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삼위일체의 하나님
본문
삼위일체설은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이시면서 세분이시고 세분이시면서 한분임을 믿는 기독교신학의 학설입니다. 학설일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어떠한 분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본질을 묻는 질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가장 바른 대답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는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논리적으로 안 맞습니다. 3=1이다 하는 수식은 틀린 수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믿으려고 합니다.
어려운 교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가지의 입장을 취해 왓습니다. 첫 번째의 입장은 잘 모르니까 무조건 믿어라 그랬습니다. 무조건 믿는 것이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선의 방편은 아닙니다.
또 한가지의 방편은 삼위일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알려고 덤비는데 여전히 명쾌 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삼위일체론을 만들어서 배포하기도 합니다. 삼위일체란 이런 것이야 하고 자신있게 말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은 틀렸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믿음을 바르게 세울수 있는 귀한 아침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삼위일체론은 삼신론에 대항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바벨론의 태양신(니므롯-탐무스-여신)은 삼신론(神論)의 신이였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셋인 삼두신(頭神-Triads)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였습니다. 그리고 이 삼신론 사상은 이집트를 비롯하여 중동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각 세분을 믿는 삼신론(神論- Tritheism)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마치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세 개인 것처럼 삼위일체를 설명하였습니다. 머리는 세 개이나 한 몸 아니냐? 이것이 삼위일체라고 이해 했습니다.
기독교회사는 바벨론의 삼신론,삼두론을 정죄했습니다. 그리고는 삼위일체론을 내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바벨론의 삼두론을 삼위일체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표현법이 이런 것 들입니다.
태양은 하나이다. 바벨론의 삼두론으로 말하지면 태양은 몸이다 그런데 세 개의 머리가 있다. 하나는 빛이고 또 하나는 열이고 또 하나는 에너지다 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나는 허윤강이라는 몸이다 그런데 내안에는 세 개의 머리가 있다. 하나는 목사라는 머리이고 또 하나는 남편이라는 머리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라는 머리이다.
그럴듯한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 설명이 바벨론의 우상을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기독교회는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머리가 셋인 삼신론이 아니라 유일신론임을 주창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세분이 아니라 한분이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셋인 괴물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세분이지만 세분이 아니요 본질적으로 같은 분, 한분, 유일신이라는 것이 기독교회사의 주장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여호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머리 셋 달린 괴물이 아니라 한분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믿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삼위일체론은 여호와 하나님은 세분이 아니라 한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한분이시다 라고 생각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분이시라면 예수님도 여호와 하나님이실까? 아니면 성령님도 여호와 하나님이실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 아니지만 여호와 하나님과 비슷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 대표적인 사람이 아리우스라는 사람입니다. 아리우스는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반하여서 아니다 예수님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비슷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타나시우스입니다. 이 논쟁이 교회뿐만이 아니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냥 두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콘스탄틴 대제는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자 다 모여라 그래서 이 문제를 정리했습니다.
교회사에서 그 유명한 325년 6월 니케아에서 모인 니케아 회의였습니다. 이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아리우스가 지고 아타나시우스가 이겼습니다.
즉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비슷하다는 아리우스파에게 아니다 예수는 완전한 여호와 하나님이다 하는 아타나시우스파가 이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논쟁안에 삼위일체론의 핵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부 여호와 하나님만을 강조하고 예수님이나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일신론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왜 이들은 예수를 부인했는가? 이들은 너무나 성부 여호와 하나님을 강조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분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다. 권능의 여호와 하나님이다. 이렇게 너무 성부 여호와 하나님만을 강조하다보니까
예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왔습니다. 천한 목수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일신론자들에 의하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이 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날수 있으며 어?게 비천하게 살다가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을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여호와 하나님, 능력 있는 여호와 하나님, 창조의 여호와 하나님, 초월적인 여호와 하나님, 이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일신론자들이며
이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고 정리한 것이 바로 삼위일체론인 것입니다. 일신론은 단일군주론의 뿌리가 됩니다. 가정에서는 가부장제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황제나 군주는 일신론이 좋습니까? 삼위일체론이 좋습니까? 일신론이 좋습니다.
힘이 있는 여호와 하나님, 호령하는 여호와 하나님, 군림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설정해 놓아야 자신이 호령할수 있고 자신이 군림할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교회사는 일신론을 이단으로 정죄했습니다.
머리 세 개인 삼신론을 이단으로 정죄했듯이 일신론도 정되했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을 정리했고 믿어 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실제의 삶속에서는 일신론의 여호와 하나님을 섬깁니다. 삼신론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까닭은 삼위일체론을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는 추상에서 절대 정리도 안되고 이해도 안됩니다. 뭔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삶의 문제에서 살펴보면은 삼위일체론은 명확합니다. 삼위일체의 핵심은 예수의 인간되심, 낮아지심입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권위는 일신론의 권위가 아닙니다. 삼위일체의 권위입니다. 무슨 권위입니까? 낮아질 때 생기는 권위이며 섬길 때 생성되는 권위입니다.
시중에 리더와 보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 이런말이 있습니다. 리더는 가자라고 권한다. 그러나 보스는 가라라고 명령한다. 리더는 함께 배를 타고 우리 함께 가자 라고 말한다. 보스는 자기는 배에 안타고 너희들은 가라라고 명령한다.
리더는 선원들과 운명을 함께 하면서 함께 가자고 말한다. 보스는 자신은 선원들과 운명을 함께 하지 않으면서 너희들은 가라라고 명령한다.
리더는 누구고 보스는 누구입니까? 일신론자들은 보스고 삼위일체론자들은 리더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 인간세계에 뛰어 내려 오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운명에 죄인의 운명에 동참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고난에 동참하셨습니다. 골고다를 오르셨으며 끝내 십가가를 지기까지 우리의 운명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가장 높이셨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삼위일체론입니다. 논리적인 접근은 혼동만을 줄뿐입니다. 무조건 믿던지 엉터리로 믿던지 둘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삶으로 접근하면 삼위일체론은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진짜 권위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으켜 줍니다. 우리교회는 까운을 벗었습니다.
권위는 까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낮아질 때 섬길때에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가족같은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어떠한 분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본질을 묻는 질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가장 바른 대답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는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논리적으로 안 맞습니다. 3=1이다 하는 수식은 틀린 수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믿으려고 합니다.
어려운 교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가지의 입장을 취해 왓습니다. 첫 번째의 입장은 잘 모르니까 무조건 믿어라 그랬습니다. 무조건 믿는 것이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선의 방편은 아닙니다.
또 한가지의 방편은 삼위일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알려고 덤비는데 여전히 명쾌 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삼위일체론을 만들어서 배포하기도 합니다. 삼위일체란 이런 것이야 하고 자신있게 말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은 틀렸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믿음을 바르게 세울수 있는 귀한 아침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삼위일체론은 삼신론에 대항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바벨론의 태양신(니므롯-탐무스-여신)은 삼신론(神論)의 신이였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셋인 삼두신(頭神-Triads)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였습니다. 그리고 이 삼신론 사상은 이집트를 비롯하여 중동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각 세분을 믿는 삼신론(神論- Tritheism)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마치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세 개인 것처럼 삼위일체를 설명하였습니다. 머리는 세 개이나 한 몸 아니냐? 이것이 삼위일체라고 이해 했습니다.
기독교회사는 바벨론의 삼신론,삼두론을 정죄했습니다. 그리고는 삼위일체론을 내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바벨론의 삼두론을 삼위일체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표현법이 이런 것 들입니다.
태양은 하나이다. 바벨론의 삼두론으로 말하지면 태양은 몸이다 그런데 세 개의 머리가 있다. 하나는 빛이고 또 하나는 열이고 또 하나는 에너지다 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나는 허윤강이라는 몸이다 그런데 내안에는 세 개의 머리가 있다. 하나는 목사라는 머리이고 또 하나는 남편이라는 머리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라는 머리이다.
그럴듯한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 설명이 바벨론의 우상을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기독교회는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머리가 셋인 삼신론이 아니라 유일신론임을 주창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세분이 아니라 한분이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셋인 괴물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세분이지만 세분이 아니요 본질적으로 같은 분, 한분, 유일신이라는 것이 기독교회사의 주장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여호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머리 셋 달린 괴물이 아니라 한분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믿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삼위일체론은 여호와 하나님은 세분이 아니라 한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한분이시다 라고 생각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분이시라면 예수님도 여호와 하나님이실까? 아니면 성령님도 여호와 하나님이실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 아니지만 여호와 하나님과 비슷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 대표적인 사람이 아리우스라는 사람입니다. 아리우스는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반하여서 아니다 예수님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비슷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타나시우스입니다. 이 논쟁이 교회뿐만이 아니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냥 두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콘스탄틴 대제는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자 다 모여라 그래서 이 문제를 정리했습니다.
교회사에서 그 유명한 325년 6월 니케아에서 모인 니케아 회의였습니다. 이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아리우스가 지고 아타나시우스가 이겼습니다.
즉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비슷하다는 아리우스파에게 아니다 예수는 완전한 여호와 하나님이다 하는 아타나시우스파가 이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논쟁안에 삼위일체론의 핵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부 여호와 하나님만을 강조하고 예수님이나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일신론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왜 이들은 예수를 부인했는가? 이들은 너무나 성부 여호와 하나님을 강조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분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다. 권능의 여호와 하나님이다. 이렇게 너무 성부 여호와 하나님만을 강조하다보니까
예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왔습니다. 천한 목수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일신론자들에 의하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이 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날수 있으며 어?게 비천하게 살다가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을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여호와 하나님, 능력 있는 여호와 하나님, 창조의 여호와 하나님, 초월적인 여호와 하나님, 이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일신론자들이며
이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고 정리한 것이 바로 삼위일체론인 것입니다. 일신론은 단일군주론의 뿌리가 됩니다. 가정에서는 가부장제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황제나 군주는 일신론이 좋습니까? 삼위일체론이 좋습니까? 일신론이 좋습니다.
힘이 있는 여호와 하나님, 호령하는 여호와 하나님, 군림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설정해 놓아야 자신이 호령할수 있고 자신이 군림할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교회사는 일신론을 이단으로 정죄했습니다.
머리 세 개인 삼신론을 이단으로 정죄했듯이 일신론도 정되했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을 정리했고 믿어 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실제의 삶속에서는 일신론의 여호와 하나님을 섬깁니다. 삼신론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까닭은 삼위일체론을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는 추상에서 절대 정리도 안되고 이해도 안됩니다. 뭔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삶의 문제에서 살펴보면은 삼위일체론은 명확합니다. 삼위일체의 핵심은 예수의 인간되심, 낮아지심입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권위는 일신론의 권위가 아닙니다. 삼위일체의 권위입니다. 무슨 권위입니까? 낮아질 때 생기는 권위이며 섬길 때 생성되는 권위입니다.
시중에 리더와 보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 이런말이 있습니다. 리더는 가자라고 권한다. 그러나 보스는 가라라고 명령한다. 리더는 함께 배를 타고 우리 함께 가자 라고 말한다. 보스는 자기는 배에 안타고 너희들은 가라라고 명령한다.
리더는 선원들과 운명을 함께 하면서 함께 가자고 말한다. 보스는 자신은 선원들과 운명을 함께 하지 않으면서 너희들은 가라라고 명령한다.
리더는 누구고 보스는 누구입니까? 일신론자들은 보스고 삼위일체론자들은 리더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 인간세계에 뛰어 내려 오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운명에 죄인의 운명에 동참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고난에 동참하셨습니다. 골고다를 오르셨으며 끝내 십가가를 지기까지 우리의 운명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가장 높이셨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삼위일체론입니다. 논리적인 접근은 혼동만을 줄뿐입니다. 무조건 믿던지 엉터리로 믿던지 둘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삶으로 접근하면 삼위일체론은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진짜 권위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으켜 줍니다. 우리교회는 까운을 벗었습니다.
권위는 까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낮아질 때 섬길때에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가족같은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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