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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사순절 다섯번째 주일설교-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막14: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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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다섯번째 주일설교-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막14:32-42)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리가운데 12신조가 있는데요,


그중 일곱 번째 신조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가운데 주님의 성품에 대한 고백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 영원한 아들이 참사람이 되어 그 후로 한 위에 특수한 두 성품이 있으니 영원토록 참 하나님이시며 참사람이시다.”


이 신조가 고백하고 있는 대로 주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사람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분명하게 고백해야 할 신앙고백입니다.


왜냐하면 참 하나님이심을 부인하고 예수를 사람으로만 생각하면 예수님은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죄가 있음으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을 당할 수가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반대로 참 사람임을 부인하고 참 하나님이심만 고백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주가 될 수 없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구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몸을 찢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12신조에 나오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으로 동시에 참 사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이 둘 중에 하나를 부인하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고백이 되지 못하고 이단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이 이런 두 가지 성품을 동시에 갖고 계셨기에 십자가를 앞에 두고도 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주님은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며 방법임을 잘 아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십자가는 당연히 감당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의 성품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이 들었던 것은 인간으로서 주님이 가지는 솔직한 현실이었습니다.


 


이것은 공생애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지막 십자가를 지실 때까지 늘 계속되었던 고민이고 마귀의 유혹이었습니다.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하시면서 공생애를 어떻게 시작할까 생각할 때


마귀는 십자가의 방법 말고 쉽고 편하고 인기 있는 방법을 사용하라고 유혹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을 때


주님은 그들을 피해 산으로 도망가십니다.


백성들이 저렇게 원하는데 저들의 요구대로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때는 베드로를 통하여 이 십자가의 길이 훼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백성들이 외쳤던 말이 호산나였습니다.


이 말은 ‘이제 구원 하옵소서’ 라는 말인데 이들이 언급한 구원은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달라는 정치적인 구원이었습니다.


마지막 십자가를 지셨을 때도 네가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우리가 너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겠다고 유혹하였습니다.


제자들과 백성들은 한 목소리로 십자가에서 죽지 말고 왕이 되어 우리를 로마의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간절한 요구를 하였습니다.


이 요구는 사실 십자가를 버려두고 따라갈 수 있는 달콤한 마귀의 유혹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요구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주님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이 고민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도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마지막 만찬을 잡수시고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과 따로 떨어져서 기도하시는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그 유명한 기도를 드립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본문에서 우리는 주님의 고민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지만 그 십자가가 너무나 힘들기에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는 기도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주님이 얼마나 큰 고민에 빠져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헤롯 대왕이 죽은 후 유대지역은 헤롯의 아들들이 분봉 왕으로 임명되어 통치하게 됩니다.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통치하던 아켈라오의 폭정으로 소요와 폭등이 그치지 않자


주후 6년에 아구스도 황제는 아켈라오를 해임하고 수리아 총독 구례뇨가 직접 통치하게 합니다.


바로 그 해에 갈릴리의 유다가 이끄는 열심당의 반란이 일어납니다.


그 열심당의 본거지가 갈릴리의 세포리스였는데 나사렛에서 8킬로 떨어진 곳입니다.


구레뇨 총독은 로마군 2개 군단과 4개 기병대를 추가로 파병하여 반란을 진압한 후


세포리스로 들어가는 도로의 양쪽에 2000개의 십자가를 세워 반란자들을 처형합니다.


매달려 죽어가는 반란군들을 보며 다시는 반역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할 목적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수직으로 세워 사형수를 매달아 죽이는 처형 방법은


BC 71년 노예 반란을 일으켰던 스파르타쿠스 일당을


로마로 들어가는 아피아 가도에 세운 6,000개의 십자가가 그 효시였습니다.


세포리스에서 갑자기 2,000개의 십자가를 제작할 때 인근의 목수가 모두 동원되었을 것이고 나사렛의 목수 요셉도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열 살 된 소년 예수도 아버지를 따라 세포리스에 가서 그 무서운 광경을 보았을 것입니다.(김성일 작가)


 


이런 경험으로 인하여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이 어떤 것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고통의 십자가, 그 수치의 십자가를 자발적으로 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그 십자가를 피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주님도 그 십자가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3번이나 기도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는 절대 값싼 십자가가 아닙니다.


오늘날 십자가가 너무나 흔하고 모양도 예쁘고 심지어는 장식용으로 사용되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값싸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결코 값싼 십자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값없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를 완성하기 위하여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엄청난 고통과 수치를 지불하여 얻게 된 값비싼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지느냐 아니면 십자가를 버리고 편한 길을 갈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주님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중요한 선택을 하실 때 마다 기도하시는 것이 주님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주님은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12제자들을 부르실 때는 밤새 산에서 철야기도를 하신 후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도 변화산에서 기도하신 후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십자가 처형을 앞에 두고 마지막 결단을 하실 때 주님은 겟세마네동산에서 땀 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이 어떤 결정을 할 때 빼 놓지 않으셨던 것이 바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기도가운데 주님은 모든 일을 결정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중요한 순간에 늘 기도할 수 있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주님이 우리 삶속에 들어오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여주십니다.


다니엘이 시기를 받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단6장)


다니엘이 늘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 삼십일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조서를 꾸며 왕의 허락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다니엘로서는 정말 일대 위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왕의 조서를 보면 다니엘이 이 위험을 피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인간적인 방법이 얼마든지 가능했습니다.


먼저는, 30일 동안 기도를 쉬면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하루 세 번하던 기도를 한 번으로 줄이고 기도하던 시간을 바꾸고 장소를 바꾸면 발각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지금까지 열어놓았던 창문을 닫고 커텐을 치고 기도하면 발견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위기에 순간에 이런 인간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전에 하던 대로 그대로 기도를 합니다.


다니엘이 다른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우리처럼 지혜가 없어서 그랬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지혜가 있었지만 다니엘이 기도하였던 것은


이 위기를 이기고 넘어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고 올바른 방법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사자 굴에서도 구해주시고 대적자들이 대신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요한 순간에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순간에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고 인생이 뒤틀어지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 바랍니다.


기도는 중요한 순간에 하는 것 일뿐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신학자이자 영국의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조나단 에드워드는 매일 같이 ‘가정과 모든 후손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기도의 사실을 알고 있던 한 학자가 그의 3대손까지 조사를 했는데


정말로 그의 자손들이 모두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선교사인 토마스 벡스턴은 아내와 함께 매일 같이 자기 가문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자가 많이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3대까지 50명에 가까운 사역자들이 벡스턴 가문에서 배출되었습니다.


기도를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로 정하고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실패하지 않고 올바르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피곤하여 기도하지 못하고 자는 것을 보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하루의 바쁜 일정을 보냈고 방금 전에는 유월절 만찬을 먹으면서 배가 불렀을 것이고 그래서 찾아오는 포만감에 잠을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처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졌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기도를 방해하는 많은 요소를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처럼 피곤한 인생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바쁘게 살다보면 기도할 시간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도하지 않는다고 당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런데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


 


기도할 때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유가 무엇이든지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에 깨어있지 않으면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베드로는 기도하는 일을 쉬다가 주님을 부인하는 시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잠을 이기지 못하여 기도하지 못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힘들고 바쁘고 귀찮더라도 기도함으로 깨어있는 신앙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는 정말 주님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기도였습니다.


여기에서 자칫하면 십자가를 외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십자가가 힘들었고 그 일로 인하여 주님은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고 마음에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기도하셨던 주님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시고 그 십자가를 지시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간절히 구하고 기도했던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께 강요하며 그것을 이루어 달리고 떼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교제하면서 진정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뜻을 내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기도입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돌아오면서 형, 에서를 만나기 전날 밤 압복강에서 하나님과 밤새 씨름을 합니다.


그 결과 환도 뼈가 부러지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 간구할 것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합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기도의 씨름은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의 환도 뼈가 부러지고, 우리 뜻이 하나님 뜻에 굴복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잠시 잠깐, 우리의 뜻이 좌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후에 주어지는 축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넘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겟세마네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십자가를 지셨을 때


주님은 부활하셨고 온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의 복음을 만드셨고 모든 사람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가 특히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드리는 기도가


여러분의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기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쁨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꺾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여러분의 뜻을 접는 기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에 신앙인의 모습을 잃지 않고


하나님이 주실 큰 상급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기도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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