스런 존재로 여겨 능욕하는 어리석음을 서슴지 않습니다. 성령의 가르침과 권고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성령을 능멸한 것이므로 영원히 사함받을 수 없는 두려운 죄를 짓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의 지시와 경고를 무시하고서는 미래와 소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은혜의 성령(το πνεύμα τής χάριτος)은 우리의 역동적인 영적 능력의 근원이 되셔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여러 가지 능력들을 행하며, 거룩한 열매들을 맺도록 역사하시는 영이십니다.


은혜의 성령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며, 죄를 깨닫게 해주시고 은혜를 부어 주시니 은혜의 영을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은혜의 성령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총이요 거룩한 행동이므로 감사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은혜의 성령을 받은 성도는 성도를 칭찬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받으며 기쁨으로 세상을 아릅답게 사랑스럽게 만들어가야 될 줄 믿습니다.


둘째로 생명의 영입니다.


롬8:2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신성을 예수는 인성을 강조합니다.


생명의 성령은 생명을 얻게하되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본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옮겨갔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성령(τού πνεύματος τής ζωής)은 생명의 영이신 성령께서 통제하고 활동하시는 세력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죄와 사망의 법은 사망아래 사로잡고 사망으로 나아가게 하는 죄의 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뜻하는 조애(ζωής)는 육체적인 생명에 대하여는 생명과 숨 살아있는 것 살아있는 동안을 뜻하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속한 자연적 생명에 관하여 새 생명가운데 행한다, 죽은 상태로부터 벗어난 사람의 생명을 뜻합니다.


본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 은혜를 통해 신자 안에 자리 잡은 성령께서 생명의 영으로 활동하시면서 ,과거 우리를 사망의 세력 아래 사로잡아 두던 죄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켰다는 놀라운 선언인 것입니다.


이렇게 죄의 세력에서 해방된 자는 이제 성령의 도움으로 복되고 환희에 찬 새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밝히면서, 이러한 축복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여 변화 받고 감동받아 말씀을 통해 제자훈련 받은자가 성령 곧 하나님의 일곱영 그 중에서 생명의 영으로 충만함을 받아 불신자에게 내속에 있는 생명의 영을 전함으로 죽은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해야 될 사명을 감당해야 될 줄 믿습니다.


셋째 양자의 영입니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합니다.


성도들이 두려워하게 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양자의 영을 받은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종의 영은 두려움을 초래하는 두려움으로 이끄는 영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아니라 , 인간을 정서적으로 속박하고 움츠러들게 만드는 공포심을 말합니다. 율법을 어기면 화를 당한다는 불안감, 신의 노여움을 사 심판당할 것이라는 공포심, 자신의 행위가 신의 분노를 초래할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노심초사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종의 영은 인간 전체를 죄와 공포에 종노릇하게 만드는 폭군이 되어 인간으로 하여금 율법에 얽매여 살며, 인간의 저급한 본성의 종으로 살게 합니다.


이에 비해 양자(ύιοθεσίας)삼기를 뜻하는 이 말은 어떤 아이를 자신의 자녀로 입적하는 할 때 쓰는 전문적 법률용어로써 초대교회 당시 로마제국에서 양자로 입양된 아들은 모든 권리나 재산의 상속에서 친 아들과 차별없이 애정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고 가문을 지키고 융성하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양자를 삼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쓴 휘오데시아((ύιοθεσίας)도 이와 같이 유산상속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됨이 현재의 상태에만 머물지 않고 장차 성취될 소망의 목표로 삼았던 것입니다. 즉 구원사속에서 아들됨은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에 속한다는 것으로 구원을 보장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됨은 죄로부터 자유를 나타내며 이러한 자유를 얻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 외에 그 어떤 속박도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들 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과 밀접하게 관련시켰음을 표현하며, 또한 그의 아버지 되심으로 부터 우러나오는 신뢰를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양자 권은 예수를 믿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된 우리는 이미 양자의 영으로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도가 예수를 믿어 중생했다는 것은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고 양자가 되었다는 것은 아들로써 누리는 특권과 권리를 갖게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양자로 아들됨 으로써 첫째 양자된 자는 그의 옛 가족과 모든 권리를 상실하고 새아버지의 완전히 합법적인 아들로서의 모든 권리를 얻었다는 것이며 둘째 새 아버지의 유산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이며, 셋째 법률상으로 입양된 사람의 모든 옛 생활은 완전히 청산이 되었다는 것이며 넷째 법적으로 볼 때 입양된 사람은 문자 그대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그 새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은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진 양자의 영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단순히 새 아버지 아빠라 호칭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빠 아버지라 간절히 부르면서 아버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심정으로 간절히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칭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을 부르실 때 사용한 단어와 호칭으로 양자의 영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그 신분과 자격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대등해 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게 되므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구체적인 신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죄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로써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복중의 복인 줄 믿습니다.


내 속에 있는 양자의 영이 충만해지면 아버지가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양자의 영은 아버지가 그 아들들을 축복하는 야곱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영이신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사실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성령님과 자신의 영이 증거하는 대로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특권을 향유하고 복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넷째 성경의 영입니다.


롬1:4 “성경의 영으로는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시라” 합니다.


여기서 성결의 영(πνεύμα άγιωσύνης)는 거룩함의 영으로, 거룩함의 영에 부합하게 살라는 뜻이 됩니다. 즉 역사 가운데 오신 예수께서는 육신과 영혼을 지니신 분인데 , 바로 영혼에 있어서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거룩함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은 피조물과 완전히 구분되며 죄로부터 완전히 떠나계신 하나님의 절대 거룩함이 예수의 영에서 발견되어진다는 점에서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결의 영인 프뉴마 하기오쉬네스(πνεύμα άγιωσύνης)는 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으나 다른 인간과는 구별되게 예수만이 지니고 있는 성결한 영으로서의 신성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성결의 영은 성령이십니다. 이 성결의 영이 우리를 성화시킵니다.


성결의 영이 내주할 때 습관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집니다.


끊지 못하는 습관적인 것은 내가 끊으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결의 영이 충만하게 되어 연약한 자를 잡고 있는 흉악한 결박을 풀어야 합니다.


악한 습관인 술, 담배, 더러운 욕설과 음담패설, 도박과 한탕주의, 예배시 졸음과 설교비판, 성도착증, 낭비벽, 게으름, 시기질투와 다툼, 공주병과 왕자병...등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악한 습관은 무엇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기도할 때 “이 흉악한 악한 습관의 영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영은 떠날지어다” 명령하여 해로운 것은 그 생각조차도 떨어내 버려야합니다.


내주하시는 성결의 영으로 우리를 성화시켜 주님 곁에 가까이 다가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다섯째 간구의 영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라 합니다.


유다서의 저자는 유1:1에서 밝히는 대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가 기록한 성경으로 교회를 깨우는 불의 십자가라 하는 공통서신입니다.


유다는 자신을 예수의 형제라 하지 않고 야고보의 형제라 소개하며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한 것은 야고보가 초대교회 지도자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고 자신은 감히 예수님의 형제라 할 수 없을 만큼 신앙이 겸손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본 절에서 이단들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성결하고 거룩한 정통신앙을 가질 것을 권면하면서 첫째로 자신을 건축하되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서 건축하라고 권면한 후 둘째로 기도하되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기도하되 그들과 교통하고 있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합니다.


진정한 기도란 타종교에서 행하는 것 같은 깊은 명상에 잠기거나 경문을 외우는 정도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가 일반적으로 내가 나를 위한 기도를 내 생각으로 한다면 간구는 성령에 의지하여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과 인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힘으로 하는 기도는 10분 20분도 하기 힘들지만 성령께서 인도하시도록 나를 완전히 비우고 내려놓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면 몇 시간도 훌쩍 가버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8:5에서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 막1:40“한 나병환자가 와서 끓어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희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여기서 간구(παακαλών)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 간구(παακαλών)는 곁에서 부르다, ~의 도움을 청하다, 위로하다에서 유래하여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위로자이신 성령님을 뜻합니다.


이 나라가 타락하고 종교계와 지도자들이 타락했다할지라도 아직도 꺼지지 않는 기도의 불이 타오르고, 간구하는 영들이 있어 나라와 민족과 세게 복음화를 위한 간구의 기도가 끊이지 않고 있기에 이 나라와 이 민족과 그리고 세계가 지켜지고 발전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부모의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는 한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고 , 종교지도자들의 기도가 꺼지지 않는 한 나라가 망하는 법이 없는 줄 믿어 우리 모두 나라와 민족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자식들의 미래와 소망을 위해 간구할 때 도우시는 중보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여섯째 진리의 영입니다.


요14:17 “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합니다.


진리의 영은 성령의 본질및 대표적인 사역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부는 진리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시31:5)에게서 나오셨으며, 성도인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분이시므로(요16:1;3)진리는 성령을 특징짓는 가장 적절한 용어가 됩니다.


여기에서 진리의 영(τό πενύμα τής άληθείας)이라는 미혹의 영과 대립되는 말로써 그 특징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며, 성도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분별력을 가져 예수를 증거하는 대신 자기를 내세우는 자를 구별하여 애초에 발본색원해야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진리의 영(τό πενύμα τής άληθείας)이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자세히 가르치시며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성령이십니다.


진리는 불변하고 확고부동하며 확실해야 합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사건들을 밝히 드러내며, 어떤 사건을 그 참된 모습으로 제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밝히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깨닫지 못한 부분들을 진리의 영이신 파라클레토스가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좇는 자마다 진리 가운데 행하게 되고,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으며, 거룩한 열매들이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게 될줄 믿습니다.


일곱째 영광의 영입니다.


벧전4:13-14“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나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될 것은 14절 말씀은 마5:11절의 산상수훈 말씀을 다시 한번 제자의 입으로 강조하면서 그 말씀을 들을 때 영광(δόξης)의 영 곧 하나님의 영(θεού πνεύμα)이 그 위에 계셨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 장차 그리스도의 영광에도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비록 현재로써는 그 고난이 견디기 힘들고 괴롭겠지만 이로 인해 장차 그들이 받게 될 영광과 복을 생각한다면 기쁨으로 그것을 감내하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영이 함께하는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아서 그 가치를 아는 자들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보화가 감추어진 밭을 사라합니다.


여기에서 영광의 영(δόξης πνεύμα )은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고난 당하는 성도 개개인의 머리 위에 머물러 원기를 회복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영광의 상태가 지속되게 될 것 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된 영광의 영은 모세시대 광야 이스라엘의 회막위에 하나님의 구름이 내려앉고 그 영광이 충만했던 역사적 사실(출33:9)을 연상케 합니다.


과거 하나님의 성막위에 머물렀던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 교회에 특히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임하여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돌에 맞아 순교한 스데반 집사가 그에게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해 죽음의 순간 그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났으며, 영안이 열려 영광 중에서 그를 지켜보고 계신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입니다.(행6:15)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이유 때문에 욕을 먹고 고난을 당할 때 그 성도의 머리위에 영광의 영이 머무시는 이 극적인 장면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성도의 가야할 길과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느끼며 살아가라 하십니다.


마지막 때 성도들이 그리스도로 인해 핍박을 받을 때 친히 성령께서 함께 하시리라는 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막13:11)


순교하기 까지 충성하는 자에게 영광의 영이 그 머리위에 머물러 위로하시고 힘주시며 함께 해주실 줄 믿어 목숨을 내놓고 주님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일곱영이 무엇입니까?


은혜의 성령(το πνεύμα τής χάριτος)은 우리의 역동적인 영적 능력의 근원이 되셔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여러 가지 능력들을 행하며, 거룩한 열매들을 맺도록 역사하시는 영이십니다.


생명의 성령(τού πνεύματος τής ζωής)은 생명의 영이신 성령께서 통제하고 활동하시는 세력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죄와 사망의 법은 사망아래 사로잡고 사망으로 나아가게 하는 죄의 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양자의 영(ύιοθεσίας πνεύμα)은 아버지가 그 아들들을 축복하는 야곱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영이신줄 믿습니다.


성결의 영인 프뉴마 하기오쉬네스(πνεύμα άγιωσύνης)는 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으나 다른 인간과는 구별되게 예수만이 지니고 있는 성결한 영으로서의 신성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성결의 영은 성령이십니다.


이 성결의 영이 우리를 성화시킵니다.


성결의 영이 내주할 때 습관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집니다.


간구(παακαλών)는 곁에서 부르다, ~의 도움을 청하다, 위로하다에서 유래하여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위로자이신 성령님을 뜻합니다.


진리의 영(τό πενύμα τής άληθείας)이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자세히 가르치시며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성령이십니다


영광의 영(δόξης πνεύμα )은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고난 당하는 성도 개개인의 머리 위에 머물러 원기를 회복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영광의 상태가 지속되게 될 것 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곱영은 성령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일곱가지 역할로 구분해서 일하고 계신줄 믿어 성령충만한 성도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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