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보지 못하고 믿는 복된 자(요20:34-31)
본문
보지 못하고 믿는 복된 자(요20:34-31)
오늘 본문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는 말씀입니다.
먼저는, 부활절 두 번째 주일에 읽는 말씀입니다.
26절대로 여드레가 지나서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말씀이기에 부활절 두 번째 주일에 생각하는 본문의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요한복음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요한이 원래 기록한 말씀은 20장으로 끝난다고 봅니다.
21장은 그 후에 추가된 말씀으로 보는데 그렇게 보면 요한복음은 20장으로 끝나고 오늘 본문은 요한이 기록한 복음서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결론의 말씀으로 요한은 자신이 기록한 복음서의 목적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을 위해 기록되었다는 특징입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고 손에 못 자국을 보았고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았고 그래서 주님을 믿고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했습니다.
요한이 이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는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60년이 지난 주후 95년 정도 되는 때였습니다.
이 때의 사람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없다고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여도 믿을 수 있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를 위하여 오늘 본문이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믿었던 제자 중에 하나가 도마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은 무서워서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데,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자 중 하나인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제자들을 통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만 도마는 그들의 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의심을 품으면서 아주 강력하게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의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도마가 의심이 많아서이기도 했겠지만 그만큼 부활의 사실을 믿기가 어렵다는 반증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드레가 지난 후에 주님께서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시는데 그때는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는 순전히 의심하고 있던 도마를 위해 찾아오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있던 곳에 문들이 다 닫혀있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내밀어 내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부활하신 주님이 자기 앞에 서 계시다는 사실 앞에 도마의 의심은 한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이 분이 진정한 하나님이시고 진정한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고백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무엇보다도 주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보여줍니다.
부활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인 톨스토이의 작품가운데 유명한 ‘부활’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톨스토이는 한 귀족과 창녀가 정신적으로 부활하는 과정을 통해 당대 러시아의 정치 경제 법률 종교 등의 불합리성에 날 선 비판을 가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근본으로 하는 자신의 사상을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작품처럼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과정을 부활로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선이 악을 이겼다. 사랑이 미움을 이긴다. 진실이 거짓을 이긴다,’
이런 것은 물론 부활의 의미를 일부분 보여주는 말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아닙니다.
진정한 부활의 의미, 핵심적인 의미는 예수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특히 의심 많은 도마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도마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의 손에는 사흘 전 십자가에 달리실 때 박히셨던 못 자국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옆구리의 창자국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했을 때 주님은 분명히 자신의 못자국난 손을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주님이 못 자국과 창 자국을 지닌 채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주님의 십자가와 더불어 주님의 부활이 너무나도 생생한 역사적인 사건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누가 상상하여 만든 문학작품이거나 허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에 의해 거짓으로 꾸며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거짓으로 꾸며진 이야기에 의해 기독교가 2천년동안 내려온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2천년의 역사 속에 기독교 신앙이 견고하게 서고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복음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너무나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선, 주님에게 놀라운 영광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주님에게 주어진 영광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빌2장)
그 분은 만왕의 왕이 되셨고 만주의 주가 되시어서 만유를 주관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이 되셨습니다.(엡1장)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진정한 구세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음이 증거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부활은 그를 믿는 자에게도 놀라운 축복을 주셨는데요,
먼저, 그 부활의 주님을 믿을 때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예수님은 진정한 구세주가 되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것으로 끝났다면 그 분은 절대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의 교주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자신도 죽고 말았는데 다른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다른 종교의 교주와는 완전히 다른 분이 되셨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구주이시고 그 분만이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자기가 이 복음서를 기록한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구세주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분이라는 말인데, 이런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죽음의 권세에서 부활하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기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바로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구원을 받고 영생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고 받는 축복이 많겠지만 이 축복이 진정한 축복이요 이 축복이 없으면 사실 다른 축복은 아무것도 아닌 줄 믿습니다.
구원받는 축복을 위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전도서 3장에 나오는 대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습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습니다.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을 누가 거역할 수 있으며 누가 비켜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이렇다고 할 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금 더 오래살고 조금 더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축복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축복을 받았음에 진정으로 감사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사실 수 있기 바랍니다.
주님이 부활하셨기에 그 분은 참된 구원자가 될 수 있고 그 분을 믿을 때 이런 축복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그 부활의 주님을 믿을 때 우리도 부활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의 첫 경험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보다 앞서 부활을 경험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믿을 때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도 예수님을 따라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을 보면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는 죄의 유전을 받아 죄를 짓고 살면서 영적으로 완전히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예수님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 주님을 믿을 때 우리도 주님의 뒤를 이어서 부활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을 입으리라”
우리가 부활한다는 것은 영생의 삶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부활이라는 말은 다시 살아날 뿐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생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세 번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시고 오늘 우리들을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은 두려워서 몸을 숨기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또한 의심하며 부활의 사실을 믿지 못하는 도마를 찾아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살아계시기에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주님이시기에 우리들을 찾아오십니다.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 찾아오시어서 성도들에게 힘을 주시고 위로 하시고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지지난 주간에 우리 노회 목사님 한 분이 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20대 중반의 똑똑하고 신앙심이 좋은 큰 아들이 석, 박사 학위를 함께 진행하면서 실험실에서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 일을 하다가 실족하여 떨어졌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실험실에 사람이 없어서 늦게 발견하여 병원으로 옮겼지만 그만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 주간에 충남의 한 저수지에서는 인근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 5명이 탄 차가 저수지에 빠져 모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우리가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며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조문을 하면서 신앙 안에서, 믿음 안에서 위로 받으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인생길을 살아가는 성도들 가운데 찾아오시고 위로하시고 눈물을 닦아 주시고 힘을 더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2천 년 전 제자들에게만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가운데도 찾아오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은 영으로 찾아오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문들이 다 닫혀있는데도 찾아오시고 제자들 가운데 서 계십니다.
여기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육체를 갖고 계셨지만 또한 영으로 부활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육체로만 부활하셨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육과 영으로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들 가운데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대신하여 성령님을 보내주셨는데 그 성령님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찾아오시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도와주시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주님이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도마와 다른 제자들처럼 부활하신 주님의 못자국과 창 자국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통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믿게 되고 말씀을 통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고 예배를 통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경험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보지 않고도 믿게 되는 놀라운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보지 못한다고 예수 부활을 부인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현대에 맞지 않는 신화와 같은 이야기라고 치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이고 오늘 우리들의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받게 되는 예수 부활의 믿음을 잘 간직하시고 확신하시고 부활의 축복을 누리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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