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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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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령강림절 둘째 주일로서 특히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깊이 생각하면서 예배드리는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성령강림절기에 삼위일체주일이 들어있는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강림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믿고 경외하는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고독한 독재군주같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고 그 신성 안에 영원한 사랑과 영광과 은혜가운데 계신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주일을 지키면서 먼저 두 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첫째는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신앙은 일상적인 우리의 이성으로, 머리로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신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본질을 말하는 진리이기 때문에 이론을 통해 머리로서 설명하거나 설득하려말고 삶을 통해 가슴으로 체험해야 할 신앙진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삼위일체 신앙은 주후 4세기 이후에 신학자들이 연구해서 정리해 내놓은 신학이론이 아니라 초대교회 처음 예배공동체가 출현했을 때부터 십자가와 부활신앙공동체 안에서 고백되고 있었던 체험된 진리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삼위일체적 여호와 하나님 신앙고백이 기독교 신앙공동체 출현부터 함께한 증거이며, 더 나아가 기독교 신앙공동체가 자신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유대교로부터 구별되어 자신을 새로운 우주적 보편종교로 새 출발 할 수 있었던 핵심적 근거가 삼위가 일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데서 가능했다는 말이 됩니다.

예술가의 작품은 예술가 자신과는 결코 동일시 될 수 없지만 작품은 그 작가의 모든 것을 부분적으로 나타내고 있듯이 피조물은 그 창조주이신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신적 속성을 창조의 흔적으로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신앙고백의 참된 의미를 우리가 생각하기 전에 잠시 '삼위가 일체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이 말의 의미를 두가지 예를 통해서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그 하나의 예로서 저는 이틀 전에 호암아트홀에서 연주된 조영미 조영방 듀오 리사이틀을 예로 들겠습니다. 세계적 연주자인 두분의 연주실력은 정말 모든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분의 연주회를 생각해보면 먼저 원작곡자의 곡이 두분의 마음속에 다 담겨져 있습니다. 음악은 먼저 두분 마음속에 보이지 않게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 다음 두분 마음 안에 있는 그 음악이 두분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통한 연주와 함께 소리로서 음률로서 나타났습니다. 그 때 음악은 어디있느냐하면 두분의 악기연주를 통해 들리는 절묘한 음과 그 여운 속에 있습니다. 그렇게 연주된 이름다운 음악은 결국 청중의 귀와 마음에 즐거움과 영혼승화라는 영향을 주면서 감동을 줍니다. 그 때, 음악은 어디있느냐하면 사실은 청중의 음악체험 속에 있습니다. 연주자의 마음속에 있던 음악과 악기연주를 통해 소리화된 음악과 청중의 감동적 체험 속에 있는 음악은 각각 세차원으로 구별은 되지만 다른 음악이 아닌 한 음악입니다. 성부여호와 하나님은 음악가 마음속에 있는 창조적 음악의 샘터라면 성자여호와 하나님은 악기와 연주법을 통해 발화되어 들리는 소리화된 음악이요,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청중의 가슴속의 감동 감화를 주면서 존재하는 음악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그 셋은 서로 다른 음악이 아니고 한가지 음악의 세 가지 존재방식입니다.

한가지만 더 예를 들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태양이라고 부르는 실재의 세 가지 모습입니다. 태양은 우주 공간 속에 떠 있는 광원이 있습니다. 태양의 중심부는 매우 높은 고온이기 때문에 수소가 헬륨으로 변하는 열핵융합반응이 일어나며 이것이 태양의 에너지원이 된다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저기에 태양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는 것입니까? 태양이 방출하는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진정 태양 광선이 없다면 모든 색상 색도 조명도 밤과 낮도 다 없어져서 우리 지구에는 예술도 없고 문학도 없고 종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빛을 감지하지 못하는 맹인들은 태양이 뜨고 짐을 어떻게 압니까? 빛과 함께 태양에서 오는 열의 감지로서 압니다. 광열이 없다면 광합성 작용은 일어날 수 없고 곡식과 과일도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같은 태양이지만, 이렇게 광원, 광선 광열을 구별해서 체험합니다, 그러나 그 셋은 다른 것이 아니라 태양의 세 가지 존재방식입니다. 광원 속에 이미 광선과 광열이 있습니다. 햇빛이 비추는 곳에 이미 열이 있어 만물을 화육생성시킵니다. 광원을 성부여호와 하나님이라면 광원에서 나왔으되 빛으로서 태양이 저기 있음을 알려주는 광선은 성부를 계시하시는 성자여호와 하나님에 비유됩니다. 빛과 함께 광원에서 함께 나오되 열에너지로서 만물을 키우며 열매를 맺게 하는 광열은 성자여호와 하나님에게 비유 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우리가 고백하는 참된 의미는 무엇입니까?
먼저 성부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고백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높고 깊으시고 무궁하심 앞에서 참으로 경외심을 갖고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성자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가 고백한다는 것은 어떤 신앙적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믿되 여러 인류의 성인, 예언자, 지혜자들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을 부분적으로 깨달아 왔지만, 우리는 골로새서 2장 9절의 말씀대로 "그리스도 안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신성이 몸이 되어서 충만하게 머물러 있음"을 보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고백한다는 말의 진정한 뜻은 삼위일체 신론을 교리적으로 받아드린다는 지적이해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갈릴리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고 그 분의 말씀을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깊고도 진솔하게 나타내신 아드님의 말씀으로 알고 절대순명 하면서 신앙 생활을 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를 따르라" 하셨으니 우리는 구분 예수 그리스도 성자 여호와 하나님을 생활 속에서 몸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내 계명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셨으니 우리는 세속주의와 배금주의와 권력 지상주의 세상풍속에 휩쓸리거나 두려워말고 우리세대와 다가오는 젊은 생명들에게 예수 안에 길과 진리와 생명이 있음을 가르쳐 지키도록 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순절 성령강림을 말하면 사람들은 방언 은사를 얼른 생각하지만 사도행전 성령강림 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령임재에서 더 중요한 일은 서로 다른 말들을 사용하는 다양한 지방 출신들이 평소엔 언어소통이 안되다가 홀연히 언어소통이 되게 된 체험이었습니다. "보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요?" 라고 놀랜 것처럼, 막힌 사람들간의 의사소통이 터져서 서로 귀가 열려 듣게 된 사실입니다. 사탄의 권세는 사람들의 귀를 막게 합니다. 종교인들의 귀를 더욱 더 막아버리게 합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하늘이 열린 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할 적에 유대인들은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령운동이 진정 성령을 힘입어 신도들과 한국백성들을 복음생명으로 인도하려 한다면 귀를 활짝 열어 이 세계의 소리를, 이 시대의 소리를, 타종교의 소리를, 민초들의 소리를, 과학의 소리를, 젊은이들의 소리를 듣게 해야 합니다. 귀를 꼭 꼭 막아버리고 못 듣게 하는 집단은 그 집단이 어떤 종류의 집단이든지 성령을 거절하는 집단입니다. 북한이나 독재국가안에서는 국민이 세계 소식을 있는 그대로 못 듣게 합니다. 못 들으니, 비전을 볼 수 없고, 자기가 만든 틀 속에 갇히게 됩니다. 자기와 다른 것을 받아드리거나 관용하지 못하고 배타적으로 정죄하고 자기만이 옳다고 바리새적 인간들이 되고 맙니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예민한 듣는 귀를 갖게되어 사람의 신음소리만 아니라, 성령의 신음소리까지 듣는 감수성을 갖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살려내는 일에 고난을 감소시키는 일에 열심 내어 참여하게 합니다.
나라를 꾸려 가는데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세 가지일, 군병, 경제, 민심도덕중 김대중 정권은 대북포괄정책으로 군병과 안보문제, 아이엠에프 극복으로 경제문제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민심을 얻는데 위기상황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고급 옷 로비설이나, 아파트 한채값이 20억 이상하는 아파트 분양이 불티나게 나간다는 사실은 나라의 둑이 무너지는 것 못지 않게 심각한 것입니다. 서민들은 분노하고, 허탈해하고, 냉소적으로 됩니다. 진정한 삼위일체 신앙인들의 생활신앙이 이 사회의 도덕적 토대를 다시 쌓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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